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8: 본편 집필

Writer · 버전 2 · 초안

산출물 (v2)

보통
kie · gemini-3-pro

Batch 1: 제4화~제8화

제4화: 걸어 다니는 재앙

오래된 모텔 방은 습했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밖에서는 취객들의 고성방가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푸른 약병을 불빛에 비춰보고 있었다.

'치사율 98%.'

김철수에게서 뺏은 미완성 치료제.

이걸 마시면 죽는다. 하지만 아주 적은 확률로, 이 끔찍한 흑염을 씻어낼 수도 있다.

"......"

마개가 열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꿀꺽.

한 모금. 아주 조금만.

혀끝에 닿자마자 뇌를 찌르는 듯한 냉기가 퍼졌다.

동시에 심장을 쥐어짜고 있던 뜨거운 열기가 아주 잠시, 주춤했다.

[경고: 미확인 약물이 체내에 들어왔습니다.]

[저주 '흑염'이 약물과 충돌합니다.]

[일시적으로 살의가 억제됩니다.]

"하아..."

거칠던 숨이 잦아들었다.

손등을 덮고 있던 검은 핏줄도 희미해졌다.

효과가 있다. 비록 독약에 가까운 부작용이 있지만, 이 저주를 누를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다.

나는 약병을 다시 품에 넣었다.

이건 아껴야 한다. 정말로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을 위해서.

똑똑.

"총각, 안에 있어?"

모텔 주인의 목소리였다. 칠순이 넘은 노인은 카운터에서 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보일러가 자꾸 말썽이라... 온수는 잘 나오나 해서."

"네. 잘 나옵니다."

"그래? 다행이네. 며칠 전부터 자꾸 가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가스 냄새.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헌터다. 그것도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 그런데 왜 가스 냄새를 맡지 못했지?

아니, 맡지 못한 게 아니다.

내 코를 찌르던 피 냄새와 살 타는 냄새가 너무 독해서, 현실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주변의 불행 수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붉게 점멸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콰앙-!

굉음과 함께 바닥이 솟구쳤다.

충격파가 모텔을 강타했다. 낡은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고 화염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콜록! 콜록!"

먼지와 연기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헌터의 육체는 멀쩡했다. F급이라 해도 일반인보다는 튼튼했고, 무엇보다 흑염이 화염을 집어삼킨 덕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사, 살려..."

복도 쪽에서 신음이 들렸다.

주인 할아버지였다. 무너진 콘크리트 기둥에 하반신이 깔려 있었다.

"비키세요!"

나는 달려가 기둥을 잡았다.

우드득.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기둥이 들렸다.

"어서 나오세요!"

노인이 고통을 참으며 기어가려던 찰나였다.

찌직.

내가 잡고 있던 기둥이 검게 타들어 갔다. 흑염이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흥분한 감정에 반응해 제멋대로 튀어나온 것이다.

기둥의 강도가 약해졌다.

툭.

"안 돼!"

내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늦었다.

타버린 기둥이 부러지면서, 그대로 노인의 다리 위로 다시 떨어졌다.

"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노인의 비명이 화재 경보기 소리보다 날카롭게 귓가에 박혔다.

나는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았다.

구하려고 했다. 분명히 구하려고 했는데.

내 손이 닿는 모든 것이 재앙이 된다.

[저주 발동: 타인의 불행을 유발했습니다.]

[만족하십니까?]

시스템이 비아냥거렸다.

"닥쳐."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기둥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흑염을 억누르며, 순수한 악력만으로.

노인을 둘러업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불타는 모텔을 구경하고 있었다.

"가스 폭발이라며?"

"주인 영감은? 죽었대?"

"아까 어떤 남자가 업고 나왔다던데..."

나는 골목길 그늘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들것에 실려가는 노인의 바지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리는 아마 절단해야 할 것이다.

그가 잘못한 건 없었다. 낡은 보일러를 쓴 죄? 아니면 재수 없게 나를 손님으로 받은 죄?

확실한 건 하나다.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내가 기둥을 잡았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다.

'......'

주머니 속의 2G폰(대포폰)을 꺼냈다.

저장된 번호는 딱 하나. '어머니'.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살아있다고, 아들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를 수 없었다.

전파를 타고 내 불행이 어머니에게까지 전염될까 봐.

뚝.

전화기를 반으로 접어 부러뜨렸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래. 이게 맞아."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제5화: 꼬리를 밟히다

서울의 밤은 화려했다.

강남 한복판, '그랜드 힐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는 자선 파티가 한창이었다.

[오로라 길드 주최: 결식아동 및 던전 고아 돕기 자선의 밤]

호텔 입구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이수진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아이들을 안은 채 성스럽게 미소 짓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聖女)'라고 불렀다.

"성녀라..."

나는 호텔 건너편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그 현수막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수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펴졌다 했다.

웃겼다.

던전에서 내 다리가 몬스터에게 씹힐 때, 그녀는 힐을 주지 않았다. 마력이 아깝다며 물러섰다.

내 비명소리가 시끄럽다며 귀를 막았던 여자가, 고아들을 안고 웃고 있다니.

"역겹네."

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검은 침이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보도블록을 녹였다.

[저주 '흑염'이 당신의 혐오감에 반응합니다.]

몸이 붕 떴다.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목적지는 정문이 아니다. VIP들이 드나드는 로비도 아니다.

호텔 뒷골목.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드는 하역장이다.

쿵.

가볍게 착지했다.

경비원 두 명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야, 이번 파티에 헌터 협회장도 온다며?"

"말도 마라. 경호 팀 비상이다. 근데 이수진 그 여자는 왜 갑자기 이런 걸 연다냐? 김철수 헌터 실종된 마당에."

"이미지 세탁이지 뭐. 힐러들은 원래 이미지가 생명이잖아."

경비원들이 낄낄거렸다.

나는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갔다.

"누, 누구냐!"

경비원이 손전등을 비췄다.

하지만 빛이 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내 그림자가 먼저 그들의 발목을 덮쳤다.

스르륵.

검은 연기가 뱀처럼 휘감기자 두 사람의 눈이 뒤집혔다.

"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죽이지는 않았다. 굳이 살의를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경비원의 주머니에서 마스터 키를 꺼냈다.

[스킬: 그림자 은신(F) 발동]

[주변의 빛을 왜곡하여 형체를 숨깁니다.]

흑염의 응용 기술이다. 완벽한 투명화는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는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다.

단, 부작용이 있다.

파직!

내가 지나가자 복도의 전구들이 하나씩 터져 나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회로가 타버린 모양이다.

"......계단으로 가야겠군."

나는 30층까지 이어진 비상구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센서등이 꺼지고, 비상벨이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다.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가는 곳이 곧 재앙이니까.


같은 시각. 무너진 모텔 앞.

박태수 팀장은 반쯤 탄 모텔 간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님, 감식 결과 나왔습니다."

신입 조사관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역시나 가스 폭발은 아닙니다. 발화점인 304호에서 검출된 성분, 김철수 사망 현장이랑 일치합니다."

"마력 반응 제로인 그을음?"

"네. 그리고..."

신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생존자가 있습니다. 모텔 주인입니다."

박태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 있어?"

"구급차에 실려 가기 전에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정신은 멀쩡하더군요."

박태수는 녹음기를 재생했다.

치지직...

[아니야... 가스가 아니었어... 그 총각... 304호 총각이 날 구해줬어...]

[어떻게 생겼습니까?]

[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봤어. 얼굴 반쪽에... 화상 흉터가 있었어. 그리고 눈이... 눈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어...]

박태수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화상 흉터."

그의 머릿속에 강진혁의 헌터 등록증 사진이 떠올랐다.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평범한 청년의 얼굴.

하지만 공허의 틈에서 살아 돌아왔다면, 그 얼굴이 온전할 리 없다.

"놈이다."

박태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진혁이 여기 숨어 있었어."

"하지만 팀장님, 이해가 안 됩니다. 복수귀가 왜 사람을 구합니까? 그냥 도망쳐도 됐을 텐데요."

"......"

박태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구해야만 했던 거겠지."

"네?"

"놈의 힘은... 통제가 안 되는 것 같다. 김철수를 죽일 때의 그 잔혹함과, 노인을 구할 때의 망설임.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어."

박태수는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씹었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

아직 인간이고 싶은 괴물.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위치 추적은?"

"CCTV가 다 녹아서 동선 파악이 어렵습니다. 다만..."

신입이 지도를 띄웠다.

"여기서 발견된 타다 남은 전단지가 있습니다. 놈의 방 쓰레기통에서요."

증거물 봉투 안에 담긴 젖은 종이 조각.

[...랜드 힐 호텔... 자선 파티...]

박태수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랜드 힐 호텔."

"네?"

"오늘 밤 이수진이 거기서 파티를 연다."

퍼즐이 맞춰졌다.

김철수 다음은 이수진이다.

배신자 파티의 홍일점.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성녀.

놈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그녀를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다.

"전원 출동한다."

박태수가 차에 올라탔다.

"사이렌은 꺼. 놈을 자극하면 안 된다. 호텔 전체가 인질이 될 수도 있어."


그랜드 힐 호텔, VIP 대기실.

이수진은 거울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메이크업이 이게 뭐야? 내가 좀 더 창백해 보여야 한다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벌벌 떨며 파우더를 덧발랐다.

"됐어, 나가."

이수진이 손을 휘저었다. 스태프들이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자, 그녀는 핸드백에서 약통을 꺼냈다.

신경안정제.

손이 덜덜 떨렸다.

'김철수가 죽었어.'

뉴스에서는 실종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김철수의 생명 반응이 완전히 사라졌다. 힐러인 그녀는 동료의 죽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 죽음의 냄새가, 일주일 전 던전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았다.

"강진혁..."

이수진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와인을 들이켰다.

"아니야. 걘 죽었어. 뼈도 안 남았다고."

최민석 오빠가 말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고.

강진혁은 '적합자'였고, 우리는 그를 제물로 바쳐서 더 큰 힘을 얻으려 했다.

물론 그 힘은 최민석이 독차지했지만.

"난 잘못 없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녀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난 성녀야. 사람들을 치료하고, 기부도 많이 했어. 그러니까... 난 괜찮아."

똑똑.

노크 소리에 이수진이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세요?"

"룸서비스입니다. 주문하신 샴페인 가져왔습니다."

"시킨 적 없는데?"

"매니저님이 서비스로 보내셨습니다."

이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가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고개를 푹 숙인 남자였다.

"거기 두고 나가요."

이수진은 거울을 보며 입술을 다시 칠했다.

그런데 남자가 나가지 않았다.

"뭐 해요? 안 나가고?"

이수진이 짜증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샴페인 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샴페인, 이름이 참 좋네요."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뭐라고요?"

"'La Grande Dame'. 위대한 여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모자챙 아래로, 끔찍하게 일그러진 화상 흉터가 드러났다.

검게 변한 눈동자가 이수진을 꿰뚫듯 응시했다.

"성녀님께 딱 어울리는 술이야. 안 그래, 수진아?"

쨍그랑!

이수진의 손에서 와인잔이 떨어졌다.

붉은 와인이 카펫을 적셨다. 마치 피처럼.

"가... 강..."

"쉿."

진혁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소리지르면 안 돼. 밖에는 네 팬들이 잔뜩 있잖아?"

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가 밟은 카펫이 검게 변색되며 썩어들어갔다.

"보여줘야지. 성녀님의 진짜 얼굴을."

"오, 오지 마! 경호원! 여기... 읍!"

진혁의 손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이수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말했잖아. 조용히 하라고."

진혁은 공포에 질린 이수진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자비로웠다. 악마가 죄인을 맞이할 때 지을 법한, 아주 자비로운 미소.

"파티는 이제 시작이야."


호텔 로비.

회전문이 멈췄다.

자동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로비의 샹들리에가 불안하게 깜빡거렸다.

박태수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쥐었다.

"윽..."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박태수의 눈에는 보였다.

호텔 전체를 감싸고 있는 희미한 검은 안개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조명이 좀 이상하네, 오늘따라 머리가 아프네 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박태수에게는 명확했다.

이곳은 이미 사냥터였다.

"30층이다."

박태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었다.

"30층 VIP 대기실. 이수진 헌터가 거기 있다."

"팀장님,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합니다!"

"젠장."

박태수는 비상구로 방향을 틀었다.

"지원팀은 건물 포위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나가게 막아. 나는 올라간다."

박태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S급 신체 능력을 풀가동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늦으면 안 돼.'

단순히 살인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녀석. 강진혁.

그 놈이 선을 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괴물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나도 놈을 사살할 수밖에 없다.

20층. 25층. 29층.

박태수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마침내 30층 비상구 문을 박차고 나왔다.

복도는 고요했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카펫은 군데군데 타들어 가 있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은 녹아내려 있었다.

마치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박태수는 권총(마력탄 장전)을 꺼내 들었다.

VIP 대기실 문 앞.

문고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박태수는 숨을 골랐다. 안에서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강진혁."

박태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달궈진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장갑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탔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거기까지다."


5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3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4개 (호텔 외부 잠입 -> 모텔 현장 조사 -> 호텔 VIP 대기실 -> 호텔 복도)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이수진(힐러/타겟), 박태수(추적자), 신입 조사관
  • 메인 플롯 비트: 이수진 사냥 개시, 호텔 잠입 성공, 대면.
  • 서브플롯 진행: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모텔 화재 현장에서 강진혁의 생존과 정체를 확인함. 호텔로 추적 성공.
  • 공개된 정보:
    • 그림자 은신: 흑염을 응용한 은신 기술. 빛을 왜곡하지만 전자기기 오작동을 유발함.
    • 박태수의 능력: 마력의 흔적(냄새)을 시각/후각적으로 감지하는 탐지 능력.
  • 심은 복선:
    • 이수진이 먹는 약 (신경안정제) -> 그녀 역시 죄책감이나 공포에 시달리고 있음을 암시.
    • 최민석이 힘을 독차지했다는 이수진의 독백.
  • 회수한 복선: 4화의 모텔 화재가 박태수에게 꼬리를 밟히는 결정적 단서가 됨.
  • 클리프행어: [유형 4] 위기/위험 - 박태수가 VIP 대기실 문을 열고 진혁과 조우하기 직전.
  • 템포: 고속 (잠입 -> 추적 -> 대면으로 이어지는 빠른 호흡)

Batch 1: 제6화~제8화

제6화: 성녀의 가면

"거기까지다."

박태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마력탄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정확히 미간과 심장을 노린 사격.

하지만 총알은 허공을 가르고 벽에 박혔다.

"......!"

VIP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깨진 와인잔. 바닥을 적신 붉은 와인.

그리고 활짝 열린 발코니 창문으로 밤바람이 거칠게 불어오고 있었다.

박태수는 발코니로 달려갔다.

난간 아래는 까마득한 30층 높이의 허공이었다.

"팀장님! 이수진 헌터가 없습니다!"

뒤따라온 요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박태수는 난간을 움켜쥐었다. 장갑이 검게 그을려 묻어났다.

"아니. 멀리 못 갔어."

그는 코를 킁킁거렸다.

살 타는 냄새. 그리고 역한 유황 냄새.

냄새는 아래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옥상이다."


호텔 옥상 헬리포트.

이수진은 난간 끝에 매달려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그녀의 발아래는 현기증 나는 서울의 야경이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건 강진혁이었다.

진혁은 한 손으로 그녀를 대롱대롱 매달아 둔 채, 다른 손으로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수진아."

"흐윽, 흐으윽..."

"네가 그랬잖아. 힐러는 마력이 생명이라고. F급 짐꾼한테 쓸 마력은 없다고."

진혁이 라이터를 켰다.

치이익.

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 갔다.

"나도 그래. 흑염은 내 생명력을 태우거든. 너 같은 거 살려줄 여유가 없어."

"도, 돈 줄게! 내 전 재산 다 줄게! 빌딩도 있고, 주식도 있어! 제발!"

이수진이 발버둥 쳤다. 하이힐 한 짝이 벗겨져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진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돈은 필요 없고. 정보나 내놔."

"무, 무슨 정보?"

"최민석 금고에 있는 약. 그거 진짜 치료제 맞아?"

이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거..."

"거짓말하면 손 놓는다."

진혁이 손에 힘을 풀었다. 이수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악! 말할게! 말할게!"

이수진이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외쳤다.

"가짜야! 그건 치료제가 아니야!"

진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짜?"

"억제제야! 마약 성분으로 뇌를 마비시켜서... 흑염의 폭주를 막는 것뿐이라고!"

억제제.

김철수가 준 실패작이 독약이라면, 최민석이 가진 완성본은 마약이라는 소리인가.

"그럼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어! 애초에 그런 건 없다고! 넌... 넌 그냥 실패작이야! 폐기됐어야 할 쓰레기라고!"

이수진이 악을 썼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본심이 튀어 나왔다.

"최민석 오빠가 그랬어. 너 같은 건... 그냥 배터리로 쓰다가 버리면 된다고!"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배터리.

나를 그렇게 불렀구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불길이 치솟았다.

"그래. 배터리."

진혁이 이수진을 끌어올렸다.

"다행이네. 넌 배터리도 못 되니까."

"어...? 사, 살려주는 거야?"

이수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진혁은 그녀를 옥상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밟았다.

"아니. 넌 그냥 땔감이야."

콰아앙!

진혁의 발바닥에서 검은 불기둥이 솟구쳤다.

"끄아아아아!"

성녀의 비명은 짧았다.

순백의 드레스가 검게 물들었다. 그녀의 자랑이었던 하얀 피부도, 거짓된 미소도, 흑염 앞에서는 평등하게 재가 되었다.

[복수 대상 2/3 처치]

[저주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경고: 살인으로 인한 업보가 쌓입니다.]

진혁은 무표정하게 시스템 창을 닫았다.

그때였다.

"손들어!"

옥상 문이 열리고 박태수가 뛰쳐나왔다. 수십 명의 무장 요원들이 진혁을 포위했다.

"강진혁!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박태수의 총구가 진혁을 겨눴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화상 입은 얼굴로 박태수를 바라보는 눈빛.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눈이었다.

"팀장님."

진혁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내가 도망치는 걸로 보여요?"

"뭐?"

"난 사냥하는 중인데."

진혁이 발을 굴렀다.

콰지직!

옥상 바닥에 금이 갔다.

단순한 발구르기가 아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헬리포트의 H자 마크 위. 그 아래에는 호텔의 메인 전력 케이블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주 발동: 대규모 정전 유발]

[불행의 범위가 건물 전체로 확장됩니다.]

퍼버벅!

옥상의 조명탑이 터졌다.

동시에 호텔 전체의 불이 꺼졌다.

"전력 차단! 비상 발전기 돌려!"

"시야 확보해!"

암흑천지.

요원들이 당황하는 사이, 진혁은 난간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 미친 새끼가!"

박태수가 달려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호텔 로비는 아수라장이었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의 비명소리. 계단으로 쏟아져 나온 VIP들의 고함.

그 혼란 틈바구니에,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가 섞여 있었다.

강진혁이었다.

그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외벽의 배수관을 탔고, 10층 테라스로 착지해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수관이 터져 호텔 외벽이 물바다가 됐지만, 알 바 아니었다.

'억제제.'

진혁은 인파에 섞여 호텔을 빠져나가며 생각했다.

완전한 치료제는 없다.

하지만 억제제라도 있어야 한다.

방금 이수진을 죽일 때 느꼈다. 살의가 나를 지배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나는 정말로 괴물이 된다. 최민석을 죽이기도 전에.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그는 밤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뒤에서는 여전히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6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2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호텔 VIP 대기실/복도 -> 옥상 헬리포트 -> 호텔 로비/외부)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이수진(사망), 박태수, 최민석(언급)
  • 메인 플롯 비트: 이수진 처단, 치료제의 진실(억제제) 확인, 박태수와의 첫 대면 및 도주.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완전한 치료제는 없다'는 절망적 정보 획득. 목표가 '생존을 위한 억제제 확보'로 수정됨.
  • 공개된 정보:
    • 억제제: 흑염의 폭주를 막는 유일한 수단. 마약 성분 함유.
    • 박태수와 진혁의 대립: 박태수는 진혁을 '위험 요소'로 판단하고 사살 명령을 내릴 준비가 됨.
  • 심은 복선: 이수진의 유언 ("최민석 오빠가 그랬어"). 최민석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는 확신.
  • 회수한 복선: 3화의 '치료제 떡밥'에 대한 진실(가짜/억제제)이 밝혀짐.
  • 클리프행어: [유형 2] 폭로/반전 - "완전한 치료는 없다."
  • 템포: 고속

제7화: S급 수배령

[속보] 그랜드 힐 호텔 테러 발생... '성녀' 이수진 헌터 사망 추정

[단독] 용의자는 죽은 줄 알았던 F급 헌터 강진혁... '악마의 귀환'인가?

서울역 대합실의 대형 TV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화면에는 내가 찍혀 있었다.

흐릿한 CCTV 화면. 웨이터 복장을 하고 이수진의 대기실로 들어가는 내 모습.

그리고 옥상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뛰어내리는 장면.

"세상에, 미친놈 아냐?"

"이수진 헌터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데..."

"저런 괴물은 당장 사형시켜야 해!"

사람들의 비난이 화살처럼 꽂혔다.

나는 마스크를 고쳐 쓰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성녀라...'

죽기 직전 나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며 살려달라고 빌던 그 추한 얼굴을, 대중은 모른다.

알 필요도 없겠지. 그들에게 나는 그저 영웅을 죽인 빌런일 뿐이니까.

"지나가겠습니다."

나는 사람들 틈을 파고들었다.

툭.

"아,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행인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괜찮습니다... 윽!"

행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왜 그러세요?"

"발목이... 갑자기 발목이 꺾였어!"

멀쩡한 평지였다. 돌부리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행인의 발목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저주 발동: 타인의 불행(골절)을 유발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기요!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어? 저 사람, 옷차림이 뉴스에 나온..."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제기랄.'

사람이 많은 곳은 안 된다. 스치기만 해도 사고가 터진다.

편의점에서 물을 사려고 해도 알바생이 커터 칼에 손을 베이고, 버스를 타면 타이어가 펑크 난다.

나는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나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갈 곳이 없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 절대 안 된다. 내가 근처에 가는 순간 병원에 불이 나거나 의료 기기가 고장 날 것이다.

옛 친구? 나를 신고하거나, 내 저주에 휘말려 다칠 것이다.

"크으으..."

심장이 조여왔다. 흑염이 다시 꿈틀거렸다.

약이 필요하다.

김철수에게서 뺏은 미완성 치료제는 이제 반 병밖에 남지 않았다.

이걸 다 마시면, 그다음은?

그때, 골목길 전광판에서 최민석의 긴급 기자회견이 나오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검은 정장을 입은 최민석은 수척해 보였다. 연기력이 남우주연상 감이다.

"제 동료를 둘이나 잃었습니다. 범인은... 한때 제 친구였던 강진혁입니다."

최민석이 눈물을 훔쳤다.

"그는 던전에서 저주받은 힘을 얻고 타락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플래시가 터졌다.

최민석의 눈빛이 돌변했다.

"오로라 길드는 현 시간부로 강진혁에 대한 현상금 100억 원을 겁니다."

100억.

"생포는 필요 없습니다. 사체라도 상관없습니다.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제거해 주십시오."

공식적인 살인 청부.

이제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인, 조폭, 심지어 경찰까지 나를 노릴 것이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나는 전광판을 향해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나도 숨어다니는 건 질렸거든."


헌터 협회, 감사팀 사무실.

박태수는 책상을 내리쳤다.

"현상금 100억? 미친 거 아냐?"

"오로라 길드에서 정식으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협회장님도 승인하셨고요."

신입 조사관이 떨면서 대답했다.

"이건 그냥 사냥 대회야! 도심 한복판에서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박태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100억이면 눈 뒤집힌 헌터들이 수천 명은 몰려들 것이다. 강진혁이 아무리 강해도 물량 공세에는 장사 없다.

게다가 놈의 능력은 광역 피해를 입힌다. 놈을 잡으려다 서울시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

"증거물 분석 결과는?"

박태수가 화제를 돌렸다.

"아, 네. 그랜드 힐 호텔 옥상에서 발견된 재... 거기서 특이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신입이 모니터에 화학 구조식을 띄웠다.

"마약성 진통제 베이스에, 고농축 마력이 섞여 있습니다. 근데 이거..."

