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6: 파일럿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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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출물 (v1)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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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 장례식의 불청객

향 냄새가 진동했다.

국화꽃 속에 파묻힌 영정 사진 속의 나는, 참 멍청하게도 활짝 웃고 있었다.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울먹였다. 최민석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오로라'의 길드장이자, 나를 미끼로 던지고 탈출한 파티의 리더.

그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자 검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훌쩍였다.

"강진혁 헌터는... 비록 F급이었지만, 그 용기만큼은 S급이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파티는 전멸했을 겁니다."

거짓말.

"그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개소리.

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대신, 목구멍 안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새어 나왔다.

[경고: 살의(殺意)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저주 '흑염'이 반응합니다.]

치이익.

내가 숨어 있는 화장실 칸의 문고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플라스틱이 녹는 역한 냄새가 났지만, 향 냄새에 묻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왼쪽 뺨. 흰자위 없이 검게 변해버린 눈동자.

일주일 전, 던전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괴물'의 모습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의 약통을 꺼냈다. 진통제였다. 뚜껑을 열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약효는 없었다. 이 불꽃은 약으로 꺼지는 게 아니니까.

밖에서는 여전히 최민석의 추도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편히 잠드소서, 친구여."

나는 거울 속의 괴물에게 속삭였다.

"아니. 아직은 못 자."

육개장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기억은 선명하다.

일주일 전, S급 던전 '공허의 틈'.

보스 룸 공략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해 보였다. 보스가 폭주하기 전까지는.

"퇴로가 막혔어! 누군가 남아서 시간을 끌어야 해!"

탱커 김철수가 소리쳤다.

힐러 이수진은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리더 최민석은 냉정하게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짐꾼이었던 내게 꽂혔다.

"진혁아."

그 부드러운 목소리.

"네가 남라."

"......뭐?"

"어차피 넌 F급이잖아. 짐꾼이고. 여기서 죽어도 길드 차원에서 보상은 넉넉히 해줄게. 네 어머니 요양비, 내가 평생 책임진다."

거절할 틈도 없었다.

김철수의 방패가 나를 밀쳤다. 나는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발톱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미안해하지는 않을게. 이건 다수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니까."

최민석은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고장 난 부품을 폐기하는 공장장의 표정처럼, 건조하고 무심한 미소.

쿵.

방공호의 철문이 닫혔다. 레버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암흑.

그리고 놈들의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등 뒤에서 뜨거운 입김이 느껴졌다.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

아득하고 끔찍한 고통이 시작됐다.

팔이 뜯겨 나갔다. 다리가 으스러졌다. 내장이 쏟아졌다.

신에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깊은 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억울한가?]

어둠 속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놈들을 죽이고 싶은가?]

"......죽인다."

피 거품 섞인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내 영혼 따위 씹어 먹어도 좋으니까... 힘을 줘."

[계약 성립.]

[조건: 저주받은 권능 '흑염(黑炎)'을 부여한다.]

[대가: 당신의 모든 행운과 인간성.]

그 순간, 포식자의 뱃속에서 검은 불길이 폭발했다.

내가 먹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놈을 태운 것이었다.


장례식장 식당은 붐볐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오로라 길드의 장례식이다. 정재계 인사부터 유명 헌터들까지 얼굴을 비추러 왔다.

나는 훔친 검은색 정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기가 찼다.

"아이고, 우리 진혁이 불쌍해서 어쩌나..."

먼 친척이라며 찾아온 고모는 부조금 봉투를 챙기느라 바빴다.

"이번에 오로라 주식 좀 오르겠는데? 위기 관리 능력 보여줬잖아."

주식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세 사람.

리더 최민석. 탱커 김철수. 힐러 이수진.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을 딛고 귀환한 생존자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수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김철수는 꽤나 술이 들어간 얼굴이었다. 최민석은 덤덤하게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리를 지르거나 밥상을 엎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내 안의 인간적인 부분이 불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재만 남은 것처럼.

'이게 흑염의 대가인가.'

감정 대신 살의만이 명확했다.

그때였다.

[살의가 감지되었습니다.]

[주변의 불행 수치가 상승합니다.]

쨍그랑!

내 옆을 지나가던 알바생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걸려 넘어졌다.

뜨거운 육개장이 쏟아졌다. 하필이면 그 국물이 근처에 앉아 있던 험상궂은 남자의 바지에 튀었다.

"아악! 야 이 새끼야! 눈 안 달렸어?"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거 얼마짜린 줄 알아?"

남자가 알바생의 멱살을 잡았다. 순식간에 식당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목표는 저런 조무래기가 아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흡연실로 향하는 거구의 남자.

탱커, 김철수.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

구석진 곳에 김철수의 최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김철수는 대리운전을 부를 생각도 없는지, 비틀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크으... 강진혁 이 새끼... 죽어서도 도움 안 되네. 분위기 우중충하게..."

그는 뒷좌석에 짐을 던져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김철수가 룸미러를 보며 넥타이를 풀었다.

"그래도 뭐... 덕분에 보너스는 두둑하니까."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어를 조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찰칵.

차 문이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 내가 잠갔나?"

김철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뒷좌석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개장이 좀 싱겁더라. 안 그래, 철수야?"

김철수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룸미러로 눈을 돌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김철수가 일주일 전 던전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누... 누구..."

"누구긴. 네가 보너스로 바꾼 친구지."

내가 모자를 벗었다.

일그러진 화상 자국. 검은 역안(逆眼).

인간이라기보다는 악귀에 가까운 형상.

"히, 히익!"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가 이미 녹아 눌어붙어 있었으니까.

[스킬: 흑염(F) 발동]

[대상에게 공포를 부여합니다.]

내 손끝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꽃이 시트에 옮겨붙었다.

가죽 타는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살, 살려줘! 귀신! 귀신이다!"

"귀신 아니야. 아직은."

나는 앞좌석 헤드레스트를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김철수의 굵은 목에 내 차가운 손이 닿았다.

"운전해."

"어, 어디로...?"

김철수가 덜덜 떨며 물었다. 바지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씩 웃었다. 입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지옥으로."


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2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5개 (장례식장 화장실 -> 회상 -> 장례식장 홀 -> 주차장 -> 차 안)
  • 등장 캐릭터: 강진혁(주인공), 최민석(리더/빌런), 김철수(탱커/타겟), 이수진(힐러)
  • 공개된 설정:
    • F급 짐꾼이었던 주인공이 배신당해 S급 던전에서 각성함.
    • 각성 능력 '흑염'은 살의에 반응하며, 대가로 행운과 인간성을 가져감.
    • 주인공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됨.
  • 심은 복선:
    • '적합자'에 대한 언급은 아직 없음(2화 예정).
    • 주인공의 감정이 메말라 있음(인간성 상실 떡밥).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7] 새로운 등장 + [유형 4] 위기
  • 다음 화 연결 방식: 차 안에서의 대화와 납치 과정으로 직접 연결.

2화: 악마의 속삭임

"으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꺾었다.

끼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최고급 세단이 통제력을 잃고 도로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쾅!

굉음과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김철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다.'

뒷좌석에 탄 놈은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 이 속도로 들이받았으니, 놈은 앞 유리를 뚫고 튕겨 나갔을 것이다.

귀신이든 뭐든, 물리법칙은 거스를 수 없으리라.

"으으..."

김철수는 터진 에어백을 치우며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시야를 가렸다.

운전석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적한 국도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차의 보닛이 찌그러진 채 연기를 뿜고 있었다.

"하아, 하아..."

김철수는 비틀거리며 뒷좌석 쪽을 확인했다.

문은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창문 안쪽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어... 죽었을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S급 헌터인 자신도 '강철 피부(Iron Skin)' 스킬을 본능적으로 켜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충격이었다. F급 짐꾼 따위가, 아무리 기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들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찌그러진 뒷좌석 문이 안쪽에서부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마치 용광로에 쇠를 녹이듯, 강철 프레임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검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김철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문짝이 뜯겨 나갔다.

연기가 자욱한 차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검은 정장.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는 손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운전 실력이 형편없네, 철수야."

강진혁이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충격마저 집어삼킨 듯한 불길한 기운.

"마, 말도 안 돼..."

김철수는 뒷걸음질 쳤다.

"내 차는... 특수 합금으로 보강된..."

"그래서 더 잘 타더라."

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가자. 여기서 멀지 않잖아? 우리가 자주 가던 그곳."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김철수가 다급하게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강철의 성채(B) 발동]

그의 피부가 은회색 금속 광택으로 뒤덮였다. S급 몬스터의 발톱도 막아내는 탱커의 자존심.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공포를 잊기 위한 필사적인 일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텁.

