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6: 파일럿 에피소드
Writer · 버전 1 · 승인
산출물 (v1)
1화: 버터 향을 찢는 청첩장
오븐 타이머가 울렸다. 삐비빅.
노릇하게 부풀어 오른 마들렌의 배꼽이 완벽했다. 버터의 묵직한 풍미와 레몬 제스트의 상큼함이 공방을 꽉 채웠다. 아, 완벽한 아침이다.
"결혼해라."
아버지의 건조한 목소리가 그 완벽한 버터 향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마들렌 판을 쥔 손에 꽉 힘이 들어갔다.
(뜨겁다. 오븐 장갑 두 겹이나 꼈는데도.)
"갑자기요? 저 다음 달에 가게 계약금 치러야 하잖아요."
"태성그룹 강태경 이사다. 모레 상견례니까 단정한 옷 하나 사 입어."
내 인생의 장르가 힐링 요리물에서 막장 재벌물로 강제 변경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철판을 조리대 위에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갓 구워진 마들렌들이 흠칫 놀라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 지금 농담하시죠? 태성그룹이 미쳤다고 우리 집안이랑 사돈을 맺어요?"
"우리 집안이 어때서."
"어떻긴요. 아버지 회사 지금 어음 막느라 허덕이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아버지는 헛기침을 했다. 내 시선을 피하며 먼 산을 보는 걸 보니 정곡이다.
윤성물산. 이름만 번지르르하지 실상은 속 빈 강정인 중소기업. 최근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 위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하는 거다. 태성에서 자금 수혈해 주기로 했다."
팔려 가는구나.
그것도 아주 고가에.
나는 밀가루 포대를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왜 하필 저예요? 언니도 있잖아요."
"네 언니는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안 돼. 전남친한테 물컵 던진 거 기사 날 뻔한 거 잊었냐?"
그건 그렇다.
"태성 쪽에서 조용하고 흠 없는 며느리를 원한단다. 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애."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렸다.
27년 인생. 밀가루와 버터, 설탕의 비율만 고민하며 살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오븐을 예열하는 게 내 유일한 종교였다.
연애? 달콤한 로맨스? 해본 적 없다. 현실의 남자들은 내가 굽는 마카롱보다 밍밍하고 퍼석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된 작고 예쁜 디저트 가게를 여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는데.
"가게는."
"응?"
"가게는 열게 해 주실 거죠? 저 5년 동안 주방 막내부터 구르면서 돈 모았어요. 통장에 찍힌 잔고가 제 피 땀 눈물이라고요."
아버지는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구두코로 바닥을 톡톡 쳤다.
"결혼하면 얌전히 내조나 해라. 재벌가 며느리가 앞치마 두르고 밀가루 묻히는 거, 그쪽에서 좋아하겠냐."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들렌이 식어가는 소리보다 더 서글펐다.
"싫어요. 저 안 해요. 아버지가 싼 똥을 왜 제가 치워요?"
"윤하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장난기가 사라진, 벼랑 끝에 몰린 늙은 가장의 목소리.
"이 결혼 엎어지면, 길거리에 나앉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네 엄마, 네 언니, 그리고 이 공방까지 다 넘어가는 거야."
협박이자 애원이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고운 가루가 내 미래처럼 바스라져 있었다.
이틀 뒤. M 호텔 라운지 앞.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갈비뼈를 옥죄는 화이트 트위드 재킷과 발가락을 으스러뜨릴 작정인 스틸레토 힐. 평소 펑퍼짐한 조리복에 크록스를 신고 뛰어다니던 내게 이 복장은 고문 기구에 가까웠다.
(크록스 마렵다. 진짜로.)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노려보았다.
청담동 샵에서 두 시간 동안 받은 메이크업은 완벽했다. 참하고, 조신하고, 자아가 없어 보이는 인형 같은 얼굴.
"윤하은. 정신 차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마카롱은 구울 수 있어."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을 켰다.
초록 창에 '강태경' 세 글자를 쳤다.
태성그룹 유일한 후계자. 서른둘.
사진 속 남자는 조각처럼 생겼다. 베일 듯한 턱선과 감정 없는 서늘한 눈매.
증권가 찌라시에서 그를 묘사하는 수식어는 화려했다.
'걸어 다니는 빙하.'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
'협상의 단두대.'
어제 절친인 지아와 통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야, 강태경 미쳤어. 그 인간 사람 아니야. 기계야 기계."
"기계?"
"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대. 작년에 계열사 구조조정할 때 임원들 줄초상 난 거 몰라? 너 진짜 그런 놈이랑 결혼한다고?"
"어쩌겠어. 우리 집 쫄딱 망하게 생겼는데."
"네 가게는? 상가 계약 다 와간다며."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쇼윈도 부부일 텐데, 적당히 비위 맞추면서 내 살길 찾을 거야."
그래, 돈 많은 백수가 최고지 뭐.
스스로를 세뇌하며 라운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 직원이 나를 발견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윤하은 고객님 되십니까. 강태경 이사님께서 안쪽 프라이빗 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공기가 달랐다.
방 안의 온도가 바깥보다 5도는 낮은 것 같았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윤하은 씨."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첼로의 가장 굵은 현을 무심하게 튕기는 듯한 울림.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로 깊게 가라앉은 흑요석 같은 눈동자. 흠잡을 데 없이 재단된 네이비 수트는 그의 몸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다.
"네. 윤하은입니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대답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남자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를 쳐다본 건 딱 1초였다.
"강태경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그럼 차만 마시죠. 저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
(재수 없어.)
속으로 외쳤지만 겉으로는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직원이 다즐링 티를 내오고 문을 닫았다.
조용한 방 안에 찻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나는 힐끔 강태경을 관찰했다.
넓은 어깨, 단단해 보이는 흉통. 수트 핏 하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얼굴에 표정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강태경이 서류 봉투 하나를 밀어 보냈다.
"읽어보십시오."
"이게 뭔가요?"
"혼인 전 합의서입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봉투를 열었다.
빼곡하게 적힌 조항들이 눈에 들어왔다.
- 제1조. 본 혼인은 양가의 비즈니스적 결합으로, 철저한 사생활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
- 제2조. 거주지는 태성 펜트하우스로 하되, 완벽히 독립된 구역을 사용한다.
- 제3조. 대외적인 가족 행사 및 부부 동반 모임에는 성실히 참석하여 원만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한다.
- 제4조. 상호 간의 이성 문제는 묵인하되, 언론에 노출되어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은 없도록 한다.
다행이다. 진짜 생판 남으로 살자는 거네.
나는 내심 안도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조건은 나쁘지 않네요. 제가 윤성물산 딸로서 해야 할 의무 방어전만 확실히 하면 터치 안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내 당돌한 질문에 강태경의 시선이 처음으로 내 얼굴에 똑바로 꽂혔다.
서늘했다.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정확합니다."
