STEP 10: TTS 대본
Writer · 버전 1 · 초안
산출물 (v1)
제 목을 치는 건, 이 지도를 다 보신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채웁니다.
짐승처럼 거대한 사내의 시퍼런 칼날.
그 서슬 퍼런 쇳덩이가 깡마른 아이의 앙상한 목덜미를 파고듭니다.
뚝뚝.
칼끝을 타고 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바람 소리조차 숨을 죽이는 흑풍산 깊은 골짜기.
휘익. 차가운 산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갑니다.
한 해에만 백 명의 나그네가 뼈도 추리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곳.
관군조차 발길을 끊어버린 악명 높은 무덤입니다.
그 끔찍한 호랑이 굴 한가운데, 일곱 살 꼬마 만복이가 홀로 서 있습니다.
거대한 그림자가 만복이의 정수리를 집어삼킬 듯 덮칩니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벌써 바닥에 엎드려 오줌을 지렸을 상황입니다.
그런데 만복이는 다릅니다.
스윽.
도망치기는커녕, 고개를 들어 사내를 똑바로 올려다봅니다.
어른보다 더 깊고 새까만 눈동자입니다.
잠시,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돕니다.
만복이의 꽉 다문 야무진 입술 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갑니다.
서늘하고 기이한 미소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그 살벌한 칼끝에서, 만복이는 오히려 빙긋 웃고 있습니다.
이 작은 아이 만복이는 왜 제 발로 지옥 문을 두드린 것일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산적 두목의 칼날 앞입니다.
어떻게 저런 소름 돋는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 기막힌 사연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쿵, 쿵.
어디선가 묵직한 짐 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왁자지껄. 취객들의 고함이 뒤섞인 소란스러운 난장입니다.
우리는 지금 장터 한복판으로 무대를 옮겨보려 합니다.
조선 팔도에서 가장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지요.
빛바랜 창호지가 바람에 너덜거리는 외딴 초가집입니다.
방 안에서는 쿨럭쿨럭, 밭은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만복이네 집에는 늘 코를 찌르는 쓴 한약재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비가 새는 눅눅한 흙벽 냄새와 뒤섞여,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냄새입니다.
마당 한구석, 달그락거리는 약탕기 앞입니다.
일곱 살 만복이가 쪼그려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불씨를 살리려 훅훅 숨을 불어넣는 만복이의 뺨에는 까만 숯검정이 묻어 있습니다.
약탕기를 만지느라 늘 까맣게 그을려 있는 고사리손입니다.
만복이는 그 작은 손으로, 앓아누운 어머니의 약을 정성스레 달이고 있습니다.
끙. 앓는 소리와 함께 볏가마를 짊어진 남자의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만복이의 아버지 칠성입니다.
수십 년 남의 집 짐을 져 나른 탓에, 칠성의 오른쪽 어깨는 눈에 띄게 푹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밑으로 뻘뻘 떨어집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무너져 내린 어깨를 부여잡고 밤새 뒤척여야만 했던 칠성입니다.
하지만 칠성은 단 하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약값이 떨어지면 방 안의 아내가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요.
가마니를 움켜쥔 칠성의 손가락 마디는, 거친 소나무 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피가 맺혀 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칠성이 당도한 곳은 장터에서 가장 목이 좋은 팽덕네 주막입니다.
가마솥 위로 뽀얀 고깃국물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곳입니다.
보글보글. 진하고 기름진 냄새가 거리를 가득 채웁니다.
탕탕, 도마 위에서 고기 써는 경쾌한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풍요롭고 시끄러운 이 난장 한복판은 누군가에겐 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칠성에겐 한없이 냉혹한 정글이었지요.
칠성은 국밥집 앞을 지날 때마다 마른침만 꿀꺽 삼키며 낡은 허리띠를 꽉 졸라매야 했습니다.
칠성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주막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쉼 없이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드디어 한 달 치 품삯을 받는 날입니다.
칠성은 굽은 허리를 조아리며 조심스레 쩍쩍 갈라진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유, 주모. 지가 어제오늘 일한 것도 아닌디. 섭섭지 않게 쳐주슈.
하지만 살집이 두둑한 팽덕네의 턱이 삐딱하게 치켜올라갑니다.
머리에 꽂은 커다란 옥비녀가 오만하게 흔들립니다.
쯧쯧. 팽덕네가 혀를 차며 코웃음을 칩니다.
아이고, 칠성아. 니가 국밥을 두 그릇이나 처무놓고 무슨 품삯을 달리 카노. 양심이 있어야지.
국밥 두 그릇은 주모 팽덕네가 먹다 버린 쉰내 나는 밥 덩어리였습니다.
팽덕네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는 쇳소리가 나는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쯧, 돈도 없는 것들이.
팽덕네가 허리춤의 전대를 요란하게 흔듭니다.
그러더니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으로 퉤 뱉듯 던져버립니다.
툭. 찰박.
그것은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보잘것없는 엽전 한 닢이었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흥건해진 진흙탕 속에 낡은 엽전이 처박혔습니다.
가져가라. 동냥이다.
한 달 내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한 대가입니다.
칠성의 땀방울이 진흙 구덩이에서 비참하게 조롱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칠성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진흙 묻은 엽전을 더듬거리며 찾았습니다.
칠성의 굽은 등이 잘게 떨렸습니다. 칠성은 참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사각사각 짚신 끄는 소리가 들립니다.
언제 따라왔는지, 깡마른 아이 하나가 칠성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만복이었습니다.
잠시,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습니다.
만복이는 엎드려 우는 아버지 칠성의 손에서 진흙 묻은 엽전을 조용히 빼앗아 쥐었습니다.
꼬옥.
일곱 살 만복이의 작은 주먹이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쥐어졌습니다.
만복이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대신 팽덕네의 번쩍이는 옥비녀를 뚫어지게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천년 묵은 우물처럼 고요한 눈동자였지요.
만복이의 가슴 속에 시퍼런 멍 같은 덩어리가 맺히고 있었습니다.
칠성의 품삯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알지도 못한 채, 팽덕네는 비웃음을 흘리며 돌아섰습니다.
걸을 때마다 팽덕네의 허리춤에서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비슷한 순간이 있으셨을 겁니다. 숨이 막힐 듯한 억울함에 목이 메어본 경험 말입니다.
하지만 주모 팽덕네는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진흙 바닥에 뱉듯 던져버린 이 보잘것없는 낡은 엽전 한 닢.
이 동전은 훗날 피 묻은 칼날이 됩니다.
관군도 잡지 못한 흑풍산 산적 무리의 목줄을 죄는 칼날 말입니다.
칠성의 눈물이 만복이의 심장에 불을 지핀 그날 밤.
만복이의 작은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덫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만복이는 앓아누운 어머니 앞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습니다.
그런데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기이한 행동을 이어갔습니다.
사각사각.
만복이는 뭉툭한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흙바닥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선들을 연신 그렸습니다.
그었다가 흙으로 덮어 지우고, 다시 방향을 틀어 선을 긋기를 수십 번 반복합니다.
마치 누군가의 발걸음을 조종하려는 듯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지도를 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만복이의 흔한 흙장난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들은 훗날 끔찍한 사냥터로 인도하는 치밀한 죽음의 밑그림이었습니다.
선 긋기를 마친 만복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터 골목을 나섰습니다.
만복이는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소곤소곤.
얘들아, 그거 알아. 저기 산 너머 버려진 무덤가 있잖아.
만복이의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였습니다.
거기 비석 아래에, 주먹만 한 금두꺼비가 파묻혀 있대. 밤마다 금빛이 번쩍거린대.
장터 아이들의 입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나팔수입니다.
돈 냄새라면 사족을 못 쓰는 팽덕네의 귀에 이 소문이 안 들어갈 리 없었지요.
국밥을 푸던 팽덕네의 억센 손놀림이 순간 멈칫했습니다.
팽덕네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들거렸습니다.
사람의 탐욕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작은 헛소문 하나가, 팽덕네의 눈을 완벽하게 멀게 했으니까요.
그날 밤, 달빛조차 숨죽인 어두운 무덤가입니다.
인적 끊긴 산속에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퍽퍽, 퍽.
누군가 미친 듯이 곡괭이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바로 팽덕네였습니다.
팽덕네의 숨소리는 짐승처럼 거칠어졌습니다.
머리에 꽂혀 있던 옥비녀가 흙투성이가 되어 흔들리는 줄도 몰랐지요.
헉헉. 땀방울이 팽덕네의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금두꺼비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던 겁니다.
손톱 밑에 까만 흙이 파고들어 피가 나도 도무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팽덕네의 머릿속엔 오직 금빛 찬란한 두꺼비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무덤 속에서 팽덕네를 맞이한 건 금두꺼비가 아니었습니다.
네 이년. 감히 뉘 집 조상 묘를 파헤치는 것이냐.
호통 소리와 함께 횃불이 사방에서 번쩍 켜졌습니다.
야간 순찰을 돌던 관군과 무덤의 주인인 양반집 노비들이었지요.
철푸덕. 팽덕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졸지에 악질 도굴꾼으로 몰린 팽덕네는 흠씬 두들겨 맞고 관아로 끌려갔습니다.
결국 옥살이를 면하기 위해 팽덕네는 피 같은 창고를 헐어야만 했습니다.
짤랑짤랑.