진혁의 손이 김철수의 강철 주먹을 가볍게 받아냈다.

"이거, 예전엔 참 든든했는데."

진혁의 손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뱀처럼 기어 나와 김철수의 팔을 감았다.

"끄아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질렀다.

강철 피부가 녹는 게 아니었다. 피부 안쪽, 근육과 신경을 불꽃이 직접 태우고 있었다. 물리적 방어력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고통.

"이제 보니 껍데기뿐이었네."

진혁이 손에 힘을 주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김철수의 손목이 꺾였다.

"살, 살려줘! 제발!"

"조용히 해. 사람들 깨겠다."

진혁은 축 늘어진 김철수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도로 아래, 버려진 폐공장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같은 시각. S급 던전 '공허의 틈' 입구.

폴리스 라인이 쳐진 붕괴 현장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는 이미 수색이 끝난 곳 아닙니까?"

신입 조사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박태수 팀장은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헌터 협회 감사관이자, S급 탐지 헌터인 박태수.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을 읽는다.

"김 조사관."

"네?"

"보통 던전이 붕괴하면 몬스터의 사체는 마석으로 변하고, 헌터의 사체는 훼손된 채로 남지."

박태수가 무너진 바위 틈새를 가리켰다.

"그런데 여길 봐라."

신입이 랜턴을 비췄다. 바위 표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 흔적입니까? 마법사 계열 헌터가 있었나 보죠."

"아니. 이건 불이 아니야."

박태수가 장갑 낀 손으로 그을음을 문질렀다.

"마력 반응이 '제로'다."

"네? 그게 무슨..."

"마법으로 태운 게 아니란 소리야. 그렇다고 일반적인 불도 아니고. 무엇보다..."

박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서 죽었다던 F급 짐꾼, 강진혁. 시신이 안 나왔지?"

"몬스터한테 먹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뼈도 안 남을 정도로요."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는 먹이를 씹어 먹지, 태워 먹진 않아."

박태수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반쯤 녹아내린 헌터 단말기 조각이었다.

"누군가 여기서 살아 나갔어. 그것도 아주 지독한 힘을 각성한 채로."

"생존자요? 그럼 왜 신고를 안 하고..."

"신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겠지."

박태수가 단말기 조각을 증거물 봉투에 넣었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돌아왔는데, 동료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라..."

그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배신. 은폐. 그리고 복수.

박태수는 휴대폰을 꺼냈다.

"위치 추적 팀 연결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의 현재 위치 파악한다."

"김철수 헌터요? 지금 장례식장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 놈의 마력 파장이 불안정해.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쥐새끼의 파장이야."

박태수의 눈빛이 밤보다 더 어둡게 빛났다.

"서둘러. 시체가 늘어나기 전에."


치이익.

살 타는 냄새가 폐공장을 가득 채웠다.

김철수는 녹슨 기둥에 묶인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의 강철 피부는 이제 너덜너덜해져 본래의 살색을 찾기 힘들었다.

진혁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철수야. 나 궁금한 게 있어."

"......"

"그때 최민석이 그랬잖아. '합리적 선택'이라고."

진혁이 담배 연기를 김철수의 얼굴에 뿜었다.

"짐꾼 하나 죽여서 셋이 사는 게 합리적인 건 알겠어. 근데 왜 하필 나였을까?"

김철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냥... 네가 제일 약해서..."

"거짓말."

화르륵.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다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으아아악! 말할게! 말한다고!"

김철수가 발버둥 쳤다. 공포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섰다.

눈앞의 강진혁은 예전의 그 순박한 청년이 아니었다.

인간의 가죽을 쓴 악마. 아니, 저주 그 자체였다.

"네가... '적합자(Adapter)'라서 그랬어!"

진혁의 손이 멈췄다.

"적합자?"

"나, 나도 자세히는 몰라! 민석이 형이... 아니, 최민석 그 새끼가 위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했어! 던전의 마력을 몸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고!"

"그릇?"

"그래! 널 제물로 바쳐서... 던전의 힘을 추출하려고 했던 거야! 죽이려던 게 아니라, 널 괴물로 만들어서... 실험체로 쓰려고!"

진혁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게 변한 손톱. 혈관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살의.

우연히 각성한 게 아니었다.

놈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이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건,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실험'이었다.

"하,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신감보다 더 큰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고작 실험용 쥐새끼였구나. 내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짐꾼 노릇을 하던 그 시간들이, 놈들에게는 그저 실험 준비 기간이었구나.

[분노가 한계치를 초과합니다.]

[저주 '흑염'이 폭주하려 합니다.]

공장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의 전등이 파직거리며 터져 나갔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금이 가며 쩍쩍 갈라졌다.

"히익! 진, 진혁아! 진정해! 나, 나 살려주면 좋은 거 줄게!"

김철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필요 없어. 네 목숨보다 좋은 건 없으니까."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이며 김철수를 덮쳤다.

"아니야! 진짜야! 너 이거 원하잖아!"

김철수가 묶인 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기... 내 스마트 키... 차 트렁크에 금고가 있어!"

"돈? 주식? 그딴 걸로 내 목숨값을 퉁치시겠다?"

"아니! 돈 아니야!"

김철수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치료제! 각성 해제제라고!"

진혁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뭐?"

"네가 된 그거... 괴물 같은 거... 다시 인간으로 돌릴 수 있는 약이라고!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린 거야!"

각성 해제제.

헌터 업계에서는 도시전설로만 취급되는 물건이다.

한 번 각성한 헌터는 죽을 때까지 마력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걸 되돌릴 수 있다고?

"거짓말이면, 넌 곱게 못 죽어."

진혁이 김철수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진짜야... 나도 그거 훔친 거야. 팔면 수백억은 받으니까... 제발, 그거 줄게. 살려만 줘."

진혁은 반신반의하며 공장 밖으로 나갔다.

찌그러진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바닥 매트를 걷어내자 작은 휴대용 금고가 보였다.

김철수가 불러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

금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현금 뭉치와 함께, 푸른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작은 유리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낡은 서류 봉투.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 피실험체 강진혁]

진혁의 손이 떨렸다.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감촉.

이것만 마시면.

이 지긋지긋한 살의도, 흉측한 얼굴도, 저주받은 운명도 끝낼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퇴근길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어머니와 통화하는 평범한 강진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혁아... 봤지? 그거 진짜야..."

어느새 기어 나온 김철수가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다가왔다.

"약속... 지킬 거지? 우리 친구잖아..."

진혁은 푸른 약병을 불빛에 비춰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액체는 마치 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서류 봉투의 마지막 장에 머물렀다.

[경고: 본 약물은 완성되지 않았음. 부작용 치사율 98%.]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철수야."

"으, 응?"

"이거, 네가 먼저 마셔볼래?"

진혁이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뭐...?"

"실험체라며. 그럼 임상 실험은 계속해야지."

진혁의 손에서 흑염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고, 흉포한 불길이었다.

"아, 안 돼! 그건 안 돼!"

김철수가 절규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태수 팀장이 이끄는 협회 차량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약병을 품에 넣고, 김철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 가라. 내 첫 번째 복수."


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68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4개 (도로변 사고 현장 -> 폐공장 심문 -> 던전 붕괴 현장 -> 폐공장 클라이맥스)
  • 등장 캐릭터: 강진혁, 김철수, 박태수(신규), 신입 조사관(단역)
  • 공개된 설정:
    • 적합자(Adapter): 던전의 힘을 담을 수 있는 특이 체질. 주인공의 각성은 계획된 실험이었다.
    • 강철의 성채: 김철수의 방어 스킬. 흑염 앞에서는 무용지물.
    • 각성 해제제: 헌터를 일반인으로 되돌리는 약. 현재는 미완성 상태.
  • 심은 복선:
    • 박태수의 예리한 추리력 (주인공을 쫓는 사냥개 역할).
    • 치료제의 부작용 (치사율 98%).
    •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렸다"는 대사 (배후 세력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2] 폭로/반전 + [유형 6] 선택의 기로
  • 다음 화 연결 방식: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처형 집행, 그리고 3화의 빠른 도주로 연결.

3화: 일상으로의 티켓

"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은 짧았다.

검은 불꽃이 김철수의 전신을 휘감았다. 살 타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흑염은 냄새와 소리, 그리고 흔적까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저주였으니까.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 10대 탱커 중 하나라던 김철수는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복수 대상 1/3 처치]

[저주 '흑염'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나는 멍하니 재가 흩어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후련할 줄 알았다. 놈이 고통스럽게 죽으면, 내 안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 남은 건 더 깊고 차가운 구멍뿐이었다.