"이거 뭐?"

"협회 금지 약물 리스트에 있는 '블루 블러드(Blue Blood)'랑 구조가 90% 일치합니다."

블루 블러드.

10년 전, 헌터들의 폭주를 막겠다며 개발되다가 부작용이 심해 폐기된 약물.

공식적으로는 전량 폐기되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수진 사망 현장에 있지?"

박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수진이 가지고 있었거나, 강진혁이 가지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오로라 길드는 이 금지 약물과 연관되어 있다.

"최민석..."

박태수는 직감했다.

이 모든 판을 짠 설계자가 누구인지.

강진혁은 미친개가 아니다. 주인에게 물린 사냥개다. 그리고 지금 주인을 물어뜯으러 돌아온 것이다.

"팀장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조사관이 외쳤다.

"강동구 폐하수처리장 근처에서 식당이 붕괴됐답니다! 목격자가 화상 입은 남자를 봤다고 합니다!"

"하수처리장?"

박태수가 일어났다.

"놈이 숨을 곳은 거기밖에 없어. 악취가 심해서 사람도 없고, 지하 수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으니까."

박태수는 재킷을 챙겼다.

"특수 기동대 대기시켜. 오로라 길드보다 우리가 먼저 놈을 찾아야 해."

"체포합니까?"

"아니."

박태수가 마력탄을 장전했다.

"대화가 통하면 체포하고, 안 통하면... 내가 죽인다."


강동구 폐하수처리장.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냄새가 향수보다 나았다.

최소한 여기에는 다칠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수로관 위에 앉아 편의점에서 훔친 빵을 씹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각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걸까.

[남은 시간: 27일 14시간]

시스템 창의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줄어들고 있었다.

3일 동안 두 명을 죽였다.

이제 남은 건 리더 최민석 하나.

하지만 놈은 요새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나에게 100억이라는 현상금을 걸어 사냥개들을 풀었다.

정면 돌파? 불가능하다.

잠입? 내 저주 때문에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놈이 제 발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놈이 가장 아끼는 것. 놈의 약점.

나는 빵 조각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쥐들이 몰려와 빵을 뜯어먹었다.

"최민석이 아끼는 것..."

돈? 명예? 권력?

다 아니다. 놈은 그런 것들을 도구로만 여긴다.

놈이 진짜로 집착하는 건 '힘'이다. 그리고 '완벽함'이다.

그때, 주머니 속의 대포폰이 진동했다.

부러뜨려 버렸는데, 예비용으로 훔친 폰이었다.

발신자 표시 제한.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냐."

[...]

침묵.

그리고 익숙한,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


Batch 1: 제4화~제8화 (계속)

제7화: S급 수배령 (후반부)

"......누구냐."

[...]

침묵.

그리고 익숙한,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은 맛있어? 친구.]

최민석이었다.

나는 씹던 빵을 뱉어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전화기는 훔친 것이다. 내 명의도 아니고, 전원을 켠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알고 걸었지?"

[오로라 길드의 정보력을 너무 무시하는군. 네가 편의점에서 그 폰을 훔칠 때 CCTV에 찍혔더구나. 그리고 방금 기지국 신호가 잡혔고.]

최민석이 낮게 웃었다.

[하수구라니. 너한테 딱 어울리는 무덤이네.]

"무덤이 아니라 참호다."

나는 수로관 아래로 몸을 숨겼다.

"목 씻고 기다려라. 네가 준 약, 효과가 아주 좋더군."

[아, 그 실패작? 다행이네. 하지만 진혁아, 네가 간과한 게 있어.]

최민석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널 죽이는 데 100억을 썼어. 그 돈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

쿵. 쿵. 쿵.

머리 위, 맨홀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지.]

"......!"

[잘 가라. 내 아픈 손가락.]

뚝.

전화가 끊겼다.

동시에, 하수구의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랜턴 불빛이 켜졌다.

"찾았다!"

"저기 있다! 100억짜리다!"

"쏴! 다리는 남겨둬!"

탕! 타다당!

총성이 지하 수로를 울렸다. 마력탄이 콘크리트 벽을 때리고 튀었다.

나는 몸을 날려 오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차가운 오물이 전신을 감쌌다. 하지만 더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위에서는 헌터들이, 아래서는 오물이, 그리고 내 안에서는 흑염이 날뛰고 있었다.

[경고: 다수의 적대적 살의 감지]

[저주 '흑염'이 흥분합니다.]

시스템 창이 붉게 물들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들어와라."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역안(逆眼)이 푸르게 빛났다.

"여기는 내 홈그라운드니까."


7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850자 (전반부 포함 추산)
  • 장면 수: 3개 (서울역 도주 -> 하수처리장 은신 -> 최민석과의 통화 및 포위)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 박태수, 헌터들(엑스트라)
  • 메인 플롯 비트: 현상금 100억 수배령, 사회적 고립 심화, 은신처 발각.
  • 서브플롯 진행:
    • Sub B (저주): 일반인에게 불행(골절)을 입히며 사회와 완전히 단절됨. 스스로 '격리'를 선택.
  • 공개된 정보:
    • 오로라 길드의 정보력: 대포폰조차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력과 자금력.
    • 블루 블러드: 협회 금지 약물. 박태수가 사건의 배후를 확신하는 계기.
  • 심은 복선: 하수구라는 공간적 배경(폐쇄된 공간에서의 불행 전이 효과 증폭).
  • 회수한 복선: 1화부터 이어진 '오로라 길드의 자본력'이 100억 현상금이라는 구체적 위협으로 실현됨.
  • 클리프행어: [유형 4] 위기/위험 - 최민석의 선전포고와 동시에 헌터들에게 포위됨.
  • 템포: 중속 → 고속 (후반부 급가속)

제8화: 악마와의 조우

"죽여! 머리만 가져가면 돼!"

용병 헌터들이 수로를 따라 달려왔다.

전직 군인, 파면된 헌터, 빚에 쫓기는 조폭. 100억이라는 돈에 눈이 뒤집힌 인간 군상들이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마법을 난사했다.

콰앙! 콰광!

파이어볼이 오수를 증발시키며 악취를 풍겼다. 얼음 화살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정면 승부는 불가능하다. 숫자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이곳은 하수구다.

빛보다 어둠이, 질서보다 혼돈이 지배하는 곳.

[조건 충족: 불행의 연쇄 작용]

[저주가 환경 요소를 장악합니다.]

나는 바닥에 고인 오물에 손을 담갔다.

"미끄러져라."

검은 기운이 물을 타고 퍼져나갔다.

"잡았다 요 놈... 어?"

선두에 있던 헌터가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미끌.

"으악!"

그가 넘어지면서 뒤따라오던 헌터의 총구를 건드렸다.

타앙!

오발 된 총알이 천장에 매달린 낡은 배수관을 맞췄다.

끼이익- 쾅!

녹슨 배수관이 떨어지며 헌터 세 명을 덮쳤다.

"아악! 내 다리!"

"야 이 병신아! 총을 어디다 쏘는 거야!"

"배관이 왜 떨어져! 재수 옴 붙었네!"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나는 달렸다.

나의 불행은 전염병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의 사다리는 부러지고, 전등은 터지고, 가스는 샌다.

"저기 간다! 쏴!"

누군가 소리쳤지만, 그의 총은 격발 불량(Jam)으로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실이 폭발해 그의 손가락을 날려버렸다.

"끄아아악!"

비명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나는 미로 같은 수로를 질주했다. 하지만 출구 쪽에서도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8화: 악마와의 조우

"아악! 내 눈!"

"이거 놔! 내가 쏘려던 게 아니라고!"

하수구는 지옥도였다.

내가 손을 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존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놈들은 스스로 넘어지고, 오발하고, 아군을 쐈다.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이 좁고 어두운 곳에 모였으니, 작은 불행 하나가 도미노처럼 거대한 재앙으로 번진 것이다.

[저주 '불행'이 연쇄 작용을 일으킵니다.]

[적들의 공포심이 당신의 마력을 회복시킵니다.]

나는 어둠 속에 웅크린 채 그 아수라장을 지켜보았다.

'웃기는군.'

S급 헌터도, 특수 부대 출신 용병도, 불운 앞에서는 그저 허우적거리는 인간일 뿐이다.

나를 죽이러 온 놈들이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첨벙. 첨벙.

나는 소란을 틈타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의 지리는 내가 더 잘 안다. 짐꾼 시절, 몬스터의 사체를 처리하러, 혹은 길드의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러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곳이니까.

"거기냐! 강진혁!"

독한 놈 하나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머리에 적외선 고글을 쓴 용병이었다.

"네놈 목만 가져가면 100억이야!"

그가 마체테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튀어나온 철근을 툭 찼다.

팅.

철근이 미세하게 휘어졌다.

용병이 그 위를 밟는 순간.

"어?"

철근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용병의 정강이를 강타했다.

"끄아악!"

중심을 잃은 용병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필이면 그가 들고 있던 마체테의 날이, 그가 짚으려던 바닥 쪽에 세워져 있었다.

푹.

"커헉..."

자기 칼에 자신의 쇄골이 뚫린 용병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나는 그 옆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

이제 출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찌르르.

등골을 타고 소름 돋는 감각이 올라왔다.

살의가 아니다.

이건... 감시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이 어둠 속에서, 적외선 고글 따위가 아니라 훨씬 더 근원적인 감각으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쓰러진 용병들의 신음 소리와 오물 흐르는 소리뿐.

아니.

저 멀리, 어둠이 뭉쳐 있는 곳.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물을 밟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난장판이군."

건조한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박태수였다.

그는 쓰러진 용병들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한 손에는 마력탄 권총을 들고 있었다.

"팀장님! 지원 병력은..."

뒤따라온 신입 조사관이 말을 잇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사방에 널린 피와 오물의 냄새 때문이었다.

"필요 없다.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간다."

박태수가 손을 저었다.

"하지만 위험합니다! 놈은 S급 헌터들도 죽인 괴물입니다!"

"괴물?"

박태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정확히 내가 숨어 있는 기둥 뒤를 응시했다. 보일 리가 없는데도, 마치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아니. 놈은 지금 겁먹은 짐승이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박태수는 천천히 걸어왔다.

"나와라, 강진혁. 거기 있는 거 안다. 냄새가 진동을 하거든."

도망쳐야 한다.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다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김철수나 이수진은 힘만 센 껍데기였다. 하지만 박태수는 진짜 사냥꾼이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흑염을 끌어올렸다.

[스킬: 그림자 은신(F) 활성화]

내 몸이 어둠과 동화되었다.

하지만 박태수는 멈추지 않았다.

"은신? 소용없어. 네 놈한테서는 역겨운 유황 냄새가 나니까."

탕!

예고도 없이 박태수가 발포했다.

총알이 내 머리 바로 옆, 콘크리트 벽에 박혔다. 파편이 튀어 뺨을 긁었다.

"다음엔 머리다."

박태수가 나와 불과 10미터 거리까지 좁혀왔다.

"투항해라. 그러면 최소한 인간으로서 재판받게 해주지."

"재판?"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나는 기둥 뒤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한테? 나를 실험체로 쓴 협회한테? 아니면 100억을 건 최민석한테?"

"......협회는 공정하다."

"공정? 개소리하지 마. 당신도 봤잖아. 그 실험 보고서."

박태수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3화에서 내가 일부러 남겨둔 보고서. 그가 그걸 읽었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그래. 봤다."

박태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로라 길드가 널 실험체로 썼다는 거. 그리고 협회 일부가 묵인했다는 거."

"그걸 알면서 나한테 총을 겨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넌 민간인을 위협하고, 동료를 살해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동료? 그 새끼들이 내 동료였나?"

"법치 국가다. 복수는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법이 하는 거야."

"그 법이 썩었으니까 내가 직접 청소하는 거잖아!"

나는 기둥 뒤에서 뛰쳐나갔다.

정면 승부? 아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박태수에게 던졌다.

수류탄이 아니었다.

아까 쓰러진 용병의 주머니에서 훔친 '조명탄'이었다.

파앙!

눈부신 백색 섬광이 터졌다.

일반인이라면 눈을 감았겠지만, 마력 감지 능력이 뛰어난 박태수에게는 치명타였다.

"큭!"

박태수가 본능적으로 팔로 눈을 가렸다.

그 틈이다.

나는 반대편 수로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박태수는 보지 않고도 반응했다.

타앙!

총알이 내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으윽!"

타는 듯한 고통. 살이 찢기고 뼈가 긁히는 감각.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피를 흘리며 수로관 깊숙한 곳, 메탄가스가 차 있는 구역으로 달렸다.

"멈춰!"

박태수가 뒤를 쫓았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멈춰 서서 벽에 붙은 낡은 가스 밸브를 잡았다.

"오지 마. 다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허세 부리지 마라."

"허세?"

나는 밸브를 돌렸다.

쉬이익-!

가스 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손끝에서 흑염의 불씨를 피워 올렸다.

"여기 메탄 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이거 터지면 강동구 바닥이 뒤집혀."

박태수가 멈췄다.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미친 새끼..."

"그래. 나 미쳤어.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

나는 불


Batch 1: 제4화~제8화 (계속)

제8화: 악마와의 조우 (후반부)

"나는 불꽃을 튕겼다."

박태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내 눈에서 거짓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내 눈에 담긴 건 공허함뿐이었다.

잃을 게 없는 놈이 제일 무섭다. 그는 베테랑답게 그걸 알고 있었다.

"엎드려!"

박태수가 소리치며 뒤로 몸을 날렸다. 신입 조사관의 목덜미를 낚아채 바닥으로 구르는 동작은 전광석화 같았다.

나는 밸브를 완전히 열어젖히고, 손에 쥐고 있던 조명탄의 잔해를 가스 속으로 던졌다.

치지직- 콰앙!

거대한 화염이 터널을 집어삼켰다.

메탄가스는 폭발력이 강하다. 낡은 하수구 천장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콘크리트 덩어리와 흙더미가 박태수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팀장님!"

"콜록! 물러서! 추가 붕괴 위험이 있다!"

너머에서 박태수의 고함이 들렸다.

나는 무너진 잔해를 등지고 어둠 속으로 달렸다.

왼쪽 어깨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총알이 쇄골을 스치고 박힌 모양이다.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지만, 멈출 수 없었다.

'냄새.'

피 냄새를 지워야 한다.

박태수는 시각이 아니라 마력과 후각으로 쫓는 사냥개다.

나는 하수구 벽에 붙은 썩은 이끼와 오물을 닥치는 대로 긁어 상처 부위에 문질렀다.

"윽..."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경고: 상처 부위가 감염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주 '흑염'이 오염 물질을 소각합니다.]

치이익.

검은 불꽃이 상처를 지졌다. 소독이라기보다는 고문에 가까웠다.

하지만 덕분에 피 냄새는 역한 하수구 냄새와 살 타는 냄새에 묻혔다.

나는 미로처럼 얽힌 지하 수로의 가장 깊은 곳, 폐쇄된 구역으로 기어들어 갔다.


무너진 갱도 앞.

박태수는 흙투성이가 된 채 일어났다.

"괜찮나?"

"네, 네... 팀장님은요?"

"찰과상이야."

박태수는 무너진 돌무더기를 노려보았다. 길은 완전히 막혔다.

뚫으려면 중장비가 필요하다. 그사이 강진혁은 이미 서울 반대편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놓쳤습니다. 지원 병력을 반대편 출구로..."

"아니."

박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철수한다."

"네? 하지만 놈이..."

"이 안은 미로야. 그리고 놈은 쥐새끼처럼 길을 알고 있어. 지금 들어가면 우리만 죽어."

박태수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강진혁이 도망치며 흘린, 피 묻은 붕대 조각이었다.

박태수는 붕대 냄새를 맡았다.

지독한 오물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희미한 소독약 냄새.

'자신의 상처를 오물로 덮었어.'

살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고통이고 상관없다는 독기.

단순한 살인마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박태수는 품 안에서 3화 때 챙겼던 '실험 보고서'를 꺼내 보았다.

[피실험체 강진혁. 적합 판정.]

[오로라 길드장 최민석 승인.]

박태수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강진혁 말이 맞을지도 몰라."

"네?"

"우리가 총구를 겨눠야 할 곳이, 하수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태수는 무전기를 켰다.

"상황실. 오로라 길드 최민석 길드장의 최근 1년간 약물 처방 기록, 그리고 길드 자금 내역 전부 뽑아놔. 영장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팀장님, 그러다 윗선 눈에 나면..."

"이미 났어. 가자."

박태수는 막힌 터널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사냥개는 냄새를 맡았다.

진짜 썩은 내가 나는 곳은 이 하수구가 아니라, 지상에 있는 화려한 빌딩 숲이라는 것을.


서울 강남, 오로라 길드 본사 최상층 펜트하우스.

최민석은 통유리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와인잔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작전 실패. 타겟 도주.]

[용병단 전멸. 생존자 없음.]

"하..."

최민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100억을 썼는데 쥐새끼 한 마리를 못 잡다니. 요즘 헌터들 수준 참 처참하네."

그는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F급 짐꾼이었던 강진혁.

착해 빠져서 이용해 먹기 딱 좋았던 녀석이, 이제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넌 최고의 '그릇'이야."

최민석은 책상 위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수십 개 나열되어 있었다.

이수진이 말했던 '억제제'.

하지만 최민석은 그것을 '먹이'라고 불렀다.

그는 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그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크으으..."

최민석의 등 뒤에서 그림자가 솟구쳤다.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눈과 촉수가 달린, 형용할 수 없는 괴물의 형상이었다.

이것은 '성스러운 힘'이 아니었다.

그가 던전 깊은 곳에서 계약한, 이계의 존재.

강진혁의 흑염이 '파괴'라면, 최민석의 힘은 '포식'이었다.

[주인님. 배가 고픕니다.]

그림자가 최민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녀석을 먹고 싶습니다. 흑염을... 그 달콤한 저주를...]

"기다려."

최민석이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붉은색 세로 동공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의 눈으로 돌아왔다.

"과일은 익을수록 맛있는 법이야. 진혁이는 지금 아주 잘 익어가고 있어."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집어 들었다.

강진혁의 가족사진.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그 뒤에서 활짝 웃고 있는 강진혁.

최민석의 손가락이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숨바꼭질은 지루하니까."

그가 사진을 구겼다.

"이제 술래가 나올 차례지."


8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9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하수구 탈출 및 대치 -> 박태수의 철수 -> 최민석의 펜트하우스)
  • 등장 캐릭터: 강진혁, 박태수, 최민석, 신입 조사관
  • 메인 플롯 비트: 강진혁의 도주 성공, 박태수의 심경 변화(의심→확신), 최민석의 정체 공개.
  • 서브플롯 진행: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강진혁 체포를 보류하고, 오로라 길드(최민석) 수사로 방향을 선회함.
  • 공개된 정보:
    • 최민석의 정체: 그 또한 이계의 존재(포식)와 계약한 괴물임. 억제제를 통해 괴물을 통제/사육하고 있음.
    • 박태수의 선택: 법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진실'을 쫓기로 결심.
  • 심은 복선: 최민석이 강진혁의 어머니 사진을 만지는 장면 -> 다음 화 인질극 예고.
  • 회수한 복선: 3화의 '실험 보고서'가 박태수를 움직이는 결정적 트리거가 됨.
  • 클리프행어: [유형 7] 새로운 등장(본모습) - 최민석이 괴물의 본성을 드러내며 강진혁의 어머니를 노림.
  • 템포: 고속 → 중속 (긴장감 유지)

Batch 1 완료 요약

진행 상황 트래커 업데이트

  • 메인 플롯 진행률: 8/13 (약 60%) - 복수 대상 2명 처치(김철수, 이수진), 최종 보스(최민석)만 남음.
  • 활성 서브플롯:
    • A (치료제): 가짜임이 판명됨. 억제제 확보로 목표 변경.
    • B (저주): 불행 전이가 심해져 사회적 고립 상태.
    • C (추적자): 박태수가 적으로 시작해 잠재적 조력자(또는 방관자)로 포지션 변경 중.
  • 미공개 정보: 최민석이 계약한 괴물의 정확한 정체, 30일 시한부의 정확한 남은 시간.
  • 활성 복선: 최민석이 손에 쥔 '어머니 사진', 강진혁의 남은 억제제(반 병).
  • 회수 완료 복선: 실험 보고서(박태수), 오로라 길드의 자금력(현상금), 치료제의 정체.
  • 다음 배치 예고: 9화부터 13화까지의 클라이맥스. 최민석의 인질극, 강진혁의 정면 돌파, 길드 본부에서의 최종 결전.

일관성 검증

  • 캐릭터: 강진혁의 냉소적이지만 인간적인 딜레마(노인 구출 vs 살인)가 잘 유지됨. 박태수의 예리함과 원칙주의자 면모 강화.
  • : 느와르 특유의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비, 하수구, 피)가 유지됨.
  • 템포: 7~8화의 추격전으로 템포가 최고조에 달함. 9화 초반에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할 수 있음.

Step 09: 후반부 에피소드 집필 (Batch 2)

이제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Batch 2 (9~13화)를 집필할 차례입니다.

Batch 2 집필 방향

  • 9화: 인질(어머니) 위기 발생 → 강진혁의 각성/선전포고.
  • 10화: 길드 본부 돌입 (광역 불행 저주 발동).
  • 11화: 전투의 절정 (저주 vs 포식).
  • 12화: 최민석 처단 및 허무한 승리.
  • 13화: Part 1 엔딩 및 새로운 시작.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Batch 2: 제9화~제13화 (완결)

제9화: 선전포고

차가운 빗줄기가 하수구 출구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다리 밑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썩은 물이 흐르는 개천가. 쥐들조차 냄새가 독해 피해가는 곳이었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어깨에 박힌 총알을 파냈다.

마취제는 없었다. 편의점에서 훔친 소주를 상처에 들이붓고, 달궈진 단검으로 살을 찢어 탄두를 꺼냈다.

땡그랑.

피 묻은 납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저주 '흑염'이 손상된 조직을 강제로 접합합니다.]

[고통 수치: 최상]

검은 불꽃이 실처럼 엉겨 붙어 상처를 꿰맸다. 살이 타는 냄새와 재생되는 역겨운 감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아... 하아..."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하늘은 온통 회색이었다. 내 인생처럼.

[남은 시간: 25일 08시간]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내 몸이 버틸지 모르겠다.

박태수의 총격, 헌터들의 추격, 그리고 흑염의 잠식.

지금 내 상태는 폭발 직전의 불발탄 같다. 건드리면 터진다.

그때, 주머니 속 대포폰이 진동했다.

최민석이었다.

나는 젖은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용건만 말해."

[목소리가 거치네. 많이 아픈가 봐?]

최민석의 목소리는 여유가 넘쳤다.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들렸다.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지금 뉴스 틀어봐.]

"뉴스 볼 기분이 아니다."

[안 보면 후회할 텐데. 네 어머니가 나오시거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전광판이 보이는 곳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상가 건물 외벽의 대형 스크린.

[속보] 오로라 길드, 테러 용의자 강진혁의 모친 '보호' 조치.

화면에는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링거를 꽂은 팔.

그리고 그 뒤에 서서 어깨를 감싸 쥐고 있는 최민석.

"어머니..."

최민석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강진혁 씨가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부디 자수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님은 저희 길드 병원에서 최고 수준의 '보호'를 받고 계십니다."

보호? 인질이다.

최민석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치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하지만 어머님의 병세가 위중하셔서...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입모양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와서 죽어.'

뚝.

방송이 끊기고 광고가 나왔다.

나는 멍하니 빗속에 서 있었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혔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콰아앙!

내 발밑의 아스팔트가 검게 폭발했다.

주차되어 있던 차들의 경보기가 일제히 울렸다. 가로등이 팡팡 터져 나갔다.

[살의가 임계점을 초과합니다.]

[저주 '흑염'이 폭주 모드에 진입합니다.]

[주변의 모든 행운을 소각합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나는 대포폰을 귀에 댔다.

"최민석."

[보고 있었구나.]

"기다려."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차가워진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숨바꼭질은 끝났다."

나는 품 안의 약병을 꺼냈다.

남은 절반의 억제제.

이걸 마시면 흑염을 누를 수 있다. 인간으로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쨍그랑!

나는 약병을 바닥에 던져 깨트렸다.

푸른 액체가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미쳤군. 약을 버려?]

"약은 필요 없어."