팽덕네는 막대한 위자료를 물어야 했습니다.
칠성에게 떼먹었던 밀린 품삯도 열 배로 토해내고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지요.
마침내 가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칠성네 밥상에는 모처럼 김이 솟는 하얀 쌀밥이 올랐습니다.
모락모락. 구수한 밥 냄새가 비 새는 초가집을 가득 채웠지요.
허허, 우리 아들 덕에 호강하는구먼.
칠성은 숟가락을 든 채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만복이도 밥알을 오물거리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지요.
병든 어머니의 약을 짓고도 남을 만큼 넉넉해진 돈입니다.
팽덕네를 골탕 먹이고 잃어버린 권리까지 되찾은 통쾌한 결말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모든 사건이 완벽하게 끝난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차가운 공기가 밀려옵니다.
밀린 품삯을 받아내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 줄 알았지요.
하지만 이 달콤한 쌀밥은 끔찍한 비극의 초대장이었습니다.
마을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초대장 말입니다.
돈에 눈이 먼 팽덕네의 지독한 독기를, 일곱 살 만복이가 너무 얕보았던 겁니다.
부들부들.
관아에서 풀려나 주막으로 돌아온 팽덕네의 두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팽덕네는 피가 나도록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이성을 잃은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전 재산의 절반을 날리고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팽덕네입니다.
팽덕네의 핏발 선 눈에 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팽덕네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금기의 이름을 입에 올렸습니다.
바로 흑풍산 산적 무리였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주막 뒷방입니다.
찰그랑. 묵직한 돈자루가 탁자 위로 던져졌습니다.
팽덕네는 산적 두목 흑보의 수하를 은밀히 찾았습니다.
남은 재산을 털어 거액의 뒷돈을 찔러넣었지요.
그 집구석 쥐새끼들.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단순한 앙갚음을 넘어선 끔찍한 살인 청부였습니다.
팽덕네의 탐욕은 결국 건너서는 안 될 무서운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달빛마저 먹구름 뒤로 꽁꽁 숨어버렸습니다.
타닥, 타닥타닥.
고막을 찢는 섬뜩한 불꽃 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흑풍산 중턱입니다.
수십 개의 시뻘건 횃불이 일렬로 줄지어 내려왔습니다.
손에 시퍼런 낫과 칼을 쥔 거친 산적 떼였습니다.
짐승의 가죽을 덧댄 산적들의 발소리가 지축을 쿵쿵 울렸습니다.
산적들이 하산한다는 소문에 마을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칠성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칠성은 아내를 업고 도망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연신 바닥에 주저앉았지요.
마을 전체가 잔인하게 짓밟힐, 거대한 위기가 닥친 겁니다.
그런데 그 생지옥 같은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곱 살 만복이였습니다.
만복이는 도망치지 않고 고요히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선 거대한 나무 장승 앞으로 다가갔지요.
끼기긱.
만복이는 온 힘을 다해 장승의 몸통을 밀어, 그 방향을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습니다.
길을 잃은 나그네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이정표였습니다.
그것이 순식간에 낯선 함정으로 뻗은 흉측한 손가락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혼이 나간 만복이의 헛짓거리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만복이는 조용히 몸을 돌렸습니다.
횃불이 내려오는 험한 산길을 향해 홀로 걸음을 옮겼지요.
자신의 손으로, 짐승의 아가리를 직접 찢기 위해서 말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외로운 발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사박, 사박.
어른의 보폭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발걸음이었습니다.
구름이 달빛마저 집어삼킨 밤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깡마른 일곱 살 만복이가, 홀로 가파른 흑풍산 비탈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부엉. 어디선가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메아리쳤습니다.
서늘한 밤공기가 만복이의 얇은 저고리를 파고들었지요.
보통의 아이라면 벌써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을 끔찍한 길입니다.
하지만 만복이의 까만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정면을 향해 있었습니다.
처음에 보셨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제 발로 호랑이 굴을 찾아가는, 숨 막히는 밤의 행진이었습니다.
마침내 산적 소굴의 육중한 문이 열렸습니다.
방 안의 호롱불이 일순간 파르르 떨렸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는 마치 산에 사는 곰 한 마리가 일어선 듯 거대했습니다.
목덜미부터 뺨까지 길게 그어진 깊은 칼자국이 선명합니다.
흑풍산의 지배자, 산적 두목 흑보였습니다.
방 안에는 시큼한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습니다.
흑보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사납게 번뜩였습니다.
스르릉.
흑보가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시퍼런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 서슬 퍼런 쇳덩이가 만복이의 앙상한 목덜미에 바짝 닿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탁.
만복이가 흑보의 책상 위에 당당히 물건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진흙 구덩이에 처박혔던, 끝이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이었습니다.
두목님.
만복이의 목소리는 소름 돋을 만큼 또렷하고 차분했습니다.
제 목을 치는 건, 제가 드리는 말씀을 다 들으신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흑보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습니다.
콧바람을 내뿜으며 칼을 거두지 않던 흑보의 눈이, 엽전을 향해 찢어질 듯 커졌습니다.
만복이는 짐짓 충신이라도 된 양,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띠며 속삭였습니다.
지난번 저희 아버지를 살려주신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만복이는 허리춤에서 구불구불한 선이 그려진 낡은 천조각 하나를 꺼냈습니다.
저 아래 팽덕네 주막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지요. 주모가 가장 아끼는 옥비녀가 든 궤짝이, 오늘 밤 뒷산 좁은 계곡으로 은밀히 이동할 겁니다.
그것은 가장 치명적인 미끼였습니다.
평소 누군가 자신을 속이려 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목을 쳤을 흑보였습니다.
하지만 옥비녀와 궤짝이라는 구체적인 정보 앞에, 흑보의 지독한 인간 불신도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번뜩.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탐욕으로 일렁였습니다.
잠시, 묘한 정적이 흐릅니다.
흑보는 만복이가 내민 지도를 낚아채듯 집어 들었습니다.
거대한 산적 무리가 곧바로 무기를 챙겨 계곡으로 향할 채비를 마쳤습니다.
덫은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특한 꼬마 만복이가 왜 굳이 자기 손으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일까요.
자신의 아버지를 괴롭힌 팽덕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악한 산적의 힘을 빌린 걸까요.
만복이가 제 손으로 호랑이에게 먹잇감을 던져준 그 순간.
해가 들지 않는 흑풍산 뒷산 좁은 골짜기에서는, 숨 막히는 잠복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절벽 사이로 길게 뻗은 계곡입니다.
구름에 가려 달빛조차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바위틈에 몸을 숨긴 수십 명의 산적들입니다.
산적들의 거친 숨소리가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습니다.
흑보는 엄지손가락으로 시퍼런 칼날을 매만지며 먹잇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가는 습하고 찬 산바람입니다.
스스슥.
저벅, 저벅.
맞은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지럽게 춤추는 붉은 횃불들이 좁은 골짜기를 서서히 채웠습니다.
쳐라.
흑보의 고함과 함께 산적들이 절벽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횃불 아래 드러난 무리는 보따리를 든 일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주모 팽덕네의 사병들이었지요.
돈을 받고 칠성네를 죽이러 가던 산적 무리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을 치러 왔다고 팽덕네는 오해했습니다.
반대로 흑보는, 팽덕네가 보물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매복시켰다고 착각했지요.
채쟁. 카앙.
부엉이 우는 소리뿐이던 고요를 찢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쳤습니다.
으아악.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의 칼날이 서로의 살갗을 베고 찔렀습니다.
어둠 속에서 끈적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끔찍한 난전입니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생지옥 같은 참상이 펼쳐진 겁니다.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뒤집히며, 흑보 역시 괴성을 지르고 칼을 미친 듯이 휘둘렀습니다.
잠시, 피비린내 나는 숨소리만 가득합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절벽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일곱 살 아이, 만복이입니다.
만복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씩.
은혜를 갚겠다던 만복이의 제안.
사실, 보물 궤짝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마당 흙바닥에 수십 번 그렸다 지웠던 복잡한 선.
그것은 두 세력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계곡의 지형도였습니다.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던 마을 어귀의 나무 장승.
팽덕네의 사병들을 정확히 이 골짜기로 유인하는 죽음의 이정표였지요.
그리고 흑보의 귀에 속삭인 옥비녀라는 거짓말까지.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설계였습니다.
탐욕에 찌든 팽덕네와 무자비한 산적 두목을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몰아넣기 위한 덫이었던 겁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두 악당을 충돌하게 만든 천재적인 속임수.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기막힌 이이제이의 덫이었습니다.
탐욕과 무자비가 충돌한 지옥도는 결국 양쪽 모두의 파멸로 끝이 났습니다.
팽덕네의 사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흑풍산의 지배자라 불리던 흑보 역시 온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흙바닥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털썩.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차가운 자갈밭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고요한 계곡입니다.
멀리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왔습니다.
헉헉, 헉.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굽은 어깨.
아버지 칠성이었습니다.
산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도 칠성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헤집다 그 핏빛 현장에 당도한 겁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산적 두목 흑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입니다.
흑보는 칠성의 발소리를 듣고 이제 자신의 명운이 다했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벅저벅 다가온 칠성이 흑보의 몸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지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북북.
칠성의 거친 손이 자신의 낡은 저고리 자락을 길게 찢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원수인 흑보의 피 나는 상처를 단단히 싸매어 지혈했습니다.