그가 찻잔의 손잡이를 길고 단단한 손가락으로 가볍게 쥐었다.
"윤하은 씨에게 바라는 건 하나뿐입니다. 조용히, 아무 문제 없이, 태성의 며느리 자리를 지키는 것."
"조용히."
"네. 내 일상에 어떤 소음도, 변수도 만들지 마십시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 남자, 진짜 얼음장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 인생의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좋습니다. 합의서 내용에는 동의해요. 단, 저도 하나만 묻죠."
"말씀하십시오."
"제가 하던 일은 계속해도 됩니까?"
강태경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일이라 함은."
"저 파티시에입니다. 제 가게를 여는 게 꿈이고요. 결혼했다고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화초처럼 살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말에 강태경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오븐에 데인 자국과 칼에 베인 흉터, 밀가루를 하도 반죽해서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
그의 시선이 닿자 왠지 모르게 손을 숨기고 싶어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어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관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나이스! 가게 낼 수 있다!)
"윤하은 씨가 밖에서 빵을 굽든, 케이크를 만들든 내 알 바 아닙니다. 대외적인 이미지에 타격만 안 간다면."
말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허락이 떨어진 게 어디인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견 없는 걸로 알고 사인..."
내가 테이블 위에 놓인 몽블랑 만년필을 집어 들려던 찰나였다.
탁.
강태경의 커다란 손이 서류 위를 짚었다.
만년필로 향하던 내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결혼합시다."
그가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깊고 짙은 눈동자가 나를 옭아맸다.
"단."
그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저기,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내 집에서, 내 시야에서, 그 역겨운 설탕 냄새가 나는 건 용납 못 합니다."
역겨운 설탕 냄새?
내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설탕이 왜 역겨워? 이 미친놈아.
파티시에한테 단내를 풍기지 말라니. 그건 숨을 쉬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강태경은 내 경악스러운 표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벽한 수트 핏이 구김 하나 없이 떨어졌다.
"계약금 명목으로 윤성물산에 내일 오전 중으로 자금 집행될 겁니다. 식장에서 보죠."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크고 단단한 등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입만 뻐끔거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 미친놈과 한집에 살아야 한다고?)
테이블 위에는 식어버린 다즐링 티와, 내 숨통을 조일 혼인 전 합의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 달콤했던 인생에, 쌉싸름하다 못해 혀가 마비될 것 같은 독약이 떨어졌다.
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832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공방 아침, 호텔 로비, 라운지 대면)
- 등장 캐릭터: 윤하은, 하은의 아버지, 강태경, (언급: 친구 지아)
- 공개된 설정: 하은의 직업(파티시에)과 꿈, 집안의 부도 위기, 강태경의 대외적 이미지(완벽/냉혹), 정략결혼의 비즈니스적 조건
- 심은 복선: 강태경의 단것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역겨운 설탕 냄새")
- 클리프행어 유형: 위기/위험 (새로운 룰 세팅 - B급)
- 다음 화 연결 방식: 직접 연결 (계약서를 노려보며 어이없어하는 하은의 툴툴거림으로 바로 이어짐)
2화: 불 꺼진 주방의 불청객
"단내 풍기지 말라고?"
나는 닫힌 문을 향해 헛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파티시에한테 단내를 풍기지 말라니. 숨 쉬지 말라는 소리랑 뭐가 달라.
(진짜 미친놈 아니야? 재벌이면 다야?)
테이블 위에 놓인 합의서를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그 서늘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윙윙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등 뒤에는 무너져가는 집안과 공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몽블랑 만년필을 쥐고 꾹꾹 눌러 서명했다.
윤하은. 세 글자가 유독 처량해 보였다.
"그래, 까짓거 안 풍기면 되지. 밖에서 굽고 들어오면 그만이야."
중얼거리며 서류 봉투를 챙겼다.
호텔 라운지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결혼식은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이었다.
비즈가 잔뜩 박힌 웨딩드레스는 갑옷처럼 무거웠다. 쏟아지는 조명과 플래시 세례에 눈이 시렸다.
하객들의 가짜 미소 속에서 강태경은 완벽한 인형 같았다.
"웃으십시오."
사진 촬영 때 내 허리에 손을 얹으며 그가 작게 속삭였다.
"웃고 있거든요."
"입꼬리만 올리지 말고 눈도 웃으라는 뜻입니다."
(네가 먼저 웃어보시지. 얼음장 같은 자식.)
속으로 씹어 삼키며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렇게 팔려 가는 의식은 끝이 났다.
태성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넓다. 미치도록 넓다.
그리고 춥다.
대리석 바닥과 무채색 가구들. 벽에 걸린 난해한 현대 미술품까지. 사람 사는 냄새라곤 1그램도 없는 모델하우스 같았다.
"이 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윤하은 씨 공간입니다."
강태경이 거실 중앙을 가리키며 말했다.
"침실, 욕실, 서재 모두 완벽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내 허락 없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네. 저도 그게 편하네요."
"그리고."
그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나를 돌아보았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죠."
"단내 금지요?"
"정확합니다."
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펜트하우스를 무겁게 울렸다.
나는 덩그러니 남겨진 캐리어를 발로 툭 찼다.
"진짜 정 없네.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야?"
꼬르륵.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굶었더니 위장이 파업을 선언했다.
주방 쪽을 힐끔거렸지만, 냉장고를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첫날부터 냄새 풍기면 쫓겨날지도 몰라.)
결국 나는 캐리어를 끌고 내 방으로 숨어들었다.
사흘이 지났다.
강태경은 나를 완벽하게 투명 인간 취급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자정이 넘어 들어왔다. 마주칠 일조차 거의 없었다.
어쩌다 거실에서 마주쳐도 목례가 끝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쇼윈도 부부의 정석이지.)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하려 했지만,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야, 너 살아 있냐?"
스피커폰 너머로 지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침대에 대자로 뻗은 채 대답했다.
"숨만 쉰다. 여기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질식할 것 같아."
"강태경은? 좀 어때? 진짜 소문대로 피도 눈물도 없어?"
"피도 눈물도 없는 건 둘째 치고, 사람 취급을 안 해. 그냥 가구 1번이야 내가."
"헐. 대박."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근데 제일 빡치는 건 뭔 줄 알아?"
"뭔데?"
"빵을 못 굽게 해. 냄새난다고."
지아가 빵 터졌다.
"미친! 파티시에한테 빵을 굽지 말라니. 고문이네 고문."
"그러니까. 나 지금 손이 근질거려 미치겠어. 버터 냄새 못 맡은 지 3일째야. 금단현상 온다고."
나는 허공에 대고 거품기를 젓는 시늉을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베이킹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달콤한 향기를 맡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봐야 마음이 안정됐다.
"가게 자리는 알아보고 있어?"
"어. 내일 부동산 몇 군데 돌아보려고. 은우 선배가 괜찮은 자리 났다고 연락 왔더라."
"오, 차은우? 학교 다닐 때 너 짝사랑하던 그 선배?"