내 눈동자가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흰자위는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았다.

"오늘 밤, 내가 네 약이 될 테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빗속을 걸었다.

목적지는 강남. 오로라 길드 본사.

더 이상 숨지 않는다. 피하지 않는다.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간판이 떨어지고, 신호등이 오작동하고, 맨홀이 역류했다.

도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재앙이 걸어가고 있었다.


9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9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다리 밑 은신처 -> 거리 전광판 앞 -> 빗속의 행군)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뉴스/통화), 어머니(뉴스 화면)
  • 메인 플롯 비트: 최민석의 인질극(어머니), 강진혁의 억제제 폐기 및 전면전 선포.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억제제를 스스로 깨트리며 '인간으로의 회귀'보다 '복수와 파멸'을 선택함. (일시적 포기)
    • Sub B (저주): 억제제가 사라지자 불행의 반경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확장됨.
  • 공개된 정보: 오로라 길드 병원의 위치(본사 내 부속 병원).
  • 심은 복선: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최민석의 말 (타임 리밋 설정).
  • 클리프행어: [유형 6] 선택의 기로 + [유형 5] 분노 폭발 - 약을 깨트리고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며 적진으로 향함.
  • 템포: 고속

제10화: 지옥의 문을 열다

오로라 길드 본사 '오로라 타워'.

지상 60층, 대한민국 헌터 산업의 상징이자 난공불락의 요새.

로비에는 수십 명의 경비 헌터와 자동 방어 터렛이 배치되어 있었다.

"경계 강화해! 놈이 올지도 모른다!"

보안 팀장이 소리쳤다.

그때, 회전문이 천천히 돌아갔다.

끼이익...

비에 젖은 검은 정장의 남자가 들어왔다.

물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로비의 적막을 깼다.

"강진혁이다!"

"사격 개시!"

다다다당!

방어 터렛에서 마력탄이 쏟아졌다. 경비 헌터들이 일제히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나는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저주 '불행'이 광역으로 확산됩니다.]

피슉. 피슉.

터렛의 총구가 엉뚱한 곳으로 돌아갔다.

"어? 야! 기계가 왜 이래!"

터렛이 아군인 경비원들을 향해 난사되기 시작했다.

"으악! 끄아악!"

마법사들의 지팡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마, 마력 역류다! 영창이 꼬였어!"

펑! 퍼벙!

스스로의 마법에 휘말린 헌터들이 나뒹굴었다.

나는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총알이 나를 피해 갔다. 파이어볼이 내 머리 위 전등을 맞췄다.

와장창!

거대한 샹들리에가 보안 팀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 으아..."

깔린 팀장이 신음했다.

나는 그의 앞을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작동하지 않았다.

"아, 맞다."

내가 오면 기계가 고장 나지.

나는 비상구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예 헌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A급 헌터들로 구성된 '오로라 별동대'.

"여기까지다, 강진혁."

별동대장이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우린 기계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순수한 무력으로 널..."

우지끈.

대장이 밟고 있던 대리석 바닥이 꺼졌다.

"어?"

지하 주차장 천장이 부실 공사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하필 지금. 하필 그가 서 있는 곳만.

"대장님!"

대장이 구멍으로 사라졌다.

남은 대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 새끼 뭐야..."

"재수 옴 붙는다! 가까이 가지 마!"

그들은 무기를 들고도 뒷걸음질 쳤다. 공포.

가장 원초적인 공포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켜."

내 목소리는 작았지만, 로비 전체에 울렸다.

"죽기 싫으면."

홍해 갈라지듯 길이 열렸다.

A급 헌터들이, 몬스터를 때려잡던 영웅들이, F급 짐꾼 하나가 무서워 길을 터주고 있었다.

나는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다.

1층, 2층, 3층...

60층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한계였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심장이 타는 듯이 아팠다. 억제제 없이 흑염을 쓴 대가였다.

[경고: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됩니다.]

[심장 박동 수: 180... 190...]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들이 갑니다.


같은 시각, 오로라 타워 상황실.

최민석은 모니터를 통해 로비의 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하하! 대단해! 정말 대단해!"

그는 박수를 쳤다.

"저게 바로 내가 원하던 힘이야. 운명을 비틀고, 인과율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재앙!"

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그림자 괴물이 그의 등 뒤에서 혀를 낼름거렸다.

[맛있겠다... 저 절망... 저 분노...]

"길드장님! 1층이 뚫렸습니다! 별동대도 무력화됐습니다!"

부관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어머님을... 인질로 쓸까요?"

최민석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멍청한 놈."

퍼억!

최민석의 손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촉수가 부관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헉..."

"인질은 여기까지 오게 만드는 미끼였을 뿐이야.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필요 없어."

최민석은 부관의 시체를 바닥에 던졌다.

"문을 열어둬라."

"네? 하, 하지만..."

"놈을 펜트하우스로 안내해. 내 식사 시간이니까."

최민석은 와인을 들이켰다.

"어서 와라, 진혁아. 내가 너를 완성시켜 줄게."


20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계단에는 쓰러진 헌터들이 즐비했다.

나를 막으려던 놈들은 모두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계단에서 구르거나, 무기가 폭발하거나, 심장마비가 오거나.

나는 시체 산을 밟고 올라갔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위쪽 계단참에서 누군가 걸어 내려왔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

박태수였다.

그는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

나는 멈춰 섰다.

"비켜. 당신이랑 싸울 시간 없어."

"알아."

박태수가 서류를 흔들었다.

"압수수색 영장이다. 10분 전에 발부됐지."

"......뭐?"

"최민석의 불법 실험, 횡령, 그리고 살인 교사 혐의."

박태수가 내게 길을 비켜주며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법대로 한다. 지금부터 이 건물은 범죄 현장이고, 최민석은 현행범이야."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경찰이 도착하려면 30분은 걸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30분.

그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눈감아주겠다는 뜻이다.

"왜...?"

"네가 말했지. 법이 썩었다고."

박태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가끔은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칼잡이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야."

그는 라이터를 켰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내 불행 때문이었다.

박태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구겨버렸다.

"가라. 네 어머니는 50층 병동에 있다. 내 부하들이 그쪽으로 이동 중이야."

"......고맙다."

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박태수의 등 뒤로 내 흑염의 잔재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는 적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장애물은 없다.

오직 최민석, 그 새끼뿐이다.


10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오로라 타워 로비 돌파 -> 펜트하우스 상황실 -> 비상구 계단 박태수와의 조우)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 박태수, 오로라 길드원들
  • 메인 플롯 비트: 길드 본사 침입, 박태수의 방조(협력), 최민석과의 최종전 임박.
  • 서브플롯 진행:
    • Sub B (저주): '불행'이 아군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피해가는 모습(박태수 라이터 불발 정도)을 통해 진혁이 무의식적으로 저주를 통제하기 시작함을 암시.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체포 대신 '방조'를 선택하며 서브플롯 완결 및 조력자 포지션 확정.
  • 공개된 정보: 최민석의 능력(그림자 촉수/포식).
  • 심은 복선: "내 식사 시간"이라는 최민석의 대사 (그가 진혁을 먹으려 함).
  • 클리프행어: [유형 1] 미해결 갈등 - 박태수의 묵인 하에 최상층으로 향하는 진혁.
  • 템포: 고속

제11화: 지옥도(地獄圖)

50층 병동.

"어머니!"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텅 비어 있었다.

링거대는 쓰러져 있고, 침대 시트는 차가웠다.

"늦었어..."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때, 병실 TV가 저절로 켜졌다.

[여기로 와라, 진혁아. 60층이다.]

화면 속 최민석이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카메라가 돌아가며 펜트하우스 내부를 비췄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배양조가 늘어서 있었다. 배양조 안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괴물들이 떠 있었다.

실패한 실험체들.

나처럼 납치되어 강제로 적합 수술을 받은 피해자들.

"으아아아!"

나는 TV를 주먹으로 부셨다.

60층.

나는 비상구를 박차고 나갔다.


60층 펜트하우스.

육중한 강철 문이 흑염에 녹아내렸다.

내가 발을 들여놓자마자, 역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왔구나."

최민석은 거대한 옥좌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어머니가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어머니를 놔줘."

"물론이지. 네가 나한테 먹히면, 어머니는 살려줄게. 약속하마."

최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 보여줘 봐. 네가 가진 그 흑염의 맛을."

쿠구구궁!

최민석의 그림자에서 수백 개의 검은 촉수가 튀어나왔다.

"죽어!"

나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스킬: 흑염 폭발(D) 발동]

내 주먹에서 검은 불기둥이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최민석은 피하지 않았다.

촉수들이 내 불꽃을 감쌌다.

치이익... 꿀꺽.

"......!"

불꽃이 사라졌다. 아니, 먹혔다.

"맛있네. 매콤하고."

최민석이 입맛을 다셨다.

"내 힘은 '포식(Gluttony)'이야. 모든 에너지를 먹어 치우지. 마법도, 저주도, 심지어 불행까지도."

그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촉수 하나가 내 발목을 휘감았다.

"크윽!"

내동댕이쳐졌다. 대리석 바닥이 부서지며 내 몸이 굴렀다.

"안 통한다니까."

최민석이 천천히 걸어왔다.

"넌 그냥 밥이야. 잘 차려진 밥상."

나는 비틀거하며 일어났다.

흑염이 안 통한다. 불행도 안 통한다.

놈은 내 상성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배양조 안에 있는 괴물들이 보였다.

실패작들. 고통 속에 죽어간 원혼들.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와줘...'

'죽여줘...'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흑염이 그들의 원한에 반응하고 있었다.

[공명: 죽은 자들의 원한]

[저주 '흑염'이 새로운 연료를 발견했습니다.]

내 가슴 속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내 생명력만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 가득 찬 죽음의 기운이 나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었다.

"최민석!"

나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이번엔 붉은빛이 감도는 칠흑의 불꽃이었다.

"먹을 수 있으면 먹어봐라. 배가 터져 죽을 테니까!"

콰아아아!

내가 쏘아 보낸 불꽃이 펜트하우스를 집어삼킬 기세로 덮쳤다.

최민석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이... 이건 너무 많아!"

그가 촉수로 방어막을 쳤지만, 흑염은 촉수를 태우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최민석의 왼팔에 불이 붙었다.

"이 자식이!"

최민석의 몸이 기괴하게 부풀어 올랐다.

쩌저적.

그의 양복이 찢어지고, 피부가 벗겨졌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시커먼 점액질로 뒤덮인, 눈이 세 개 달린 괴물이었다.

"본모습을 드러냈구나."

나는 피를 토하며 웃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 괴물 대 괴물로."

[시스템 경고: 생명력이 10% 미만입니다.]

[마물화 진행률: 85%]

시간이 없다.

나는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태웠다.

오늘 여기서, 우리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아니,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죄송해요.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나는 괴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1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8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50층 병동 -> 60층 펜트하우스 대치 -> 1차 공방 및 각성)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괴물화), 어머니(기절)
  • 메인 플롯 비트: 최민석의 능력(포식)에 고전하지만, 희생자들의 원한과 공명하여 흑염을 강화함.
  • 서브플롯 진행: 없음 (오직 메인 플롯에 집중)
  • 공개된 정보: 최민석의 '포식' 능력은 에너지를 흡수하지만, 허용량을 넘으면 데미지를 입음.
  • 심은 복선: '마물화 진행률 85%' (전투 후 인간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임).
  • 클리프행어: [유형 3] 역전 - 최민석이 괴물 본체를 드러내고 2차전 돌입.
  • 템포: 고속 (전투 중심)

제12화: 거짓된 구원

"키에에에에엑!"

괴물이 된 최민석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쇳소리와 짐승의 울음이 섞인 소음.

그의 거대한 손이 나를 덮쳤다.

쾅!

바닥이 꺼지며 우리는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59층. 58층.

콘크리트 벽을 뚫고 계속 떨어졌다.

"크헉..."

내 갈비뼈가 부러졌다. 내장이 파열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놈의 목덜미를 놓지 않았다.

"타라... 타버려라..."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흑염이 놈의 점액질 피부를 지졌다.

"꺼져! 떨어져!"

최민석이 촉수로 내 몸을 관통했다.

푸욱!

복부에 구멍이 뚫렸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했을 상처.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흑염이 상처 부위를 강제로 메우며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었다.

좀비처럼.

"너... 너 뭐야! 왜 안 죽어!"

최민석이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놈은 '포식자'였지만, 동시에 겁쟁이였다.

자신보다 약한 자만 잡아먹어 온 놈은,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미친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내 퇴직금... 받아야지."

나는 놈의 눈알 하나를 손가락으로 찔러 터트렸다.

"키에엑!"

놈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나는 놈의 가슴팍에 손을 박어넣었다.

심장.

마력의 코어.

"잡았다."

[스킬: 흑염 폭주(S) 발동]

[대상을 내부에서부터 소각합니다.]

내 모든 마력을, 내 모든 생명을 쏟아부었다.

화르륵!

최민석의 몸 안에서 검은 불길이 폭발했다.

"안 돼! 나는... 나는 왕이 될..."

놈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퍼앙!

검은 재가 되어 터져 나갔다.

정적.

무너진 55층 회의실.

나는 재가 되어버린 최민석의 잔해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이겼다.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물화 진행률: 99%]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의식이 희미해졌다.

이대로 괴물이 되는 건가.

아니면 죽는 건가.

그때, 잿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유리병이었다.

최민석의 몸속에 품고 있던, 단 하나의 '완성된 억제제'.

기적적으로 깨지지 않았다.

나는 기어서 그것을 집었다.

뚜껑을 딸 힘도 없어서, 병 목을 깨물어 부셨다.

유리 조각과 함께 액체를 삼켰다.

꿀꺽.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불타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경고: 강력한 마력 억제제가 투여되었습니다.]

[흑염이 강제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마물화 진행이 멈춥니다.]

"하아..."

숨이 쉬어졌다.

일그러졌던 피부가, 튀어나왔던 핏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살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유리창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의 아침.

어젯밤의 지옥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운 햇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다.

[효과 지속 시간: 24시간]

[매일 복용하지 않으면 흑염이 다시 깨어납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유는 없다.

나는 이제 약에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마약 중독자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약을 만들 수 있는 건...

"오로라 길드 연구소뿐이지."

최민석은 죽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남아 있다. 협회도 남아 있다.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벽 사이로 박태수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협회 요원들이 있었다.

박태수는 내 몰골을 보더니, 총을 거뒀다.

"끝났나?"

"......어."

"최민석은?"

나는 바닥의 재를 가리켰다.

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는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시신 수습하고, 현장 통제해."

"팀장님, 저 자는요? 체포해야..."

"저 자는 피해자다. 인질로 잡혀 있다가 구조된 걸로 처리한다."

"네?"

"내 말 못 들었어? 시키는 대로 해!"

박태수가 소리쳤다. 요원들이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박태수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가라. 어머니 모시고."

"......왜?"

"네가 청소를 다 했으니까. 일당은 줘야지."

박태수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연구소 출입 카드키였다. 최민석의 금고에서 압수한 것 같았다.

"거기 가면 약이 더 있을 거야.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

"하지만 기억해라. 다음엔 안 봐준다. 민간인 피해가 나오면, 그때는 내가 널 죽인다."

나는 카드키를 꽉 쥐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50층에서 어머니를 업고, 비상구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에 업힌 어머니의 온기가 따뜻했다.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


1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8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최민석과의 공중전 -> 최민석 처치 및 억제제 복용 -> 박태수와의 후일담)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사망), 박태수, 협회 요원들
  • 메인 플롯 비트: 복수 완성, 억제제 확보로 인간성 유지(일시적), 박태수의 묵인으로 탈출.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억제제가 24시간 지속형이라는 한계 확인. 지속적인 확보가 필요해짐.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진혁을 '피해자'로 둔갑시켜 사회적 말살을 막아줌.
  • 공개된 정보: 오로라 길드 연구소에 억제제 재고가 있음.
  • 심은 복선: 박태수가 건넨 카드키 (Part 2의 주요 무대인 연구소 잠입을 위한 아이템).
  • 클리프행어: [유형 2] 폭로/반전 (허무함) - 승리했지만 시한부 인생은 계속됨.
  • 템포: 고속 → 저속 (에필로그 분위기)

제13화 (완결): 출근하는 괴물

일주일 후.

거울 앞에 섰다.

깔끔한 정장. 단정한 넥타이.

화상 흉터는 옅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컨실러로 가리면 티가 안 날 정도였다.

"진혁아, 밥 먹어라."

주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가요."

식탁에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가 차려져 있었다.

평범한 아침 밥상.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약효 지속 시간: 3시간 20분]

시야 구석에 떠 있는 타이머.

나는 주머니에서 알약 통을 꺼냈다. 억제제를 고체화한 알약이었다.

"어디 아프니?"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아뇨. 그냥... 영양제예요."

알약을 입에 넣고 물로 삼켰다. 떨림이 멈췄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저 헌터 일을 그만두고 일반 회사에 취직한 줄로만 아신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눈 부셨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만원 지하철. 땀 냄새. 피로한 표정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옥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옥철에 있다.

웃음이 나왔다.

'평범하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살얼음판 위인지.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로라 길드, 신임 길드장 선출... '정부와의 유착 의혹' 전면 부인]

[헌터 협회, 불법 실험 수사 조기 종결]

최민석은 죽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꼬리 자르기.

그들은 최민석 개인의 일탈로 모든 것을 덮었다.

그리고 연구소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내 생명줄인 억제제를 생산하면서, 또 다른 괴물들을 만들고 있겠지.

띠링.

문자가 왔다. 발신자 표시 제한.

[카드키 유효기간, 오늘까지야.]

박태수였다.

[오늘 밤. 연구소 지하 3층. 물건 들어온다.]

나는 문자를 지웠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

눈동자가 순간 검게 일렁였다.

"야근이 좀 길어지겠군."

넥타이를 고쳐 맸다.

진짜 사장 놈을 잡을 때까지. 내 퇴직금 정산은 끝나지 않았다.

[Part 1 완결]

[Part 2 예고: 그림자 정부]


1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1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집에서의 아침 -> 출근길 지하철 -> Part 2 예고)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어머니, 박태수(문자)
  • 메인 플롯 비트: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밤에는 헌터(괴물)로 활동하는 이중생활 시작.
  • 서브플롯 진행: 모든 서브플롯이 Part 2를 위한 셋업으로 전환됨.
  • 공개된 정보: 최민석 사건은 은폐되었고, 거대한 흑막(정부/협회)은 건재함.
  • 심은 복선: '오늘 밤 물건 들어온다'는 박태수의 정보 (Part 2 첫 에피소드).
  • 클리프행어: [유형 6] 선택의 기로 (새로운 시작) -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처단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임.
  • 템포: 저속 → 중속 (기대감 고조)

Batch 2 완료 요약

진행 상황 트래커 업데이트

  • 메인 플롯 진행률: 13/13 (Part 1 완결). Part 2(장편)를 위한 도입부 완성.
  • 활성 서브플롯:
    • A (치료제): 억제제 의존 상태 지속. 연구소 파괴 및 원천 기술 확보가 Part 2의 목표.
    • C (추적자): 박태수와의 공조 관계(비공식) 확립.
  • 미공개 정보: 흑염의 기원(던전의 진짜 주인), 정부와 오로라 길드의 커넥션 실체.
  • 활성 복선: 박태수가 준 카드키, 연구소 지하 3층의 '물건'.
  • 회수 완료 복선: 최민석의 정체, 어머니 구출, 억제제의 한계.

일관성 검증

  • 캐릭터: 강진혁이 복수를 마쳤음에도 허무함과 현실적 제약(약물 의존)을 안고 가는 모습이 느와르 장르에 부합함.
  • : 해피엔딩이 아닌 '유예된 엔딩'으로 마무리하여 긴장감 유지.

작가의 말

13화라는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을 담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Part 1은 강진혁이라는 캐릭터의 탄생기(Origin Story)였습니다.
이제 Part 2에서는 그가 이 썩어빠진 세상과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Step 09 집필 완료)


Batch 2: 제9화~제13화

제11화: 지옥도(地獄圖)

50층. VIP 전용 병동.

복도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경호원도, 간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공조기 소리만이 낮게 웅웅거릴 뿐이었다.

나는 501호 병실 문 앞에 섰다.

박태수가 말해준 호실. 손잡이를 잡으려다, 그냥 발로 걷어찼다.

쾅!

두꺼운 병실 문이 경첩째 뜯겨 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머니!"

대답은 없었다.

병실 안은 난장판이었다. 링거대는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고, 수액이 터져 카펫을 적시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침대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트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최소한 한 시간 전에는 이곳을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늦었어."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박태수가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최민석은 이미 한 발 앞서 움직인 것이다.

그때였다.

치지직.

벽걸이 TV가 저절로 켜졌다. 검은 화면에 노이즈가 일더니, 곧 선명한 화질로 누군가의 얼굴을 비췄다.

[여기로 와라, 진혁아.]

화면 속 최민석은 와인잔을 들고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60층 펜트하우스였다.

[60층이다.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카메라 앵글이 돌아갔다.

최민석의 등 뒤, 넓은 펜트하우스 한구석에 휠체어가 보였다.

축 늘어진 채 잠들어 있는 사람. 어머니였다.

"이 개새끼가...!"

[오, 욕은 삼가고. 어머님이 듣고 놀라시잖아.]

최민석이 휠체어 손잡이를 툭툭 쳤다.

[수면제를 좀 세게 놨어. 심장이 약하셔서, 깨어 있는 상태로 네 흉측한 꼴을 보면 충격받으실까 봐. 나름 배려한 거다?]

화면 속 최민석이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펜트하우스의 안쪽 공간이 화면에 잡혔다.

거대한 원통형 유리관들이 수십 개 도열해 있었다. 초록색 형광 용액이 가득 찬 배양조.

그 안에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들.

팔이 세 개 달린 몸뚱이, 피부가 벗겨진 채 근육만 남은 흉물,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괴물.

[익숙한 얼굴도 있을 텐데. 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려나?]

최민석이 배양조 유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다 너 같은 놈들이었지. '적합자' 판정을 받고 내게 온 귀여운 그릇들.]

"......"

[근데 다들 너무 나약하더라고. 던전의 마력을 주입하면 금방 금이 가버렸어. 버티질 못하고 펑, 펑 터져 나갔지.]

최민석의 눈이 카메라 렌즈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근데 넌 달랐어. 넌 완벽해. 공허의 틈에서 그 엄청난 흑염을 받아들이고도 아직 자아를 유지하고 있잖아.]

"개소리 집어치워."

[빨리 와. 밥 식겠다.]

뚝.

화면이 꺼졌다.

나는 벽에 걸린 TV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직!

액정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등이 찢어져 피가 났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60층.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상구로 내달렸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흑염이 혈관을 타고 끓어올랐다.

[경고: 살의가 육체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마물화 진행률: 72%]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괴물이 되면 어머니를 알아볼 수 없다.

나는 허벅지를 꼬집어 뜯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55층. 58층. 59층.

마침내 60층 펜트하우스로 통하는 육중한 강철 문 앞에 섰다.

문에는 지문 인식기와 홍채 인식기가 달려 있었다. 폭약으로도 뚫기 힘든 특수 합금.

하지만 내게는 열쇠가 필요 없다.

나는 강철 문에 양손을 짚었다.

"열려라."

치이이익!

검은 불꽃이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강철을 핥았다.

두께 20센티미터의 특수 합금이 버터처럼 녹아내렸다. 쇳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며 독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나는 녹아내린 문짝을 발로 걷어찼다.

쾅!

열기와 함께 펜트하우스 내부의 공기가 밀려왔다.

역한 피비린내. 그리고 소독약 냄새.

"왔구나."

최민석은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어머니가 탄 휠체어가 있었다.

"어머니를 놔줘."

나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카펫이 내 발밑에서 검게 타들어 갔다.

"물론이지. 네가 나한테 얌전히 먹혀주면, 어머님은 살려줄게. 약속하마."

최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방 안의 조명이 파직거리며 어두워졌다.

그의 발밑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더니, 벽을 타고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 보여줘 봐. 네가 가진 그 흑염의 맛을."

최민석이 양팔을 벌렸다.

그의 그림자에서 시커먼 촉수 수십 개가 뱀처럼 튀어나와 허공을 꿈틀거렸다.

"죽어!"

나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스킬: 흑염 폭발(D) 발동]

오른주먹에 흑염을 한계까지 끌어모았다.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의 고열.