칼을 들어 복수하기엔 너무나도 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무력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짓밟은 악당에게 베푼 숭고한 구원이었습니다.
흑보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수십 년간 피 묻은 칼만 쥐고 살아온 살귀의 두 눈에서.
주르륵.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자갈밭 위로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입니다.
팽덕네가 야반도주한 빈 주막 앞 공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쾅쾅.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수십 년을 가로막고 섰던 높다란 담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지요.
그곳엔 땀을 뻘뻘 흘리며 나란히 곡괭이질을 하는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주저앉은 칠성, 그리고 얼굴에 긴 흉터가 남은 흑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주 보고 껄껄 웃었습니다.
툭.
칠성의 손에서 무언가가 담장이 무너진 흙 위로 떨어졌습니다.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낡은 엽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엽전 위로 두툼한 흙을 덮고 발로 단단히 다졌습니다.
다시는 돈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짓밟지도, 피를 흘리지도 않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오랜 원한의 경계가 무너지고 진정한 이웃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복수는 영특한 일곱 살 아이 만복이의 서늘한 기지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평생 굽은 허리로 살아온 아버지 칠성의 바보 같은 용서가 맺어주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칠성이라면, 피투성이가 된 원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가족을 몰살하려 했던 그 끔찍한 악당의 상처를, 선뜻 천으로 싸매어줄 수 있었을까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날카로운 복수만이 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둔 미움의 담장을 스스로 허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진짜 복수인가 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어떤 지혜를 발견하셨나요.
아주 오랜 옛날의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이치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영상이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면, 구독 버튼을 한 번만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전 재산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한 기이한 노인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아침입니다.
허물어진 담장 밑, 낡은 엽전이 묻혀 있던 그 자리.
그 검은 흙덩 위로, 작고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잠시, 고요한 여운이 맴돕니다.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탐욕으로 일렁였습니다.
흑보는 만복이가 내민 낡은 천 조각을 거친 손으로 단숨에 낚아채어 쥐었습니다.
부스럭.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산적 무리가 곧바로 무기를 챙겨 들었습니다.
만복이의 덫이 완벽하게 작동한 순간이었지요.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잠시, 의문스러운 침묵이 흐릅니다.
영특한 일곱 살 꼬마 만복이가 왜 굳이 자기 손으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일까요.
아버지를 모욕한 팽덕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흉악한 산적들의 힘을 빌리려 한 걸까요.
만약 산적들이 보물을 빼앗고 나서 만복이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시퍼런 칼날이 결국 마을 전체를 향할 것이라는 걸, 만복이는 정말 몰랐을까요.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시각.
만복이가 제 발로 호랑이에게 먹잇감을 던져준 바로 그 시각입니다.
해가 들지 않는 흑풍산 뒷산의 좁은 골짜기에서는, 아주 기이하고도 숨 막히는 잠복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절벽 사이로 길게 뻗은, 폭이 아주 좁은 계곡이었습니다.
먹구름이 달빛마저 집어삼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지요.
휘이잉.
차갑고 습한 산바람이 좁은 바위틈을 타고 음산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어둠 속에, 수십 명의 산적들이 바싹 엎드려 있었습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지독한 적막입니다.
산적들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배어, 꽉 쥔 칼자루가 미끄러질 정도였거든요.
흑보는 거대한 몸을 바위 뒤에 숨긴 채, 굵은 엄지손가락으로 시퍼런 칼날의 옆면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졌습니다.
스윽, 스윽.
쇠붙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콧등을 스쳤습니다.
먹잇감을 기다리는 짐승의 팽팽한 신경줄이 당겨지던 바로 그때입니다.
저벅.
잠시, 숨을 죽입니다.
저벅, 저벅.
맞은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자갈이 짓눌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윽고 어지럽게 춤추는 붉은 횃불 수십 개가, 좁은 골짜기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쳐라.
흑보의 짐승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와아아.
괴성과 함께 산적들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횃불 아래 드러난 무리는, 무거운 보물 궤짝을 든 나약한 일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치켜들고 두꺼운 갑옷을 껴입은 사내들입니다.
바로 악덕 주모 팽덕네가 전 재산을 털어 고용한 무장 사병들이었지요.
돈을 받고 칠성네를 몰살하러 가던 산적 무리가 약속을 어기고 주막을 덮치러 왔다고, 팽덕네는 단단히 오해했던 겁니다.
그래서 미리 길목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출동시켰지요.
반대로 흑보는 어땠을까요.
팽덕네가 자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고 착각했습니다.
채쟁. 카앙.
부엉이 우는 소리뿐이던 고요한 계곡을 찢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쳤습니다.
서로를 향한 지독한 오해입니다.
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의 칼날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의 살갗을 베고 찔렀습니다.
푹. 으아악.
어둠 속에서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튀고 비명이 난무했습니다.
비좁은 계곡 안에서는 횃불이 짓밟혀 꺼졌고,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끔찍한 생지옥이 펼쳐진 겁니다.
잠시, 처참한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 같은 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한 절벽 맨 꼭대기입니다.
일곱 살 아이, 만복이였습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살기 어린 비명소리에도, 만복이의 눈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두 번째 옅은 미소가 번져 나갔지요.
씩.
은혜를 갚으러 왔다는 만복이의 당돌한 제안.
사실, 보물 궤짝 따위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 마당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수십 번 그렸다 지웠던 복잡한 선.
그것은 바로 이곳, 두 세력이 마주치면 피할 길이 없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계곡의 지형도였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던 나무 장승.
그것은 길을 잃은 팽덕네의 사병들을 정확히 이 골짜기 입구로 유인하는 죽음의 이정표였지요.
거기에 흑보의 귀에 속삭인 옥비녀라는 기막힌 거짓말까지.
완벽한 설계가 마침내 빛을 발했습니다.
탐욕에 찌든 팽덕네와 무자비한 산적 두목을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몰아넣기 위한 덫이었던 겁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두 악당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게 만든 천재적인 덫입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기막힌 이이제이의 덫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탐욕과 무자비가 충돌한 지옥도는 결국 양쪽 모두의 처참한 파멸로 끝이 났습니다.
기세등등하던 팽덕네의 사병들은 무기를 버린 채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흑풍산의 지배자라 불리며 살인을 밥 먹듯 하던 흑보.
흑보 역시 온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흙바닥을 비참하게 기어가고 있었지요.
털썩.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차가운 자갈밭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신음조차 잦아들고, 짙은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고요한 계곡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타닥, 타닥.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헉헉, 헉.
폐가 찢어질 듯 헐떡이는 숨소리. 무거운 짐을 지느라 한쪽으로 굽어버린 어깨입니다.
아버지 칠성이었습니다.
산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도 칠성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헤집다 그 핏빛 현장에 당도한 겁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
흑보는 턱을 덜덜 떨며 힘겹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수십 명의 부하들은 모두 쓰러졌고, 흑보의 배에서는 꿀럭꿀럭 붉은 피가 솟구치고 있었지요.
자신을 죽여 달라고 청부받았던 그 집안의 가장, 칠성입니다.
원수의 얼굴을 확인한 흑보는 이제 자신의 더러운 명운도 여기서 끝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벅저벅 다가온 칠성이 흑보의 몸 위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칠성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널린 시퍼런 칼을 주워 들어, 단숨에 이 악당의 목을 벨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북북.
갑자기 거친 파열음이 들렸습니다.
칠성이 자신의 낡고 해진 저고리 자락을 두 손으로 길게 찢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원수인 흑보의 깊은 상처에 그 천을 단단히 동여맸습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피가 멎도록 지혈하는 거친 손길이었습니다.
가장 무력하게 짓밟혔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던 악당에게 베푼 숭고한 구원이었습니다.
왜.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목구멍에서 쇳소리 같은 흐느낌이 터져 나왔지요.
수십 년간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온 살귀입니다.
흑보의 두 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르륵. 눈물은 피 묻은 자갈밭 위로 속절없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입니다.
악덕 주모 팽덕네는 야반도주하여 영영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팽덕네가 군림하던 빈 주막 앞 공터에서, 맑은 아침 공기를 가르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쾅쾅.
뿌연 흙먼지가 일더니, 마을 사람들과 칠성네를 수십 년간 가로막고 섰던 높다란 흙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진 흙무더기 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란히 곡괭이질을 하는 두 남자가 보였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주저앉은 칠성입니다.
그리고 얼굴에 붉고 긴 흉터가 남은 사내, 흑보였습니다.
살귀였던 흑보는 칼을 버리고 마을로 내려와, 칠성의 가장 든든한 이웃이 되어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마주 보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툭.
그때, 칠성의 손에서 무언가가 허물어진 담장 흙 위로 떨어졌습니다.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이었습니다.
진흙탕에 내던져져 억울함의 씨앗이 되었고, 호랑이 굴에서 당당한 기지의 상징이 되었던 바로 그 동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엽전 위로 두툼한 새 흙을 덮고, 짚신 신은 발로 단단히 다졌지요.
다시는 돈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짓밟지도, 헛된 피를 흘리지도 않겠다는 굳은 맹세였습니다.
오랜 원한의 경계가 무너지고, 진정한 이웃이 탄생하는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얽히고설킨 억울한 원한과 핏빛 복수극.