"허무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품 안의 푸른 약병을 꺼냈다.

미완성 치료제. 치사율 98%.

이게 내 유일한 희망이라니.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폐공장 입구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이닥쳤다.

"협회 감사팀이다! 안에는 무장 해제하고 나와라!"

확성기 소리. 박태수 팀장이겠지. 냄새 한 번 기가 막히게 맡는 사냥개.

지금 내 몸 상태로 협회 정예 요원들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흑염을 쓰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내 인간성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도망쳐야 해.'

나는 김철수의 차 트렁크에 있던 현금 뭉치를 가방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뒷문으로 달렸다.


"진입!"

박태수가 지시하자마자 무장 요원들이 폐공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텅 빈 의자와 바닥에 남은 검은 그을음뿐이었다.

"팀장님! 아무도 없습니다!"

"도주했나 봅니다. 차량은 그대로 있습니다."

박태수는 천천히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잿가루 앞에 멈춰 섰다. 장갑 낀 손으로 재를 찍어 맛을 보듯 냄새를 맡았다.

"마력 반응 제로. 완전 소각."

그의 시선이 바닥에 뒹구는 서류 봉투로 향했다.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박태수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내용을 훑어내려가는 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이런 미친..."

오로라 길드. 그리고 협회 상층부의 일부가 연루된 불법 실험.

죽은 줄 알았던 강진혁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놈들이 만든 '괴물'이자, 유일한 '증거'였다.

"팀장님, 이걸 보십시오."

신입 조사관이 기둥을 가리켰다.

불에 탄 기둥에는 칼로 깊게 그은 듯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약은 내가 가져간다.]

[퇴직금 정산은 아직 안 끝났다.]

박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퇴직금이라..."

그는 서류를 품에 넣었다.

"전원 철수한다."

"네? 범인을 안 쫓습니까?"

"이건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박태수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놈은 멈추지 않을 거다. 우리가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시체 냄새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어."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며 몸에 묻은 재를 씻어냈다. 하지만 거울 속의 흉측한 화상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후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김철수의 금고에서 가져온 서류를 다시 읽었다.

마지막 장에 적힌 메모.

[임상 실험 실패. 샘플 01 폐기. 샘플 02는 리더 최민석이 보관 중.]

[참고: 샘플 02는 부작용이 제거된 완성본일 가능성 높음.]

심장이 쿵쿵 뛰었다.

김철수가 준 건 폐기된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최민석이 가진 건 '완성본'일 수 있다.

그것만 있다면.

이 저주를 풀고, 흉터를 지우고, 다시 어머니 앞에 아들로서 설 수 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평범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최민석은 오로라 길드의 수장이다.

그의 주변에는 수백 명의 헌터가 있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인 길드 본부 펜트하우스에 산다.

지금의 내 힘으로 그를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약을 숨겨두거나 파괴한다면?

단순한 암살로는 안 된다.

놈을 공포에 질리게 해서, 제 발로 약을 꺼내게 만들어야 한다.

띠링.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대포폰으로 켠 뉴스 속보였다.

[속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 실종. 현장에서 다량의 혈흔 발견.]

[길드 측 "테러 행위 용납 못 해"... 대대적 수사 예고.]

화면 속에 최민석이 나오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겨 비통합니다. 범인이 누구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뻔뻔한 낯짝.

저 위선적인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

나를 실험체로 쓰고, 김철수를 버리고, 이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화가 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화에서의 분노가 뜨거운 불길이었다면, 지금의 분노는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칼날 같았다.

[조건 충족: 명확한 목표 설정]

[히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헌터 자격 박탈]

- 목표: 리더 최민석 처단 및 '완성된 치료제' 탈취
- 제한 시간: 30일 (이후 흑염이 심장을 잠식함)
- 보상: 저주 해제, 일상으로의 귀환
- 실패 시: 사망 또는 완전한 마물화(魔物化)

30일.

내게 남은 인간으로서의 유통기한.

나는 푸른 약병(실패작)을 들어 올렸다.

비록 치사율 98%의 독약이지만, 지금은 이것조차 무기가 될 수 있다.

흑염의 고통이 너무 심할 때, 혹은 일시적으로 폭주를 막아야 할 때.

목숨을 걸고 마셔야 할 진통제.

"기다려라, 최민석."

나는 뉴스 화면 속의 최민석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치이익.

액정 화면이 검게 타들어가며 최민석의 얼굴에 X자가 그어졌다.

"내 퇴직금, 이자까지 쳐서 받으러 갈 테니까."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다음 타겟은 힐러 이수진.

그녀는 최민석의 금고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주최하는 자선 파티가 내일 밤 열린다.

초대장은 필요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지옥이니까.

나는 검은 모자를 눌러썼다. 거울 속의 괴물이 씨익 웃었다.

사냥은 이제 시작이다.


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2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폐공장 처형 -> 박태수의 현장 조사 -> 모텔 은신처)
  • 등장 캐릭터: 강진혁, 박태수, 최민석(뉴스 화면), 신입 조사관
  • 공개된 설정:
    • 메인 퀘스트: 30일이라는 타임 리밋 설정. 실패 시 마물화.
    • 완성된 치료제: 최민석이 보관 중. 주인공의 최종 목표(MacGuffin).
    • 흑염의 특성: 소리, 냄새, 흔적을 지우는 완전 소각 능력.
  • 심은 복선:
    • 박태수가 챙긴 '실험 보고서' (향후 협회 내부 고발의 트리거).
    • 실패작 약병 (위기의 순간에 도박처럼 사용될 아이템).
    • 다음 타겟 이수진과 자선 파티 (4화 배경 예고).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1+6] 미해결 갈등 + 새로운 목표 (Quest)
  • 다음 화 연결 방식: 모텔을 나서며 힐러 이수진의 파티장으로 향하는 암시.

3화 결제 유도 분석

  • 즉각적 궁금증: 주인공은 어떻게 보안이 철통같은 자선 파티장에 잠입하여 이수진을 사냥할 것인가?
  • 중기적 궁금증: 30일 안에 최민석을 죽이고 '완성된 치료제'를 얻을 수 있을까? 실패작 약병은 언제 쓰이게 될까?
  • 장기적 궁금증: 박태수는 주인공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진실(실험)을 파헤치고 협력할 것인가?
  • 독자 감정 상태: 배신자에 대한 분노 + 시한부 인생인 주인공에 대한 연민 + '치료'라는 희망에 대한 응원.
  • 예상 결제 전환 동기:
    1. 명확한 보상: 단순 복수가 아니라 '치료'라는 확실한 보상이 제시됨.
    2. 긴장감: 30일 시한부 설정으로 루즈함 방지.
    3. 사이다 기대: 1화부터 보여준 가차 없는 전개로, 다음 화에서도 시원한 복수를 기대하게 함.

1화: 내 장례식의 불청객

향 냄새가 진동했다.

국화꽃 속에 파묻힌 영정 사진 속의 나는, 참 멍청하게도 활짝 웃고 있었다.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울먹였다. 최민석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오로라'의 길드장이자, 나를 미끼로 던지고 탈출한 파티의 리더.

그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자 검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훌쩍였다.

"강진혁 헌터는... 비록 F급이었지만, 그 용기만큼은 S급이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파티는 전멸했을 겁니다."

거짓말.

"그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개소리.

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대신, 목구멍 안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새어 나왔다.

[경고: 살의(殺意)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저주 '흑염'이 반응합니다.]

치이익.

내가 숨어 있는 화장실 칸의 문고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플라스틱이 녹는 역한 냄새가 났지만, 향 냄새에 묻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왼쪽 뺨. 흰자위 없이 검게 변해버린 눈동자.

일주일 전, 던전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괴물'의 모습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의 약통을 꺼냈다. 진통제였다. 뚜껑을 열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약효는 없었다. 이 불꽃은 약으로 꺼지는 게 아니니까.

밖에서는 여전히 최민석의 추도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편히 잠드소서, 친구여."

나는 거울 속의 괴물에게 속삭였다.

"아니. 아직은 못 자."

육개장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기억은 선명하다.

일주일 전, S급 던전 '공허의 틈'.

보스 룸 공략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해 보였다. 보스가 폭주하기 전까지는.

"퇴로가 막혔어! 누군가 남아서 시간을 끌어야 해!"

탱커 김철수가 소리쳤다.