최민석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검은 불기둥이 펜트하우스의 천장을 뚫을 기세로 폭발했다.

하지만.

타격감이 없었다.

"......!"

내 주먹은 최민석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 두 개가 내 팔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들이, 내 흑염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있었다.

치이익... 꿀꺽.

불꽃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맛있네. 꽤 매콤하고."

최민석이 입맛을 다셨다.

"내 힘은 '포식(Gluttony)'이야. 모든 에너지를 먹어 치우지. 마법도, 물리력도, 심지어 네 그 잘난 저주까지도."

그가 씩 웃었다.

"넌 그냥 밥이야. 아주 잘 차려진 밥상."

퍼억!

다른 촉수 하나가 내 복부를 강타했다.

"크윽!"

몸이 활처럼 휘며 뒤로 날아갔다.

대리석 기둥에 등을 부딪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우드득. 갈비뼈 두어 개가 나간 것 같았다.

"쿨럭!"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왜 그래? 벌써 끝이야?"

최민석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그림자 촉수들이 채찍처럼 바닥을 때리며 다가왔다.

"일어나. 아직 전채 요리도 안 끝났잖아."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시 한번 흑염을 끌어올렸다. 이번엔 양손이었다.

"타버려라!"

수십 개의 검은 불화살을 허공에 흩뿌렸다. 펜트하우스 전체를 태워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최민석의 촉수들이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불화살들을 하나하나 잡아채 입으로 삼키듯 먹어 치웠다.

"안 통한다니까. 멍청하긴."

최민석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촉수 하나가 내 발목을 휘감아 거꾸로 들어 올렸다.

"윽!"

피가 머리로 쏠렸다.

"네 힘의 근원이 뭔지 알아? 분노, 살의, 절망.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지."

최민석이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근데 내 포식은 그걸 영양분으로 써. 네가 화를 낼수록, 네가 절망할수록 나는 더 배가 부르고 강해지는 거야."

그가 내 뺨을 툭툭 쳤다.

"넌 나를 이길 수 없어. 태생부터 상성이거든."

퍼억!

촉수가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머리가 대리석에 부딪히며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이명이 들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흑염조차 최민석의 기운에 눌려 사그라들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방 안쪽의 배양조들이 보였다.

초록색 용액 속에 떠 있는 실패작들.

그들의 텅 빈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환청이 들렸다.

[아파...]

[살려줘...]

[왜 나만...]

[뜨거워. 찢어질 것 같아.]

수십, 수백 명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고통받다 죽어간 원혼들. 그들의 잔류 사념이 내 흑염과 공명하고 있었다.

[공명: 죽은 자들의 원한]

[저주 '흑염'이 새로운 연료를 발견했습니다.]

심장 깊은 곳에서,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 개인의 분노가 아니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자들의 억울함. 그들의 피눈물이 흑염의 땔감이 되었다.

"아직도 꼼지락거리네."

최민석이 내 목을 밟았다.

"이제 그만 먹혀라. 네 어미는 편안하게 보내줄 테니."

그의 그림자에서 가장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와 내 심장을 향해 꽂혔다.

그 순간.

나는 놈의 발목을 붙잡았다.

"누구 맘대로."

콰아아아아!

내 몸에서 폭발한 흑염은 이전과 달랐다.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핏빛이 감도는, 섬뜩하고도 짙은 칠흑.

수백 명의 원한이 뭉친 저주의 결정체였다.

"뭐, 뭐야 이건!"

최민석이 기겁하며 발을 빼려 했다.

하지만 핏빛 흑염은 그의 발목을 타고 순식간에 그림자 촉수로 옮겨붙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최민석이 비명을 질렀다.

먹어 치우지 못했다. 오히려 포식의 촉수 자체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워! 떨어져! 이 개새끼야!"

최민석이 미친 듯이 다리를 털었다.

촉수들이 불길을 끄려고 바닥을 뒹굴었지만, 핏빛 흑염은 꺼지지 않고 놈의 본체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래? 맛있게 먹으라며."

나는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배 터질 때까지 먹여줄게."

"이...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최민석의 몸이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쩌저적. 찌익.

고급 맞춤 정장이 찢어지고, 인간의 가죽이 벗겨졌다.

그의 등 뒤에서 솟아오르던 그림자가 아예 그의 육체를 집어삼켰다.

"키에에에엑!"

사람의 비명이 아니었다.

금속을 긁는 듯한 기괴한 괴성.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최민석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키가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피부는 시커먼 점액질로 덮여 있었고, 흉측하게 벌어진 입에는 상어 같은 이빨이 겹겹이 돋아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얼굴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속에서 세 개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저게 바로 오로라 길드장의 진짜 얼굴.

인간의 존엄을 팔아치우고 얻은 악마의 형상이었다.

"드디어 가면을 벗었네."

나는 주먹에 다시 핏빛 흑염을 휘감았다.

[시스템 경고: 생명력이 10% 미만입니다.]

[마물화 진행률: 85%]

[육체 붕괴가 임박했습니다.]

붉은색 경고창이 눈앞을 가렸다.

시간이 없다.

한 번, 길어야 두 번의 공격.

그 안에 저 괴물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먼저 재가 되어 사라진다.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휠체어를 슬쩍 곁눈질했다.

다행히 흑염의 열기에도 깨지 않으셨다. 차라리 다행이다. 아들의 이 흉측한 모습을 보지 않으실 테니까.

"끝내자, 최민석."

나는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대리석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파편이 튀었다.

"키에에엑!"

괴물로 변한 최민석도 거대한 앞발을 치켜들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펜트하우스의 넓은 공간이 두 마리 괴물의 격돌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옥도가 펼쳐졌다.


Batch 2: 제12화~제13화

제12화: 거짓된 구원

"키에에에에엑!"

최민석의 흉측한 아가리에서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의 성대에서 날 수 없는 소리. 쇳덩이를 갈아내는 듯한 마찰음이 고막을 찢었다.

놈의 거대한 앞발이 나를 덮쳤다.

나는 피하지 않고 핏빛 흑염을 두른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두 힘이 충돌하자 펜트하우스 내부의 공기가 폭발하듯 팽창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방탄유리창이 모조리 박살 나며 거센 밤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배양조들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초록색 용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지끈!

우리가 서 있던 60층 대리석 바닥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크윽!"

바닥이 꺼지며 우리는 얽힌 채로 아래층을 향해 추락했다.

59층. 58층. 57층.

콘크리트 층간 구조물을 연달아 박살 내며 끝없이 떨어졌다. 철근이 몸을 긁고, 시멘트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입에서 핏덩이가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놈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타라... 타버려라!"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흑염이 놈의 점액질 피부를 지졌다.

"꺼져! 떨어지라고!"

최민석이 발버둥 쳤다. 놈의 등 뒤에서 솟아난 수십 개의 촉수가 채찍처럼 내 등과 어깨를 난타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고통은 사치였다.

쾅!

마침내 55층 대회의실 바닥에 처박혔다.

먼지구름이 일었다. 고급스러운 마호가니 원목 테이블이 산산조각 났고,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터져 물을 뿜어냈다.

"하아, 하아..."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시야가 온통 붉었다. 피 때문인지, 아니면 흑염의 폭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물화 진행률: 92%]

[육체 붕괴가 임박했습니다.]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시간이 없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먼지 속에서 최민석이 일어났다.

놈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핏빛 흑염에 타들어 간 왼쪽 어깨는 뼈가 드러나 있었고, 세 개의 눈 중 하나는 화상으로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놈은 포식자였다.

"먹어주마.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최민석의 가슴팍이 쩍 갈라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이빨이 겹겹이 돋아난 끔찍한 아가리.

놈이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쇄도했다.

피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남은 모든 마력을 오른팔에 집중했다.

푸욱!

"......!"

내 주먹이 놈에게 닿기 전.

최민석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가 내 복부를 관통했다.

등 뒤로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는 촉수의 끝부분이 튀어나왔다.

"커헉..."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웬만한 S급 헌터라도 즉사했을 치명상.

"하하하! 끝났다!"

최민석이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네놈의 그 알량한 원한도, 저주도, 결국 내 뱃속에서 소화될 뿐이야!"

놈이 촉수를 당겨 나를 자신의 거대한 아가리 쪽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저주 '흑염'이 파괴된 장기를 강제로 접합합니다.]

내 복부를 뚫고 들어온 촉수 위로, 검은 불꽃이 거미줄처럼 엉겨 붙었다. 흑염이 내 피와 살을 연료 삼아 놈의 촉수를 역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

최민석의 세 눈깔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왜 안 끌려와! 왜 안 죽어!"

놈이 촉수를 빼내려 했지만, 흑염이 용접기처럼 촉수와 내 몸을 단단히 이어 붙인 뒤였다.

"너... 너 뭐야!"

공포.

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진짜 공포가 서렸다.

자신보다 약한 자만 잡아먹어 온 포식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내장을 내어준 미친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내 배를 뚫은 촉수를 밧줄 삼아, 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끌려가는 게 아니었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었다.

"내 퇴직금."

나는 놈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받아야지."

나는 남은 왼손을 들어 놈의 눈알 하나를 푹 찔러 터트렸다.

"키에에에엑!"

최민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흑염을 한계까지 압축시킨 오른손을, 놈의 쩍 갈라진 가슴팍, 그 흉측한 아가리 속으로 깊숙이 처박았다.

물컹한 내장과 단단한 뼈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놈의 심장. 마력의 코어를 움켜쥐었다.

"잡았다."

[스킬: 흑염 폭주(S) 발동]

[대상을 내부에서부터 소각합니다.]

내 모든 마력을, 깎여나간 수명을, 그리고 수백 명의 원한을 그곳에 쏟아부었다.

화르르르륵!

최민석의 몸 안에서 거대한 핏빛 불길이 폭발했다.

"안 돼! 나는... 나는 왕이 될...!"

놈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피부 밑으로 붉은 불빛이 뚫고 나오며 놈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퍼아아아앙!

최민석의 거대한 육체가 검은 재가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정적.

스프링클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무너진 55층 대회의실을 채웠다.

"하아..."

나는 놈의 잔해였던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이겼다.

복수는 끝났다.

김철수, 이수진, 그리고 최민석.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놈들을 모두 내 손으로 처단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물화 진행률: 99%]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머릿속에서 이명 소리가 커졌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결국 나는 괴물이 되어 협회 토벌대에게 사냥당할 운명인가.

어머니는 누가 돌보지.

그때였다.

스프링클러 물줄기에 씻겨 내려간 잿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유리병.

최민석이 괴물로 변하기 직전까지 품속에 지니고 있었던, 단 하나의 '완성된 억제제'.

기적적으로 깨지지 않았다.

나는 기어갔다. 내장이 쏟아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

유리병을 쥐었다.

뚜껑을 딸 힘조차 없었다. 나는 병 목을 그대로 입에 넣고 깨물어 부수었다.

유리 조각이 입술을 찢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푸른 액체를 단숨에 삼켰다.

꿀꺽.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심장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갑게 식었다.

[경고: 강력한 마력 억제제가 투여되었습니다.]

[저주 '흑염'이 강제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마물화 진행이 멈춥니다.]

"후우..."

숨이 쉬어졌다.

일그러졌던 피부가, 터질 듯 부풀었던 핏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검게 물들었던 시야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살았다.

나는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유리창이 깨진 허공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의 아침.

어젯밤의 지옥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평화롭고 눈부신 햇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다.

[효과 지속 시간: 23시간 59분]

[매일 복용하지 않으면 흑염이 다시 깨어납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구원 따위는 없었다.

나는 이제 약에 의존해야만 하루하루 인간의 탈을 쓸 수 있는, 시한부 마약 중독자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약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오로라 길드 연구소뿐이지."

최민석은 죽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남아 있다. 그 연구소를 묵인한 협회도, 정부의 썩은 윗선들도 그대로다.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뚜벅. 뚜벅.

구두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벽 사이로 회색 코트를 입은 박태수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협회 요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박태수는 잿더미가 된 현장과,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내 몰골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들고 있던 마력탄 권총을 천천히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끝났나?"

"......어."

"최민석은?"

나는 바닥에 수북이 쌓인 검은 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박태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는 뒤에 선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시신 수습하고, 현장 통제해. 외부인 출입 철저히 막아라."

"팀장님, 저 자는요? 체포해야..."

신입 조사관이 나를 가리키며 당황한 듯 물었다.

박태수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저 자는 피해자다. 오로라 길드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우리가 진입하면서 구조된 걸로 처리한다."

"네? 하지만 저 자가 강진혁..."

"내 말 못 들었어? 시키는 대로 해!"

박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요원들이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박태수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가라. 어머니 모시고."

"......왜?"

"네가 더러운 청소를 다 했으니까. 일당은 줘야지."

박태수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검은색 카드키. 오로라 길드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최민석의 개인 금고에서 압수한 거다. 연구소 VVIP 출입증이더군."

박태수가 담배를 꺼내 물며 작게 속삭였다.

"거기 가면 약이 더 있을 거야.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

"하지만 기억해라. 다음엔 안 봐준다. 민간인 피해가 나오거나 선을 넘으면, 그때는 내 손으로 널 죽인다."

나는 카드키를 꽉 쥐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박태수와 요원들을 지나쳐, 무너진 계단을 향해 걸었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60층 펜트하우스 구석.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은 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계셨다.

"어머니."

나는 피 묻은 손을 옷에 닦아내고,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등에 업었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가슴이 시렸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따뜻했다.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

나는 어머니를 업고, 길고 긴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20자
  • 장면 수: 3개 (최민석과의 추락 전투 -> 최민석 처단 및 억제제 복용 -> 박태수와의 대화 및 탈출)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사망), 박태수, 신입 조사관, 어머니
  • 메인 플롯 비트: 최종 보스 최민석 처단. 복수 완료.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억제제 획득. 24시간 시한부 인생 확정.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진혁을 피해자로 위장시켜 방조함. 조력자 포지션 확립.
  • 공개된 정보: 억제제의 한계 (24시간).
  • 심은 복선: 박태수가 건넨 연구소 VVIP 카드키.
  • 회수한 복선: 마물화 진행률 99% 도달 위기.
  • 클리프행어: [유형 2] 폭로/반전 (허무함) - 승리했지만 시한부 인생은 계속됨.
  • 템포: 고속 → 저속

제13화: 출근하는 괴물

일주일 후.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깔끔하게 다려진 네이비색 정장. 단정하게 맨 푸른색 넥타이.

왼쪽 뺨을 덮고 있던 흉측한 화상 자국은 옅어졌다. 억제제 덕분에 흑염이 동면에 들어가자, 육체의 변이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이다.

컨실러를 톡톡 두드려 바르자, 흉터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진혁아, 밥 먹어라."

주방에서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가요."

식탁에는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노릇하게 구워진 계란말이가 차려져 있었다.

평범한 아침 밥상.

어머니는 오로라 길드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몰라보게 건강을 회복하셨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달그락.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약효 지속 시간: 3시간 20분]

시야 구석에 반투명하게 떠 있는 붉은 타이머. 초침이 줄어들 때마다 혈관 깊은 곳에서 흑염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알약 통을 꺼냈다.

최민석의 펜트하우스에서 챙긴 액상 억제제를, 내가 임의로 고체화시켜 캡슐에 담은 것이다.

"어디 아프니? 손을 떠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셨다.

"아뇨. 그냥... 비타민이에요. 피로회복제."

알약을 입에 넣고 물로 삼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약기운이 심장에 닿자, 미세한 떨림이 멎었다. 타이머가 다시 24시간으로 리셋되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내가 일주일 전 무슨 짓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괴물과 싸웠는지.

그저 내가 헌터 일을 그만두고, 운 좋게 평범한 무역 회사에 취직한 줄로만 아신다.

"찌개 식겠다. 어서 먹어. 첫 출근인데 든든하게 가야지."

"네. 잘 먹겠습니다."

된장찌개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거짓된 평화.

하지만 나는 이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상사한테 깍듯이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눈 부셨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만원 지하철. 누군가의 백팩에 눌리고, 땀 냄새와 싸구려 향수 냄새가 뒤섞인 공기. 피로에 찌든 직장인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피와 살이 튀는 지옥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옥철에 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평범하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얇은 살얼음판 위인지. 약을 하루라도 거르면, 나는 다시 걸어 다니는 재앙이 되어 이 사람들을 찢어발길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포털 사이트 메인 뉴스를 확인했다.

[오로라 길드, 신임 길드장 선출... "전임 길드장의 일탈, 뼈를 깎는 쇄신할 것"]

[헌터 협회, 불법 생체 실험 수사 조기 종결. "꼬리 자르기 논란"]

[정부, 헌터 규제 완화 법안 통과]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최민석이라는 거대한 악을 죽였지만, 그건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오로라 길드는 발 빠르게 꼬리를 잘랐다. 협회는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덮었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길드의 돈을 먹으며 법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소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내 생명줄인 억제제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강진혁을, 또 다른 괴물들을 찍어내고 있겠지.

띠링.

문자가 왔다. 발신자 표시 제한.

[카드키 유효기간, 오늘 자정까지야.]

박태수였다.

[오늘 밤. 연구소 지하 3층. '물건' 들어온다.]

나는 덤덤하게 문자를 삭제했다.

지하철이 한강 철교를 지나며 눈부신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쳤다.

단정한 넥타이를 맨 평범한 회사원의 얼굴.

하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억제제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칠흑 같은 흑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었다.

"야근이 좀 길어지겠군."

진짜 사장 놈들을 잡을 때까지.

내 퇴직금 정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Part 1 완결]

[Part 2: 그림자 정부 편에서 계속됩니다.]


1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150자
  • 장면 수: 3개 (집에서의 아침 식사 -> 출근길 지하철 -> Part 2 예고)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어머니, 박태수(문자)
  • 메인 플롯 비트: 일상으로의 복귀(위장).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처단자로서의 이중생활 시작.
  • 서브플롯 진행: 모든 서브플롯이 Part 2를 위한 셋업으로 전환됨.
  • 공개된 정보: 최민석 사건은 은폐되었고, 거대한 흑막(정부/협회)은 건재함.
  • 심은 복선: '오늘 밤 물건 들어온다'는 박태수의 정보 (Part 2 첫 에피소드 떡밥).
  • 회수한 복선: 12화에서 받은 VVIP 카드키의 사용 기한.
  • 클리프행어: [유형 6] 선택의 기로 (새로운 시작)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싸움을 준비함.
  • 템포: 저속 → 중속 (기대감 고조)

Batch 2 완료 요약

진행 상황 트래커 업데이트

  • 메인 플롯 진행률: 13/13 (Part 1 완결). Part 2(장편)를 위한 도입부 완성.
  • 활성 서브플롯:
    • A (치료제): 억제제 의존 상태 지속. 연구소 파괴 및 완전한 치료제 원천 기술 확보가 Part 2의 목표.
    • C (추적자): 박태수와의 공조 관계(비공식) 확립. 빛과 그림자의 역할 분담.
  • 미공개 정보: 흑염의 기원(던전의 진짜 주인), 정부와 오로라 길드의 커넥션 실체.
  • 활성 복선: 박태수가 준 카드키, 연구소 지하 3층의 '물건'.
  • 회수 완료 복선: 최민석의 정체, 어머니 구출, 억제제의 한계.

일관성 검증

  • 캐릭터: 강진혁이 복수를 마쳤음에도 허무함과 현실적 제약(약물 의존)을 안고 가는 모습이 느와르 장르에 완벽히 부합함.
  • : 해피엔딩이 아닌 '유예된 엔딩'으로 마무리하여, 장편 연재를 위한 긴장감과 독자의 결제 기대감을 유지함.

작가의 말

13화라는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을 담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Part 1은 강진혁이라는 캐릭터의 탄생기(Origin Story)였습니다.
이제 Part 2에서는 그가 이 썩어빠진 세상과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획하신 <저주받은 각성: 흑염>의 Part 1 (제1~13화, 프롤로그 아크) 집필이 모두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타겟 독자층(3050 남성, 시니어)의 니즈에 맞춘 '느와르적 복수', '확실한 사이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갈망'이 13화라는 압축된 분량 안에 밀도 있게 담겼습니다. 특히 프로 작가 작법(비가 법칙, 한산이가 법칙, 온도차 문체)을 철저히 적용하여, 모바일 환경에서의 가독성과 상업적 후킹 포인트를 극대화했습니다.

이제 Part 1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장기 연재(Part 2)로 넘어가기 위한 다음 단계를 제안해 드립니다.


📊 Part 1 프로젝트 완료 종합 리뷰

1. 상업성 및 장르 공식 검증

  • 유료 전환 포인트 (3화): '복수'라는 1차원적 목표에서 '치료제 획득(인간으로의 귀환)'이라는 장기 퀘스트로 전환하며 독자의 결제 명분을 확실히 구축했습니다.
  • 사이다 리듬 (고구마 제어): 적(김철수, 이수진, 최민석)이 도발하거나 위기를 만들 때, 주인공이 망설임 없이 압도적인 폭력으로 처단하여 시니어 독자층이 가장 싫어하는 '고구마(답답함)'를 원천 차단했습니다.
  • 엔딩의 여운 (13화): 복수를 완료했음에도 '24시간 시한부'라는 페널티를 남겨, 독자들이 다음 시즌(Part 2)을 기대하고 결제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2. 캐릭터 및 세계관 안착

  • 강진혁 (주인공): 감정 과잉 없이 건조하고 냉소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어머니와 무고한 시민을 향한 '최소한의 인간성'을 남겨두어 입체적인 안티히어로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 박태수 (조력자/라이벌): 주인공을 일방적으로 돕는 평면적 조연이 아니라, '법과 정의'라는 자신의 아젠다를 가지고 움직이는 매력적인 라이벌 포지션을 구축했습니다.
  • 흑염 (능력): 단순한 불꽃이 아니라 '불행을 전염시키는 저주'라는 패널티를 부여해, 매 전투마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훌륭한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 Part 2: [그림자 정부 편] 연재 확장 제안

13화 엔딩에서 던진 떡밥(박태수의 문자: 연구소 지하 3층 '물건')을 바탕으로, Part 2의 초반부(Batch 3) 플롯 방향성을 제안합니다.

[Batch 3: 제14화 ~ 제18화] 기획안 (가칭: 연구소 잠입 아크)

  • 목표: 주인공의 억제제 수급처 확보 및 '물건(새로운 실험체 또는 흑막의 증거)' 탈취.
  • 새로운 갈등: 최민석의 죽음 이후, 오로라 길드를 장악한 **'신임 길드장(정부 측 낙하산 인사)'**의 등장. 그는 최민석보다 훨씬 교활하고 정치적인 인물로 설정.
  • 주인공의 이중생활: 낮에는 평범한 무역 회사(사실은 박태수가 위장 취업시킨 협회 측 유령 회사)의 직장인, 밤에는 억제제 시간을 계산하며 연구소를 터는 '처단자'의 삶이 교차 전개됨. (일상의 건조함 ↔ 전투의 처절함 대비 극대화)

🛠️ 다음 작업 선택 가이드

작가님, 다음으로 진행하실 작업을 아래 옵션 중에서 선택해 주시거나 자유롭게 지시해 주세요.

  1. Part 2 집필 시작 (Batch 3): 제14화~18화의 상세 플롯을 짜고 바로 연재를 이어갑니다.
  2. Part 1 윤문 및 퇴고: 완성된 1~13화를 바탕으로 오탈자, 설정 충돌 점검, 시점 및 문장 리듬을 최종 다듬는 폴리싱 작업을 진행합니다.
  3. 설정집 추출 (Bible 생성): 1~13화까지 등장한 설정(흑염, 포식, 블루 블러드, 오로라 길드 등)과 캐릭터 정보를 문서화하여 장기 연재를 위한 '설정 바이블'을 구축합니다.
  4. 연재 플랫폼 투고용 소개글 작성: 문피아/시리즈 등에 런칭하기 위한 작품 소개글(시놉시스, 후킹 멘트, 태그)을 작성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파트별 산출물

ep10 (8,073 tokens)

Batch 2: 제9화~제13화 (완결)

제9화: 선전포고

차가운 빗줄기가 하수구 출구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다리 밑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썩은 물이 흐르는 개천가. 쥐들조차 냄새가 독해 피해가는 곳이었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어깨에 박힌 총알을 파냈다.