그 시작은 영특한 일곱 살 아이 만복이의 서늘한 기지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평화는, 평생 굽은 허리로 짓눌려 살아온 아버지 칠성의 바보 같은 용서가 맺어주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칠성이라면, 칠흑 같은 계곡에서 피투성이가 된 원수를 내려다보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가족을 몰살하려 했던 그 끔찍한 악당의 배에서 흐르는 피를, 선뜻 자신의 옷을 찢어 막아줄 수 있었을까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욕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날카로운 앙갚음만이 내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짓밟고 파멸시키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둔 미움의 담장. 그 무거운 흙더미를 내 손으로 스스로 허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인가 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저잣거리의 투박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짙은 이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만복이와 칠성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면, 구독 버튼을 한 번만 꾹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제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가장 든든한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 재산을 포기한 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한 기이한 노인의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비가 소리 없이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아침입니다.
두 남자가 함께 곡괭이로 허물어버린 옛 주막의 담장 밑입니다.
낡은 엽전 한 닢이 깊이 묻혀 있던 그 검은 흙덩이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촉촉한 틈새로, 작고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요.
잠시,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쳐라.
흑보의 짐승 같은 고함이 좁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와아아.
괴성과 함께 수십 명의 산적들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산적들은 날카로운 낫과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보물 행렬을 덮쳤지요.
그런데.
횃불이 일제히 어둠을 밀어낸 순간,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계곡 아래에 서 있는 자들은, 무거운 보물 궤짝을 짊어진 나약한 일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치켜들고, 두꺼운 가죽 갑옷을 껴입은 건장한 사내들이었습니다.
바로 악덕 주모 팽덕네가 전 재산을 털어 고용한 무장 사병들이었지요.
오해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양쪽의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돈을 받고 칠성네를 몰살하러 가던 산적 무리가 약속을 어기고 주막을 덮치러 왔다고, 팽덕네는 단단히 오해했던 겁니다.
그래서 미리 길목을 지키기 위해 모든 군사를 이 계곡으로 출동시켰지요.
이 배신자 놈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사병 대장의 분노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반대로 흑보는 어땠을까요.
배신감에 핏발 선 눈이 무섭게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팽덕네가 자신의 옥비녀를 지키기 위해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고 단단히 착각했던 것이지요.
채쟁. 카앙.
부엉이 우는 소리뿐이던 고요한 계곡을 찢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쳤습니다.
서로를 향한 지독한 오해였습니다.
다 죽여라.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마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의 칼날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의 살갗을 무자비하게 베고 찔렀습니다.
푹. 으아악.
어둠 속에서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비좁은 계곡 안에서는 붉은 횃불들이 짓밟혀 꺼졌고, 비명과 거친 숨소리만이 뒤엉켰습니다.
비릿한 쇠 냄새와 흙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지요.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끔찍한 생지옥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난전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다가옵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 같은 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한 절벽 맨 꼭대기입니다.
깡마른 일곱 살 아이, 만복이였습니다.
절벽 아래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살기 어린 비명소리.
하지만 만복이의 까만 눈은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두 번째 옅은 미소가 천천히 번져 나갔지요.
씩.
은혜를 갚으러 왔다며 옥비녀 궤짝을 운운하던 만복이의 당돌한 제안.
사실, 보물 궤짝 따위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 마당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수십 번 그렸다 지웠던 복잡한 선.
그것은 바로 이곳, 두 세력이 마주치면 도망칠 길 없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계곡의 지형도였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던 나무 장승.
그것은 산적을 피해 길을 헤매던 팽덕네의 사병들을 정확히 이 골짜기 입구로 유인하는 죽음의 이정표였지요.
거기에 흑보의 귀에 은밀히 속삭인 옥비녀라는 기막힌 거짓말까지.
이 모든 덫은 시곗바늘처럼 치밀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악덕 주모와 무자비한 산적 두목.
이 둘을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몰아넣기 위한 완벽한 설계였습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오직 말 몇 마디와 장승의 방향만으로 두 악당을 파멸시킨 천재적인 덫입니다.
끝이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에서 시작된 아이의 복수.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기막힌 이이제이의 덫이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시간이 흘렀을까요.
탐욕과 무자비가 충돌한 지옥도는 결국 양쪽 모두의 처참한 파멸로 끝이 났습니다.
기세등등하던 팽덕네의 사병들은 무기를 내동댕이친 채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흑풍산의 지배자라 불리며 살인을 밥 먹듯 하던 흑보.
흑보 역시 곰 같은 온몸에 깊은 칼자국을 입은 채 흙바닥을 비참하게 기어가고 있었지요.
털썩.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차가운 자갈밭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신음조차 잦아들고, 짙은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고요한 계곡.
그때였습니다.
타닥, 타닥.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헉헉, 헉.
폐가 찢어질 듯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 무거운 짐을 지느라 오른쪽으로 푹 꺼져버린 굽은 어깨.
아버지 칠성이었습니다.
산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도 칠성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헤집다 그 핏빛 현장에 당도한 겁니다.
자갈을 밟는 칠성의 짚신이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다급한 발소리입니다.
흑보는 턱을 덜덜 떨며 힘겹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수십 명의 부하들은 모두 싸늘하게 식어 쓰러졌고, 흑보의 배에서는 꿀럭꿀럭 붉은 피가 쉼 없이 솟구치고 있었지요.
흐릿한 시야 너머로 횃불을 든 사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청부받았던 그 집안의 가장, 칠성입니다.
원수의 얼굴을 확인한 흑보는, 이제 자신의 더러운 명운도 여기서 끝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벅저벅 다가온 칠성이 흑보의 몸 위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칠성의 두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널린 시퍼런 칼을 주워 들어, 단숨에 이 악당의 목을 벨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아내를 병들게 하고 아들의 목숨을 위협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순간입니다.
그런데 상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잠시, 시간이 멈춥니다.
북북.
고요한 계곡에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칠성이 자신의 낡고 해진 저고리 자락을 두 손으로 길게 찢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피투성이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칠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원수인 흑보의 깊은 상처에 그 천을 단단히 동여맸습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피가 멎도록 지혈하는 거친 손길이었습니다.
가장 무력하게 짓밟혔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던 악당에게 베푼 숭고한 구원이었습니다.
왜.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목구멍에서 쇳소리 같은 흐느낌이 짐승처럼 터져 나왔지요.
수십 년간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온 살귀입니다.
흑보의 두 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르륵. 그 뜨거운 눈물은 피 묻은 자갈밭 위로 속절없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입니다.
사병들을 잃고 파산한 악덕 주모 팽덕네는 야반도주하여 영영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팽덕네가 군림하던 빈 주막 앞 공터에서, 맑은 아침 공기를 가르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쾅쾅.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칠성네 초가집을 수십 년간 가로막고 섰던 높다란 흙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요.
무너진 흙무더기 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란히 곡괭이질을 하는 두 남자가 보였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주저앉은 칠성입니다.
그리고 얼굴에 붉고 긴 흉터가 남은 사내, 흑보였습니다.
살귀였던 흑보는 흉악한 칼을 버리고 마을로 내려와, 칠성의 가장 든든한 이웃이 되어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마주 보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툭.
그때, 칠성의 손에서 무언가가 허물어진 담장 흙 위로 떨어졌습니다.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입니다.
팽덕네가 진흙탕에 내던져 조롱의 씨앗이 되었고, 호랑이 굴에서 당당한 거래의 상징이 되었던 바로 그 동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엽전 위로 두툼한 새 흙을 덮고, 짚신 신은 발로 꾹꾹 단단히 다졌지요.
다시는 돈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짓밟지도, 헛된 피를 흘리지도 않겠다는 굳은 맹세였습니다.
만복이가 흙바닥에 그렸던 죽음의 선이 지워지고, 오랜 원한의 물리적 경계마저 무너지는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얽히고설킨 억울한 원한과 핏빛 복수극입니다.
그 거대한 서사의 시작은 영특한 일곱 살 아이 만복이의 서늘한 기지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평화는, 평생 굽은 허리로 짓눌려 살아온 아버지 칠성의 바보 같은 용서가 맺어주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칠성이라면, 칠흑 같은 계곡에서 피투성이가 된 원수를 내려다보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내 가족을 몰살하려 했던 그 끔찍한 악당의 배에서 흐르는 피를, 선뜻 자신의 옷을 찢어 막아줄 수 있었을까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욕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날카로운 앙갚음만이 내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짓밟고 파멸시키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둔 미움의 담장. 그 무거운 흙더미를 내 손으로 스스로 부수어 허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통쾌하고 묵직한 복수인가 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저잣거리의 투박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짙은 이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만복이와 칠성 부자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면, 구독 버튼을 한 번만 꾹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제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가장 든든한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 재산을 포기한 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한 기이한 노인의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비가 소리 없이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아침입니다.
두 남자가 함께 곡괭이로 허물어버린 옛 주막의 담장 밑입니다.
낡은 엽전 한 닢이 깊이 묻혀 있던 그 검은 흙덩이 위로 빗방울이 가볍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촉촉한 흙의 틈새로, 작고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요.
잠시, 평온한 여운이 가득 찹니다.
제 목을 치는 건, 이 지도를 다 보신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잠시, 서늘한 침묵이 맴돕니다.
짐승처럼 거대한 사내의 시퍼런 칼날입니다.