"무슨 짝사랑이야. 그냥 친한 선배지."
"아무튼 조심해. 재벌가 며느리 밖으로 나도는 거 안 좋아한다며. 게다가 남자 선배랑 엮이면 시댁에서 난리 칠걸?"
"알아서 할 거야. 내 인생 내가 챙겨야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화려하고 차가운 불빛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강태경은 아직 안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나? 워낙 발소리가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어차피 각방 쓰는데 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빵을 구워야겠다.
단내 풍기지 말라고? 환풍기 세게 틀고 내일 아침에 환기 싹 시키면 모를 거다.
반항심과 금단현상이 이성을 이겼다.
펜트하우스의 주방은 셰프의 주방 뺨치게 훌륭했다.
최고급 오븐, 널찍한 대리석 조리대, 한 번도 안 쓴 것 같은 번쩍이는 조리 도구들.
나는 본가에서 몰래 챙겨 온 내 전용 도구 가방을 열었다.
"미안하다. 며칠 동안 답답했지?"
익숙한 스텐 볼과 거품기를 꺼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냉장고를 열었다. 다행히 기본적인 식재료는 채워져 있었다.
계란 흰자를 분리하고 설탕을 계량했다.
오늘의 메뉴는 마카롱.
스트레스받을 땐 극한의 단맛이 최고다.
달걀흰자가 거품기 날에 부딪혀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볼에 흰자를 넣고 핸드믹서 전원을 켰다.
위잉-
조용한 펜트하우스에 기계음이 울렸다.
(강태경 방은 저 끝이니까 안 들리겠지. 방음도 쩔던데.)
흰자가 거품을 일으키며 하얗게 부풀어 올랐다.
설탕을 세 번에 나눠 넣으며 단단한 머랭을 올렸다.
뿔이 뾰족하게 서는 걸 확인하고 아몬드 가루와 슈가파우더를 체 쳐 넣었다.
주걱으로 반죽을 섞는 마카로나주 작업.
이때가 제일 좋다. 반죽이 윤기를 내며 끈적하게 떨어지는 질감.
바닐라빈을 듬뿍 긁어 넣었다.
달콤하고 묵직한 향이 주방을 서서히 채우기 시작했다.
짤주머니에 반죽을 담고 철판 위에 동그랗게 짰다.
일정한 크기로 짜이는 반죽을 보니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역시 이 맛이지."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븐을 예열했다.
150도. 딱 좋다.
철판을 밀어 넣고 타이머를 맞췄다. 15분.
주방 안은 이미 버터와 바닐라, 설탕이 뒤섞인 폭력적인 단내로 가득했다.
강태경이 맡으면 기절초풍할 냄새.
하지만 그는 지금 자고 있을 테고, 내일 아침 환기만 싹 시키면 모를 것이다.
(완벽한 범죄야.)
나는 조리대에 기대어 오븐 안에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구경했다.
프릴이 예쁘게 생기고 있었다.
성공이다.
하지만 꼬끄만 구우면 뭐 하나. 필링을 채워야 마카롱이지.
가나슈를 만들려고 초콜릿을 중탕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냄새가 거실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가는 게 느껴졌다.
(환풍기 세게 틀어놨으니까 괜찮겠지?)
불안감이 살짝 스쳤지만, 이미 멈추기엔 늦었다. 초콜릿은 완벽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달콤한 냄새에 취해 멍하니 서 있던 그때였다.
삐비빅. 삐비빅.
오븐 타이머가 날카롭게 울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오븐 장갑을 꼈다.
"다 됐다."
오븐 문을 열자 열기와 함께 진한 바닐라 향이 훅 끼쳤다.
완벽하게 구워진 꼬끄들을 꺼내 식힘망 위에 올렸다.
매끈한 표면을 손가락으로 살짝 톡톡 쳐보았다.
잘 구워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할 것이다.
그때였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창문이 열렸나?
아니, 이 집은 창문도 마음대로 못 여는 시스템 창호다.
그럼 이 오싹한 느낌은 뭐지.
나는 한 손에 거품기를 든 채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주방과 이어진 거실 복도 끝.
불 꺼진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숨을 들이켰다.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서늘하고 깊은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카락. 셔츠 단추가 두어 개 풀린 흐트러진 차림의 강태경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던 거지?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거품기에서, 조리대 위의 마카롱으로, 그리고 다시 내 얼굴로 천천히 이동했다.
얼음장 같던 그의 눈매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그의 서늘한 경고가 귓가를 때렸다.
(망했다. 들켰다. 쫓겨나는 건가?)
손에 힘이 풀렸다.
챙그랑-!
쥐고 있던 거품기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가득한 주방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415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5개 (결혼식, 펜트하우스 입성, 지아와의 통화, 새벽 베이킹, 발각)
- 등장 캐릭터: 윤하은, 강태경, 하은의 아버지, (통화: 지아), (언급: 차은우)
- 공개된 설정: 철저히 분리된 쇼윈도 부부의 펜트하우스 생활, 서브남 차은우의 존재(가게 상가 소개), 하은의 베이킹 금단현상
- 심은 복선: 강태경의 헝클어진 머리와 흐트러진 차림 (불면증 및 무의식 상태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미해결 갈등 + 위기 (들킴 - A급)
- 다음 화 연결 방식: 직접 연결 (거품기가 떨어지는 소리와 정적으로 바로 이어짐)
## 3화: 완벽한 남자의 부서진 꼬끄
챙그랑-!
거품기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낸 파열음은, 고요한 펜트하우스에서 마치 폭탄 터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망했다. 제대로 들켰다.)
머릿속에서 경고 사이렌이 미친 듯이 울렸다.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첫 만남에서 그가 뱉었던 서늘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때렸다.
당장 내일 아침에 짐을 싸서 쫓겨나는 내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위약금은 얼마일까. 윤성물산은 결국 부도 처리되겠지.
길거리에 나앉은 부모님과, 압류 딱지가 붙어버린 내 소중한 공방.
최악의 시나리오가 0.1초 만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기, 이사님."
일단 변명부터 튀어나왔다.
"이게 오해가 좀 있는데요. 환풍기를 제일 세게 틀어놨거든요? 진짜 냄새가 거실까지 갈 줄은 몰랐어요."
어둠 속에 서 있던 강태경은 대답이 없었다.
차라리 화라도 내면 무릎이라도 꿇고 싹싹 빌 텐데,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나를, 아니 내 쪽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당장 치우고 환기할게요. 내일 아침이면 냄새 하나도 안 나게..."
말끝이 흐려졌다.
강태경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방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평소 호텔 라운지나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그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위압적인 보폭이 아니었다.
마치 깊은 물속을 걷는 사람처럼 무겁고 느릿했다.
주방의 펜던트 조명 아래로 그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완벽한 수트 차림의 강태경은 온데간데없었다.
맨발이었다.