마취제는 없었다. 편의점에서 훔친 소주를 상처에 들이붓고, 달궈진 단검으로 살을 찢어 탄두를 꺼냈다.

땡그랑.

피 묻은 납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저주 '흑염'이 손상된 조직을 강제로 접합합니다.]

[고통 수치: 최상]

검은 불꽃이 실처럼 엉겨 붙어 상처를 꿰맸다. 살이 타는 냄새와 재생되는 역겨운 감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아... 하아..."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하늘은 온통 회색이었다. 내 인생처럼.

[남은 시간: 25일 08시간]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내 몸이 버틸지 모르겠다.

박태수의 총격, 헌터들의 추격, 그리고 흑염의 잠식.

지금 내 상태는 폭발 직전의 불발탄 같다. 건드리면 터진다.

그때, 주머니 속 대포폰이 진동했다.

최민석이었다.

나는 젖은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용건만 말해."

[목소리가 거치네. 많이 아픈가 봐?]

최민석의 목소리는 여유가 넘쳤다.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들렸다.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지금 뉴스 틀어봐.]

"뉴스 볼 기분이 아니다."

[안 보면 후회할 텐데. 네 어머니가 나오시거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전광판이 보이는 곳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상가 건물 외벽의 대형 스크린.

[속보] 오로라 길드, 테러 용의자 강진혁의 모친 '보호' 조치.

화면에는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링거를 꽂은 팔.

그리고 그 뒤에 서서 어깨를 감싸 쥐고 있는 최민석.

"어머니..."

최민석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강진혁 씨가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부디 자수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님은 저희 길드 병원에서 최고 수준의 '보호'를 받고 계십니다."

보호? 인질이다.

최민석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치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하지만 어머님의 병세가 위중하셔서...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입모양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와서 죽어.'

뚝.

방송이 끊기고 광고가 나왔다.

나는 멍하니 빗속에 서 있었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혔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콰아앙!

내 발밑의 아스팔트가 검게 폭발했다.

주차되어 있던 차들의 경보기가 일제히 울렸다. 가로등이 팡팡 터져 나갔다.

[살의가 임계점을 초과합니다.]

[저주 '흑염'이 폭주 모드에 진입합니다.]

[주변의 모든 행운을 소각합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나는 대포폰을 귀에 댔다.

"최민석."

[보고 있었구나.]

"기다려."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차가워진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숨바꼭질은 끝났다."

나는 품 안의 약병을 꺼냈다.

남은 절반의 억제제.

이걸 마시면 흑염을 누를 수 있다. 인간으로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쨍그랑!

나는 약병을 바닥에 던져 깨트렸다.

푸른 액체가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미쳤군. 약을 버려?]

"약은 필요 없어."

내 눈동자가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흰자위는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았다.

"오늘 밤, 내가 네 약이 될 테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빗속을 걸었다.

목적지는 강남. 오로라 길드 본사.

더 이상 숨지 않는다. 피하지 않는다.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간판이 떨어지고, 신호등이 오작동하고, 맨홀이 역류했다.

도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재앙이 걸어가고 있었다.


9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9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다리 밑 은신처 -> 거리 전광판 앞 -> 빗속의 행군)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뉴스/통화), 어머니(뉴스 화면)
  • 메인 플롯 비트: 최민석의 인질극(어머니), 강진혁의 억제제 폐기 및 전면전 선포.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억제제를 스스로 깨트리며 '인간으로의 회귀'보다 '복수와 파멸'을 선택함. (일시적 포기)
    • Sub B (저주): 억제제가 사라지자 불행의 반경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확장됨.
  • 공개된 정보: 오로라 길드 병원의 위치(본사 내 부속 병원).
  • 심은 복선: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최민석의 말 (타임 리밋 설정).
  • 클리프행어: [유형 6] 선택의 기로 + [유형 5] 분노 폭발 - 약을 깨트리고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며 적진으로 향함.
  • 템포: 고속

제10화: 지옥의 문을 열다

오로라 길드 본사 '오로라 타워'.

지상 60층, 대한민국 헌터 산업의 상징이자 난공불락의 요새.

로비에는 수십 명의 경비 헌터와 자동 방어 터렛이 배치되어 있었다.

"경계 강화해! 놈이 올지도 모른다!"

보안 팀장이 소리쳤다.

그때, 회전문이 천천히 돌아갔다.

끼이익...

비에 젖은 검은 정장의 남자가 들어왔다.

물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로비의 적막을 깼다.

"강진혁이다!"

"사격 개시!"

다다다당!

방어 터렛에서 마력탄이 쏟아졌다. 경비 헌터들이 일제히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나는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저주 '불행'이 광역으로 확산됩니다.]

피슉. 피슉.

터렛의 총구가 엉뚱한 곳으로 돌아갔다.

"어? 야! 기계가 왜 이래!"

터렛이 아군인 경비원들을 향해 난사되기 시작했다.

"으악! 끄아악!"

마법사들의 지팡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마, 마력 역류다! 영창이 꼬였어!"

펑! 퍼벙!

스스로의 마법에 휘말린 헌터들이 나뒹굴었다.

나는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총알이 나를 피해 갔다. 파이어볼이 내 머리 위 전등을 맞췄다.

와장창!

거대한 샹들리에가 보안 팀장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 으아..."

깔린 팀장이 신음했다.

나는 그의 앞을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작동하지 않았다.

"아, 맞다."

내가 오면 기계가 고장 나지.

나는 비상구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예 헌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A급 헌터들로 구성된 '오로라 별동대'.

"여기까지다, 강진혁."

별동대장이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우린 기계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순수한 무력으로 널..."

우지끈.

대장이 밟고 있던 대리석 바닥이 꺼졌다.

"어?"

지하 주차장 천장이 부실 공사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하필 지금. 하필 그가 서 있는 곳만.

"대장님!"

대장이 구멍으로 사라졌다.

남은 대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 새끼 뭐야..."

"재수 옴 붙는다! 가까이 가지 마!"

그들은 무기를 들고도 뒷걸음질 쳤다. 공포.

가장 원초적인 공포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켜."

내 목소리는 작았지만, 로비 전체에 울렸다.

"죽기 싫으면."

홍해 갈라지듯 길이 열렸다.

A급 헌터들이, 몬스터를 때려잡던 영웅들이, F급 짐꾼 하나가 무서워 길을 터주고 있었다.

나는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다.

1층, 2층, 3층...

60층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한계였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심장이 타는 듯이 아팠다. 억제제 없이 흑염을 쓴 대가였다.

[경고: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됩니다.]

[심장 박동 수: 180... 190...]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들이 갑니다.


같은 시각, 오로라 타워 상황실.

최민석은 모니터를 통해 로비의 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하하! 대단해! 정말 대단해!"

그는 박수를 쳤다.

"저게 바로 내가 원하던 힘이야. 운명을 비틀고, 인과율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재앙!"

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그림자 괴물이 그의 등 뒤에서 혀를 낼름거렸다.

[맛있겠다... 저 절망... 저 분노...]

"길드장님! 1층이 뚫렸습니다! 별동대도 무력화됐습니다!"

부관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어머님을... 인질로 쓸까요?"

최민석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멍청한 놈."

퍼억!

최민석의 손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촉수가 부관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헉..."

"인질은 여기까지 오게 만드는 미끼였을 뿐이야.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필요 없어."

최민석은 부관의 시체를 바닥에 던졌다.

"문을 열어둬라."

"네? 하, 하지만..."

"놈을 펜트하우스로 안내해. 내 식사 시간이니까."

최민석은 와인을 들이켰다.

"어서 와라, 진혁아. 내가 너를 완성시켜 줄게."


20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계단에는 쓰러진 헌터들이 즐비했다.

나를 막으려던 놈들은 모두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계단에서 구르거나, 무기가 폭발하거나, 심장마비가 오거나.

나는 시체 산을 밟고 올라갔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위쪽 계단참에서 누군가 걸어 내려왔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

박태수였다.

그는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

나는 멈춰 섰다.

"비켜. 당신이랑 싸울 시간 없어."

"알아."

박태수가 서류를 흔들었다.

"압수수색 영장이다. 10분 전에 발부됐지."

"......뭐?"

"최민석의 불법 실험, 횡령, 그리고 살인 교사 혐의."

박태수가 내게 길을 비켜주며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법대로 한다. 지금부터 이 건물은 범죄 현장이고, 최민석은 현행범이야."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경찰이 도착하려면 30분은 걸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30분.

그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눈감아주겠다는 뜻이다.

"왜...?"

"네가 말했지. 법이 썩었다고."

박태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가끔은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칼잡이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야."

그는 라이터를 켰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내 불행 때문이었다.

박태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구겨버렸다.

"가라. 네 어머니는 50층 병동에 있다. 내 부하들이 그쪽으로 이동 중이야."

"......고맙다."

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박태수의 등 뒤로 내 흑염의 잔재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는 적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장애물은 없다.

오직 최민석, 그 새끼뿐이다.


10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오로라 타워 로비 돌파 -> 펜트하우스 상황실 -> 비상구 계단 박태수와의 조우)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 박태수, 오로라 길드원들
  • 메인 플롯 비트: 길드 본사 침입, 박태수의 방조(협력), 최민석과의 최종전 임박.
  • 서브플롯 진행:
    • Sub B (저주): '불행'이 아군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피해가는 모습(박태수 라이터 불발 정도)을 통해 진혁이 무의식적으로 저주를 통제하기 시작함을 암시.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체포 대신 '방조'를 선택하며 서브플롯 완결 및 조력자 포지션 확정.
  • 공개된 정보: 최민석의 능력(그림자 촉수/포식).
  • 심은 복선: "내 식사 시간"이라는 최민석의 대사 (그가 진혁을 먹으려 함).
  • 클리프행어: [유형 1] 미해결 갈등 - 박태수의 묵인 하에 최상층으로 향하는 진혁.
  • 템포: 고속

제11화: 지옥도(地獄圖)

50층 병동.

"어머니!"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텅 비어 있었다.

링거대는 쓰러져 있고, 침대 시트는 차가웠다.

"늦었어..."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때, 병실 TV가 저절로 켜졌다.

[여기로 와라, 진혁아. 60층이다.]

화면 속 최민석이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카메라가 돌아가며 펜트하우스 내부를 비췄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배양조가 늘어서 있었다. 배양조 안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괴물들이 떠 있었다.

실패한 실험체들.

나처럼 납치되어 강제로 적합 수술을 받은 피해자들.

"으아아아!"

나는 TV를 주먹으로 부셨다.

60층.

나는 비상구를 박차고 나갔다.


60층 펜트하우스.

육중한 강철 문이 흑염에 녹아내렸다.

내가 발을 들여놓자마자, 역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왔구나."

최민석은 거대한 옥좌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어머니가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어머니를 놔줘."

"물론이지. 네가 나한테 먹히면, 어머니는 살려줄게. 약속하마."

최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 보여줘 봐. 네가 가진 그 흑염의 맛을."

쿠구구궁!

최민석의 그림자에서 수백 개의 검은 촉수가 튀어나왔다.

"죽어!"

나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스킬: 흑염 폭발(D) 발동]

내 주먹에서 검은 불기둥이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최민석은 피하지 않았다.

촉수들이 내 불꽃을 감쌌다.

치이익... 꿀꺽.

"......!"

불꽃이 사라졌다. 아니, 먹혔다.

"맛있네. 매콤하고."

최민석이 입맛을 다셨다.

"내 힘은 '포식(Gluttony)'이야. 모든 에너지를 먹어 치우지. 마법도, 저주도, 심지어 불행까지도."

그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촉수 하나가 내 발목을 휘감았다.

"크윽!"

내동댕이쳐졌다. 대리석 바닥이 부서지며 내 몸이 굴렀다.

"안 통한다니까."

최민석이 천천히 걸어왔다.

"넌 그냥 밥이야. 잘 차려진 밥상."

나는 비틀거하며 일어났다.

흑염이 안 통한다. 불행도 안 통한다.

놈은 내 상성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배양조 안에 있는 괴물들이 보였다.

실패작들. 고통 속에 죽어간 원혼들.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와줘...'

'죽여줘...'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흑염이 그들의 원한에 반응하고 있었다.

[공명: 죽은 자들의 원한]

[저주 '흑염'이 새로운 연료를 발견했습니다.]

내 가슴 속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내 생명력만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 가득 찬 죽음의 기운이 나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었다.

"최민석!"

나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이번엔 붉은빛이 감도는 칠흑의 불꽃이었다.

"먹을 수 있으면 먹어봐라. 배가 터져 죽을 테니까!"

콰아아아!

내가 쏘아 보낸 불꽃이 펜트하우스를 집어삼킬 기세로 덮쳤다.

최민석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이... 이건 너무 많아!"

그가 촉수로 방어막을 쳤지만, 흑염은 촉수를 태우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끄아아악!"

최민석의 왼팔에 불이 붙었다.

"이 자식이!"

최민석의 몸이 기괴하게 부풀어 올랐다.

쩌저적.

그의 양복이 찢어지고, 피부가 벗겨졌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시커먼 점액질로 뒤덮인, 눈이 세 개 달린 괴물이었다.

"본모습을 드러냈구나."

나는 피를 토하며 웃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 괴물 대 괴물로."

[시스템 경고: 생명력이 10% 미만입니다.]

[마물화 진행률: 85%]

시간이 없다.

나는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태웠다.

오늘 여기서, 우리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아니,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죄송해요.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나는 괴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1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8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50층 병동 -> 60층 펜트하우스 대치 -> 1차 공방 및 각성)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괴물화), 어머니(기절)
  • 메인 플롯 비트: 최민석의 능력(포식)에 고전하지만, 희생자들의 원한과 공명하여 흑염을 강화함.
  • 서브플롯 진행: 없음 (오직 메인 플롯에 집중)
  • 공개된 정보: 최민석의 '포식' 능력은 에너지를 흡수하지만, 허용량을 넘으면 데미지를 입음.
  • 심은 복선: '마물화 진행률 85%' (전투 후 인간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임).
  • 클리프행어: [유형 3] 역전 - 최민석이 괴물 본체를 드러내고 2차전 돌입.
  • 템포: 고속 (전투 중심)

제12화: 거짓된 구원

"키에에에에엑!"

괴물이 된 최민석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쇳소리와 짐승의 울음이 섞인 소음.

그의 거대한 손이 나를 덮쳤다.

쾅!

바닥이 꺼지며 우리는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59층. 58층.

콘크리트 벽을 뚫고 계속 떨어졌다.

"크헉..."

내 갈비뼈가 부러졌다. 내장이 파열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놈의 목덜미를 놓지 않았다.

"타라... 타버려라..."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흑염이 놈의 점액질 피부를 지졌다.

"꺼져! 떨어져!"

최민석이 촉수로 내 몸을 관통했다.

푸욱!

복부에 구멍이 뚫렸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했을 상처.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흑염이 상처 부위를 강제로 메우며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었다.

좀비처럼.

"너... 너 뭐야! 왜 안 죽어!"

최민석이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놈은 '포식자'였지만, 동시에 겁쟁이였다.

자신보다 약한 자만 잡아먹어 온 놈은,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미친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내 퇴직금... 받아야지."

나는 놈의 눈알 하나를 손가락으로 찔러 터트렸다.

"키에엑!"

놈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나는 놈의 가슴팍에 손을 박어넣었다.

심장.

마력의 코어.

"잡았다."

[스킬: 흑염 폭주(S) 발동]

[대상을 내부에서부터 소각합니다.]

내 모든 마력을, 내 모든 생명을 쏟아부었다.

화르륵!

최민석의 몸 안에서 검은 불길이 폭발했다.

"안 돼! 나는... 나는 왕이 될..."

놈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퍼앙!

검은 재가 되어 터져 나갔다.

정적.

무너진 55층 회의실.

나는 재가 되어버린 최민석의 잔해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이겼다.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물화 진행률: 99%]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의식이 희미해졌다.

이대로 괴물이 되는 건가.

아니면 죽는 건가.

그때, 잿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유리병이었다.

최민석의 몸속에 품고 있던, 단 하나의 '완성된 억제제'.

기적적으로 깨지지 않았다.

나는 기어서 그것을 집었다.

뚜껑을 딸 힘도 없어서, 병 목을 깨물어 부셨다.

유리 조각과 함께 액체를 삼켰다.

꿀꺽.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불타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경고: 강력한 마력 억제제가 투여되었습니다.]

[흑염이 강제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마물화 진행이 멈춥니다.]

"하아..."

숨이 쉬어졌다.

일그러졌던 피부가, 튀어나왔던 핏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살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유리창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의 아침.

어젯밤의 지옥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운 햇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다.

[효과 지속 시간: 24시간]

[매일 복용하지 않으면 흑염이 다시 깨어납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유는 없다.

나는 이제 약에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마약 중독자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약을 만들 수 있는 건...

"오로라 길드 연구소뿐이지."

최민석은 죽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남아 있다. 협회도 남아 있다.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벽 사이로 박태수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협회 요원들이 있었다.

박태수는 내 몰골을 보더니, 총을 거뒀다.

"끝났나?"

"......어."

"최민석은?"

나는 바닥의 재를 가리켰다.

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는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시신 수습하고, 현장 통제해."

"팀장님, 저 자는요? 체포해야..."

"저 자는 피해자다. 인질로 잡혀 있다가 구조된 걸로 처리한다."

"네?"

"내 말 못 들었어? 시키는 대로 해!"

박태수가 소리쳤다. 요원들이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박태수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가라. 어머니 모시고."

"......왜?"

"네가 청소를 다 했으니까. 일당은 줘야지."

박태수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연구소 출입 카드키였다. 최민석의 금고에서 압수한 것 같았다.

"거기 가면 약이 더 있을 거야.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

"하지만 기억해라. 다음엔 안 봐준다. 민간인 피해가 나오면, 그때는 내가 널 죽인다."

나는 카드키를 꽉 쥐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50층에서 어머니를 업고, 비상구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에 업힌 어머니의 온기가 따뜻했다.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


1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8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최민석과의 공중전 -> 최민석 처치 및 억제제 복용 -> 박태수와의 후일담)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사망), 박태수, 협회 요원들
  • 메인 플롯 비트: 복수 완성, 억제제 확보로 인간성 유지(일시적), 박태수의 묵인으로 탈출.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억제제가 24시간 지속형이라는 한계 확인. 지속적인 확보가 필요해짐.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진혁을 '피해자'로 둔갑시켜 사회적 말살을 막아줌.
  • 공개된 정보: 오로라 길드 연구소에 억제제 재고가 있음.
  • 심은 복선: 박태수가 건넨 카드키 (Part 2의 주요 무대인 연구소 잠입을 위한 아이템).
  • 클리프행어: [유형 2] 폭로/반전 (허무함) - 승리했지만 시한부 인생은 계속됨.
  • 템포: 고속 → 저속 (에필로그 분위기)

제13화 (완결): 출근하는 괴물

일주일 후.

거울 앞에 섰다.

깔끔한 정장. 단정한 넥타이.

화상 흉터는 옅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컨실러로 가리면 티가 안 날 정도였다.

"진혁아, 밥 먹어라."

주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가요."

식탁에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가 차려져 있었다.

평범한 아침 밥상.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약효 지속 시간: 3시간 20분]

시야 구석에 떠 있는 타이머.

나는 주머니에서 알약 통을 꺼냈다. 억제제를 고체화한 알약이었다.

"어디 아프니?"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아뇨. 그냥... 영양제예요."

알약을 입에 넣고 물로 삼켰다. 떨림이 멈췄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저 헌터 일을 그만두고 일반 회사에 취직한 줄로만 아신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눈 부셨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만원 지하철. 땀 냄새. 피로한 표정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옥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옥철에 있다.

웃음이 나왔다.

'평범하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살얼음판 위인지.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로라 길드, 신임 길드장 선출... '정부와의 유착 의혹' 전면 부인]

[헌터 협회, 불법 실험 수사 조기 종결]

최민석은 죽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꼬리 자르기.

그들은 최민석 개인의 일탈로 모든 것을 덮었다.

그리고 연구소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내 생명줄인 억제제를 생산하면서, 또 다른 괴물들을 만들고 있겠지.

띠링.

문자가 왔다. 발신자 표시 제한.

[카드키 유효기간, 오늘까지야.]

박태수였다.

[오늘 밤. 연구소 지하 3층. 물건 들어온다.]

나는 문자를 지웠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

눈동자가 순간 검게 일렁였다.

"야근이 좀 길어지겠군."

넥타이를 고쳐 맸다.

진짜 사장 놈을 잡을 때까지. 내 퇴직금 정산은 끝나지 않았다.

[Part 1 완결]

[Part 2 예고: 그림자 정부]


1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1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집에서의 아침 -> 출근길 지하철 -> Part 2 예고)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어머니, 박태수(문자)
  • 메인 플롯 비트: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밤에는 헌터(괴물)로 활동하는 이중생활 시작.
  • 서브플롯 진행: 모든 서브플롯이 Part 2를 위한 셋업으로 전환됨.
  • 공개된 정보: 최민석 사건은 은폐되었고, 거대한 흑막(정부/협회)은 건재함.
  • 심은 복선: '오늘 밤 물건 들어온다'는 박태수의 정보 (Part 2 첫 에피소드).
  • 클리프행어: [유형 6] 선택의 기로 (새로운 시작) -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처단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임.
  • 템포: 저속 → 중속 (기대감 고조)

Batch 2 완료 요약

진행 상황 트래커 업데이트

  • 메인 플롯 진행률: 13/13 (Part 1 완결). Part 2(장편)를 위한 도입부 완성.
  • 활성 서브플롯:
    • A (치료제): 억제제 의존 상태 지속. 연구소 파괴 및 원천 기술 확보가 Part 2의 목표.
    • C (추적자): 박태수와의 공조 관계(비공식) 확립.
  • 미공개 정보: 흑염의 기원(던전의 진짜 주인), 정부와 오로라 길드의 커넥션 실체.
  • 활성 복선: 박태수가 준 카드키, 연구소 지하 3층의 '물건'.
  • 회수 완료 복선: 최민석의 정체, 어머니 구출, 억제제의 한계.

일관성 검증

  • 캐릭터: 강진혁이 복수를 마쳤음에도 허무함과 현실적 제약(약물 의존)을 안고 가는 모습이 느와르 장르에 부합함.
  • : 해피엔딩이 아닌 '유예된 엔딩'으로 마무리하여 긴장감 유지.

작가의 말

13화라는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을 담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Part 1은 강진혁이라는 캐릭터의 탄생기(Origin Story)였습니다.
이제 Part 2에서는 그가 이 썩어빠진 세상과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Step 09 집필 완료)

ep11 (3,635 tokens)

Batch 2: 제9화~제13화

제11화: 지옥도(地獄圖)

50층. VIP 전용 병동.

복도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경호원도, 간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공조기 소리만이 낮게 웅웅거릴 뿐이었다.

나는 501호 병실 문 앞에 섰다.

박태수가 말해준 호실. 손잡이를 잡으려다, 그냥 발로 걷어찼다.

쾅!

두꺼운 병실 문이 경첩째 뜯겨 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머니!"

대답은 없었다.

병실 안은 난장판이었다. 링거대는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고, 수액이 터져 카펫을 적시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침대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트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최소한 한 시간 전에는 이곳을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늦었어."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박태수가 시간을 벌어주었지만, 최민석은 이미 한 발 앞서 움직인 것이다.

그때였다.

치지직.

벽걸이 TV가 저절로 켜졌다. 검은 화면에 노이즈가 일더니, 곧 선명한 화질로 누군가의 얼굴을 비췄다.

[여기로 와라, 진혁아.]

화면 속 최민석은 와인잔을 들고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60층 펜트하우스였다.

[60층이다.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카메라 앵글이 돌아갔다.

최민석의 등 뒤, 넓은 펜트하우스 한구석에 휠체어가 보였다.

축 늘어진 채 잠들어 있는 사람. 어머니였다.

"이 개새끼가...!"

[오, 욕은 삼가고. 어머님이 듣고 놀라시잖아.]

최민석이 휠체어 손잡이를 툭툭 쳤다.

[수면제를 좀 세게 놨어. 심장이 약하셔서, 깨어 있는 상태로 네 흉측한 꼴을 보면 충격받으실까 봐. 나름 배려한 거다?]

화면 속 최민석이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펜트하우스의 안쪽 공간이 화면에 잡혔다.