그 서슬 퍼런 쇳덩이가 깡마른 아이의 앙상한 목덜미를 파고듭니다.
뚝뚝.
칼끝을 타고 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바람 소리조차 숨을 죽이는 흑풍산 깊은 골짜기.
휘익. 차가운 산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갑니다.
한 해에만 백 명의 나그네가 뼈도 추리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곳입니다.
관군조차 발길을 끊어버린 악명 높은 무덤이었지요.
그 끔찍한 호랑이 굴 한가운데, 일곱 살 꼬마 만복이가 홀로 서 있습니다.
거대한 그림자가 만복이의 정수리를 집어삼킬 듯 덮칩니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벌써 바닥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을 상황입니다.
그런데 만복이는 다릅니다.
스윽.
도망치기는커녕, 고개를 들어 사내를 똑바로 올려다봅니다.
어른보다 더 깊고 새까만 눈동자입니다.
잠시, 숨 막히는 정적이 흐릅니다.
만복이의 꽉 다문 야무진 입술 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갑니다.
서늘하고 기이한 미소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만복이는 오히려 빙긋 웃고 있습니다.
이 작은 아이 만복이는 왜 제 발로 지옥 문을 두드린 것일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산적 두목의 칼날 앞입니다.
어떻게 저런 소름 돋는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 기막힌 사연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쿵, 쿵.
어디선가 묵직한 짐 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왁자지껄. 취객들의 고함이 뒤섞인 소란스러운 난장입니다.
우리는 지금 장터 한복판으로 무대를 옮겨보려 합니다.
조선 팔도에서 가장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지요.
빛바랜 창호지가 바람에 너덜거리는 외딴 초가집입니다.
방 안에서는 쿨럭쿨럭, 밭은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만복이네 집에는 늘 코를 찌르는 쓴 한약재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비가 새는 눅눅한 흙벽 냄새와 뒤섞여,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냄새입니다.
마당 한구석, 달그락거리는 약탕기 앞입니다.
일곱 살 만복이가 쪼그려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불씨를 살리려 훅훅 숨을 불어넣는 만복이의 뺨에는 까만 숯검정이 묻어 있습니다.
약탕기를 만지느라 늘 까맣게 그을려 있는 고사리손입니다.
만복이는 그 작은 손으로, 앓아누운 어머니의 약을 정성스레 달이고 있습니다.
끙. 앓는 소리와 함께 볏가마를 짊어진 남자의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만복이의 아버지 칠성입니다.
수십 년 남의 집 짐을 져 나른 탓에, 칠성의 오른쪽 어깨는 눈에 띄게 푹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밑으로 뻘뻘 떨어집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무너져 내린 어깨를 부여잡고 밤새 뒤척여야만 했던 칠성입니다.
하지만 칠성은 단 하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약값이 떨어지면 방 안의 아내가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요.
가마니를 움켜쥔 칠성의 손가락 마디는, 거친 소나무 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피가 맺혀 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칠성이 당도한 곳은 장터에서 가장 목이 좋은 팽덕네 주막입니다.
가마솥 위로 뽀얀 고깃국물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곳입니다.
보글보글. 진하고 기름진 냄새가 거리를 가득 채웁니다.
탕탕, 도마 위에서 고기 써는 경쾌한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풍요롭고 시끄러운 이 난장 한복판은 누군가에겐 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칠성에겐 한없이 냉혹한 정글이었지요.
칠성은 국밥집 앞을 지날 때마다 마른침만 꿀꺽 삼키며 낡은 허리띠를 꽉 졸라매야 했습니다.
칠성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주막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쉼 없이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드디어 한 달 치 품삯을 받는 날입니다.
칠성은 굽은 허리를 조아리며 조심스레 쩍쩍 갈라진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유, 주모. 지가 어제오늘 일한 것도 아닌디. 섭섭지 않게 쳐주슈.
하지만 살집이 두둑한 팽덕네의 턱이 삐딱하게 치켜올라갑니다.
머리에 꽂은 커다란 옥비녀가 오만하게 흔들립니다.
쯧쯧. 팽덕네가 혀를 차며 코웃음을 칩니다.
아이고, 칠성아. 니가 국밥을 두 그릇이나 처무놓고 무슨 품삯을 달리 카노. 양심이 있어야지.
국밥 두 그릇은 주모 팽덕네가 먹다 버린 쉰내 나는 밥 덩어리였습니다.
팽덕네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는 쇳소리가 나는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쯧, 돈도 없는 것들이.
팽덕네가 허리춤의 전대를 요란하게 흔듭니다.
그러더니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으로 퉤 뱉듯 던져버립니다.
툭. 찰박.
그것은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보잘것없는 엽전 한 닢이었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흥건해진 진흙탕 속에 낡은 엽전이 처박혔습니다.
가져가라. 동냥이다.
한 달 내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한 대가입니다.
칠성의 땀방울이 진흙 구덩이에서 비참하게 조롱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칠성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진흙 묻은 엽전을 더듬거리며 찾았습니다.
칠성의 굽은 등이 잘게 떨렸습니다. 칠성은 참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사각사각 짚신 끄는 소리가 들립니다.
언제 따라왔는지, 깡마른 아이 하나가 칠성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만복이었습니다.
잠시,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습니다.
만복이는 엎드려 우는 아버지 칠성의 손에서 진흙 묻은 엽전을 조용히 빼앗아 쥐었습니다.
꼬옥.
일곱 살 만복이의 작은 주먹이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쥐어졌습니다.
만복이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대신 팽덕네의 번쩍이는 옥비녀를 뚫어지게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천년 묵은 우물처럼 고요한 눈동자였지요.
만복이의 가슴 속에 시퍼런 멍 같은 덩어리가 맺히고 있었습니다.
칠성의 품삯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알지도 못한 채, 팽덕네는 비웃음을 흘리며 돌아섰습니다.
걸을 때마다 팽덕네의 허리춤에서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비슷한 순간이 있으셨을 겁니다. 숨이 막힐 듯한 억울함에 목이 메어본 경험 말입니다.
하지만 주모 팽덕네는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진흙 바닥에 뱉듯 던져버린 이 보잘것없는 낡은 엽전 한 닢.
이 동전은 훗날 피 묻은 칼날이 됩니다.
관군도 잡지 못한 흑풍산 산적 무리의 목줄을 죄는 칼날 말입니다.
칠성의 눈물이 만복이의 심장에 불을 지핀 그날 밤.
만복이의 작은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덫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만복이는 앓아누운 어머니 앞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습니다.
그런데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기이한 행동을 이어갔습니다.
사각사각.
만복이는 뭉툭한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흙바닥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선들을 연신 그렸습니다.
그었다가 흙으로 덮어 지우고, 다시 방향을 틀어 선을 긋기를 수십 번 반복합니다.
마치 누군가의 발걸음을 조종하려는 듯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지도를 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만복이의 흔한 흙장난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들은 훗날 끔찍한 사냥터로 인도하는 치밀한 죽음의 밑그림이었습니다.
선 긋기를 마친 만복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터 골목을 나섰습니다.
만복이는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소곤소곤.
얘들아, 그거 알아. 저기 산 너머 버려진 무덤가 있잖아.
만복이의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였습니다.
거기 비석 아래에, 주먹만 한 금두꺼비가 파묻혀 있대. 밤마다 금빛이 번쩍거린대.
장터 아이들의 입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나팔수입니다.
돈 냄새라면 사족을 못 쓰는 팽덕네의 귀에 이 소문이 안 들어갈 리 없었지요.
국밥을 푸던 팽덕네의 억센 손놀림이 순간 멈칫했습니다.
팽덕네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들거렸습니다.
사람의 탐욕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작은 헛소문 하나가, 팽덕네의 눈을 완벽하게 멀게 했으니까요.
그날 밤, 달빛조차 숨죽인 어두운 무덤가입니다.
인적 끊긴 산속에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퍽퍽, 퍽.
누군가 미친 듯이 곡괭이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바로 팽덕네였습니다.
팽덕네의 숨소리는 짐승처럼 거칠어졌습니다.
머리에 꽂혀 있던 옥비녀가 흙투성이가 되어 흔들리는 줄도 몰랐지요.
헉헉. 땀방울이 팽덕네의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금두꺼비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던 겁니다.
손톱 밑에 까만 흙이 파고들어 피가 나도 도무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팽덕네의 머릿속엔 오직 금빛 찬란한 두꺼비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무덤 속에서 팽덕네를 맞이한 건 금두꺼비가 아니었습니다.
네 이년. 감히 뉘 집 조상 묘를 파헤치는 것이냐.
호통 소리와 함께 횃불이 사방에서 번쩍 켜졌습니다.
야간 순찰을 돌던 관군과 무덤의 주인인 양반집 노비들이었지요.
철푸덕. 팽덕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졸지에 악질 도굴꾼으로 몰린 팽덕네는 흠씬 두들겨 맞고 관아로 끌려갔습니다.
결국 옥살이를 면하기 위해 팽덕네는 피 같은 창고를 헐어야만 했습니다.
짤랑짤랑.
팽덕네는 막대한 위자료를 물어야 했습니다.
칠성에게 떼먹었던 밀린 품삯도 열 배로 토해내고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지요.
마침내 가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칠성네 밥상에는 모처럼 김이 솟는 하얀 쌀밥이 올랐습니다.