네이비 실크 파자마 셔츠는 구겨진 채 걸쳐져 있었고, 단추는 명치까지 아슬아슬하게 풀려 있었다.
평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포마드 머리는 이마 위로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그의 눈빛이었다.
초점이 없었다.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니었다.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텅 빈 동공.
창백한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뭐지? 자다 깬 건가? 아니면 몽유병?)
"강 이사님?"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서늘한 체온이 훅 끼쳤다.
그의 몸에서 나는 짙은 우디 향이, 주방을 채운 달콤한 바닐라 냄새와 기묘하게 뒤섞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조리대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강태경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오븐 앞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오븐 유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콧방울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냄새를 쫓는 사냥개처럼.
"저기요. 냄새 뺀다니까요. 오븐 문 열면 더 심해져요."
나는 허둥지둥 식힘망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때, 강태경의 크고 단단한 손이 불쑥 뻗어 나왔다.
그의 손끝이 향한 곳은 내 손이 아니었다.
조리대 구석.
반죽을 짜다 모양이 망가져 따로 빼둔, 실패한 마카롱 꼬끄들이 모여 있는 접시였다.
그가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망가진 꼬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 그거 덜 식은 건데."
내 만류는 소용없었다.
그는 홀린 듯 꼬끄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스락.
건조한 파열음이 주방을 울렸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환상이 아니었다.
단내 풍기는 걸 역겨워한다던 남자였다.
내 구역에서 설탕 냄새를 지우라며 서늘하게 경고했던 바로 그 강태경이.
지금 내가 만든, 그것도 실패한 꼬끄를 씹어 먹고 있었다.
우적. 우적.
맛을 음미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살기 위해 약을 삼키는 사람처럼, 기계적이고 절박한 턱관절의 움직임.
하지만 꼬끄의 쫀득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 굳어 있던 그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고통받던 짐승이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이사님. 단거 싫어하신다면서요."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샜다.
"그렇게 막 드시면 체해요. 차라리 우유라도 한 잔 드릴까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꼬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내 손이 먼저 나갔다.
"그만 드세요. 속 버려요."
내가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 순간, 얼음장 같던 그의 몸이 흠칫 굳었다.
초점 없던 시선이 천천히 내 얼굴로 향했다.
"......"
그의 턱에 꽉 힘이 들어갔다.
맞잡은 손목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분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이거 놔."
갈라진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상태가 이상하잖아요. 땀도 이렇게 많이 흘리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손목을 쥔 채 까치발을 들고 그의 이마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불덩이였다.
"세상에, 열이 이렇게 펄펄 끓는데 왜 방치했어요? 약은 먹었어요?"
내 손길이 닿자 그가 짐승처럼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툭.
그의 손에서 마카롱 꼬끄가 떨어졌다.
부서진 조각들이 대리석 바닥을 뒹굴었다.
"어?"
강태경의 커다란 몸이 앞으로 훅 기울었다.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예고 없는 추락이었다.
"강태경 씨!"
나는 들고 있던 식힘망을 던져버리고 반사적으로 두 팔을 뻗었다.
묵직한 무게가 내 어깨를 덮쳤다.
"윽."
180이 훌쩍 넘는 성인 남자의 체중을 견딜 리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대리석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혔다.
다행히 내 위로 쓰러진 탓에 그의 머리는 바닥을 피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미쳤나 봐. 갑자기 왜 이래요? 정신 좀 차려봐요!"
깔린 몸을 빼내려 바둥거렸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목덜미를 스쳤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피부가 닿자 소름이 돋았다.
"여보세요! 강 이사님! 119 불러요?"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어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투둑.
강태경의 몸이 뒤척이는 바람에, 그가 입고 있던 실크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단추 두 개가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벌어진 셔츠 틈새로 그의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났다.
나는 밀어내던 손을 멈췄다.
호흡이 꼬였다.
매끈하고 단단한 근육 위로, 끔찍한 흔적들이 기괴하게 얽혀 있었다.
날카로운 것에 길게 베인 자국.
무언가에 짓눌리고 찢겨나간 듯한 거친 흉터들.
피부가 아물면서 남긴 울퉁불퉁한 흔적들이 등허리까지 뱀처럼 이어져 있었다.
단순한 사고로 생길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명백한 폭력의 기록.
그것도 아주 잔혹하고 일방적인 폭력이 지나간 자리였다.
"이게... 대체..."
손끝이 덜덜 떨렸다.
나도 모르게 허공에 뜬 손이 그 흉터를 향해 다가갔다.
차마 닿지는 못하고 상처 위를 맴돌았다.
완벽한 수트 핏 아래에, 얼음장 같은 무표정 뒤에.
이 남자는 도대체 이런 끔찍한 흉터를 어떻게 숨기고 살았던 걸까.
누가, 왜, 이 완벽한 남자에게 이런 짓을 한 걸까.
바닥에 쓰러진 강태경의 입술 사이로 옅은 단내가 샜다.
내가 만든 바닐라 마카롱의 향기였다.
달콤한 냄새와 끔찍한 흉터가 기묘하게 뒤섞인 새벽.
내 정략결혼의 조건이, 아니, 강태경이라는 남자의 완벽한 껍데기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
### 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312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주방 대치, 꼬끄 취식, 쓰러짐과 흉터 발견)
- 등장 캐릭터: 윤하은, 강태경
- 공개된 설정: 강태경의 심각한 불면증 및 무의식적 단맛 갈구, 등에 새겨진 잔혹한 폭력의 흉터
- 심은 복선: 꼬끄를 씹을 때 미세하게 풀리는 미간 (단맛이 그의 트라우마를 진정시키는 해독제 역할임을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폭로/반전 + 위기 (복합 - S급)
- 다음 화 연결 방식: 시점 전환 연결 (4화 오프닝, 다음 날 아침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으로 깨어난 태경의 시점)
### 3화 결제 유도 분석
- 즉각적 궁금증: 쓰러진 강태경은 깨어나서 어젯밤 자신이 마카롱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할까? 자신의 흉터를 하은이 봤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 중기적 궁금증: 단것을 혐오한다면서 왜 하은의 디저트를 홀린 듯 먹었는가? (불면증과 과거 트라우마의 연관성)
- 장기적 궁금증: 도대체 저 끔찍한 흉터는 누가, 왜 만든 것인가? (과거 폭행 사건의 진실)
- 독자 감정 상태: 1~2화에서 극도로 차갑고 완벽하게만 묘사되던 남주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모성애와 호기심이 극대화됨. 흉터라는 시각적 충격으로 인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함.
- 예상 결제 전환 동기: 남주의 '갭 모에(무의식중 디저트 섭취)'와 '치명적 비밀(흉터)'이 동시에 터졌기 때문에, 다음 화에서 태경의 반응(사이다 또는 당황)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손실 회피 자극이 강하게 발동함.
파트별 산출물
ep1 (3,453 tokens)
1화: 버터 향을 찢는 청첩장
오븐 타이머가 울렸다. 삐비빅.