거대한 원통형 유리관들이 수십 개 도열해 있었다. 초록색 형광 용액이 가득 찬 배양조.

그 안에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들.

팔이 세 개 달린 몸뚱이, 피부가 벗겨진 채 근육만 남은 흉물,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괴물.

[익숙한 얼굴도 있을 텐데. 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려나?]

최민석이 배양조 유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다 너 같은 놈들이었지. '적합자' 판정을 받고 내게 온 귀여운 그릇들.]

"......"

[근데 다들 너무 나약하더라고. 던전의 마력을 주입하면 금방 금이 가버렸어. 버티질 못하고 펑, 펑 터져 나갔지.]

최민석의 눈이 카메라 렌즈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근데 넌 달랐어. 넌 완벽해. 공허의 틈에서 그 엄청난 흑염을 받아들이고도 아직 자아를 유지하고 있잖아.]

"개소리 집어치워."

[빨리 와. 밥 식겠다.]

뚝.

화면이 꺼졌다.

나는 벽에 걸린 TV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직!

액정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등이 찢어져 피가 났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60층.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상구로 내달렸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흑염이 혈관을 타고 끓어올랐다.

[경고: 살의가 육체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마물화 진행률: 72%]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괴물이 되면 어머니를 알아볼 수 없다.

나는 허벅지를 꼬집어 뜯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55층. 58층. 59층.

마침내 60층 펜트하우스로 통하는 육중한 강철 문 앞에 섰다.

문에는 지문 인식기와 홍채 인식기가 달려 있었다. 폭약으로도 뚫기 힘든 특수 합금.

하지만 내게는 열쇠가 필요 없다.

나는 강철 문에 양손을 짚었다.

"열려라."

치이이익!

검은 불꽃이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강철을 핥았다.

두께 20센티미터의 특수 합금이 버터처럼 녹아내렸다. 쇳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며 독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나는 녹아내린 문짝을 발로 걷어찼다.

쾅!

열기와 함께 펜트하우스 내부의 공기가 밀려왔다.

역한 피비린내. 그리고 소독약 냄새.

"왔구나."

최민석은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어머니가 탄 휠체어가 있었다.

"어머니를 놔줘."

나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카펫이 내 발밑에서 검게 타들어 갔다.

"물론이지. 네가 나한테 얌전히 먹혀주면, 어머님은 살려줄게. 약속하마."

최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방 안의 조명이 파직거리며 어두워졌다.

그의 발밑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더니, 벽을 타고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 보여줘 봐. 네가 가진 그 흑염의 맛을."

최민석이 양팔을 벌렸다.

그의 그림자에서 시커먼 촉수 수십 개가 뱀처럼 튀어나와 허공을 꿈틀거렸다.

"죽어!"

나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스킬: 흑염 폭발(D) 발동]

오른주먹에 흑염을 한계까지 끌어모았다.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의 고열.

최민석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검은 불기둥이 펜트하우스의 천장을 뚫을 기세로 폭발했다.

하지만.

타격감이 없었다.

"......!"

내 주먹은 최민석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 두 개가 내 팔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들이, 내 흑염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있었다.

치이익... 꿀꺽.

불꽃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맛있네. 꽤 매콤하고."

최민석이 입맛을 다셨다.

"내 힘은 '포식(Gluttony)'이야. 모든 에너지를 먹어 치우지. 마법도, 물리력도, 심지어 네 그 잘난 저주까지도."

그가 씩 웃었다.

"넌 그냥 밥이야. 아주 잘 차려진 밥상."

퍼억!

다른 촉수 하나가 내 복부를 강타했다.

"크윽!"

몸이 활처럼 휘며 뒤로 날아갔다.

대리석 기둥에 등을 부딪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우드득. 갈비뼈 두어 개가 나간 것 같았다.

"쿨럭!"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왜 그래? 벌써 끝이야?"

최민석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그림자 촉수들이 채찍처럼 바닥을 때리며 다가왔다.

"일어나. 아직 전채 요리도 안 끝났잖아."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시 한번 흑염을 끌어올렸다. 이번엔 양손이었다.

"타버려라!"

수십 개의 검은 불화살을 허공에 흩뿌렸다. 펜트하우스 전체를 태워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최민석의 촉수들이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불화살들을 하나하나 잡아채 입으로 삼키듯 먹어 치웠다.

"안 통한다니까. 멍청하긴."

최민석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촉수 하나가 내 발목을 휘감아 거꾸로 들어 올렸다.

"윽!"

피가 머리로 쏠렸다.

"네 힘의 근원이 뭔지 알아? 분노, 살의, 절망.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지."

최민석이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근데 내 포식은 그걸 영양분으로 써. 네가 화를 낼수록, 네가 절망할수록 나는 더 배가 부르고 강해지는 거야."

그가 내 뺨을 툭툭 쳤다.

"넌 나를 이길 수 없어. 태생부터 상성이거든."

퍼억!

촉수가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머리가 대리석에 부딪히며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이명이 들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흑염조차 최민석의 기운에 눌려 사그라들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방 안쪽의 배양조들이 보였다.

초록색 용액 속에 떠 있는 실패작들.

그들의 텅 빈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환청이 들렸다.

[아파...]

[살려줘...]

[왜 나만...]

[뜨거워. 찢어질 것 같아.]

수십, 수백 명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고통받다 죽어간 원혼들. 그들의 잔류 사념이 내 흑염과 공명하고 있었다.

[공명: 죽은 자들의 원한]

[저주 '흑염'이 새로운 연료를 발견했습니다.]

심장 깊은 곳에서,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 개인의 분노가 아니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자들의 억울함. 그들의 피눈물이 흑염의 땔감이 되었다.

"아직도 꼼지락거리네."

최민석이 내 목을 밟았다.

"이제 그만 먹혀라. 네 어미는 편안하게 보내줄 테니."

그의 그림자에서 가장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와 내 심장을 향해 꽂혔다.

그 순간.

나는 놈의 발목을 붙잡았다.

"누구 맘대로."

콰아아아아!

내 몸에서 폭발한 흑염은 이전과 달랐다.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핏빛이 감도는, 섬뜩하고도 짙은 칠흑.

수백 명의 원한이 뭉친 저주의 결정체였다.

"뭐, 뭐야 이건!"

최민석이 기겁하며 발을 빼려 했다.

하지만 핏빛 흑염은 그의 발목을 타고 순식간에 그림자 촉수로 옮겨붙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최민석이 비명을 질렀다.

먹어 치우지 못했다. 오히려 포식의 촉수 자체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워! 떨어져! 이 개새끼야!"

최민석이 미친 듯이 다리를 털었다.

촉수들이 불길을 끄려고 바닥을 뒹굴었지만, 핏빛 흑염은 꺼지지 않고 놈의 본체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래? 맛있게 먹으라며."

나는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배 터질 때까지 먹여줄게."

"이...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최민석의 몸이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쩌저적. 찌익.

고급 맞춤 정장이 찢어지고, 인간의 가죽이 벗겨졌다.

그의 등 뒤에서 솟아오르던 그림자가 아예 그의 육체를 집어삼켰다.

"키에에에엑!"

사람의 비명이 아니었다.

금속을 긁는 듯한 기괴한 괴성.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최민석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키가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피부는 시커먼 점액질로 덮여 있었고, 흉측하게 벌어진 입에는 상어 같은 이빨이 겹겹이 돋아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얼굴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속에서 세 개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저게 바로 오로라 길드장의 진짜 얼굴.

인간의 존엄을 팔아치우고 얻은 악마의 형상이었다.

"드디어 가면을 벗었네."

나는 주먹에 다시 핏빛 흑염을 휘감았다.

[시스템 경고: 생명력이 10% 미만입니다.]

[마물화 진행률: 85%]

[육체 붕괴가 임박했습니다.]

붉은색 경고창이 눈앞을 가렸다.

시간이 없다.

한 번, 길어야 두 번의 공격.

그 안에 저 괴물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먼저 재가 되어 사라진다.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휠체어를 슬쩍 곁눈질했다.

다행히 흑염의 열기에도 깨지 않으셨다. 차라리 다행이다. 아들의 이 흉측한 모습을 보지 않으실 테니까.

"끝내자, 최민석."

나는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대리석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파편이 튀었다.

"키에에엑!"

괴물로 변한 최민석도 거대한 앞발을 치켜들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펜트하우스의 넓은 공간이 두 마리 괴물의 격돌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옥도가 펼쳐졌다.

ep12 (5,648 tokens)

Batch 2: 제12화~제13화

제12화: 거짓된 구원

"키에에에에엑!"

최민석의 흉측한 아가리에서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의 성대에서 날 수 없는 소리. 쇳덩이를 갈아내는 듯한 마찰음이 고막을 찢었다.

놈의 거대한 앞발이 나를 덮쳤다.

나는 피하지 않고 핏빛 흑염을 두른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두 힘이 충돌하자 펜트하우스 내부의 공기가 폭발하듯 팽창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방탄유리창이 모조리 박살 나며 거센 밤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배양조들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초록색 용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지끈!

우리가 서 있던 60층 대리석 바닥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크윽!"

바닥이 꺼지며 우리는 얽힌 채로 아래층을 향해 추락했다.

59층. 58층. 57층.

콘크리트 층간 구조물을 연달아 박살 내며 끝없이 떨어졌다. 철근이 몸을 긁고, 시멘트 파편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입에서 핏덩이가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놈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타라... 타버려라!"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흑염이 놈의 점액질 피부를 지졌다.

"꺼져! 떨어지라고!"

최민석이 발버둥 쳤다. 놈의 등 뒤에서 솟아난 수십 개의 촉수가 채찍처럼 내 등과 어깨를 난타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고통은 사치였다.

쾅!

마침내 55층 대회의실 바닥에 처박혔다.

먼지구름이 일었다. 고급스러운 마호가니 원목 테이블이 산산조각 났고,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터져 물을 뿜어냈다.

"하아, 하아..."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시야가 온통 붉었다. 피 때문인지, 아니면 흑염의 폭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물화 진행률: 92%]

[육체 붕괴가 임박했습니다.]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시간이 없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먼지 속에서 최민석이 일어났다.

놈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핏빛 흑염에 타들어 간 왼쪽 어깨는 뼈가 드러나 있었고, 세 개의 눈 중 하나는 화상으로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놈은 포식자였다.

"먹어주마.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최민석의 가슴팍이 쩍 갈라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이빨이 겹겹이 돋아난 끔찍한 아가리.

놈이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쇄도했다.

피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남은 모든 마력을 오른팔에 집중했다.

푸욱!

"......!"

내 주먹이 놈에게 닿기 전.

최민석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가 내 복부를 관통했다.

등 뒤로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는 촉수의 끝부분이 튀어나왔다.

"커헉..."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웬만한 S급 헌터라도 즉사했을 치명상.

"하하하! 끝났다!"

최민석이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네놈의 그 알량한 원한도, 저주도, 결국 내 뱃속에서 소화될 뿐이야!"

놈이 촉수를 당겨 나를 자신의 거대한 아가리 쪽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저주 '흑염'이 파괴된 장기를 강제로 접합합니다.]

내 복부를 뚫고 들어온 촉수 위로, 검은 불꽃이 거미줄처럼 엉겨 붙었다. 흑염이 내 피와 살을 연료 삼아 놈의 촉수를 역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

최민석의 세 눈깔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왜 안 끌려와! 왜 안 죽어!"

놈이 촉수를 빼내려 했지만, 흑염이 용접기처럼 촉수와 내 몸을 단단히 이어 붙인 뒤였다.

"너... 너 뭐야!"

공포.

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진짜 공포가 서렸다.

자신보다 약한 자만 잡아먹어 온 포식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내장을 내어준 미친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내 배를 뚫은 촉수를 밧줄 삼아, 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끌려가는 게 아니었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었다.

"내 퇴직금."

나는 놈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받아야지."

나는 남은 왼손을 들어 놈의 눈알 하나를 푹 찔러 터트렸다.

"키에에에엑!"

최민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흑염을 한계까지 압축시킨 오른손을, 놈의 쩍 갈라진 가슴팍, 그 흉측한 아가리 속으로 깊숙이 처박았다.

물컹한 내장과 단단한 뼈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놈의 심장. 마력의 코어를 움켜쥐었다.

"잡았다."

[스킬: 흑염 폭주(S) 발동]

[대상을 내부에서부터 소각합니다.]

내 모든 마력을, 깎여나간 수명을, 그리고 수백 명의 원한을 그곳에 쏟아부었다.

화르르르륵!

최민석의 몸 안에서 거대한 핏빛 불길이 폭발했다.

"안 돼! 나는... 나는 왕이 될...!"

놈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피부 밑으로 붉은 불빛이 뚫고 나오며 놈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퍼아아아앙!

최민석의 거대한 육체가 검은 재가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정적.

스프링클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무너진 55층 대회의실을 채웠다.

"하아..."

나는 놈의 잔해였던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이겼다.

복수는 끝났다.

김철수, 이수진, 그리고 최민석.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놈들을 모두 내 손으로 처단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물화 진행률: 99%]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머릿속에서 이명 소리가 커졌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결국 나는 괴물이 되어 협회 토벌대에게 사냥당할 운명인가.

어머니는 누가 돌보지.

그때였다.

스프링클러 물줄기에 씻겨 내려간 잿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유리병.

최민석이 괴물로 변하기 직전까지 품속에 지니고 있었던, 단 하나의 '완성된 억제제'.

기적적으로 깨지지 않았다.

나는 기어갔다. 내장이 쏟아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

유리병을 쥐었다.

뚜껑을 딸 힘조차 없었다. 나는 병 목을 그대로 입에 넣고 깨물어 부수었다.

유리 조각이 입술을 찢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푸른 액체를 단숨에 삼켰다.

꿀꺽.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심장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갑게 식었다.

[경고: 강력한 마력 억제제가 투여되었습니다.]

[저주 '흑염'이 강제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마물화 진행이 멈춥니다.]

"후우..."

숨이 쉬어졌다.

일그러졌던 피부가, 터질 듯 부풀었던 핏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검게 물들었던 시야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살았다.

나는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유리창이 깨진 허공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의 아침.

어젯밤의 지옥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평화롭고 눈부신 햇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다.

[효과 지속 시간: 23시간 59분]

[매일 복용하지 않으면 흑염이 다시 깨어납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구원 따위는 없었다.

나는 이제 약에 의존해야만 하루하루 인간의 탈을 쓸 수 있는, 시한부 마약 중독자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약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오로라 길드 연구소뿐이지."

최민석은 죽었다. 하지만 연구소는 남아 있다. 그 연구소를 묵인한 협회도, 정부의 썩은 윗선들도 그대로다.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뚜벅. 뚜벅.

구두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벽 사이로 회색 코트를 입은 박태수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협회 요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박태수는 잿더미가 된 현장과,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내 몰골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들고 있던 마력탄 권총을 천천히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끝났나?"

"......어."

"최민석은?"

나는 바닥에 수북이 쌓인 검은 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박태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는 뒤에 선 요원들에게 손짓했다.

"시신 수습하고, 현장 통제해. 외부인 출입 철저히 막아라."

"팀장님, 저 자는요? 체포해야..."

신입 조사관이 나를 가리키며 당황한 듯 물었다.

박태수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저 자는 피해자다. 오로라 길드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우리가 진입하면서 구조된 걸로 처리한다."

"네? 하지만 저 자가 강진혁..."

"내 말 못 들었어? 시키는 대로 해!"

박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요원들이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박태수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가라. 어머니 모시고."

"......왜?"

"네가 더러운 청소를 다 했으니까. 일당은 줘야지."

박태수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검은색 카드키. 오로라 길드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최민석의 개인 금고에서 압수한 거다. 연구소 VVIP 출입증이더군."

박태수가 담배를 꺼내 물며 작게 속삭였다.

"거기 가면 약이 더 있을 거야.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

"하지만 기억해라. 다음엔 안 봐준다. 민간인 피해가 나오거나 선을 넘으면, 그때는 내 손으로 널 죽인다."

나는 카드키를 꽉 쥐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박태수와 요원들을 지나쳐, 무너진 계단을 향해 걸었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60층 펜트하우스 구석.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은 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계셨다.

"어머니."

나는 피 묻은 손을 옷에 닦아내고,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등에 업었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가슴이 시렸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따뜻했다.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

나는 어머니를 업고, 길고 긴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20자
  • 장면 수: 3개 (최민석과의 추락 전투 -> 최민석 처단 및 억제제 복용 -> 박태수와의 대화 및 탈출)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사망), 박태수, 신입 조사관, 어머니
  • 메인 플롯 비트: 최종 보스 최민석 처단. 복수 완료.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억제제 획득. 24시간 시한부 인생 확정.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진혁을 피해자로 위장시켜 방조함. 조력자 포지션 확립.
  • 공개된 정보: 억제제의 한계 (24시간).
  • 심은 복선: 박태수가 건넨 연구소 VVIP 카드키.
  • 회수한 복선: 마물화 진행률 99% 도달 위기.
  • 클리프행어: [유형 2] 폭로/반전 (허무함) - 승리했지만 시한부 인생은 계속됨.
  • 템포: 고속 → 저속

제13화: 출근하는 괴물

일주일 후.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깔끔하게 다려진 네이비색 정장. 단정하게 맨 푸른색 넥타이.

왼쪽 뺨을 덮고 있던 흉측한 화상 자국은 옅어졌다. 억제제 덕분에 흑염이 동면에 들어가자, 육체의 변이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이다.

컨실러를 톡톡 두드려 바르자, 흉터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진혁아, 밥 먹어라."

주방에서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가요."

식탁에는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노릇하게 구워진 계란말이가 차려져 있었다.

평범한 아침 밥상.

어머니는 오로라 길드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몰라보게 건강을 회복하셨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달그락.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약효 지속 시간: 3시간 20분]

시야 구석에 반투명하게 떠 있는 붉은 타이머. 초침이 줄어들 때마다 혈관 깊은 곳에서 흑염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알약 통을 꺼냈다.

최민석의 펜트하우스에서 챙긴 액상 억제제를, 내가 임의로 고체화시켜 캡슐에 담은 것이다.

"어디 아프니? 손을 떠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셨다.

"아뇨. 그냥... 비타민이에요. 피로회복제."

알약을 입에 넣고 물로 삼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약기운이 심장에 닿자, 미세한 떨림이 멎었다. 타이머가 다시 24시간으로 리셋되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내가 일주일 전 무슨 짓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어떤 괴물과 싸웠는지.

그저 내가 헌터 일을 그만두고, 운 좋게 평범한 무역 회사에 취직한 줄로만 아신다.

"찌개 식겠다. 어서 먹어. 첫 출근인데 든든하게 가야지."

"네. 잘 먹겠습니다."

된장찌개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거짓된 평화.

하지만 나는 이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상사한테 깍듯이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눈 부셨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만원 지하철. 누군가의 백팩에 눌리고, 땀 냄새와 싸구려 향수 냄새가 뒤섞인 공기. 피로에 찌든 직장인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피와 살이 튀는 지옥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옥철에 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평범하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얇은 살얼음판 위인지. 약을 하루라도 거르면, 나는 다시 걸어 다니는 재앙이 되어 이 사람들을 찢어발길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포털 사이트 메인 뉴스를 확인했다.

[오로라 길드, 신임 길드장 선출... "전임 길드장의 일탈, 뼈를 깎는 쇄신할 것"]

[헌터 협회, 불법 생체 실험 수사 조기 종결. "꼬리 자르기 논란"]

[정부, 헌터 규제 완화 법안 통과]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최민석이라는 거대한 악을 죽였지만, 그건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오로라 길드는 발 빠르게 꼬리를 잘랐다. 협회는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덮었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길드의 돈을 먹으며 법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소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내 생명줄인 억제제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강진혁을, 또 다른 괴물들을 찍어내고 있겠지.

띠링.

문자가 왔다. 발신자 표시 제한.

[카드키 유효기간, 오늘 자정까지야.]

박태수였다.

[오늘 밤. 연구소 지하 3층. '물건' 들어온다.]

나는 덤덤하게 문자를 삭제했다.

지하철이 한강 철교를 지나며 눈부신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쳤다.

단정한 넥타이를 맨 평범한 회사원의 얼굴.

하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억제제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칠흑 같은 흑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었다.

"야근이 좀 길어지겠군."

진짜 사장 놈들을 잡을 때까지.

내 퇴직금 정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Part 1 완결]

[Part 2: 그림자 정부 편에서 계속됩니다.]


1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150자
  • 장면 수: 3개 (집에서의 아침 식사 -> 출근길 지하철 -> Part 2 예고)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어머니, 박태수(문자)
  • 메인 플롯 비트: 일상으로의 복귀(위장).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처단자로서의 이중생활 시작.
  • 서브플롯 진행: 모든 서브플롯이 Part 2를 위한 셋업으로 전환됨.
  • 공개된 정보: 최민석 사건은 은폐되었고, 거대한 흑막(정부/협회)은 건재함.
  • 심은 복선: '오늘 밤 물건 들어온다'는 박태수의 정보 (Part 2 첫 에피소드 떡밥).
  • 회수한 복선: 12화에서 받은 VVIP 카드키의 사용 기한.
  • 클리프행어: [유형 6] 선택의 기로 (새로운 시작)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싸움을 준비함.
  • 템포: 저속 → 중속 (기대감 고조)

Batch 2 완료 요약

진행 상황 트래커 업데이트

  • 메인 플롯 진행률: 13/13 (Part 1 완결). Part 2(장편)를 위한 도입부 완성.
  • 활성 서브플롯:
    • A (치료제): 억제제 의존 상태 지속. 연구소 파괴 및 완전한 치료제 원천 기술 확보가 Part 2의 목표.
    • C (추적자): 박태수와의 공조 관계(비공식) 확립. 빛과 그림자의 역할 분담.
  • 미공개 정보: 흑염의 기원(던전의 진짜 주인), 정부와 오로라 길드의 커넥션 실체.
  • 활성 복선: 박태수가 준 카드키, 연구소 지하 3층의 '물건'.
  • 회수 완료 복선: 최민석의 정체, 어머니 구출, 억제제의 한계.

일관성 검증

  • 캐릭터: 강진혁이 복수를 마쳤음에도 허무함과 현실적 제약(약물 의존)을 안고 가는 모습이 느와르 장르에 완벽히 부합함.
  • : 해피엔딩이 아닌 '유예된 엔딩'으로 마무리하여, 장편 연재를 위한 긴장감과 독자의 결제 기대감을 유지함.

작가의 말

13화라는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을 담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Part 1은 강진혁이라는 캐릭터의 탄생기(Origin Story)였습니다.
이제 Part 2에서는 그가 이 썩어빠진 세상과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p13 (1,159 tokens)

수고하셨습니다! 기획하신 <저주받은 각성: 흑염>의 Part 1 (제1~13화, 프롤로그 아크) 집필이 모두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타겟 독자층(3050 남성, 시니어)의 니즈에 맞춘 '느와르적 복수', '확실한 사이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갈망'이 13화라는 압축된 분량 안에 밀도 있게 담겼습니다. 특히 프로 작가 작법(비가 법칙, 한산이가 법칙, 온도차 문체)을 철저히 적용하여, 모바일 환경에서의 가독성과 상업적 후킹 포인트를 극대화했습니다.

이제 Part 1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장기 연재(Part 2)로 넘어가기 위한 다음 단계를 제안해 드립니다.


📊 Part 1 프로젝트 완료 종합 리뷰

1. 상업성 및 장르 공식 검증

  • 유료 전환 포인트 (3화): '복수'라는 1차원적 목표에서 '치료제 획득(인간으로의 귀환)'이라는 장기 퀘스트로 전환하며 독자의 결제 명분을 확실히 구축했습니다.
  • 사이다 리듬 (고구마 제어): 적(김철수, 이수진, 최민석)이 도발하거나 위기를 만들 때, 주인공이 망설임 없이 압도적인 폭력으로 처단하여 시니어 독자층이 가장 싫어하는 '고구마(답답함)'를 원천 차단했습니다.
  • 엔딩의 여운 (13화): 복수를 완료했음에도 '24시간 시한부'라는 페널티를 남겨, 독자들이 다음 시즌(Part 2)을 기대하고 결제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2. 캐릭터 및 세계관 안착

  • 강진혁 (주인공): 감정 과잉 없이 건조하고 냉소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어머니와 무고한 시민을 향한 '최소한의 인간성'을 남겨두어 입체적인 안티히어로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 박태수 (조력자/라이벌): 주인공을 일방적으로 돕는 평면적 조연이 아니라, '법과 정의'라는 자신의 아젠다를 가지고 움직이는 매력적인 라이벌 포지션을 구축했습니다.
  • 흑염 (능력): 단순한 불꽃이 아니라 '불행을 전염시키는 저주'라는 패널티를 부여해, 매 전투마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훌륭한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 Part 2: [그림자 정부 편] 연재 확장 제안

13화 엔딩에서 던진 떡밥(박태수의 문자: 연구소 지하 3층 '물건')을 바탕으로, Part 2의 초반부(Batch 3) 플롯 방향성을 제안합니다.