모락모락. 구수한 밥 냄새가 비 새는 초가집을 가득 채웠지요.
허허, 우리 아들 덕에 호강하는구먼.
칠성은 숟가락을 든 채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만복이도 밥알을 오물거리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지요.
병든 어머니의 약을 짓고도 남을 만큼 넉넉해진 돈입니다.
팽덕네를 골탕 먹이고 잃어버린 권리까지 되찾은 통쾌한 결말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모든 사건이 완벽하게 끝난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차가운 공기가 밀려옵니다.
밀린 품삯을 받아내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 줄 알았지요.
하지만 이 달콤한 쌀밥은 끔찍한 비극의 초대장이었습니다.
마을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초대장 말입니다.
돈에 눈이 먼 팽덕네의 지독한 독기를, 일곱 살 만복이가 너무 얕보았던 겁니다.
부들부들.
관아에서 풀려나 주막으로 돌아온 팽덕네의 두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팽덕네는 피가 나도록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이성을 잃은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전 재산의 절반을 날리고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팽덕네입니다.
팽덕네의 핏발 선 눈에 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팽덕네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금기의 이름을 입에 올렸습니다.
바로 흑풍산 산적 무리였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주막 뒷방입니다.
찰그랑. 묵직한 돈자루가 탁자 위로 던져졌습니다.
팽덕네는 산적 두목 흑보의 수하를 은밀히 찾았습니다.
남은 재산을 털어 거액의 뒷돈을 찔러넣었지요.
그 집구석 쥐새끼들.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단순한 앙갚음을 넘어선 끔찍한 살인 청부였습니다.
팽덕네의 탐욕은 결국 건너서는 안 될 무서운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달빛마저 먹구름 뒤로 꽁꽁 숨어버렸습니다.
타닥, 타닥타닥.
고막을 찢는 섬뜩한 불꽃 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흑풍산 중턱입니다.
수십 개의 시뻘건 횃불이 일렬로 줄지어 내려왔습니다.
손에 시퍼런 낫과 칼을 쥔 거친 산적 떼였습니다.
짐승의 가죽을 덧댄 산적들의 발소리가 지축을 쿵쿵 울렸습니다.
산적들이 하산한다는 소문에 마을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칠성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칠성은 아내를 업고 도망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연신 바닥에 주저앉았지요.
마을 전체가 잔인하게 짓밟힐, 거대한 위기가 닥친 겁니다.
그런데 그 생지옥 같은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곱 살 만복이였습니다.
만복이는 도망치지 않고 고요히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선 거대한 나무 장승 앞으로 다가갔지요.
끼기긱.
만복이는 온 힘을 다해 장승의 몸통을 밀어, 그 방향을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습니다.
길을 잃은 나그네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이정표였습니다.
그것이 순식간에 낯선 함정으로 뻗은 흉측한 손가락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혼이 나간 만복이의 헛짓거리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만복이는 조용히 몸을 돌렸습니다.
횃불이 내려오는 험한 산길을 향해 홀로 걸음을 옮겼지요.
자신의 손으로, 짐승의 아가리를 직접 찢기 위해서 말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외로운 발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사박, 사박.
어른의 보폭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발걸음이었습니다.
구름이 달빛마저 집어삼킨 밤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깡마른 일곱 살 만복이가, 홀로 가파른 흑풍산 비탈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부엉. 어디선가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메아리쳤습니다.
서늘한 밤공기가 만복이의 얇은 저고리를 파고들었지요.
보통의 아이라면 벌써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을 끔찍한 길입니다.
하지만 만복이의 까만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정면을 향해 있었습니다.
처음에 보셨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제 발로 호랑이 굴을 찾아가는, 숨 막히는 밤의 행진이었습니다.
마침내 산적 소굴의 육중한 문이 열렸습니다.
방 안의 호롱불이 일순간 파르르 떨렸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는 마치 산에 사는 곰 한 마리가 일어선 듯 거대했습니다.
목덜미부터 뺨까지 길게 그어진 깊은 칼자국이 선명합니다.
흑풍산의 지배자, 산적 두목 흑보였습니다.
방 안에는 시큼한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습니다.
흑보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사납게 번뜩였습니다.
스르릉.
흑보가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시퍼런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 서슬 퍼런 쇳덩이가 만복이의 앙상한 목덜미에 바짝 닿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탁.
만복이가 흑보의 책상 위에 당당히 물건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진흙 구덩이에 처박혔던, 끝이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이었습니다.
두목님.
만복이의 목소리는 소름 돋을 만큼 또렷하고 차분했습니다.
제 목을 치는 건, 제가 드리는 말씀을 다 들으신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흑보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습니다.
콧바람을 내뿜으며 칼을 거두지 않던 흑보의 눈이, 엽전을 향해 찢어질 듯 커졌습니다.
만복이는 짐짓 충신이라도 된 양,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띠며 속삭였습니다.
지난번 저희 아버지를 살려주신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만복이는 허리춤에서 구불구불한 선이 그려진 낡은 천조각 하나를 꺼냈습니다.
저 아래 팽덕네 주막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지요. 주모가 가장 아끼는 옥비녀가 든 궤짝이, 오늘 밤 뒷산 좁은 계곡으로 은밀히 이동할 겁니다.
그것은 가장 치명적인 미끼였습니다.
평소 누군가 자신을 속이려 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목을 쳤을 흑보였습니다.
하지만 옥비녀와 궤짝이라는 구체적인 정보 앞에, 흑보의 지독한 인간 불신도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번뜩.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탐욕으로 일렁였습니다.
잠시, 묘한 정적이 흐릅니다.
흑보는 만복이가 내민 지도를 낚아채듯 집어 들었습니다.
거대한 산적 무리가 곧바로 무기를 챙겨 계곡으로 향할 채비를 마쳤습니다.
덫은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특한 꼬마 만복이가 왜 굳이 자기 손으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일까요.
자신의 아버지를 괴롭힌 팽덕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악한 산적의 힘을 빌린 걸까요.
만복이가 제 손으로 호랑이에게 먹잇감을 던져준 그 순간.
해가 들지 않는 흑풍산 뒷산 좁은 골짜기에서는, 숨 막히는 잠복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절벽 사이로 길게 뻗은 계곡입니다.
구름에 가려 달빛조차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바위틈에 몸을 숨긴 수십 명의 산적들입니다.
산적들의 거친 숨소리가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하얗게 흩어졌습니다.
흑보는 엄지손가락으로 시퍼런 칼날을 매만지며 먹잇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가는 습하고 찬 산바람입니다.
스스슥.
저벅, 저벅.
맞은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지럽게 춤추는 붉은 횃불들이 좁은 골짜기를 서서히 채웠습니다.
쳐라.
흑보의 고함과 함께 산적들이 절벽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횃불 아래 드러난 무리는 보따리를 든 일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창과 방패로 무장한, 주모 팽덕네의 사병들이었지요.
돈을 받고 칠성네를 죽이러 가던 산적 무리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을 치러 왔다고 팽덕네는 오해했습니다.
반대로 흑보는, 팽덕네가 보물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매복시켰다고 착각했지요.
채쟁. 카앙.
부엉이 우는 소리뿐이던 고요를 찢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쳤습니다.
으아악.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의 칼날이 서로의 살갗을 베고 찔렀습니다.
어둠 속에서 끈적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끔찍한 난전입니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생지옥 같은 참상이 펼쳐진 겁니다.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뒤집히며, 흑보 역시 괴성을 지르고 칼을 미친 듯이 휘둘렀습니다.
잠시, 피비린내 나는 숨소리만 가득합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절벽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일곱 살 아이, 만복이입니다.
만복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씩.
은혜를 갚겠다던 만복이의 제안.
사실, 보물 궤짝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마당 흙바닥에 수십 번 그렸다 지웠던 복잡한 선.
그것은 두 세력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계곡의 지형도였습니다.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던 마을 어귀의 나무 장승.
팽덕네의 사병들을 정확히 이 골짜기로 유인하는 죽음의 이정표였지요.
그리고 흑보의 귀에 속삭인 옥비녀라는 거짓말까지.
이 모든 것은 완벽한 설계였습니다.
탐욕에 찌든 팽덕네와 무자비한 산적 두목을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몰아넣기 위한 덫이었던 겁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두 악당을 충돌하게 만든 천재적인 속임수.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기막힌 이이제이의 덫이었습니다.
탐욕과 무자비가 충돌한 지옥도는 결국 양쪽 모두의 파멸로 끝이 났습니다.
팽덕네의 사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흑풍산의 지배자라 불리던 흑보 역시 온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흙바닥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털썩.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차가운 자갈밭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고요한 계곡입니다.
멀리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왔습니다.
헉헉, 헉.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굽은 어깨.
아버지 칠성이었습니다.
산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도 칠성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헤집다 그 핏빛 현장에 당도한 겁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산적 두목 흑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입니다.
흑보는 칠성의 발소리를 듣고 이제 자신의 명운이 다했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벅저벅 다가온 칠성이 흑보의 몸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지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북북.
칠성의 거친 손이 자신의 낡은 저고리 자락을 길게 찢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원수인 흑보의 피 나는 상처를 단단히 싸매어 지혈했습니다.
칼을 들어 복수하기엔 너무나도 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무력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짓밟은 악당에게 베푼 숭고한 구원이었습니다.