노릇하게 부풀어 오른 마들렌의 배꼽이 완벽했다. 버터의 묵직한 풍미와 레몬 제스트의 상큼함이 공방을 꽉 채웠다. 아, 완벽한 아침이다.
"결혼해라."
아버지의 건조한 목소리가 그 완벽한 버터 향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마들렌 판을 쥔 손에 꽉 힘이 들어갔다.
(뜨겁다. 오븐 장갑 두 겹이나 꼈는데도.)
"갑자기요? 저 다음 달에 가게 계약금 치러야 하잖아요."
"태성그룹 강태경 이사다. 모레 상견례니까 단정한 옷 하나 사 입어."
내 인생의 장르가 힐링 요리물에서 막장 재벌물로 강제 변경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철판을 조리대 위에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갓 구워진 마들렌들이 흠칫 놀라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 지금 농담하시죠? 태성그룹이 미쳤다고 우리 집안이랑 사돈을 맺어요?"
"우리 집안이 어때서."
"어떻긴요. 아버지 회사 지금 어음 막느라 허덕이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아버지는 헛기침을 했다. 내 시선을 피하며 먼 산을 보는 걸 보니 정곡이다.
윤성물산. 이름만 번지르르하지 실상은 속 빈 강정인 중소기업. 최근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 위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하는 거다. 태성에서 자금 수혈해 주기로 했다."
팔려 가는구나.
그것도 아주 고가에.
나는 밀가루 포대를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왜 하필 저예요? 언니도 있잖아요."
"네 언니는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안 돼. 전남친한테 물컵 던진 거 기사 날 뻔한 거 잊었냐?"
그건 그렇다.
"태성 쪽에서 조용하고 흠 없는 며느리를 원한단다. 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애."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렸다.
27년 인생. 밀가루와 버터, 설탕의 비율만 고민하며 살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오븐을 예열하는 게 내 유일한 종교였다.
연애? 달콤한 로맨스? 해본 적 없다. 현실의 남자들은 내가 굽는 마카롱보다 밍밍하고 퍼석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된 작고 예쁜 디저트 가게를 여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는데.
"가게는."
"응?"
"가게는 열게 해 주실 거죠? 저 5년 동안 주방 막내부터 구르면서 돈 모았어요. 통장에 찍힌 잔고가 제 피 땀 눈물이라고요."
아버지는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구두코로 바닥을 톡톡 쳤다.
"결혼하면 얌전히 내조나 해라. 재벌가 며느리가 앞치마 두르고 밀가루 묻히는 거, 그쪽에서 좋아하겠냐."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들렌이 식어가는 소리보다 더 서글펐다.
"싫어요. 저 안 해요. 아버지가 싼 똥을 왜 제가 치워요?"
"윤하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장난기가 사라진, 벼랑 끝에 몰린 늙은 가장의 목소리.
"이 결혼 엎어지면, 길거리에 나앉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네 엄마, 네 언니, 그리고 이 공방까지 다 넘어가는 거야."
협박이자 애원이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고운 가루가 내 미래처럼 바스라져 있었다.
이틀 뒤. M 호텔 라운지 앞.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갈비뼈를 옥죄는 화이트 트위드 재킷과 발가락을 으스러뜨릴 작정인 스틸레토 힐. 평소 펑퍼짐한 조리복에 크록스를 신고 뛰어다니던 내게 이 복장은 고문 기구에 가까웠다.
(크록스 마렵다. 진짜로.)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노려보았다.
청담동 샵에서 두 시간 동안 받은 메이크업은 완벽했다. 참하고, 조신하고, 자아가 없어 보이는 인형 같은 얼굴.
"윤하은. 정신 차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마카롱은 구울 수 있어."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을 켰다.
초록 창에 '강태경' 세 글자를 쳤다.
태성그룹 유일한 후계자. 서른둘.
사진 속 남자는 조각처럼 생겼다. 베일 듯한 턱선과 감정 없는 서늘한 눈매.
증권가 찌라시에서 그를 묘사하는 수식어는 화려했다.
'걸어 다니는 빙하.'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
'협상의 단두대.'
어제 절친인 지아와 통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야, 강태경 미쳤어. 그 인간 사람 아니야. 기계야 기계."
"기계?"
"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대. 작년에 계열사 구조조정할 때 임원들 줄초상 난 거 몰라? 너 진짜 그런 놈이랑 결혼한다고?"
"어쩌겠어. 우리 집 쫄딱 망하게 생겼는데."
"네 가게는? 상가 계약 다 와간다며."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쇼윈도 부부일 텐데, 적당히 비위 맞추면서 내 살길 찾을 거야."
그래, 돈 많은 백수가 최고지 뭐.
스스로를 세뇌하며 라운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 직원이 나를 발견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윤하은 고객님 되십니까. 강태경 이사님께서 안쪽 프라이빗 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공기가 달랐다.
방 안의 온도가 바깥보다 5도는 낮은 것 같았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윤하은 씨."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첼로의 가장 굵은 현을 무심하게 튕기는 듯한 울림.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로 깊게 가라앉은 흑요석 같은 눈동자. 흠잡을 데 없이 재단된 네이비 수트는 그의 몸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다.
"네. 윤하은입니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대답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남자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를 쳐다본 건 딱 1초였다.
"강태경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그럼 차만 마시죠. 저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
(재수 없어.)
속으로 외쳤지만 겉으로는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직원이 다즐링 티를 내오고 문을 닫았다.
조용한 방 안에 찻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나는 힐끔 강태경을 관찰했다.
넓은 어깨, 단단해 보이는 흉통. 수트 핏 하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얼굴에 표정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강태경이 서류 봉투 하나를 밀어 보냈다.
"읽어보십시오."
"이게 뭔가요?"
"혼인 전 합의서입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봉투를 열었다.
빼곡하게 적힌 조항들이 눈에 들어왔다.
- 제1조. 본 혼인은 양가의 비즈니스적 결합으로, 철저한 사생활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
- 제2조. 거주지는 태성 펜트하우스로 하되, 완벽히 독립된 구역을 사용한다.
- 제3조. 대외적인 가족 행사 및 부부 동반 모임에는 성실히 참석하여 원만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한다.
- 제4조. 상호 간의 이성 문제는 묵인하되, 언론에 노출되어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은 없도록 한다.
다행이다. 진짜 생판 남으로 살자는 거네.
나는 내심 안도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조건은 나쁘지 않네요. 제가 윤성물산 딸로서 해야 할 의무 방어전만 확실히 하면 터치 안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내 당돌한 질문에 강태경의 시선이 처음으로 내 얼굴에 똑바로 꽂혔다.
서늘했다.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정확합니다."
그가 찻잔의 손잡이를 길고 단단한 손가락으로 가볍게 쥐었다.