[Batch 3: 제14화 ~ 제18화] 기획안 (가칭: 연구소 잠입 아크)

  • 목표: 주인공의 억제제 수급처 확보 및 '물건(새로운 실험체 또는 흑막의 증거)' 탈취.
  • 새로운 갈등: 최민석의 죽음 이후, 오로라 길드를 장악한 **'신임 길드장(정부 측 낙하산 인사)'**의 등장. 그는 최민석보다 훨씬 교활하고 정치적인 인물로 설정.
  • 주인공의 이중생활: 낮에는 평범한 무역 회사(사실은 박태수가 위장 취업시킨 협회 측 유령 회사)의 직장인, 밤에는 억제제 시간을 계산하며 연구소를 터는 '처단자'의 삶이 교차 전개됨. (일상의 건조함 ↔ 전투의 처절함 대비 극대화)

🛠️ 다음 작업 선택 가이드

작가님, 다음으로 진행하실 작업을 아래 옵션 중에서 선택해 주시거나 자유롭게 지시해 주세요.

  1. Part 2 집필 시작 (Batch 3): 제14화~18화의 상세 플롯을 짜고 바로 연재를 이어갑니다.
  2. Part 1 윤문 및 퇴고: 완성된 1~13화를 바탕으로 오탈자, 설정 충돌 점검, 시점 및 문장 리듬을 최종 다듬는 폴리싱 작업을 진행합니다.
  3. 설정집 추출 (Bible 생성): 1~13화까지 등장한 설정(흑염, 포식, 블루 블러드, 오로라 길드 등)과 캐릭터 정보를 문서화하여 장기 연재를 위한 '설정 바이블'을 구축합니다.
  4. 연재 플랫폼 투고용 소개글 작성: 문피아/시리즈 등에 런칭하기 위한 작품 소개글(시놉시스, 후킹 멘트, 태그)을 작성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ep4 (1,448 tokens)

Batch 1: 제4화~제8화

제4화: 걸어 다니는 재앙

오래된 모텔 방은 습했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밖에서는 취객들의 고성방가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푸른 약병을 불빛에 비춰보고 있었다.

'치사율 98%.'

김철수에게서 뺏은 미완성 치료제.

이걸 마시면 죽는다. 하지만 아주 적은 확률로, 이 끔찍한 흑염을 씻어낼 수도 있다.

"......"

마개가 열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꿀꺽.

한 모금. 아주 조금만.

혀끝에 닿자마자 뇌를 찌르는 듯한 냉기가 퍼졌다.

동시에 심장을 쥐어짜고 있던 뜨거운 열기가 아주 잠시, 주춤했다.

[경고: 미확인 약물이 체내에 들어왔습니다.]

[저주 '흑염'이 약물과 충돌합니다.]

[일시적으로 살의가 억제됩니다.]

"하아..."

거칠던 숨이 잦아들었다.

손등을 덮고 있던 검은 핏줄도 희미해졌다.

효과가 있다. 비록 독약에 가까운 부작용이 있지만, 이 저주를 누를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다.

나는 약병을 다시 품에 넣었다.

이건 아껴야 한다. 정말로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을 위해서.

똑똑.

"총각, 안에 있어?"

모텔 주인의 목소리였다. 칠순이 넘은 노인은 카운터에서 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보일러가 자꾸 말썽이라... 온수는 잘 나오나 해서."

"네. 잘 나옵니다."

"그래? 다행이네. 며칠 전부터 자꾸 가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가스 냄새.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헌터다. 그것도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 그런데 왜 가스 냄새를 맡지 못했지?

아니, 맡지 못한 게 아니다.

내 코를 찌르던 피 냄새와 살 타는 냄새가 너무 독해서, 현실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주변의 불행 수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붉게 점멸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콰앙-!

굉음과 함께 바닥이 솟구쳤다.

충격파가 모텔을 강타했다. 낡은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고 화염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콜록! 콜록!"

먼지와 연기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헌터의 육체는 멀쩡했다. F급이라 해도 일반인보다는 튼튼했고, 무엇보다 흑염이 화염을 집어삼킨 덕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사, 살려..."

복도 쪽에서 신음이 들렸다.

주인 할아버지였다. 무너진 콘크리트 기둥에 하반신이 깔려 있었다.

"비키세요!"

나는 달려가 기둥을 잡았다.

우드득.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기둥이 들렸다.

"어서 나오세요!"

노인이 고통을 참으며 기어가려던 찰나였다.

찌직.

내가 잡고 있던 기둥이 검게 타들어 갔다. 흑염이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흥분한 감정에 반응해 제멋대로 튀어나온 것이다.

기둥의 강도가 약해졌다.

툭.

"안 돼!"

내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늦었다.

타버린 기둥이 부러지면서, 그대로 노인의 다리 위로 다시 떨어졌다.

"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노인의 비명이 화재 경보기 소리보다 날카롭게 귓가에 박혔다.

나는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았다.

구하려고 했다. 분명히 구하려고 했는데.

내 손이 닿는 모든 것이 재앙이 된다.

[저주 발동: 타인의 불행을 유발했습니다.]

[만족하십니까?]

시스템이 비아냥거렸다.

"닥쳐."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기둥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흑염을 억누르며, 순수한 악력만으로.

노인을 둘러업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불타는 모텔을 구경하고 있었다.

"가스 폭발이라며?"

"주인 영감은? 죽었대?"

"아까 어떤 남자가 업고 나왔다던데..."

나는 골목길 그늘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들것에 실려가는 노인의 바지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리는 아마 절단해야 할 것이다.

그가 잘못한 건 없었다. 낡은 보일러를 쓴 죄? 아니면 재수 없게 나를 손님으로 받은 죄?

확실한 건 하나다.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내가 기둥을 잡았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다.

'......'

주머니 속의 2G폰(대포폰)을 꺼냈다.

저장된 번호는 딱 하나. '어머니'.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살아있다고, 아들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를 수 없었다.

전파를 타고 내 불행이 어머니에게까지 전염될까 봐.

뚝.

전화기를 반으로 접어 부러뜨렸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래. 이게 맞아."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ep5 (3,412 tokens)

제5화: 꼬리를 밟히다

서울의 밤은 화려했다.

강남 한복판, '그랜드 힐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는 자선 파티가 한창이었다.

[오로라 길드 주최: 결식아동 및 던전 고아 돕기 자선의 밤]

호텔 입구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이수진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아이들을 안은 채 성스럽게 미소 짓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聖女)'라고 불렀다.

"성녀라..."

나는 호텔 건너편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그 현수막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수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펴졌다 했다.

웃겼다.

던전에서 내 다리가 몬스터에게 씹힐 때, 그녀는 힐을 주지 않았다. 마력이 아깝다며 물러섰다.

내 비명소리가 시끄럽다며 귀를 막았던 여자가, 고아들을 안고 웃고 있다니.

"역겹네."

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검은 침이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보도블록을 녹였다.

[저주 '흑염'이 당신의 혐오감에 반응합니다.]

몸이 붕 떴다.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목적지는 정문이 아니다. VIP들이 드나드는 로비도 아니다.

호텔 뒷골목.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드는 하역장이다.

쿵.

가볍게 착지했다.

경비원 두 명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야, 이번 파티에 헌터 협회장도 온다며?"

"말도 마라. 경호 팀 비상이다. 근데 이수진 그 여자는 왜 갑자기 이런 걸 연다냐? 김철수 헌터 실종된 마당에."

"이미지 세탁이지 뭐. 힐러들은 원래 이미지가 생명이잖아."

경비원들이 낄낄거렸다.

나는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갔다.

"누, 누구냐!"

경비원이 손전등을 비췄다.

하지만 빛이 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내 그림자가 먼저 그들의 발목을 덮쳤다.

스르륵.

검은 연기가 뱀처럼 휘감기자 두 사람의 눈이 뒤집혔다.

"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죽이지는 않았다. 굳이 살의를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경비원의 주머니에서 마스터 키를 꺼냈다.

[스킬: 그림자 은신(F) 발동]

[주변의 빛을 왜곡하여 형체를 숨깁니다.]

흑염의 응용 기술이다. 완벽한 투명화는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는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다.

단, 부작용이 있다.

파직!

내가 지나가자 복도의 전구들이 하나씩 터져 나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회로가 타버린 모양이다.

"......계단으로 가야겠군."

나는 30층까지 이어진 비상구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센서등이 꺼지고, 비상벨이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다.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가는 곳이 곧 재앙이니까.


같은 시각. 무너진 모텔 앞.

박태수 팀장은 반쯤 탄 모텔 간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님, 감식 결과 나왔습니다."

신입 조사관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역시나 가스 폭발은 아닙니다. 발화점인 304호에서 검출된 성분, 김철수 사망 현장이랑 일치합니다."

"마력 반응 제로인 그을음?"

"네. 그리고..."

신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생존자가 있습니다. 모텔 주인입니다."

박태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 있어?"

"구급차에 실려 가기 전에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정신은 멀쩡하더군요."

박태수는 녹음기를 재생했다.

치지직...

[아니야... 가스가 아니었어... 그 총각... 304호 총각이 날 구해줬어...]

[어떻게 생겼습니까?]

[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봤어. 얼굴 반쪽에... 화상 흉터가 있었어. 그리고 눈이... 눈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어...]

박태수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화상 흉터."

그의 머릿속에 강진혁의 헌터 등록증 사진이 떠올랐다.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평범한 청년의 얼굴.

하지만 공허의 틈에서 살아 돌아왔다면, 그 얼굴이 온전할 리 없다.

"놈이다."

박태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진혁이 여기 숨어 있었어."

"하지만 팀장님, 이해가 안 됩니다. 복수귀가 왜 사람을 구합니까? 그냥 도망쳐도 됐을 텐데요."

"......"

박태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구해야만 했던 거겠지."

"네?"

"놈의 힘은... 통제가 안 되는 것 같다. 김철수를 죽일 때의 그 잔혹함과, 노인을 구할 때의 망설임.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어."

박태수는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씹었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

아직 인간이고 싶은 괴물.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위치 추적은?"

"CCTV가 다 녹아서 동선 파악이 어렵습니다. 다만..."

신입이 지도를 띄웠다.

"여기서 발견된 타다 남은 전단지가 있습니다. 놈의 방 쓰레기통에서요."

증거물 봉투 안에 담긴 젖은 종이 조각.

[...랜드 힐 호텔... 자선 파티...]

박태수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랜드 힐 호텔."

"네?"

"오늘 밤 이수진이 거기서 파티를 연다."

퍼즐이 맞춰졌다.

김철수 다음은 이수진이다.

배신자 파티의 홍일점.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성녀.

놈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그녀를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다.

"전원 출동한다."

박태수가 차에 올라탔다.

"사이렌은 꺼. 놈을 자극하면 안 된다. 호텔 전체가 인질이 될 수도 있어."


그랜드 힐 호텔, VIP 대기실.

이수진은 거울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메이크업이 이게 뭐야? 내가 좀 더 창백해 보여야 한다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벌벌 떨며 파우더를 덧발랐다.

"됐어, 나가."

이수진이 손을 휘저었다. 스태프들이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자, 그녀는 핸드백에서 약통을 꺼냈다.

신경안정제.

손이 덜덜 떨렸다.

'김철수가 죽었어.'

뉴스에서는 실종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김철수의 생명 반응이 완전히 사라졌다. 힐러인 그녀는 동료의 죽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 죽음의 냄새가, 일주일 전 던전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았다.

"강진혁..."

이수진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와인을 들이켰다.

"아니야. 걘 죽었어. 뼈도 안 남았다고."

최민석 오빠가 말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고.

강진혁은 '적합자'였고, 우리는 그를 제물로 바쳐서 더 큰 힘을 얻으려 했다.

물론 그 힘은 최민석이 독차지했지만.

"난 잘못 없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녀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난 성녀야. 사람들을 치료하고, 기부도 많이 했어. 그러니까... 난 괜찮아."

똑똑.

노크 소리에 이수진이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세요?"

"룸서비스입니다. 주문하신 샴페인 가져왔습니다."

"시킨 적 없는데?"

"매니저님이 서비스로 보내셨습니다."

이수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가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고개를 푹 숙인 남자였다.

"거기 두고 나가요."

이수진은 거울을 보며 입술을 다시 칠했다.

그런데 남자가 나가지 않았다.

"뭐 해요? 안 나가고?"

이수진이 짜증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샴페인 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샴페인, 이름이 참 좋네요."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뭐라고요?"

"'La Grande Dame'. 위대한 여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모자챙 아래로, 끔찍하게 일그러진 화상 흉터가 드러났다.

검게 변한 눈동자가 이수진을 꿰뚫듯 응시했다.

"성녀님께 딱 어울리는 술이야. 안 그래, 수진아?"

쨍그랑!

이수진의 손에서 와인잔이 떨어졌다.

붉은 와인이 카펫을 적셨다. 마치 피처럼.

"가... 강..."

"쉿."

진혁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소리지르면 안 돼. 밖에는 네 팬들이 잔뜩 있잖아?"

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가 밟은 카펫이 검게 변색되며 썩어들어갔다.

"보여줘야지. 성녀님의 진짜 얼굴을."

"오, 오지 마! 경호원! 여기... 읍!"

진혁의 손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이수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말했잖아. 조용히 하라고."

진혁은 공포에 질린 이수진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자비로웠다. 악마가 죄인을 맞이할 때 지을 법한, 아주 자비로운 미소.

"파티는 이제 시작이야."


호텔 로비.

회전문이 멈췄다.

자동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로비의 샹들리에가 불안하게 깜빡거렸다.

박태수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쥐었다.

"윽..."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박태수의 눈에는 보였다.

호텔 전체를 감싸고 있는 희미한 검은 안개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조명이 좀 이상하네, 오늘따라 머리가 아프네 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박태수에게는 명확했다.

이곳은 이미 사냥터였다.

"30층이다."

박태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었다.

"30층 VIP 대기실. 이수진 헌터가 거기 있다."

"팀장님,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합니다!"

"젠장."

박태수는 비상구로 방향을 틀었다.

"지원팀은 건물 포위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나가게 막아. 나는 올라간다."

박태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S급 신체 능력을 풀가동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늦으면 안 돼.'

단순히 살인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녀석. 강진혁.

그 놈이 선을 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괴물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나도 놈을 사살할 수밖에 없다.

20층. 25층. 29층.

박태수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마침내 30층 비상구 문을 박차고 나왔다.

복도는 고요했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카펫은 군데군데 타들어 가 있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은 녹아내려 있었다.

마치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박태수는 권총(마력탄 장전)을 꺼내 들었다.

VIP 대기실 문 앞.

문고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박태수는 숨을 골랐다. 안에서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강진혁."

박태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달궈진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장갑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탔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거기까지다."


5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3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4개 (호텔 외부 잠입 -> 모텔 현장 조사 -> 호텔 VIP 대기실 -> 호텔 복도)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이수진(힐러/타겟), 박태수(추적자), 신입 조사관
  • 메인 플롯 비트: 이수진 사냥 개시, 호텔 잠입 성공, 대면.
  • 서브플롯 진행: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모텔 화재 현장에서 강진혁의 생존과 정체를 확인함. 호텔로 추적 성공.
  • 공개된 정보:
    • 그림자 은신: 흑염을 응용한 은신 기술. 빛을 왜곡하지만 전자기기 오작동을 유발함.
    • 박태수의 능력: 마력의 흔적(냄새)을 시각/후각적으로 감지하는 탐지 능력.
  • 심은 복선:
    • 이수진이 먹는 약 (신경안정제) -> 그녀 역시 죄책감이나 공포에 시달리고 있음을 암시.
    • 최민석이 힘을 독차지했다는 이수진의 독백.
  • 회수한 복선: 4화의 모텔 화재가 박태수에게 꼬리를 밟히는 결정적 단서가 됨.
  • 클리프행어: [유형 4] 위기/위험 - 박태수가 VIP 대기실 문을 열고 진혁과 조우하기 직전.
  • 템포: 고속 (잠입 -> 추적 -> 대면으로 이어지는 빠른 호흡)
ep6 (4,110 tokens)

Batch 1: 제6화~제8화

제6화: 성녀의 가면

"거기까지다."

박태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마력탄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정확히 미간과 심장을 노린 사격.

하지만 총알은 허공을 가르고 벽에 박혔다.

"......!"

VIP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깨진 와인잔. 바닥을 적신 붉은 와인.

그리고 활짝 열린 발코니 창문으로 밤바람이 거칠게 불어오고 있었다.

박태수는 발코니로 달려갔다.

난간 아래는 까마득한 30층 높이의 허공이었다.

"팀장님! 이수진 헌터가 없습니다!"

뒤따라온 요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박태수는 난간을 움켜쥐었다. 장갑이 검게 그을려 묻어났다.

"아니. 멀리 못 갔어."

그는 코를 킁킁거렸다.

살 타는 냄새. 그리고 역한 유황 냄새.

냄새는 아래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옥상이다."


호텔 옥상 헬리포트.

이수진은 난간 끝에 매달려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그녀의 발아래는 현기증 나는 서울의 야경이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건 강진혁이었다.

진혁은 한 손으로 그녀를 대롱대롱 매달아 둔 채, 다른 손으로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수진아."

"흐윽, 흐으윽..."

"네가 그랬잖아. 힐러는 마력이 생명이라고. F급 짐꾼한테 쓸 마력은 없다고."

진혁이 라이터를 켰다.

치이익.

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 갔다.

"나도 그래. 흑염은 내 생명력을 태우거든. 너 같은 거 살려줄 여유가 없어."

"도, 돈 줄게! 내 전 재산 다 줄게! 빌딩도 있고, 주식도 있어! 제발!"

이수진이 발버둥 쳤다. 하이힐 한 짝이 벗겨져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진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돈은 필요 없고. 정보나 내놔."

"무, 무슨 정보?"

"최민석 금고에 있는 약. 그거 진짜 치료제 맞아?"

이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거..."

"거짓말하면 손 놓는다."

진혁이 손에 힘을 풀었다. 이수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악! 말할게! 말할게!"

이수진이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외쳤다.

"가짜야! 그건 치료제가 아니야!"

진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짜?"

"억제제야! 마약 성분으로 뇌를 마비시켜서... 흑염의 폭주를 막는 것뿐이라고!"

억제제.

김철수가 준 실패작이 독약이라면, 최민석이 가진 완성본은 마약이라는 소리인가.

"그럼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어! 애초에 그런 건 없다고! 넌... 넌 그냥 실패작이야! 폐기됐어야 할 쓰레기라고!"

이수진이 악을 썼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본심이 튀어 나왔다.

"최민석 오빠가 그랬어. 너 같은 건... 그냥 배터리로 쓰다가 버리면 된다고!"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배터리.

나를 그렇게 불렀구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불길이 치솟았다.

"그래. 배터리."

진혁이 이수진을 끌어올렸다.

"다행이네. 넌 배터리도 못 되니까."

"어...? 사, 살려주는 거야?"

이수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진혁은 그녀를 옥상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밟았다.

"아니. 넌 그냥 땔감이야."

콰아앙!

진혁의 발바닥에서 검은 불기둥이 솟구쳤다.

"끄아아아아!"

성녀의 비명은 짧았다.

순백의 드레스가 검게 물들었다. 그녀의 자랑이었던 하얀 피부도, 거짓된 미소도, 흑염 앞에서는 평등하게 재가 되었다.

[복수 대상 2/3 처치]

[저주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경고: 살인으로 인한 업보가 쌓입니다.]

진혁은 무표정하게 시스템 창을 닫았다.

그때였다.

"손들어!"

옥상 문이 열리고 박태수가 뛰쳐나왔다. 수십 명의 무장 요원들이 진혁을 포위했다.

"강진혁!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박태수의 총구가 진혁을 겨눴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화상 입은 얼굴로 박태수를 바라보는 눈빛.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눈이었다.

"팀장님."

진혁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내가 도망치는 걸로 보여요?"

"뭐?"

"난 사냥하는 중인데."

진혁이 발을 굴렀다.

콰지직!

옥상 바닥에 금이 갔다.

단순한 발구르기가 아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헬리포트의 H자 마크 위. 그 아래에는 호텔의 메인 전력 케이블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주 발동: 대규모 정전 유발]

[불행의 범위가 건물 전체로 확장됩니다.]

퍼버벅!

옥상의 조명탑이 터졌다.

동시에 호텔 전체의 불이 꺼졌다.

"전력 차단! 비상 발전기 돌려!"

"시야 확보해!"

암흑천지.

요원들이 당황하는 사이, 진혁은 난간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 미친 새끼가!"

박태수가 달려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호텔 로비는 아수라장이었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의 비명소리. 계단으로 쏟아져 나온 VIP들의 고함.

그 혼란 틈바구니에, 웨이터 복장을 한 남자가 섞여 있었다.

강진혁이었다.

그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외벽의 배수관을 탔고, 10층 테라스로 착지해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수관이 터져 호텔 외벽이 물바다가 됐지만, 알 바 아니었다.

'억제제.'

진혁은 인파에 섞여 호텔을 빠져나가며 생각했다.

완전한 치료제는 없다.

하지만 억제제라도 있어야 한다.

방금 이수진을 죽일 때 느꼈다. 살의가 나를 지배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나는 정말로 괴물이 된다. 최민석을 죽이기도 전에.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그는 밤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뒤에서는 여전히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6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20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호텔 VIP 대기실/복도 -> 옥상 헬리포트 -> 호텔 로비/외부)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이수진(사망), 박태수, 최민석(언급)
  • 메인 플롯 비트: 이수진 처단, 치료제의 진실(억제제) 확인, 박태수와의 첫 대면 및 도주.
  • 서브플롯 진행:
    • Sub A (치료제): '완전한 치료제는 없다'는 절망적 정보 획득. 목표가 '생존을 위한 억제제 확보'로 수정됨.
  • 공개된 정보:
    • 억제제: 흑염의 폭주를 막는 유일한 수단. 마약 성분 함유.
    • 박태수와 진혁의 대립: 박태수는 진혁을 '위험 요소'로 판단하고 사살 명령을 내릴 준비가 됨.
  • 심은 복선: 이수진의 유언 ("최민석 오빠가 그랬어"). 최민석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는 확신.
  • 회수한 복선: 3화의 '치료제 떡밥'에 대한 진실(가짜/억제제)이 밝혀짐.
  • 클리프행어: [유형 2] 폭로/반전 - "완전한 치료는 없다."
  • 템포: 고속

제7화: S급 수배령

[속보] 그랜드 힐 호텔 테러 발생... '성녀' 이수진 헌터 사망 추정

[단독] 용의자는 죽은 줄 알았던 F급 헌터 강진혁... '악마의 귀환'인가?

서울역 대합실의 대형 TV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화면에는 내가 찍혀 있었다.

흐릿한 CCTV 화면. 웨이터 복장을 하고 이수진의 대기실로 들어가는 내 모습.

그리고 옥상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뛰어내리는 장면.

"세상에, 미친놈 아냐?"

"이수진 헌터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데..."

"저런 괴물은 당장 사형시켜야 해!"

사람들의 비난이 화살처럼 꽂혔다.

나는 마스크를 고쳐 쓰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성녀라...'

죽기 직전 나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며 살려달라고 빌던 그 추한 얼굴을, 대중은 모른다.

알 필요도 없겠지. 그들에게 나는 그저 영웅을 죽인 빌런일 뿐이니까.

"지나가겠습니다."

나는 사람들 틈을 파고들었다.

툭.

"아,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행인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괜찮습니다... 윽!"

행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왜 그러세요?"

"발목이... 갑자기 발목이 꺾였어!"