흑보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수십 년간 피 묻은 칼만 쥐고 살아온 살귀의 두 눈에서.
주르륵.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자갈밭 위로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입니다.
팽덕네가 야반도주한 빈 주막 앞 공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쾅쾅.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수십 년을 가로막고 섰던 높다란 담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지요.
그곳엔 땀을 뻘뻘 흘리며 나란히 곡괭이질을 하는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주저앉은 칠성, 그리고 얼굴에 긴 흉터가 남은 흑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주 보고 껄껄 웃었습니다.
툭.
칠성의 손에서 무언가가 담장이 무너진 흙 위로 떨어졌습니다.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낡은 엽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엽전 위로 두툼한 흙을 덮고 발로 단단히 다졌습니다.
다시는 돈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짓밟지도, 피를 흘리지도 않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오랜 원한의 경계가 무너지고 진정한 이웃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복수는 영특한 일곱 살 아이 만복이의 서늘한 기지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평생 굽은 허리로 살아온 아버지 칠성의 바보 같은 용서가 맺어주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칠성이라면, 피투성이가 된 원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가족을 몰살하려 했던 그 끔찍한 악당의 상처를, 선뜻 천으로 싸매어줄 수 있었을까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날카로운 복수만이 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둔 미움의 담장을 스스로 허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진짜 복수인가 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어떤 지혜를 발견하셨나요.
아주 오랜 옛날의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이치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영상이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면, 구독 버튼을 한 번만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전 재산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한 기이한 노인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아침입니다.
허물어진 담장 밑, 낡은 엽전이 묻혀 있던 그 자리.
그 검은 흙덩 위로, 작고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잠시, 고요한 여운이 맴돕니다.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탐욕으로 일렁였습니다.
흑보는 만복이가 내민 낡은 천 조각을 거친 손으로 단숨에 낚아채어 쥐었습니다.
부스럭.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산적 무리가 곧바로 무기를 챙겨 들었습니다.
만복이의 덫이 완벽하게 작동한 순간이었지요.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잠시, 의문스러운 침묵이 흐릅니다.
영특한 일곱 살 꼬마 만복이가 왜 굳이 자기 손으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일까요.
아버지를 모욕한 팽덕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흉악한 산적들의 힘을 빌리려 한 걸까요.
만약 산적들이 보물을 빼앗고 나서 만복이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시퍼런 칼날이 결국 마을 전체를 향할 것이라는 걸, 만복이는 정말 몰랐을까요.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시각.
만복이가 제 발로 호랑이에게 먹잇감을 던져준 바로 그 시각입니다.
해가 들지 않는 흑풍산 뒷산의 좁은 골짜기에서는, 아주 기이하고도 숨 막히는 잠복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절벽 사이로 길게 뻗은, 폭이 아주 좁은 계곡이었습니다.
먹구름이 달빛마저 집어삼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지요.
휘이잉.
차갑고 습한 산바람이 좁은 바위틈을 타고 음산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어둠 속에, 수십 명의 산적들이 바싹 엎드려 있었습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지독한 적막입니다.
산적들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배어, 꽉 쥔 칼자루가 미끄러질 정도였거든요.
흑보는 거대한 몸을 바위 뒤에 숨긴 채, 굵은 엄지손가락으로 시퍼런 칼날의 옆면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졌습니다.
스윽, 스윽.
쇠붙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콧등을 스쳤습니다.
먹잇감을 기다리는 짐승의 팽팽한 신경줄이 당겨지던 바로 그때입니다.
저벅.
잠시, 숨을 죽입니다.
저벅, 저벅.
맞은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자갈이 짓눌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윽고 어지럽게 춤추는 붉은 횃불 수십 개가, 좁은 골짜기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쳐라.
흑보의 짐승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와아아.
괴성과 함께 산적들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횃불 아래 드러난 무리는, 무거운 보물 궤짝을 든 나약한 일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치켜들고 두꺼운 갑옷을 껴입은 사내들입니다.
바로 악덕 주모 팽덕네가 전 재산을 털어 고용한 무장 사병들이었지요.
돈을 받고 칠성네를 몰살하러 가던 산적 무리가 약속을 어기고 주막을 덮치러 왔다고, 팽덕네는 단단히 오해했던 겁니다.
그래서 미리 길목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출동시켰지요.
반대로 흑보는 어땠을까요.
팽덕네가 자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고 착각했습니다.
채쟁. 카앙.
부엉이 우는 소리뿐이던 고요한 계곡을 찢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쳤습니다.
서로를 향한 지독한 오해입니다.
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의 칼날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의 살갗을 베고 찔렀습니다.
푹. 으아악.
어둠 속에서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튀고 비명이 난무했습니다.
비좁은 계곡 안에서는 횃불이 짓밟혀 꺼졌고,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끔찍한 생지옥이 펼쳐진 겁니다.
잠시, 처참한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 같은 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한 절벽 맨 꼭대기입니다.
일곱 살 아이, 만복이였습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살기 어린 비명소리에도, 만복이의 눈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두 번째 옅은 미소가 번져 나갔지요.
씩.
은혜를 갚으러 왔다는 만복이의 당돌한 제안.
사실, 보물 궤짝 따위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 마당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수십 번 그렸다 지웠던 복잡한 선.
그것은 바로 이곳, 두 세력이 마주치면 피할 길이 없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계곡의 지형도였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던 나무 장승.
그것은 길을 잃은 팽덕네의 사병들을 정확히 이 골짜기 입구로 유인하는 죽음의 이정표였지요.
거기에 흑보의 귀에 속삭인 옥비녀라는 기막힌 거짓말까지.
완벽한 설계가 마침내 빛을 발했습니다.
탐욕에 찌든 팽덕네와 무자비한 산적 두목을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몰아넣기 위한 덫이었던 겁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두 악당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게 만든 천재적인 덫입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기막힌 이이제이의 덫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탐욕과 무자비가 충돌한 지옥도는 결국 양쪽 모두의 처참한 파멸로 끝이 났습니다.
기세등등하던 팽덕네의 사병들은 무기를 버린 채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흑풍산의 지배자라 불리며 살인을 밥 먹듯 하던 흑보.
흑보 역시 온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흙바닥을 비참하게 기어가고 있었지요.
털썩.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차가운 자갈밭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신음조차 잦아들고, 짙은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고요한 계곡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타닥, 타닥.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헉헉, 헉.
폐가 찢어질 듯 헐떡이는 숨소리. 무거운 짐을 지느라 한쪽으로 굽어버린 어깨입니다.
아버지 칠성이었습니다.
산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도 칠성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헤집다 그 핏빛 현장에 당도한 겁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
흑보는 턱을 덜덜 떨며 힘겹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수십 명의 부하들은 모두 쓰러졌고, 흑보의 배에서는 꿀럭꿀럭 붉은 피가 솟구치고 있었지요.
자신을 죽여 달라고 청부받았던 그 집안의 가장, 칠성입니다.
원수의 얼굴을 확인한 흑보는 이제 자신의 더러운 명운도 여기서 끝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벅저벅 다가온 칠성이 흑보의 몸 위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칠성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널린 시퍼런 칼을 주워 들어, 단숨에 이 악당의 목을 벨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북북.
갑자기 거친 파열음이 들렸습니다.
칠성이 자신의 낡고 해진 저고리 자락을 두 손으로 길게 찢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원수인 흑보의 깊은 상처에 그 천을 단단히 동여맸습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피가 멎도록 지혈하는 거친 손길이었습니다.
가장 무력하게 짓밟혔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던 악당에게 베푼 숭고한 구원이었습니다.
왜.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목구멍에서 쇳소리 같은 흐느낌이 터져 나왔지요.
수십 년간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온 살귀입니다.
흑보의 두 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르륵. 눈물은 피 묻은 자갈밭 위로 속절없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입니다.
악덕 주모 팽덕네는 야반도주하여 영영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팽덕네가 군림하던 빈 주막 앞 공터에서, 맑은 아침 공기를 가르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쾅쾅.
뿌연 흙먼지가 일더니, 마을 사람들과 칠성네를 수십 년간 가로막고 섰던 높다란 흙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진 흙무더기 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란히 곡괭이질을 하는 두 남자가 보였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주저앉은 칠성입니다.
그리고 얼굴에 붉고 긴 흉터가 남은 사내, 흑보였습니다.
살귀였던 흑보는 칼을 버리고 마을로 내려와, 칠성의 가장 든든한 이웃이 되어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마주 보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툭.
그때, 칠성의 손에서 무언가가 허물어진 담장 흙 위로 떨어졌습니다.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이었습니다.
진흙탕에 내던져져 억울함의 씨앗이 되었고, 호랑이 굴에서 당당한 기지의 상징이 되었던 바로 그 동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엽전 위로 두툼한 새 흙을 덮고, 짚신 신은 발로 단단히 다졌지요.
다시는 돈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짓밟지도, 헛된 피를 흘리지도 않겠다는 굳은 맹세였습니다.
오랜 원한의 경계가 무너지고, 진정한 이웃이 탄생하는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얽히고설킨 억울한 원한과 핏빛 복수극.