"윤하은 씨에게 바라는 건 하나뿐입니다. 조용히, 아무 문제 없이, 태성의 며느리 자리를 지키는 것."
"조용히."
"네. 내 일상에 어떤 소음도, 변수도 만들지 마십시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 남자, 진짜 얼음장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 인생의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좋습니다. 합의서 내용에는 동의해요. 단, 저도 하나만 묻죠."
"말씀하십시오."
"제가 하던 일은 계속해도 됩니까?"
강태경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일이라 함은."
"저 파티시에입니다. 제 가게를 여는 게 꿈이고요. 결혼했다고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화초처럼 살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말에 강태경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오븐에 데인 자국과 칼에 베인 흉터, 밀가루를 하도 반죽해서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
그의 시선이 닿자 왠지 모르게 손을 숨기고 싶어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어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관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나이스! 가게 낼 수 있다!)
"윤하은 씨가 밖에서 빵을 굽든, 케이크를 만들든 내 알 바 아닙니다. 대외적인 이미지에 타격만 안 간다면."
말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허락이 떨어진 게 어디인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견 없는 걸로 알고 사인..."
내가 테이블 위에 놓인 몽블랑 만년필을 집어 들려던 찰나였다.
탁.
강태경의 커다란 손이 서류 위를 짚었다.
만년필로 향하던 내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결혼합시다."
그가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깊고 짙은 눈동자가 나를 옭아맸다.
"단."
그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저기,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내 집에서, 내 시야에서, 그 역겨운 설탕 냄새가 나는 건 용납 못 합니다."
역겨운 설탕 냄새?
내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설탕이 왜 역겨워? 이 미친놈아.
파티시에한테 단내를 풍기지 말라니. 그건 숨을 쉬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강태경은 내 경악스러운 표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벽한 수트 핏이 구김 하나 없이 떨어졌다.
"계약금 명목으로 윤성물산에 내일 오전 중으로 자금 집행될 겁니다. 식장에서 보죠."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크고 단단한 등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입만 뻐끔거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 미친놈과 한집에 살아야 한다고?)
테이블 위에는 식어버린 다즐링 티와, 내 숨통을 조일 혼인 전 합의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 달콤했던 인생에, 쌉싸름하다 못해 혀가 마비될 것 같은 독약이 떨어졌다.
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832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공방 아침, 호텔 로비, 라운지 대면)
- 등장 캐릭터: 윤하은, 하은의 아버지, 강태경, (언급: 친구 지아)
- 공개된 설정: 하은의 직업(파티시에)과 꿈, 집안의 부도 위기, 강태경의 대외적 이미지(완벽/냉혹), 정략결혼의 비즈니스적 조건
- 심은 복선: 강태경의 단것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역겨운 설탕 냄새")
- 클리프행어 유형: 위기/위험 (새로운 룰 세팅 - B급)
- 다음 화 연결 방식: 직접 연결 (계약서를 노려보며 어이없어하는 하은의 툴툴거림으로 바로 이어짐)
ep2 (3,057 tokens)
2화: 불 꺼진 주방의 불청객
"단내 풍기지 말라고?"
나는 닫힌 문을 향해 헛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파티시에한테 단내를 풍기지 말라니. 숨 쉬지 말라는 소리랑 뭐가 달라.
(진짜 미친놈 아니야? 재벌이면 다야?)
테이블 위에 놓인 합의서를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그 서늘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윙윙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등 뒤에는 무너져가는 집안과 공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몽블랑 만년필을 쥐고 꾹꾹 눌러 서명했다.
윤하은. 세 글자가 유독 처량해 보였다.
"그래, 까짓거 안 풍기면 되지. 밖에서 굽고 들어오면 그만이야."
중얼거리며 서류 봉투를 챙겼다.
호텔 라운지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결혼식은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이었다.
비즈가 잔뜩 박힌 웨딩드레스는 갑옷처럼 무거웠다. 쏟아지는 조명과 플래시 세례에 눈이 시렸다.
하객들의 가짜 미소 속에서 강태경은 완벽한 인형 같았다.
"웃으십시오."
사진 촬영 때 내 허리에 손을 얹으며 그가 작게 속삭였다.
"웃고 있거든요."
"입꼬리만 올리지 말고 눈도 웃으라는 뜻입니다."
(네가 먼저 웃어보시지. 얼음장 같은 자식.)
속으로 씹어 삼키며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렇게 팔려 가는 의식은 끝이 났다.
태성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넓다. 미치도록 넓다.
그리고 춥다.
대리석 바닥과 무채색 가구들. 벽에 걸린 난해한 현대 미술품까지. 사람 사는 냄새라곤 1그램도 없는 모델하우스 같았다.
"이 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윤하은 씨 공간입니다."
강태경이 거실 중앙을 가리키며 말했다.
"침실, 욕실, 서재 모두 완벽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내 허락 없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네. 저도 그게 편하네요."
"그리고."
그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나를 돌아보았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죠."
"단내 금지요?"
"정확합니다."
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펜트하우스를 무겁게 울렸다.
나는 덩그러니 남겨진 캐리어를 발로 툭 찼다.
"진짜 정 없네.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야?"
꼬르륵.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굶었더니 위장이 파업을 선언했다.
주방 쪽을 힐끔거렸지만, 냉장고를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첫날부터 냄새 풍기면 쫓겨날지도 몰라.)
결국 나는 캐리어를 끌고 내 방으로 숨어들었다.
사흘이 지났다.
강태경은 나를 완벽하게 투명 인간 취급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자정이 넘어 들어왔다. 마주칠 일조차 거의 없었다.
어쩌다 거실에서 마주쳐도 목례가 끝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쇼윈도 부부의 정석이지.)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하려 했지만,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야, 너 살아 있냐?"
스피커폰 너머로 지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침대에 대자로 뻗은 채 대답했다.
"숨만 쉰다. 여기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질식할 것 같아."
"강태경은? 좀 어때? 진짜 소문대로 피도 눈물도 없어?"
"피도 눈물도 없는 건 둘째 치고, 사람 취급을 안 해. 그냥 가구 1번이야 내가."
"헐. 대박."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근데 제일 빡치는 건 뭔 줄 알아?"
"뭔데?"
"빵을 못 굽게 해. 냄새난다고."
지아가 빵 터졌다.
"미친! 파티시에한테 빵을 굽지 말라니. 고문이네 고문."
"그러니까. 나 지금 손이 근질거려 미치겠어. 버터 냄새 못 맡은 지 3일째야. 금단현상 온다고."
나는 허공에 대고 거품기를 젓는 시늉을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베이킹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달콤한 향기를 맡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봐야 마음이 안정됐다.
"가게 자리는 알아보고 있어?"
"어. 내일 부동산 몇 군데 돌아보려고. 은우 선배가 괜찮은 자리 났다고 연락 왔더라."
"오, 차은우? 학교 다닐 때 너 짝사랑하던 그 선배?"
"무슨 짝사랑이야. 그냥 친한 선배지."