멀쩡한 평지였다. 돌부리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행인의 발목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저주 발동: 타인의 불행(골절)을 유발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기요!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어? 저 사람, 옷차림이 뉴스에 나온..."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제기랄.'

사람이 많은 곳은 안 된다. 스치기만 해도 사고가 터진다.

편의점에서 물을 사려고 해도 알바생이 커터 칼에 손을 베이고, 버스를 타면 타이어가 펑크 난다.

나는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나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갈 곳이 없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 절대 안 된다. 내가 근처에 가는 순간 병원에 불이 나거나 의료 기기가 고장 날 것이다.

옛 친구? 나를 신고하거나, 내 저주에 휘말려 다칠 것이다.

"크으으..."

심장이 조여왔다. 흑염이 다시 꿈틀거렸다.

약이 필요하다.

김철수에게서 뺏은 미완성 치료제는 이제 반 병밖에 남지 않았다.

이걸 다 마시면, 그다음은?

그때, 골목길 전광판에서 최민석의 긴급 기자회견이 나오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검은 정장을 입은 최민석은 수척해 보였다. 연기력이 남우주연상 감이다.

"제 동료를 둘이나 잃었습니다. 범인은... 한때 제 친구였던 강진혁입니다."

최민석이 눈물을 훔쳤다.

"그는 던전에서 저주받은 힘을 얻고 타락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플래시가 터졌다.

최민석의 눈빛이 돌변했다.

"오로라 길드는 현 시간부로 강진혁에 대한 현상금 100억 원을 겁니다."

100억.

"생포는 필요 없습니다. 사체라도 상관없습니다.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제거해 주십시오."

공식적인 살인 청부.

이제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인, 조폭, 심지어 경찰까지 나를 노릴 것이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나는 전광판을 향해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나도 숨어다니는 건 질렸거든."


헌터 협회, 감사팀 사무실.

박태수는 책상을 내리쳤다.

"현상금 100억? 미친 거 아냐?"

"오로라 길드에서 정식으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협회장님도 승인하셨고요."

신입 조사관이 떨면서 대답했다.

"이건 그냥 사냥 대회야! 도심 한복판에서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박태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100억이면 눈 뒤집힌 헌터들이 수천 명은 몰려들 것이다. 강진혁이 아무리 강해도 물량 공세에는 장사 없다.

게다가 놈의 능력은 광역 피해를 입힌다. 놈을 잡으려다 서울시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

"증거물 분석 결과는?"

박태수가 화제를 돌렸다.

"아, 네. 그랜드 힐 호텔 옥상에서 발견된 재... 거기서 특이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신입이 모니터에 화학 구조식을 띄웠다.

"마약성 진통제 베이스에, 고농축 마력이 섞여 있습니다. 근데 이거..."

"이거 뭐?"

"협회 금지 약물 리스트에 있는 '블루 블러드(Blue Blood)'랑 구조가 90% 일치합니다."

블루 블러드.

10년 전, 헌터들의 폭주를 막겠다며 개발되다가 부작용이 심해 폐기된 약물.

공식적으로는 전량 폐기되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수진 사망 현장에 있지?"

박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수진이 가지고 있었거나, 강진혁이 가지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오로라 길드는 이 금지 약물과 연관되어 있다.

"최민석..."

박태수는 직감했다.

이 모든 판을 짠 설계자가 누구인지.

강진혁은 미친개가 아니다. 주인에게 물린 사냥개다. 그리고 지금 주인을 물어뜯으러 돌아온 것이다.

"팀장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조사관이 외쳤다.

"강동구 폐하수처리장 근처에서 식당이 붕괴됐답니다! 목격자가 화상 입은 남자를 봤다고 합니다!"

"하수처리장?"

박태수가 일어났다.

"놈이 숨을 곳은 거기밖에 없어. 악취가 심해서 사람도 없고, 지하 수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으니까."

박태수는 재킷을 챙겼다.

"특수 기동대 대기시켜. 오로라 길드보다 우리가 먼저 놈을 찾아야 해."

"체포합니까?"

"아니."

박태수가 마력탄을 장전했다.

"대화가 통하면 체포하고, 안 통하면... 내가 죽인다."


강동구 폐하수처리장.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냄새가 향수보다 나았다.

최소한 여기에는 다칠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수로관 위에 앉아 편의점에서 훔친 빵을 씹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각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걸까.

[남은 시간: 27일 14시간]

시스템 창의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줄어들고 있었다.

3일 동안 두 명을 죽였다.

이제 남은 건 리더 최민석 하나.

하지만 놈은 요새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나에게 100억이라는 현상금을 걸어 사냥개들을 풀었다.

정면 돌파? 불가능하다.

잠입? 내 저주 때문에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놈이 제 발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놈이 가장 아끼는 것. 놈의 약점.

나는 빵 조각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쥐들이 몰려와 빵을 뜯어먹었다.

"최민석이 아끼는 것..."

돈? 명예? 권력?

다 아니다. 놈은 그런 것들을 도구로만 여긴다.

놈이 진짜로 집착하는 건 '힘'이다. 그리고 '완벽함'이다.

그때, 주머니 속의 대포폰이 진동했다.

부러뜨려 버렸는데, 예비용으로 훔친 폰이었다.

발신자 표시 제한.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냐."

[...]

침묵.

그리고 익숙한,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

ep7 (1,493 tokens)

Batch 1: 제4화~제8화 (계속)

제7화: S급 수배령 (후반부)

"......누구냐."

[...]

침묵.

그리고 익숙한,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은 맛있어? 친구.]

최민석이었다.

나는 씹던 빵을 뱉어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전화기는 훔친 것이다. 내 명의도 아니고, 전원을 켠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알고 걸었지?"

[오로라 길드의 정보력을 너무 무시하는군. 네가 편의점에서 그 폰을 훔칠 때 CCTV에 찍혔더구나. 그리고 방금 기지국 신호가 잡혔고.]

최민석이 낮게 웃었다.

[하수구라니. 너한테 딱 어울리는 무덤이네.]

"무덤이 아니라 참호다."

나는 수로관 아래로 몸을 숨겼다.

"목 씻고 기다려라. 네가 준 약, 효과가 아주 좋더군."

[아, 그 실패작? 다행이네. 하지만 진혁아, 네가 간과한 게 있어.]

최민석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널 죽이는 데 100억을 썼어. 그 돈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

쿵. 쿵. 쿵.

머리 위, 맨홀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지.]

"......!"

[잘 가라. 내 아픈 손가락.]

뚝.

전화가 끊겼다.

동시에, 하수구의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랜턴 불빛이 켜졌다.

"찾았다!"

"저기 있다! 100억짜리다!"

"쏴! 다리는 남겨둬!"

탕! 타다당!

총성이 지하 수로를 울렸다. 마력탄이 콘크리트 벽을 때리고 튀었다.

나는 몸을 날려 오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차가운 오물이 전신을 감쌌다. 하지만 더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위에서는 헌터들이, 아래서는 오물이, 그리고 내 안에서는 흑염이 날뛰고 있었다.

[경고: 다수의 적대적 살의 감지]

[저주 '흑염'이 흥분합니다.]

시스템 창이 붉게 물들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들어와라."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역안(逆眼)이 푸르게 빛났다.

"여기는 내 홈그라운드니까."


7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850자 (전반부 포함 추산)
  • 장면 수: 3개 (서울역 도주 -> 하수처리장 은신 -> 최민석과의 통화 및 포위)
  • 등장 캐릭터: 강진혁, 최민석, 박태수, 헌터들(엑스트라)
  • 메인 플롯 비트: 현상금 100억 수배령, 사회적 고립 심화, 은신처 발각.
  • 서브플롯 진행:
    • Sub B (저주): 일반인에게 불행(골절)을 입히며 사회와 완전히 단절됨. 스스로 '격리'를 선택.
  • 공개된 정보:
    • 오로라 길드의 정보력: 대포폰조차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력과 자금력.
    • 블루 블러드: 협회 금지 약물. 박태수가 사건의 배후를 확신하는 계기.
  • 심은 복선: 하수구라는 공간적 배경(폐쇄된 공간에서의 불행 전이 효과 증폭).
  • 회수한 복선: 1화부터 이어진 '오로라 길드의 자본력'이 100억 현상금이라는 구체적 위협으로 실현됨.
  • 클리프행어: [유형 4] 위기/위험 - 최민석의 선전포고와 동시에 헌터들에게 포위됨.
  • 템포: 중속 → 고속 (후반부 급가속)

제8화: 악마와의 조우

"죽여! 머리만 가져가면 돼!"

용병 헌터들이 수로를 따라 달려왔다.

전직 군인, 파면된 헌터, 빚에 쫓기는 조폭. 100억이라는 돈에 눈이 뒤집힌 인간 군상들이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마법을 난사했다.

콰앙! 콰광!

파이어볼이 오수를 증발시키며 악취를 풍겼다. 얼음 화살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정면 승부는 불가능하다. 숫자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이곳은 하수구다.

빛보다 어둠이, 질서보다 혼돈이 지배하는 곳.

[조건 충족: 불행의 연쇄 작용]

[저주가 환경 요소를 장악합니다.]

나는 바닥에 고인 오물에 손을 담갔다.

"미끄러져라."

검은 기운이 물을 타고 퍼져나갔다.

"잡았다 요 놈... 어?"

선두에 있던 헌터가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미끌.

"으악!"

그가 넘어지면서 뒤따라오던 헌터의 총구를 건드렸다.

타앙!

오발 된 총알이 천장에 매달린 낡은 배수관을 맞췄다.

끼이익- 쾅!

녹슨 배수관이 떨어지며 헌터 세 명을 덮쳤다.

"아악! 내 다리!"

"야 이 병신아! 총을 어디다 쏘는 거야!"

"배관이 왜 떨어져! 재수 옴 붙었네!"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나는 달렸다.

나의 불행은 전염병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의 사다리는 부러지고, 전등은 터지고, 가스는 샌다.

"저기 간다! 쏴!"

누군가 소리쳤지만, 그의 총은 격발 불량(Jam)으로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실이 폭발해 그의 손가락을 날려버렸다.

"끄아아악!"

비명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나는 미로 같은 수로를 질주했다. 하지만 출구 쪽에서도 발소리가 들려왔다.

ep8 (1,837 tokens)

제8화: 악마와의 조우

"아악! 내 눈!"

"이거 놔! 내가 쏘려던 게 아니라고!"

하수구는 지옥도였다.

내가 손을 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존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놈들은 스스로 넘어지고, 오발하고, 아군을 쐈다.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이 좁고 어두운 곳에 모였으니, 작은 불행 하나가 도미노처럼 거대한 재앙으로 번진 것이다.

[저주 '불행'이 연쇄 작용을 일으킵니다.]

[적들의 공포심이 당신의 마력을 회복시킵니다.]

나는 어둠 속에 웅크린 채 그 아수라장을 지켜보았다.

'웃기는군.'

S급 헌터도, 특수 부대 출신 용병도, 불운 앞에서는 그저 허우적거리는 인간일 뿐이다.

나를 죽이러 온 놈들이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첨벙. 첨벙.

나는 소란을 틈타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의 지리는 내가 더 잘 안다. 짐꾼 시절, 몬스터의 사체를 처리하러, 혹은 길드의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러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곳이니까.

"거기냐! 강진혁!"

독한 놈 하나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머리에 적외선 고글을 쓴 용병이었다.

"네놈 목만 가져가면 100억이야!"

그가 마체테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튀어나온 철근을 툭 찼다.

팅.

철근이 미세하게 휘어졌다.

용병이 그 위를 밟는 순간.

"어?"

철근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용병의 정강이를 강타했다.

"끄아악!"

중심을 잃은 용병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필이면 그가 들고 있던 마체테의 날이, 그가 짚으려던 바닥 쪽에 세워져 있었다.

푹.

"커헉..."

자기 칼에 자신의 쇄골이 뚫린 용병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나는 그 옆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

이제 출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찌르르.

등골을 타고 소름 돋는 감각이 올라왔다.

살의가 아니다.

이건... 감시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이 어둠 속에서, 적외선 고글 따위가 아니라 훨씬 더 근원적인 감각으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쓰러진 용병들의 신음 소리와 오물 흐르는 소리뿐.

아니.

저 멀리, 어둠이 뭉쳐 있는 곳.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물을 밟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난장판이군."

건조한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박태수였다.

그는 쓰러진 용병들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한 손에는 마력탄 권총을 들고 있었다.

"팀장님! 지원 병력은..."

뒤따라온 신입 조사관이 말을 잇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사방에 널린 피와 오물의 냄새 때문이었다.

"필요 없다.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간다."

박태수가 손을 저었다.

"하지만 위험합니다! 놈은 S급 헌터들도 죽인 괴물입니다!"

"괴물?"

박태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정확히 내가 숨어 있는 기둥 뒤를 응시했다. 보일 리가 없는데도, 마치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아니. 놈은 지금 겁먹은 짐승이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박태수는 천천히 걸어왔다.

"나와라, 강진혁. 거기 있는 거 안다. 냄새가 진동을 하거든."

도망쳐야 한다.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다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김철수나 이수진은 힘만 센 껍데기였다. 하지만 박태수는 진짜 사냥꾼이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흑염을 끌어올렸다.

[스킬: 그림자 은신(F) 활성화]

내 몸이 어둠과 동화되었다.

하지만 박태수는 멈추지 않았다.

"은신? 소용없어. 네 놈한테서는 역겨운 유황 냄새가 나니까."

탕!

예고도 없이 박태수가 발포했다.

총알이 내 머리 바로 옆, 콘크리트 벽에 박혔다. 파편이 튀어 뺨을 긁었다.

"다음엔 머리다."

박태수가 나와 불과 10미터 거리까지 좁혀왔다.

"투항해라. 그러면 최소한 인간으로서 재판받게 해주지."

"재판?"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나는 기둥 뒤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한테? 나를 실험체로 쓴 협회한테? 아니면 100억을 건 최민석한테?"

"......협회는 공정하다."

"공정? 개소리하지 마. 당신도 봤잖아. 그 실험 보고서."

박태수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3화에서 내가 일부러 남겨둔 보고서. 그가 그걸 읽었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그래. 봤다."

박태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로라 길드가 널 실험체로 썼다는 거. 그리고 협회 일부가 묵인했다는 거."

"그걸 알면서 나한테 총을 겨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넌 민간인을 위협하고, 동료를 살해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동료? 그 새끼들이 내 동료였나?"

"법치 국가다. 복수는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법이 하는 거야."

"그 법이 썩었으니까 내가 직접 청소하는 거잖아!"

나는 기둥 뒤에서 뛰쳐나갔다.

정면 승부? 아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박태수에게 던졌다.

수류탄이 아니었다.

아까 쓰러진 용병의 주머니에서 훔친 '조명탄'이었다.

파앙!

눈부신 백색 섬광이 터졌다.

일반인이라면 눈을 감았겠지만, 마력 감지 능력이 뛰어난 박태수에게는 치명타였다.

"큭!"

박태수가 본능적으로 팔로 눈을 가렸다.

그 틈이다.

나는 반대편 수로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박태수는 보지 않고도 반응했다.

타앙!

총알이 내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으윽!"

타는 듯한 고통. 살이 찢기고 뼈가 긁히는 감각.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피를 흘리며 수로관 깊숙한 곳, 메탄가스가 차 있는 구역으로 달렸다.

"멈춰!"

박태수가 뒤를 쫓았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멈춰 서서 벽에 붙은 낡은 가스 밸브를 잡았다.

"오지 마. 다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허세 부리지 마라."

"허세?"

나는 밸브를 돌렸다.

쉬이익-!

가스 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손끝에서 흑염의 불씨를 피워 올렸다.

"여기 메탄 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이거 터지면 강동구 바닥이 뒤집혀."

박태수가 멈췄다.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미친 새끼..."

"그래. 나 미쳤어.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

나는 불

ep9 (2,619 tokens)

Batch 1: 제4화~제8화 (계속)

제8화: 악마와의 조우 (후반부)

"나는 불꽃을 튕겼다."

박태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내 눈에서 거짓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내 눈에 담긴 건 공허함뿐이었다.

잃을 게 없는 놈이 제일 무섭다. 그는 베테랑답게 그걸 알고 있었다.

"엎드려!"

박태수가 소리치며 뒤로 몸을 날렸다. 신입 조사관의 목덜미를 낚아채 바닥으로 구르는 동작은 전광석화 같았다.

나는 밸브를 완전히 열어젖히고, 손에 쥐고 있던 조명탄의 잔해를 가스 속으로 던졌다.

치지직- 콰앙!

거대한 화염이 터널을 집어삼켰다.

메탄가스는 폭발력이 강하다. 낡은 하수구 천장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콘크리트 덩어리와 흙더미가 박태수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팀장님!"

"콜록! 물러서! 추가 붕괴 위험이 있다!"

너머에서 박태수의 고함이 들렸다.

나는 무너진 잔해를 등지고 어둠 속으로 달렸다.

왼쪽 어깨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총알이 쇄골을 스치고 박힌 모양이다.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지만, 멈출 수 없었다.

'냄새.'

피 냄새를 지워야 한다.

박태수는 시각이 아니라 마력과 후각으로 쫓는 사냥개다.

나는 하수구 벽에 붙은 썩은 이끼와 오물을 닥치는 대로 긁어 상처 부위에 문질렀다.

"윽..."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경고: 상처 부위가 감염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주 '흑염'이 오염 물질을 소각합니다.]

치이익.

검은 불꽃이 상처를 지졌다. 소독이라기보다는 고문에 가까웠다.

하지만 덕분에 피 냄새는 역한 하수구 냄새와 살 타는 냄새에 묻혔다.

나는 미로처럼 얽힌 지하 수로의 가장 깊은 곳, 폐쇄된 구역으로 기어들어 갔다.


무너진 갱도 앞.

박태수는 흙투성이가 된 채 일어났다.

"괜찮나?"

"네, 네... 팀장님은요?"

"찰과상이야."

박태수는 무너진 돌무더기를 노려보았다. 길은 완전히 막혔다.

뚫으려면 중장비가 필요하다. 그사이 강진혁은 이미 서울 반대편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놓쳤습니다. 지원 병력을 반대편 출구로..."

"아니."

박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철수한다."

"네? 하지만 놈이..."

"이 안은 미로야. 그리고 놈은 쥐새끼처럼 길을 알고 있어. 지금 들어가면 우리만 죽어."

박태수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강진혁이 도망치며 흘린, 피 묻은 붕대 조각이었다.

박태수는 붕대 냄새를 맡았다.

지독한 오물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희미한 소독약 냄새.

'자신의 상처를 오물로 덮었어.'

살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고통이고 상관없다는 독기.

단순한 살인마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박태수는 품 안에서 3화 때 챙겼던 '실험 보고서'를 꺼내 보았다.

[피실험체 강진혁. 적합 판정.]

[오로라 길드장 최민석 승인.]

박태수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강진혁 말이 맞을지도 몰라."

"네?"

"우리가 총구를 겨눠야 할 곳이, 하수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태수는 무전기를 켰다.

"상황실. 오로라 길드 최민석 길드장의 최근 1년간 약물 처방 기록, 그리고 길드 자금 내역 전부 뽑아놔. 영장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팀장님, 그러다 윗선 눈에 나면..."

"이미 났어. 가자."

박태수는 막힌 터널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사냥개는 냄새를 맡았다.

진짜 썩은 내가 나는 곳은 이 하수구가 아니라, 지상에 있는 화려한 빌딩 숲이라는 것을.


서울 강남, 오로라 길드 본사 최상층 펜트하우스.

최민석은 통유리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와인잔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작전 실패. 타겟 도주.]

[용병단 전멸. 생존자 없음.]

"하..."

최민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100억을 썼는데 쥐새끼 한 마리를 못 잡다니. 요즘 헌터들 수준 참 처참하네."

그는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F급 짐꾼이었던 강진혁.

착해 빠져서 이용해 먹기 딱 좋았던 녀석이, 이제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넌 최고의 '그릇'이야."

최민석은 책상 위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수십 개 나열되어 있었다.

이수진이 말했던 '억제제'.

하지만 최민석은 그것을 '먹이'라고 불렀다.

그는 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그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크으으..."

최민석의 등 뒤에서 그림자가 솟구쳤다.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눈과 촉수가 달린, 형용할 수 없는 괴물의 형상이었다.

이것은 '성스러운 힘'이 아니었다.

그가 던전 깊은 곳에서 계약한, 이계의 존재.

강진혁의 흑염이 '파괴'라면, 최민석의 힘은 '포식'이었다.

[주인님. 배가 고픕니다.]

그림자가 최민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녀석을 먹고 싶습니다. 흑염을... 그 달콤한 저주를...]

"기다려."

최민석이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붉은색 세로 동공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의 눈으로 돌아왔다.

"과일은 익을수록 맛있는 법이야. 진혁이는 지금 아주 잘 익어가고 있어."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집어 들었다.

강진혁의 가족사진.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그 뒤에서 활짝 웃고 있는 강진혁.

최민석의 손가락이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숨바꼭질은 지루하니까."

그가 사진을 구겼다.

"이제 술래가 나올 차례지."


8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3,9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하수구 탈출 및 대치 -> 박태수의 철수 -> 최민석의 펜트하우스)
  • 등장 캐릭터: 강진혁, 박태수, 최민석, 신입 조사관
  • 메인 플롯 비트: 강진혁의 도주 성공, 박태수의 심경 변화(의심→확신), 최민석의 정체 공개.
  • 서브플롯 진행:
    • Sub C (추적자): 박태수가 강진혁 체포를 보류하고, 오로라 길드(최민석) 수사로 방향을 선회함.
  • 공개된 정보:
    • 최민석의 정체: 그 또한 이계의 존재(포식)와 계약한 괴물임. 억제제를 통해 괴물을 통제/사육하고 있음.
    • 박태수의 선택: 법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진실'을 쫓기로 결심.
  • 심은 복선: 최민석이 강진혁의 어머니 사진을 만지는 장면 -> 다음 화 인질극 예고.
  • 회수한 복선: 3화의 '실험 보고서'가 박태수를 움직이는 결정적 트리거가 됨.
  • 클리프행어: [유형 7] 새로운 등장(본모습) - 최민석이 괴물의 본성을 드러내며 강진혁의 어머니를 노림.
  • 템포: 고속 → 중속 (긴장감 유지)

Batch 1 완료 요약

진행 상황 트래커 업데이트

  • 메인 플롯 진행률: 8/13 (약 60%) - 복수 대상 2명 처치(김철수, 이수진), 최종 보스(최민석)만 남음.
  • 활성 서브플롯:
    • A (치료제): 가짜임이 판명됨. 억제제 확보로 목표 변경.
    • B (저주): 불행 전이가 심해져 사회적 고립 상태.
    • C (추적자): 박태수가 적으로 시작해 잠재적 조력자(또는 방관자)로 포지션 변경 중.
  • 미공개 정보: 최민석이 계약한 괴물의 정확한 정체, 30일 시한부의 정확한 남은 시간.
  • 활성 복선: 최민석이 손에 쥔 '어머니 사진', 강진혁의 남은 억제제(반 병).
  • 회수 완료 복선: 실험 보고서(박태수), 오로라 길드의 자금력(현상금), 치료제의 정체.
  • 다음 배치 예고: 9화부터 13화까지의 클라이맥스. 최민석의 인질극, 강진혁의 정면 돌파, 길드 본부에서의 최종 결전.

일관성 검증

  • 캐릭터: 강진혁의 냉소적이지만 인간적인 딜레마(노인 구출 vs 살인)가 잘 유지됨. 박태수의 예리함과 원칙주의자 면모 강화.
  • : 느와르 특유의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비, 하수구, 피)가 유지됨.
  • 템포: 7~8화의 추격전으로 템포가 최고조에 달함. 9화 초반에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할 수 있음.

Step 09: 후반부 에피소드 집필 (Batch 2)

이제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Batch 2 (9~13화)를 집필할 차례입니다.

Batch 2 집필 방향

  • 9화: 인질(어머니) 위기 발생 → 강진혁의 각성/선전포고.
  • 10화: 길드 본부 돌입 (광역 불행 저주 발동).
  • 11화: 전투의 절정 (저주 vs 포식).
  • 12화: 최민석 처단 및 허무한 승리.
  • 13화: Part 1 엔딩 및 새로운 시작.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스텝 재실행

현재 v2 → v3으로 재생성합니다. 이전 버전은 이력에 보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