그 시작은 영특한 일곱 살 아이 만복이의 서늘한 기지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평화는, 평생 굽은 허리로 짓눌려 살아온 아버지 칠성의 바보 같은 용서가 맺어주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칠성이라면, 칠흑 같은 계곡에서 피투성이가 된 원수를 내려다보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가족을 몰살하려 했던 그 끔찍한 악당의 배에서 흐르는 피를, 선뜻 자신의 옷을 찢어 막아줄 수 있었을까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욕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날카로운 앙갚음만이 내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짓밟고 파멸시키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둔 미움의 담장. 그 무거운 흙더미를 내 손으로 스스로 허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인가 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저잣거리의 투박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짙은 이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만복이와 칠성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면, 구독 버튼을 한 번만 꾹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제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가장 든든한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 재산을 포기한 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한 기이한 노인의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비가 소리 없이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아침입니다.
두 남자가 함께 곡괭이로 허물어버린 옛 주막의 담장 밑입니다.
낡은 엽전 한 닢이 깊이 묻혀 있던 그 검은 흙덩이 위로 빗방울이 가볍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촉촉한 흙의 틈새로, 작고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요.
잠시,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쳐라.
흑보의 짐승 같은 고함이 좁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와아아.
괴성과 함께 수십 명의 산적들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산적들은 날카로운 낫과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보물 행렬을 덮쳤지요.
그런데.
횃불이 일제히 어둠을 밀어낸 순간,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계곡 아래에 서 있는 자들은, 무거운 보물 궤짝을 짊어진 나약한 일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치켜들고, 두꺼운 가죽 갑옷을 껴입은 건장한 사내들이었습니다.
바로 악덕 주모 팽덕네가 전 재산을 털어 고용한 무장 사병들이었지요.
오해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양쪽의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돈을 받고 칠성네를 몰살하러 가던 산적 무리가 약속을 어기고 주막을 덮치러 왔다고, 팽덕네는 단단히 오해했던 겁니다.
그래서 미리 길목을 지키기 위해 모든 군사를 이 계곡으로 출동시켰지요.
이 배신자 놈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사병 대장의 분노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반대로 흑보는 어땠을까요.
배신감에 핏발 선 눈이 무섭게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팽덕네가 자신의 옥비녀를 지키기 위해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다고 단단히 착각했던 것이지요.
채쟁. 카앙.
부엉이 우는 소리뿐이던 고요한 계곡을 찢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쳤습니다.
서로를 향한 지독한 오해였습니다.
다 죽여라.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마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의 칼날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의 살갗을 무자비하게 베고 찔렀습니다.
푹. 으아악.
어둠 속에서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비좁은 계곡 안에서는 붉은 횃불들이 짓밟혀 꺼졌고, 비명과 거친 숨소리만이 뒤엉켰습니다.
비릿한 쇠 냄새와 흙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지요.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끔찍한 생지옥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난전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다가옵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 같은 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한 절벽 맨 꼭대기입니다.
깡마른 일곱 살 아이, 만복이였습니다.
절벽 아래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살기 어린 비명소리.
하지만 만복이의 까만 눈은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두 번째 옅은 미소가 천천히 번져 나갔지요.
씩.
은혜를 갚으러 왔다며 옥비녀 궤짝을 운운하던 만복이의 당돌한 제안.
사실, 보물 궤짝 따위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 마당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수십 번 그렸다 지웠던 복잡한 선.
그것은 바로 이곳, 두 세력이 마주치면 도망칠 길 없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계곡의 지형도였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산 쪽으로 비스듬히 틀어놓았던 나무 장승.
그것은 산적을 피해 길을 헤매던 팽덕네의 사병들을 정확히 이 골짜기 입구로 유인하는 죽음의 이정표였지요.
거기에 흑보의 귀에 은밀히 속삭인 옥비녀라는 기막힌 거짓말까지.
이 모든 덫은 시곗바늘처럼 치밀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악덕 주모와 무자비한 산적 두목.
이 둘을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몰아넣기 위한 완벽한 설계였습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오직 말 몇 마디와 장승의 방향만으로 두 악당을 파멸시킨 천재적인 덫입니다.
끝이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에서 시작된 아이의 복수.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 기막힌 이이제이의 덫이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시간이 흘렀을까요.
탐욕과 무자비가 충돌한 지옥도는 결국 양쪽 모두의 처참한 파멸로 끝이 났습니다.
기세등등하던 팽덕네의 사병들은 무기를 내동댕이친 채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흑풍산의 지배자라 불리며 살인을 밥 먹듯 하던 흑보.
흑보 역시 곰 같은 온몸에 깊은 칼자국을 입은 채 흙바닥을 비참하게 기어가고 있었지요.
털썩.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차가운 자갈밭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신음조차 잦아들고, 짙은 피비린내만이 진동하는 고요한 계곡.
그때였습니다.
타닥, 타닥.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헉헉, 헉.
폐가 찢어질 듯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 무거운 짐을 지느라 오른쪽으로 푹 꺼져버린 굽은 어깨.
아버지 칠성이었습니다.
산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에도 칠성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산길을 헤집다 그 핏빛 현장에 당도한 겁니다.
자갈을 밟는 칠성의 짚신이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들었습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다급한 발소리입니다.
흑보는 턱을 덜덜 떨며 힘겹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수십 명의 부하들은 모두 싸늘하게 식어 쓰러졌고, 흑보의 배에서는 꿀럭꿀럭 붉은 피가 쉼 없이 솟구치고 있었지요.
흐릿한 시야 너머로 횃불을 든 사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청부받았던 그 집안의 가장, 칠성입니다.
원수의 얼굴을 확인한 흑보는, 이제 자신의 더러운 명운도 여기서 끝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벅저벅 다가온 칠성이 흑보의 몸 위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칠성의 두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널린 시퍼런 칼을 주워 들어, 단숨에 이 악당의 목을 벨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아내를 병들게 하고 아들의 목숨을 위협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순간입니다.
그런데 상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잠시, 시간이 멈춥니다.
북북.
고요한 계곡에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칠성이 자신의 낡고 해진 저고리 자락을 두 손으로 길게 찢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피투성이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칠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원수인 흑보의 깊은 상처에 그 천을 단단히 동여맸습니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피가 멎도록 지혈하는 거친 손길이었습니다.
가장 무력하게 짓밟혔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던 악당에게 베푼 숭고한 구원이었습니다.
왜.
흑보의 핏발 선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목구멍에서 쇳소리 같은 흐느낌이 짐승처럼 터져 나왔지요.
수십 년간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온 살귀입니다.
흑보의 두 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르륵. 그 뜨거운 눈물은 피 묻은 자갈밭 위로 속절없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입니다.
사병들을 잃고 파산한 악덕 주모 팽덕네는 야반도주하여 영영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팽덕네가 군림하던 빈 주막 앞 공터에서, 맑은 아침 공기를 가르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쾅쾅.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칠성네 초가집을 수십 년간 가로막고 섰던 높다란 흙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요.
무너진 흙무더기 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란히 곡괭이질을 하는 두 남자가 보였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주저앉은 칠성입니다.
그리고 얼굴에 붉고 긴 흉터가 남은 사내, 흑보였습니다.
살귀였던 흑보는 흉악한 칼을 버리고 마을로 내려와, 칠성의 가장 든든한 이웃이 되어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마주 보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툭.
그때, 칠성의 손에서 무언가가 허물어진 담장 흙 위로 떨어졌습니다.
끝이 까맣게 닳아버린 낡은 엽전 한 닢입니다.
팽덕네가 진흙탕에 내던져 조롱의 씨앗이 되었고, 호랑이 굴에서 당당한 거래의 상징이 되었던 바로 그 동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엽전 위로 두툼한 새 흙을 덮고, 짚신 신은 발로 꾹꾹 단단히 다졌지요.
다시는 돈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짓밟지도, 헛된 피를 흘리지도 않겠다는 굳은 맹세였습니다.
만복이가 흙바닥에 그렸던 죽음의 선이 지워지고, 오랜 원한의 물리적 경계마저 무너지는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얽히고설킨 억울한 원한과 핏빛 복수극입니다.
그 거대한 서사의 시작은 영특한 일곱 살 아이 만복이의 서늘한 기지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평화는, 평생 굽은 허리로 짓눌려 살아온 아버지 칠성의 바보 같은 용서가 맺어주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칠성이라면, 칠흑 같은 계곡에서 피투성이가 된 원수를 내려다보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내 가족을 몰살하려 했던 그 끔찍한 악당의 배에서 흐르는 피를, 선뜻 자신의 옷을 찢어 막아줄 수 있었을까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욕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날카로운 앙갚음만이 내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답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상대방을 철저히 짓밟고 파멸시키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둔 미움의 담장. 그 무거운 흙더미를 내 손으로 스스로 부수어 허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통쾌하고 묵직한 복수인가 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저잣거리의 투박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짙은 이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만복이와 칠성 부자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면, 구독 버튼을 한 번만 꾹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 한 번이, 제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가장 든든한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 재산을 포기한 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한 기이한 노인의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봄비가 소리 없이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아침입니다.
두 남자가 함께 곡괭이로 허물어버린 옛 주막의 담장 밑입니다.
낡은 엽전 한 닢이 깊이 묻혀 있던 그 검은 흙덩이 위로 빗방울이 가볍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촉촉한 흙의 틈새로, 작고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요.
잠시, 평온한 여운이 가득 찹니다.
스텝 재실행
현재 v1 → v2으로 재생성합니다. 이전 버전은 이력에 보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