힐러 이수진은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리더 최민석은 냉정하게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짐꾼이었던 내게 꽂혔다.

"진혁아."

그 부드러운 목소리.

"네가 남라."

"......뭐?"

"어차피 넌 F급이잖아. 짐꾼이고. 여기서 죽어도 길드 차원에서 보상은 넉넉히 해줄게. 네 어머니 요양비, 내가 평생 책임진다."

거절할 틈도 없었다.

김철수의 방패가 나를 밀쳤다. 나는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발톱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미안해하지는 않을게. 이건 다수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니까."

최민석은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고장 난 부품을 폐기하는 공장장의 표정처럼, 건조하고 무심한 미소.

쿵.

방공호의 철문이 닫혔다. 레버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암흑.

그리고 놈들의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등 뒤에서 뜨거운 입김이 느껴졌다.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

아득하고 끔찍한 고통이 시작됐다.

팔이 뜯겨 나갔다. 다리가 으스러졌다. 내장이 쏟아졌다.

신에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깊은 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억울한가?]

어둠 속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놈들을 죽이고 싶은가?]

"......죽인다."

피 거품 섞인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내 영혼 따위 씹어 먹어도 좋으니까... 힘을 줘."

[계약 성립.]

[조건: 저주받은 권능 '흑염(黑炎)'을 부여한다.]

[대가: 당신의 모든 행운과 인간성.]

그 순간, 포식자의 뱃속에서 검은 불길이 폭발했다.

내가 먹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놈을 태운 것이었다.


장례식장 식당은 붐볐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오로라 길드의 장례식이다. 정재계 인사부터 유명 헌터들까지 얼굴을 비추러 왔다.

나는 훔친 검은색 정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기가 찼다.

"아이고, 우리 진혁이 불쌍해서 어쩌나..."

먼 친척이라며 찾아온 고모는 부조금 봉투를 챙기느라 바빴다.

"이번에 오로라 주식 좀 오르겠는데? 위기 관리 능력 보여줬잖아."

주식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세 사람.

리더 최민석. 탱커 김철수. 힐러 이수진.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을 딛고 귀환한 생존자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수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김철수는 꽤나 술이 들어간 얼굴이었다. 최민석은 덤덤하게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리를 지르거나 밥상을 엎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내 안의 인간적인 부분이 불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재만 남은 것처럼.

'이게 흑염의 대가인가.'

감정 대신 살의만이 명확했다.

그때였다.

[살의가 감지되었습니다.]

[주변의 불행 수치가 상승합니다.]

쨍그랑!

내 옆을 지나가던 알바생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걸려 넘어졌다.

뜨거운 육개장이 쏟아졌다. 하필이면 그 국물이 근처에 앉아 있던 험상궂은 남자의 바지에 튀었다.

"아악! 야 이 새끼야! 눈 안 달렸어?"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거 얼마짜린 줄 알아?"

남자가 알바생의 멱살을 잡았다. 순식간에 식당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목표는 저런 조무래기가 아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흡연실로 향하는 거구의 남자.

탱커, 김철수.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

구석진 곳에 김철수의 최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김철수는 대리운전을 부를 생각도 없는지, 비틀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크으... 강진혁 이 새끼... 죽어서도 도움 안 되네. 분위기 우중충하게..."

그는 뒷좌석에 짐을 던져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김철수가 룸미러를 보며 넥타이를 풀었다.

"그래도 뭐... 덕분에 보너스는 두둑하니까."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어를 조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찰칵.

차 문이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 내가 잠갔나?"

김철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뒷좌석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개장이 좀 싱겁더라. 안 그래, 철수야?"

김철수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룸미러로 눈을 돌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김철수가 일주일 전 던전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누... 누구..."

"누구긴. 네가 보너스로 바꾼 친구지."

내가 모자를 벗었다.

일그러진 화상 자국. 검은 역안(逆眼).

인간이라기보다는 악귀에 가까운 형상.

"히, 히익!"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가 이미 녹아 눌어붙어 있었으니까.

[스킬: 흑염(F) 발동]

[대상에게 공포를 부여합니다.]

내 손끝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꽃이 시트에 옮겨붙었다.

가죽 타는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살, 살려줘! 귀신! 귀신이다!"

"귀신 아니야. 아직은."

나는 앞좌석 헤드레스트를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김철수의 굵은 목에 내 차가운 손이 닿았다.

"운전해."

"어, 어디로...?"

김철수가 덜덜 떨며 물었다. 바지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씩 웃었다. 입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지옥으로."


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2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5개 (장례식장 화장실 -> 회상 -> 장례식장 홀 -> 주차장 -> 차 안)
  • 등장 캐릭터: 강진혁(주인공), 최민석(리더/빌런), 김철수(탱커/타겟), 이수진(힐러)
  • 공개된 설정:
    • F급 짐꾼이었던 주인공이 배신당해 S급 던전에서 각성함.
    • 각성 능력 '흑염'은 살의에 반응하며, 대가로 행운과 인간성을 가져감.
    • 주인공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됨.
  • 심은 복선:
    • '적합자'에 대한 언급은 아직 없음(2화 예정).
    • 주인공의 감정이 메말라 있음(인간성 상실 떡밥).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7] 새로운 등장 + [유형 4] 위기
  • 다음 화 연결 방식: 차 안에서의 대화와 납치 과정으로 직접 연결.

2화: 악마의 속삭임

"으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꺾었다.

끼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최고급 세단이 통제력을 잃고 도로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쾅!

굉음과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김철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다.'

뒷좌석에 탄 놈은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 이 속도로 들이받았으니, 놈은 앞 유리를 뚫고 튕겨 나갔을 것이다.

귀신이든 뭐든, 물리법칙은 거스를 수 없으리라.

"으으..."

김철수는 터진 에어백을 치우며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시야를 가렸다.

운전석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적한 국도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차의 보닛이 찌그러진 채 연기를 뿜고 있었다.

"하아, 하아..."

김철수는 비틀거리며 뒷좌석 쪽을 확인했다.

문은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창문 안쪽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어... 죽었을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S급 헌터인 자신도 '강철 피부(Iron Skin)' 스킬을 본능적으로 켜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충격이었다. F급 짐꾼 따위가, 아무리 기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들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찌그러진 뒷좌석 문이 안쪽에서부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마치 용광로에 쇠를 녹이듯, 강철 프레임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검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김철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문짝이 뜯겨 나갔다.

연기가 자욱한 차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검은 정장.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는 손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운전 실력이 형편없네, 철수야."

강진혁이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충격마저 집어삼킨 듯한 불길한 기운.

"마, 말도 안 돼..."

김철수는 뒷걸음질 쳤다.

"내 차는... 특수 합금으로 보강된..."

"그래서 더 잘 타더라."

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가자. 여기서 멀지 않잖아? 우리가 자주 가던 그곳."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김철수가 다급하게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강철의 성채(B) 발동]

그의 피부가 은회색 금속 광택으로 뒤덮였다. S급 몬스터의 발톱도 막아내는 탱커의 자존심.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공포를 잊기 위한 필사적인 일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텁.

진혁의 손이 김철수의 강철 주먹을 가볍게 받아냈다.

"이거, 예전엔 참 든든했는데."

진혁의 손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뱀처럼 기어 나와 김철수의 팔을 감았다.

"끄아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질렀다.

강철 피부가 녹는 게 아니었다. 피부 안쪽, 근육과 신경을 불꽃이 직접 태우고 있었다. 물리적 방어력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고통.

"이제 보니 껍데기뿐이었네."

진혁이 손에 힘을 주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김철수의 손목이 꺾였다.

"살, 살려줘! 제발!"

"조용히 해. 사람들 깨겠다."

진혁은 축 늘어진 김철수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도로 아래, 버려진 폐공장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같은 시각. S급 던전 '공허의 틈' 입구.

폴리스 라인이 쳐진 붕괴 현장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는 이미 수색이 끝난 곳 아닙니까?"

신입 조사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박태수 팀장은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헌터 협회 감사관이자, S급 탐지 헌터인 박태수.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을 읽는다.

"김 조사관."

"네?"

"보통 던전이 붕괴하면 몬스터의 사체는 마석으로 변하고, 헌터의 사체는 훼손된 채로 남지."

박태수가 무너진 바위 틈새를 가리켰다.

"그런데 여길 봐라."

신입이 랜턴을 비췄다. 바위 표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 흔적입니까? 마법사 계열 헌터가 있었나 보죠."

"아니. 이건 불이 아니야."

박태수가 장갑 낀 손으로 그을음을 문질렀다.