"아무튼 조심해. 재벌가 며느리 밖으로 나도는 거 안 좋아한다며. 게다가 남자 선배랑 엮이면 시댁에서 난리 칠걸?"
"알아서 할 거야. 내 인생 내가 챙겨야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화려하고 차가운 불빛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강태경은 아직 안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나? 워낙 발소리가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어차피 각방 쓰는데 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빵을 구워야겠다.
단내 풍기지 말라고? 환풍기 세게 틀고 내일 아침에 환기 싹 시키면 모를 거다.
반항심과 금단현상이 이성을 이겼다.
펜트하우스의 주방은 셰프의 주방 뺨치게 훌륭했다.
최고급 오븐, 널찍한 대리석 조리대, 한 번도 안 쓴 것 같은 번쩍이는 조리 도구들.
나는 본가에서 몰래 챙겨 온 내 전용 도구 가방을 열었다.
"미안하다. 며칠 동안 답답했지?"
익숙한 스텐 볼과 거품기를 꺼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냉장고를 열었다. 다행히 기본적인 식재료는 채워져 있었다.
계란 흰자를 분리하고 설탕을 계량했다.
오늘의 메뉴는 마카롱.
스트레스받을 땐 극한의 단맛이 최고다.
달걀흰자가 거품기 날에 부딪혀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볼에 흰자를 넣고 핸드믹서 전원을 켰다.
위잉-
조용한 펜트하우스에 기계음이 울렸다.
(강태경 방은 저 끝이니까 안 들리겠지. 방음도 쩔던데.)
흰자가 거품을 일으키며 하얗게 부풀어 올랐다.
설탕을 세 번에 나눠 넣으며 단단한 머랭을 올렸다.
뿔이 뾰족하게 서는 걸 확인하고 아몬드 가루와 슈가파우더를 체 쳐 넣었다.
주걱으로 반죽을 섞는 마카로나주 작업.
이때가 제일 좋다. 반죽이 윤기를 내며 끈적하게 떨어지는 질감.
바닐라빈을 듬뿍 긁어 넣었다.
달콤하고 묵직한 향이 주방을 서서히 채우기 시작했다.
짤주머니에 반죽을 담고 철판 위에 동그랗게 짰다.
일정한 크기로 짜이는 반죽을 보니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역시 이 맛이지."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븐을 예열했다.
150도. 딱 좋다.
철판을 밀어 넣고 타이머를 맞췄다. 15분.
주방 안은 이미 버터와 바닐라, 설탕이 뒤섞인 폭력적인 단내로 가득했다.
강태경이 맡으면 기절초풍할 냄새.
하지만 그는 지금 자고 있을 테고, 내일 아침 환기만 싹 시키면 모를 것이다.
(완벽한 범죄야.)
나는 조리대에 기대어 오븐 안에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구경했다.
프릴이 예쁘게 생기고 있었다.
성공이다.
하지만 꼬끄만 구우면 뭐 하나. 필링을 채워야 마카롱이지.
가나슈를 만들려고 초콜릿을 중탕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냄새가 거실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가는 게 느껴졌다.
(환풍기 세게 틀어놨으니까 괜찮겠지?)
불안감이 살짝 스쳤지만, 이미 멈추기엔 늦었다. 초콜릿은 완벽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달콤한 냄새에 취해 멍하니 서 있던 그때였다.
삐비빅. 삐비빅.
오븐 타이머가 날카롭게 울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오븐 장갑을 꼈다.
"다 됐다."
오븐 문을 열자 열기와 함께 진한 바닐라 향이 훅 끼쳤다.
완벽하게 구워진 꼬끄들을 꺼내 식힘망 위에 올렸다.
매끈한 표면을 손가락으로 살짝 톡톡 쳐보았다.
잘 구워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할 것이다.
그때였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창문이 열렸나?
아니, 이 집은 창문도 마음대로 못 여는 시스템 창호다.
그럼 이 오싹한 느낌은 뭐지.
나는 한 손에 거품기를 든 채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주방과 이어진 거실 복도 끝.
불 꺼진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숨을 들이켰다.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서늘하고 깊은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카락. 셔츠 단추가 두어 개 풀린 흐트러진 차림의 강태경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던 거지?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거품기에서, 조리대 위의 마카롱으로, 그리고 다시 내 얼굴로 천천히 이동했다.
얼음장 같던 그의 눈매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그의 서늘한 경고가 귓가를 때렸다.
(망했다. 들켰다. 쫓겨나는 건가?)
손에 힘이 풀렸다.
챙그랑-!
쥐고 있던 거품기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가득한 주방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415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5개 (결혼식, 펜트하우스 입성, 지아와의 통화, 새벽 베이킹, 발각)
- 등장 캐릭터: 윤하은, 강태경, 하은의 아버지, (통화: 지아), (언급: 차은우)
- 공개된 설정: 철저히 분리된 쇼윈도 부부의 펜트하우스 생활, 서브남 차은우의 존재(가게 상가 소개), 하은의 베이킹 금단현상
- 심은 복선: 강태경의 헝클어진 머리와 흐트러진 차림 (불면증 및 무의식 상태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미해결 갈등 + 위기 (들킴 - A급)
- 다음 화 연결 방식: 직접 연결 (거품기가 떨어지는 소리와 정적으로 바로 이어짐)
ep3 (2,921 tokens)
## 3화: 완벽한 남자의 부서진 꼬끄
챙그랑-!
거품기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낸 파열음은, 고요한 펜트하우스에서 마치 폭탄 터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망했다. 제대로 들켰다.)
머릿속에서 경고 사이렌이 미친 듯이 울렸다.
'내 구역에서 단내 풍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첫 만남에서 그가 뱉었던 서늘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때렸다.
당장 내일 아침에 짐을 싸서 쫓겨나는 내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위약금은 얼마일까. 윤성물산은 결국 부도 처리되겠지.
길거리에 나앉은 부모님과, 압류 딱지가 붙어버린 내 소중한 공방.
최악의 시나리오가 0.1초 만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기, 이사님."
일단 변명부터 튀어나왔다.
"이게 오해가 좀 있는데요. 환풍기를 제일 세게 틀어놨거든요? 진짜 냄새가 거실까지 갈 줄은 몰랐어요."
어둠 속에 서 있던 강태경은 대답이 없었다.
차라리 화라도 내면 무릎이라도 꿇고 싹싹 빌 텐데,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나를, 아니 내 쪽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당장 치우고 환기할게요. 내일 아침이면 냄새 하나도 안 나게..."
말끝이 흐려졌다.
강태경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방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평소 호텔 라운지나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그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위압적인 보폭이 아니었다.
마치 깊은 물속을 걷는 사람처럼 무겁고 느릿했다.
주방의 펜던트 조명 아래로 그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완벽한 수트 차림의 강태경은 온데간데없었다.
맨발이었다.