"마력 반응이 '제로'다."

"네? 그게 무슨..."

"마법으로 태운 게 아니란 소리야. 그렇다고 일반적인 불도 아니고. 무엇보다..."

박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서 죽었다던 F급 짐꾼, 강진혁. 시신이 안 나왔지?"

"몬스터한테 먹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뼈도 안 남을 정도로요."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는 먹이를 씹어 먹지, 태워 먹진 않아."

박태수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반쯤 녹아내린 헌터 단말기 조각이었다.

"누군가 여기서 살아 나갔어. 그것도 아주 지독한 힘을 각성한 채로."

"생존자요? 그럼 왜 신고를 안 하고..."

"신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겠지."

박태수가 단말기 조각을 증거물 봉투에 넣었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돌아왔는데, 동료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라..."

그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배신. 은폐. 그리고 복수.

박태수는 휴대폰을 꺼냈다.

"위치 추적 팀 연결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의 현재 위치 파악한다."

"김철수 헌터요? 지금 장례식장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 놈의 마력 파장이 불안정해.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쥐새끼의 파장이야."

박태수의 눈빛이 밤보다 더 어둡게 빛났다.

"서둘러. 시체가 늘어나기 전에."


치이익.

살 타는 냄새가 폐공장을 가득 채웠다.

김철수는 녹슨 기둥에 묶인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의 강철 피부는 이제 너덜너덜해져 본래의 살색을 찾기 힘들었다.

진혁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철수야. 나 궁금한 게 있어."

"......"

"그때 최민석이 그랬잖아. '합리적 선택'이라고."

진혁이 담배 연기를 김철수의 얼굴에 뿜었다.

"짐꾼 하나 죽여서 셋이 사는 게 합리적인 건 알겠어. 근데 왜 하필 나였을까?"

김철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냥... 네가 제일 약해서..."

"거짓말."

화르륵.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다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으아아악! 말할게! 말한다고!"

김철수가 발버둥 쳤다. 공포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섰다.

눈앞의 강진혁은 예전의 그 순박한 청년이 아니었다.

인간의 가죽을 쓴 악마. 아니, 저주 그 자체였다.

"네가... '적합자(Adapter)'라서 그랬어!"

진혁의 손이 멈췄다.

"적합자?"

"나, 나도 자세히는 몰라! 민석이 형이... 아니, 최민석 그 새끼가 위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했어! 던전의 마력을 몸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고!"

"그릇?"

"그래! 널 제물로 바쳐서... 던전의 힘을 추출하려고 했던 거야! 죽이려던 게 아니라, 널 괴물로 만들어서... 실험체로 쓰려고!"

진혁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게 변한 손톱. 혈관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살의.

우연히 각성한 게 아니었다.

놈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이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건,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실험'이었다.

"하,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신감보다 더 큰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고작 실험용 쥐새끼였구나. 내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짐꾼 노릇을 하던 그 시간들이, 놈들에게는 그저 실험 준비 기간이었구나.

[분노가 한계치를 초과합니다.]

[저주 '흑염'이 폭주하려 합니다.]

공장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의 전등이 파직거리며 터져 나갔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금이 가며 쩍쩍 갈라졌다.

"히익! 진, 진혁아! 진정해! 나, 나 살려주면 좋은 거 줄게!"

김철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필요 없어. 네 목숨보다 좋은 건 없으니까."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이며 김철수를 덮쳤다.

"아니야! 진짜야! 너 이거 원하잖아!"

김철수가 묶인 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기... 내 스마트 키... 차 트렁크에 금고가 있어!"

"돈? 주식? 그딴 걸로 내 목숨값을 퉁치시겠다?"

"아니! 돈 아니야!"

김철수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치료제! 각성 해제제라고!"

진혁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뭐?"

"네가 된 그거... 괴물 같은 거... 다시 인간으로 돌릴 수 있는 약이라고!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린 거야!"

각성 해제제.

헌터 업계에서는 도시전설로만 취급되는 물건이다.

한 번 각성한 헌터는 죽을 때까지 마력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걸 되돌릴 수 있다고?

"거짓말이면, 넌 곱게 못 죽어."

진혁이 김철수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진짜야... 나도 그거 훔친 거야. 팔면 수백억은 받으니까... 제발, 그거 줄게. 살려만 줘."

진혁은 반신반의하며 공장 밖으로 나갔다.

찌그러진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바닥 매트를 걷어내자 작은 휴대용 금고가 보였다.

김철수가 불러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

금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현금 뭉치와 함께, 푸른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작은 유리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낡은 서류 봉투.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 피실험체 강진혁]

진혁의 손이 떨렸다.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감촉.

이것만 마시면.

이 지긋지긋한 살의도, 흉측한 얼굴도, 저주받은 운명도 끝낼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퇴근길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어머니와 통화하는 평범한 강진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혁아... 봤지? 그거 진짜야..."

어느새 기어 나온 김철수가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다가왔다.

"약속... 지킬 거지? 우리 친구잖아..."

진혁은 푸른 약병을 불빛에 비춰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액체는 마치 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서류 봉투의 마지막 장에 머물렀다.

[경고: 본 약물은 완성되지 않았음. 부작용 치사율 98%.]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철수야."

"으, 응?"

"이거, 네가 먼저 마셔볼래?"

진혁이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뭐...?"

"실험체라며. 그럼 임상 실험은 계속해야지."

진혁의 손에서 흑염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고, 흉포한 불길이었다.

"아, 안 돼! 그건 안 돼!"

김철수가 절규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태수 팀장이 이끄는 협회 차량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약병을 품에 넣고, 김철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 가라. 내 첫 번째 복수."


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68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4개 (도로변 사고 현장 -> 폐공장 심문 -> 던전 붕괴 현장 -> 폐공장 클라이맥스)
  • 등장 캐릭터: 강진혁, 김철수, 박태수(신규), 신입 조사관(단역)
  • 공개된 설정:
    • 적합자(Adapter): 던전의 힘을 담을 수 있는 특이 체질. 주인공의 각성은 계획된 실험이었다.
    • 강철의 성채: 김철수의 방어 스킬. 흑염 앞에서는 무용지물.
    • 각성 해제제: 헌터를 일반인으로 되돌리는 약. 현재는 미완성 상태.
  • 심은 복선:
    • 박태수의 예리한 추리력 (주인공을 쫓는 사냥개 역할).
    • 치료제의 부작용 (치사율 98%).
    •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렸다"는 대사 (배후 세력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2] 폭로/반전 + [유형 6] 선택의 기로
  • 다음 화 연결 방식: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처형 집행, 그리고 3화의 빠른 도주로 연결.

3화: 일상으로의 티켓

"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은 짧았다.

검은 불꽃이 김철수의 전신을 휘감았다. 살 타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흑염은 냄새와 소리, 그리고 흔적까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저주였으니까.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 10대 탱커 중 하나라던 김철수는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복수 대상 1/3 처치]

[저주 '흑염'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나는 멍하니 재가 흩어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후련할 줄 알았다. 놈이 고통스럽게 죽으면, 내 안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 남은 건 더 깊고 차가운 구멍뿐이었다.

"허무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품 안의 푸른 약병을 꺼냈다.

미완성 치료제. 치사율 98%.

이게 내 유일한 희망이라니.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폐공장 입구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이닥쳤다.

"협회 감사팀이다! 안에는 무장 해제하고 나와라!"

확성기 소리. 박태수 팀장이겠지. 냄새 한 번 기가 막히게 맡는 사냥개.

지금 내 몸 상태로 협회 정예 요원들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흑염을 쓰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내 인간성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도망쳐야 해.'

나는 김철수의 차 트렁크에 있던 현금 뭉치를 가방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뒷문으로 달렸다.


"진입!"

박태수가 지시하자마자 무장 요원들이 폐공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텅 빈 의자와 바닥에 남은 검은 그을음뿐이었다.

"팀장님! 아무도 없습니다!"

"도주했나 봅니다. 차량은 그대로 있습니다."

박태수는 천천히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잿가루 앞에 멈춰 섰다. 장갑 낀 손으로 재를 찍어 맛을 보듯 냄새를 맡았다.

"마력 반응 제로. 완전 소각."

그의 시선이 바닥에 뒹구는 서류 봉투로 향했다.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박태수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내용을 훑어내려가는 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이런 미친..."

오로라 길드. 그리고 협회 상층부의 일부가 연루된 불법 실험.

죽은 줄 알았던 강진혁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놈들이 만든 '괴물'이자, 유일한 '증거'였다.

"팀장님, 이걸 보십시오."

신입 조사관이 기둥을 가리켰다.

불에 탄 기둥에는 칼로 깊게 그은 듯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약은 내가 가져간다.]

[퇴직금 정산은 아직 안 끝났다.]

박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퇴직금이라..."

그는 서류를 품에 넣었다.

"전원 철수한다."

"네? 범인을 안 쫓습니까?"

"이건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박태수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놈은 멈추지 않을 거다. 우리가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시체 냄새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어."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며 몸에 묻은 재를 씻어냈다. 하지만 거울 속의 흉측한 화상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후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김철수의 금고에서 가져온 서류를 다시 읽었다.

마지막 장에 적힌 메모.

[임상 실험 실패. 샘플 01 폐기. 샘플 02는 리더 최민석이 보관 중.]

[참고: 샘플 02는 부작용이 제거된 완성본일 가능성 높음.]

심장이 쿵쿵 뛰었다.

김철수가 준 건 폐기된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최민석이 가진 건 '완성본'일 수 있다.

그것만 있다면.

이 저주를 풀고, 흉터를 지우고, 다시 어머니 앞에 아들로서 설 수 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평범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최민석은 오로라 길드의 수장이다.

그의 주변에는 수백 명의 헌터가 있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인 길드 본부 펜트하우스에 산다.

지금의 내 힘으로 그를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약을 숨겨두거나 파괴한다면?

단순한 암살로는 안 된다.

놈을 공포에 질리게 해서, 제 발로 약을 꺼내게 만들어야 한다.

띠링.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대포폰으로 켠 뉴스 속보였다.

[속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 실종. 현장에서 다량의 혈흔 발견.]

[길드 측 "테러 행위 용납 못 해"... 대대적 수사 예고.]

화면 속에 최민석이 나오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겨 비통합니다. 범인이 누구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뻔뻔한 낯짝.

저 위선적인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

나를 실험체로 쓰고, 김철수를 버리고, 이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화가 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화에서의 분노가 뜨거운 불길이었다면, 지금의 분노는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칼날 같았다.

[조건 충족: 명확한 목표 설정]

[히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헌터 자격 박탈]

- 목표: 리더 최민석 처단 및 '완성된 치료제' 탈취
- 제한 시간: 30일 (이후 흑염이 심장을 잠식함)
- 보상: 저주 해제, 일상으로의 귀환
- 실패 시: 사망 또는 완전한 마물화(魔物化)

30일.

내게 남은 인간으로서의 유통기한.

나는 푸른 약병(실패작)을 들어 올렸다.

비록 치사율 98%의 독약이지만, 지금은 이것조차 무기가 될 수 있다.

흑염의 고통이 너무 심할 때, 혹은 일시적으로 폭주를 막아야 할 때.

목숨을 걸고 마셔야 할 진통제.

"기다려라, 최민석."

나는 뉴스 화면 속의 최민석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치이익.

액정 화면이 검게 타들어가며 최민석의 얼굴에 X자가 그어졌다.

"내 퇴직금, 이자까지 쳐서 받으러 갈 테니까."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다음 타겟은 힐러 이수진.

그녀는 최민석의 금고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주최하는 자선 파티가 내일 밤 열린다.

초대장은 필요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지옥이니까.

나는 검은 모자를 눌러썼다. 거울 속의 괴물이 씨익 웃었다.

사냥은 이제 시작이다.


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2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폐공장 처형 -> 박태수의 현장 조사 -> 모텔 은신처)
  • 등장 캐릭터: 강진혁, 박태수, 최민석(뉴스 화면), 신입 조사관
  • 공개된 설정:
    • 메인 퀘스트: 30일이라는 타임 리밋 설정. 실패 시 마물화.
    • 완성된 치료제: 최민석이 보관 중. 주인공의 최종 목표(MacGuffin).
    • 흑염의 특성: 소리, 냄새, 흔적을 지우는 완전 소각 능력.
  • 심은 복선:
    • 박태수가 챙긴 '실험 보고서' (향후 협회 내부 고발의 트리거).
    • 실패작 약병 (위기의 순간에 도박처럼 사용될 아이템).
    • 다음 타겟 이수진과 자선 파티 (4화 배경 예고).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1+6] 미해결 갈등 + 새로운 목표 (Quest)
  • 다음 화 연결 방식: 모텔을 나서며 힐러 이수진의 파티장으로 향하는 암시.

3화 결제 유도 분석

  • 즉각적 궁금증: 주인공은 어떻게 보안이 철통같은 자선 파티장에 잠입하여 이수진을 사냥할 것인가?
  • 중기적 궁금증: 30일 안에 최민석을 죽이고 '완성된 치료제'를 얻을 수 있을까? 실패작 약병은 언제 쓰이게 될까?
  • 장기적 궁금증: 박태수는 주인공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진실(실험)을 파헤치고 협력할 것인가?
  • 독자 감정 상태: 배신자에 대한 분노 + 시한부 인생인 주인공에 대한 연민 + '치료'라는 희망에 대한 응원.
  • 예상 결제 전환 동기:
    1. 명확한 보상: 단순 복수가 아니라 '치료'라는 확실한 보상이 제시됨.
    2. 긴장감: 30일 시한부 설정으로 루즈함 방지.
    3. 사이다 기대: 1화부터 보여준 가차 없는 전개로, 다음 화에서도 시원한 복수를 기대하게 함.

파트별 산출물

ep1 (2,674 tokens)

1화: 내 장례식의 불청객

향 냄새가 진동했다.

국화꽃 속에 파묻힌 영정 사진 속의 나는, 참 멍청하게도 활짝 웃고 있었다.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울먹였다. 최민석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오로라'의 길드장이자, 나를 미끼로 던지고 탈출한 파티의 리더.

그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자 검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훌쩍였다.

"강진혁 헌터는... 비록 F급이었지만, 그 용기만큼은 S급이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파티는 전멸했을 겁니다."

거짓말.

"그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개소리.

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대신, 목구멍 안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새어 나왔다.

[경고: 살의(殺意)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저주 '흑염'이 반응합니다.]

치이익.

내가 숨어 있는 화장실 칸의 문고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플라스틱이 녹는 역한 냄새가 났지만, 향 냄새에 묻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왼쪽 뺨. 흰자위 없이 검게 변해버린 눈동자.

일주일 전, 던전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괴물'의 모습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의 약통을 꺼냈다. 진통제였다. 뚜껑을 열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약효는 없었다. 이 불꽃은 약으로 꺼지는 게 아니니까.

밖에서는 여전히 최민석의 추도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편히 잠드소서, 친구여."

나는 거울 속의 괴물에게 속삭였다.

"아니. 아직은 못 자."

육개장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기억은 선명하다.

일주일 전, S급 던전 '공허의 틈'.

보스 룸 공략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해 보였다. 보스가 폭주하기 전까지는.

"퇴로가 막혔어! 누군가 남아서 시간을 끌어야 해!"

탱커 김철수가 소리쳤다.

힐러 이수진은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리더 최민석은 냉정하게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짐꾼이었던 내게 꽂혔다.

"진혁아."

그 부드러운 목소리.

"네가 남라."

"......뭐?"

"어차피 넌 F급이잖아. 짐꾼이고. 여기서 죽어도 길드 차원에서 보상은 넉넉히 해줄게. 네 어머니 요양비, 내가 평생 책임진다."

거절할 틈도 없었다.

김철수의 방패가 나를 밀쳤다. 나는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발톱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미안해하지는 않을게. 이건 다수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니까."

최민석은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고장 난 부품을 폐기하는 공장장의 표정처럼, 건조하고 무심한 미소.

쿵.

방공호의 철문이 닫혔다. 레버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암흑.

그리고 놈들의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등 뒤에서 뜨거운 입김이 느껴졌다.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

아득하고 끔찍한 고통이 시작됐다.

팔이 뜯겨 나갔다. 다리가 으스러졌다. 내장이 쏟아졌다.

신에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깊은 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억울한가?]

어둠 속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놈들을 죽이고 싶은가?]

"......죽인다."

피 거품 섞인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내 영혼 따위 씹어 먹어도 좋으니까... 힘을 줘."

[계약 성립.]

[조건: 저주받은 권능 '흑염(黑炎)'을 부여한다.]

[대가: 당신의 모든 행운과 인간성.]

그 순간, 포식자의 뱃속에서 검은 불길이 폭발했다.

내가 먹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놈을 태운 것이었다.


장례식장 식당은 붐볐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오로라 길드의 장례식이다. 정재계 인사부터 유명 헌터들까지 얼굴을 비추러 왔다.