네이비 실크 파자마 셔츠는 구겨진 채 걸쳐져 있었고, 단추는 명치까지 아슬아슬하게 풀려 있었다.
평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포마드 머리는 이마 위로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그의 눈빛이었다.
초점이 없었다.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니었다.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텅 빈 동공.
창백한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뭐지? 자다 깬 건가? 아니면 몽유병?)
"강 이사님?"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서늘한 체온이 훅 끼쳤다.
그의 몸에서 나는 짙은 우디 향이, 주방을 채운 달콤한 바닐라 냄새와 기묘하게 뒤섞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조리대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강태경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오븐 앞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오븐 유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콧방울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냄새를 쫓는 사냥개처럼.
"저기요. 냄새 뺀다니까요. 오븐 문 열면 더 심해져요."
나는 허둥지둥 식힘망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때, 강태경의 크고 단단한 손이 불쑥 뻗어 나왔다.
그의 손끝이 향한 곳은 내 손이 아니었다.
조리대 구석.
반죽을 짜다 모양이 망가져 따로 빼둔, 실패한 마카롱 꼬끄들이 모여 있는 접시였다.
그가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망가진 꼬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 그거 덜 식은 건데."
내 만류는 소용없었다.
그는 홀린 듯 꼬끄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스락.
건조한 파열음이 주방을 울렸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환상이 아니었다.
단내 풍기는 걸 역겨워한다던 남자였다.
내 구역에서 설탕 냄새를 지우라며 서늘하게 경고했던 바로 그 강태경이.
지금 내가 만든, 그것도 실패한 꼬끄를 씹어 먹고 있었다.
우적. 우적.
맛을 음미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살기 위해 약을 삼키는 사람처럼, 기계적이고 절박한 턱관절의 움직임.
하지만 꼬끄의 쫀득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 굳어 있던 그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고통받던 짐승이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이사님. 단거 싫어하신다면서요."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샜다.
"그렇게 막 드시면 체해요. 차라리 우유라도 한 잔 드릴까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꼬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내 손이 먼저 나갔다.
"그만 드세요. 속 버려요."
내가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 순간, 얼음장 같던 그의 몸이 흠칫 굳었다.
초점 없던 시선이 천천히 내 얼굴로 향했다.
"......"
그의 턱에 꽉 힘이 들어갔다.
맞잡은 손목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분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이거 놔."
갈라진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상태가 이상하잖아요. 땀도 이렇게 많이 흘리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손목을 쥔 채 까치발을 들고 그의 이마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불덩이였다.
"세상에, 열이 이렇게 펄펄 끓는데 왜 방치했어요? 약은 먹었어요?"
내 손길이 닿자 그가 짐승처럼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툭.
그의 손에서 마카롱 꼬끄가 떨어졌다.
부서진 조각들이 대리석 바닥을 뒹굴었다.
"어?"
강태경의 커다란 몸이 앞으로 훅 기울었다.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예고 없는 추락이었다.
"강태경 씨!"
나는 들고 있던 식힘망을 던져버리고 반사적으로 두 팔을 뻗었다.
묵직한 무게가 내 어깨를 덮쳤다.
"윽."
180이 훌쩍 넘는 성인 남자의 체중을 견딜 리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대리석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혔다.
다행히 내 위로 쓰러진 탓에 그의 머리는 바닥을 피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미쳤나 봐. 갑자기 왜 이래요? 정신 좀 차려봐요!"
깔린 몸을 빼내려 바둥거렸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목덜미를 스쳤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피부가 닿자 소름이 돋았다.
"여보세요! 강 이사님! 119 불러요?"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어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투둑.
강태경의 몸이 뒤척이는 바람에, 그가 입고 있던 실크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단추 두 개가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벌어진 셔츠 틈새로 그의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났다.
나는 밀어내던 손을 멈췄다.
호흡이 꼬였다.
매끈하고 단단한 근육 위로, 끔찍한 흔적들이 기괴하게 얽혀 있었다.
날카로운 것에 길게 베인 자국.
무언가에 짓눌리고 찢겨나간 듯한 거친 흉터들.
피부가 아물면서 남긴 울퉁불퉁한 흔적들이 등허리까지 뱀처럼 이어져 있었다.
단순한 사고로 생길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명백한 폭력의 기록.
그것도 아주 잔혹하고 일방적인 폭력이 지나간 자리였다.
"이게... 대체..."
손끝이 덜덜 떨렸다.
나도 모르게 허공에 뜬 손이 그 흉터를 향해 다가갔다.
차마 닿지는 못하고 상처 위를 맴돌았다.
완벽한 수트 핏 아래에, 얼음장 같은 무표정 뒤에.
이 남자는 도대체 이런 끔찍한 흉터를 어떻게 숨기고 살았던 걸까.
누가, 왜, 이 완벽한 남자에게 이런 짓을 한 걸까.
바닥에 쓰러진 강태경의 입술 사이로 옅은 단내가 샜다.
내가 만든 바닐라 마카롱의 향기였다.
달콤한 냄새와 끔찍한 흉터가 기묘하게 뒤섞인 새벽.
내 정략결혼의 조건이, 아니, 강태경이라는 남자의 완벽한 껍데기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
### 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312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주방 대치, 꼬끄 취식, 쓰러짐과 흉터 발견)
- 등장 캐릭터: 윤하은, 강태경
- 공개된 설정: 강태경의 심각한 불면증 및 무의식적 단맛 갈구, 등에 새겨진 잔혹한 폭력의 흉터
- 심은 복선: 꼬끄를 씹을 때 미세하게 풀리는 미간 (단맛이 그의 트라우마를 진정시키는 해독제 역할임을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폭로/반전 + 위기 (복합 - S급)
- 다음 화 연결 방식: 시점 전환 연결 (4화 오프닝, 다음 날 아침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으로 깨어난 태경의 시점)
### 3화 결제 유도 분석
- 즉각적 궁금증: 쓰러진 강태경은 깨어나서 어젯밤 자신이 마카롱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할까? 자신의 흉터를 하은이 봤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 중기적 궁금증: 단것을 혐오한다면서 왜 하은의 디저트를 홀린 듯 먹었는가? (불면증과 과거 트라우마의 연관성)
- 장기적 궁금증: 도대체 저 끔찍한 흉터는 누가, 왜 만든 것인가? (과거 폭행 사건의 진실)
- 독자 감정 상태: 1~2화에서 극도로 차갑고 완벽하게만 묘사되던 남주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모성애와 호기심이 극대화됨. 흉터라는 시각적 충격으로 인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함.
- 예상 결제 전환 동기: 남주의 '갭 모에(무의식중 디저트 섭취)'와 '치명적 비밀(흉터)'이 동시에 터졌기 때문에, 다음 화에서 태경의 반응(사이다 또는 당황)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손실 회피 자극이 강하게 발동함.
스텝 재실행
현재 v1 → v2으로 재생성합니다. 이전 버전은 이력에 보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