나는 훔친 검은색 정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기가 찼다.

"아이고, 우리 진혁이 불쌍해서 어쩌나..."

먼 친척이라며 찾아온 고모는 부조금 봉투를 챙기느라 바빴다.

"이번에 오로라 주식 좀 오르겠는데? 위기 관리 능력 보여줬잖아."

주식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세 사람.

리더 최민석. 탱커 김철수. 힐러 이수진.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을 딛고 귀환한 생존자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수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김철수는 꽤나 술이 들어간 얼굴이었다. 최민석은 덤덤하게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리를 지르거나 밥상을 엎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내 안의 인간적인 부분이 불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재만 남은 것처럼.

'이게 흑염의 대가인가.'

감정 대신 살의만이 명확했다.

그때였다.

[살의가 감지되었습니다.]

[주변의 불행 수치가 상승합니다.]

쨍그랑!

내 옆을 지나가던 알바생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걸려 넘어졌다.

뜨거운 육개장이 쏟아졌다. 하필이면 그 국물이 근처에 앉아 있던 험상궂은 남자의 바지에 튀었다.

"아악! 야 이 새끼야! 눈 안 달렸어?"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거 얼마짜린 줄 알아?"

남자가 알바생의 멱살을 잡았다. 순식간에 식당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목표는 저런 조무래기가 아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흡연실로 향하는 거구의 남자.

탱커, 김철수.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

구석진 곳에 김철수의 최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김철수는 대리운전을 부를 생각도 없는지, 비틀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크으... 강진혁 이 새끼... 죽어서도 도움 안 되네. 분위기 우중충하게..."

그는 뒷좌석에 짐을 던져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김철수가 룸미러를 보며 넥타이를 풀었다.

"그래도 뭐... 덕분에 보너스는 두둑하니까."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어를 조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찰칵.

차 문이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 내가 잠갔나?"

김철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뒷좌석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개장이 좀 싱겁더라. 안 그래, 철수야?"

김철수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룸미러로 눈을 돌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김철수가 일주일 전 던전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누... 누구..."

"누구긴. 네가 보너스로 바꾼 친구지."

내가 모자를 벗었다.

일그러진 화상 자국. 검은 역안(逆眼).

인간이라기보다는 악귀에 가까운 형상.

"히, 히익!"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가 이미 녹아 눌어붙어 있었으니까.

[스킬: 흑염(F) 발동]

[대상에게 공포를 부여합니다.]

내 손끝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꽃이 시트에 옮겨붙었다.

가죽 타는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살, 살려줘! 귀신! 귀신이다!"

"귀신 아니야. 아직은."

나는 앞좌석 헤드레스트를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김철수의 굵은 목에 내 차가운 손이 닿았다.

"운전해."

"어, 어디로...?"

김철수가 덜덜 떨며 물었다. 바지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씩 웃었다. 입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지옥으로."


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2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5개 (장례식장 화장실 -> 회상 -> 장례식장 홀 -> 주차장 -> 차 안)
  • 등장 캐릭터: 강진혁(주인공), 최민석(리더/빌런), 김철수(탱커/타겟), 이수진(힐러)
  • 공개된 설정:
    • F급 짐꾼이었던 주인공이 배신당해 S급 던전에서 각성함.
    • 각성 능력 '흑염'은 살의에 반응하며, 대가로 행운과 인간성을 가져감.
    • 주인공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됨.
  • 심은 복선:
    • '적합자'에 대한 언급은 아직 없음(2화 예정).
    • 주인공의 감정이 메말라 있음(인간성 상실 떡밥).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7] 새로운 등장 + [유형 4] 위기
  • 다음 화 연결 방식: 차 안에서의 대화와 납치 과정으로 직접 연결.
ep2 (6,229 tokens)

2화: 악마의 속삭임

"으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꺾었다.

끼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최고급 세단이 통제력을 잃고 도로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쾅!

굉음과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김철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다.'

뒷좌석에 탄 놈은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 이 속도로 들이받았으니, 놈은 앞 유리를 뚫고 튕겨 나갔을 것이다.

귀신이든 뭐든, 물리법칙은 거스를 수 없으리라.

"으으..."

김철수는 터진 에어백을 치우며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시야를 가렸다.

운전석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적한 국도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차의 보닛이 찌그러진 채 연기를 뿜고 있었다.

"하아, 하아..."

김철수는 비틀거리며 뒷좌석 쪽을 확인했다.

문은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창문 안쪽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어... 죽었을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S급 헌터인 자신도 '강철 피부(Iron Skin)' 스킬을 본능적으로 켜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충격이었다. F급 짐꾼 따위가, 아무리 기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들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찌그러진 뒷좌석 문이 안쪽에서부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마치 용광로에 쇠를 녹이듯, 강철 프레임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검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김철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문짝이 뜯겨 나갔다.

연기가 자욱한 차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검은 정장.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는 손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운전 실력이 형편없네, 철수야."

강진혁이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충격마저 집어삼킨 듯한 불길한 기운.

"마, 말도 안 돼..."

김철수는 뒷걸음질 쳤다.

"내 차는... 특수 합금으로 보강된..."

"그래서 더 잘 타더라."

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가자. 여기서 멀지 않잖아? 우리가 자주 가던 그곳."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김철수가 다급하게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강철의 성채(B) 발동]

그의 피부가 은회색 금속 광택으로 뒤덮였다. S급 몬스터의 발톱도 막아내는 탱커의 자존심.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공포를 잊기 위한 필사적인 일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텁.

진혁의 손이 김철수의 강철 주먹을 가볍게 받아냈다.

"이거, 예전엔 참 든든했는데."

진혁의 손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뱀처럼 기어 나와 김철수의 팔을 감았다.

"끄아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질렀다.

강철 피부가 녹는 게 아니었다. 피부 안쪽, 근육과 신경을 불꽃이 직접 태우고 있었다. 물리적 방어력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고통.

"이제 보니 껍데기뿐이었네."

진혁이 손에 힘을 주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김철수의 손목이 꺾였다.

"살, 살려줘! 제발!"

"조용히 해. 사람들 깨겠다."

진혁은 축 늘어진 김철수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도로 아래, 버려진 폐공장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같은 시각. S급 던전 '공허의 틈' 입구.

폴리스 라인이 쳐진 붕괴 현장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는 이미 수색이 끝난 곳 아닙니까?"

신입 조사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박태수 팀장은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헌터 협회 감사관이자, S급 탐지 헌터인 박태수.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을 읽는다.

"김 조사관."

"네?"

"보통 던전이 붕괴하면 몬스터의 사체는 마석으로 변하고, 헌터의 사체는 훼손된 채로 남지."

박태수가 무너진 바위 틈새를 가리켰다.

"그런데 여길 봐라."

신입이 랜턴을 비췄다. 바위 표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 흔적입니까? 마법사 계열 헌터가 있었나 보죠."

"아니. 이건 불이 아니야."

박태수가 장갑 낀 손으로 그을음을 문질렀다.

"마력 반응이 '제로'다."

"네? 그게 무슨..."

"마법으로 태운 게 아니란 소리야. 그렇다고 일반적인 불도 아니고. 무엇보다..."

박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서 죽었다던 F급 짐꾼, 강진혁. 시신이 안 나왔지?"

"몬스터한테 먹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뼈도 안 남을 정도로요."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는 먹이를 씹어 먹지, 태워 먹진 않아."

박태수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반쯤 녹아내린 헌터 단말기 조각이었다.

"누군가 여기서 살아 나갔어. 그것도 아주 지독한 힘을 각성한 채로."

"생존자요? 그럼 왜 신고를 안 하고..."

"신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겠지."

박태수가 단말기 조각을 증거물 봉투에 넣었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돌아왔는데, 동료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라..."

그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배신. 은폐. 그리고 복수.

박태수는 휴대폰을 꺼냈다.

"위치 추적 팀 연결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의 현재 위치 파악한다."

"김철수 헌터요? 지금 장례식장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 놈의 마력 파장이 불안정해.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쥐새끼의 파장이야."

박태수의 눈빛이 밤보다 더 어둡게 빛났다.

"서둘러. 시체가 늘어나기 전에."


치이익.

살 타는 냄새가 폐공장을 가득 채웠다.

김철수는 녹슨 기둥에 묶인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의 강철 피부는 이제 너덜너덜해져 본래의 살색을 찾기 힘들었다.

진혁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철수야. 나 궁금한 게 있어."

"......"

"그때 최민석이 그랬잖아. '합리적 선택'이라고."

진혁이 담배 연기를 김철수의 얼굴에 뿜었다.

"짐꾼 하나 죽여서 셋이 사는 게 합리적인 건 알겠어. 근데 왜 하필 나였을까?"

김철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냥... 네가 제일 약해서..."

"거짓말."

화르륵.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다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으아아악! 말할게! 말한다고!"

김철수가 발버둥 쳤다. 공포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섰다.

눈앞의 강진혁은 예전의 그 순박한 청년이 아니었다.

인간의 가죽을 쓴 악마. 아니, 저주 그 자체였다.

"네가... '적합자(Adapter)'라서 그랬어!"

진혁의 손이 멈췄다.

"적합자?"

"나, 나도 자세히는 몰라! 민석이 형이... 아니, 최민석 그 새끼가 위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했어! 던전의 마력을 몸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고!"

"그릇?"

"그래! 널 제물로 바쳐서... 던전의 힘을 추출하려고 했던 거야! 죽이려던 게 아니라, 널 괴물로 만들어서... 실험체로 쓰려고!"

진혁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게 변한 손톱. 혈관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살의.

우연히 각성한 게 아니었다.

놈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이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건,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실험'이었다.

"하,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신감보다 더 큰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고작 실험용 쥐새끼였구나. 내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짐꾼 노릇을 하던 그 시간들이, 놈들에게는 그저 실험 준비 기간이었구나.

[분노가 한계치를 초과합니다.]

[저주 '흑염'이 폭주하려 합니다.]

공장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의 전등이 파직거리며 터져 나갔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금이 가며 쩍쩍 갈라졌다.

"히익! 진, 진혁아! 진정해! 나, 나 살려주면 좋은 거 줄게!"

김철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필요 없어. 네 목숨보다 좋은 건 없으니까."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이며 김철수를 덮쳤다.

"아니야! 진짜야! 너 이거 원하잖아!"

김철수가 묶인 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기... 내 스마트 키... 차 트렁크에 금고가 있어!"

"돈? 주식? 그딴 걸로 내 목숨값을 퉁치시겠다?"

"아니! 돈 아니야!"

김철수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치료제! 각성 해제제라고!"

진혁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뭐?"

"네가 된 그거... 괴물 같은 거... 다시 인간으로 돌릴 수 있는 약이라고!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린 거야!"

각성 해제제.

헌터 업계에서는 도시전설로만 취급되는 물건이다.

한 번 각성한 헌터는 죽을 때까지 마력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걸 되돌릴 수 있다고?

"거짓말이면, 넌 곱게 못 죽어."

진혁이 김철수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진짜야... 나도 그거 훔친 거야. 팔면 수백억은 받으니까... 제발, 그거 줄게. 살려만 줘."

진혁은 반신반의하며 공장 밖으로 나갔다.

찌그러진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바닥 매트를 걷어내자 작은 휴대용 금고가 보였다.

김철수가 불러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

금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현금 뭉치와 함께, 푸른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작은 유리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낡은 서류 봉투.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 피실험체 강진혁]

진혁의 손이 떨렸다.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감촉.

이것만 마시면.

이 지긋지긋한 살의도, 흉측한 얼굴도, 저주받은 운명도 끝낼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퇴근길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어머니와 통화하는 평범한 강진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혁아... 봤지? 그거 진짜야..."

어느새 기어 나온 김철수가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다가왔다.

"약속... 지킬 거지? 우리 친구잖아..."

진혁은 푸른 약병을 불빛에 비춰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액체는 마치 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서류 봉투의 마지막 장에 머물렀다.

[경고: 본 약물은 완성되지 않았음. 부작용 치사율 98%.]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철수야."

"으, 응?"

"이거, 네가 먼저 마셔볼래?"

진혁이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뭐...?"

"실험체라며. 그럼 임상 실험은 계속해야지."

진혁의 손에서 흑염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고, 흉포한 불길이었다.

"아, 안 돼! 그건 안 돼!"

김철수가 절규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태수 팀장이 이끄는 협회 차량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약병을 품에 넣고, 김철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 가라. 내 첫 번째 복수."


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68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4개 (도로변 사고 현장 -> 폐공장 심문 -> 던전 붕괴 현장 -> 폐공장 클라이맥스)
  • 등장 캐릭터: 강진혁, 김철수, 박태수(신규), 신입 조사관(단역)
  • 공개된 설정:
    • 적합자(Adapter): 던전의 힘을 담을 수 있는 특이 체질. 주인공의 각성은 계획된 실험이었다.
    • 강철의 성채: 김철수의 방어 스킬. 흑염 앞에서는 무용지물.
    • 각성 해제제: 헌터를 일반인으로 되돌리는 약. 현재는 미완성 상태.
  • 심은 복선:
    • 박태수의 예리한 추리력 (주인공을 쫓는 사냥개 역할).
    • 치료제의 부작용 (치사율 98%).
    •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렸다"는 대사 (배후 세력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2] 폭로/반전 + [유형 6] 선택의 기로
  • 다음 화 연결 방식: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처형 집행, 그리고 3화의 빠른 도주로 연결.

3화: 일상으로의 티켓

"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은 짧았다.

검은 불꽃이 김철수의 전신을 휘감았다. 살 타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흑염은 냄새와 소리, 그리고 흔적까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저주였으니까.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 10대 탱커 중 하나라던 김철수는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복수 대상 1/3 처치]

[저주 '흑염'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나는 멍하니 재가 흩어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후련할 줄 알았다. 놈이 고통스럽게 죽으면, 내 안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 남은 건 더 깊고 차가운 구멍뿐이었다.

"허무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품 안의 푸른 약병을 꺼냈다.

미완성 치료제. 치사율 98%.

이게 내 유일한 희망이라니.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폐공장 입구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이닥쳤다.

"협회 감사팀이다! 안에는 무장 해제하고 나와라!"

확성기 소리. 박태수 팀장이겠지. 냄새 한 번 기가 막히게 맡는 사냥개.

지금 내 몸 상태로 협회 정예 요원들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흑염을 쓰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내 인간성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도망쳐야 해.'

나는 김철수의 차 트렁크에 있던 현금 뭉치를 가방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뒷문으로 달렸다.


"진입!"

박태수가 지시하자마자 무장 요원들이 폐공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텅 빈 의자와 바닥에 남은 검은 그을음뿐이었다.

"팀장님! 아무도 없습니다!"

"도주했나 봅니다. 차량은 그대로 있습니다."

박태수는 천천히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잿가루 앞에 멈춰 섰다. 장갑 낀 손으로 재를 찍어 맛을 보듯 냄새를 맡았다.

"마력 반응 제로. 완전 소각."

그의 시선이 바닥에 뒹구는 서류 봉투로 향했다.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박태수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내용을 훑어내려가는 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이런 미친..."

오로라 길드. 그리고 협회 상층부의 일부가 연루된 불법 실험.

죽은 줄 알았던 강진혁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놈들이 만든 '괴물'이자, 유일한 '증거'였다.

"팀장님, 이걸 보십시오."

신입 조사관이 기둥을 가리켰다.

불에 탄 기둥에는 칼로 깊게 그은 듯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약은 내가 가져간다.]

[퇴직금 정산은 아직 안 끝났다.]

박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퇴직금이라..."

그는 서류를 품에 넣었다.

"전원 철수한다."

"네? 범인을 안 쫓습니까?"

"이건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박태수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놈은 멈추지 않을 거다. 우리가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시체 냄새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어."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며 몸에 묻은 재를 씻어냈다. 하지만 거울 속의 흉측한 화상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후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김철수의 금고에서 가져온 서류를 다시 읽었다.

마지막 장에 적힌 메모.

[임상 실험 실패. 샘플 01 폐기. 샘플 02는 리더 최민석이 보관 중.]

[참고: 샘플 02는 부작용이 제거된 완성본일 가능성 높음.]

심장이 쿵쿵 뛰었다.

김철수가 준 건 폐기된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최민석이 가진 건 '완성본'일 수 있다.

그것만 있다면.

이 저주를 풀고, 흉터를 지우고, 다시 어머니 앞에 아들로서 설 수 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평범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최민석은 오로라 길드의 수장이다.

그의 주변에는 수백 명의 헌터가 있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인 길드 본부 펜트하우스에 산다.

지금의 내 힘으로 그를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약을 숨겨두거나 파괴한다면?

단순한 암살로는 안 된다.

놈을 공포에 질리게 해서, 제 발로 약을 꺼내게 만들어야 한다.

띠링.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대포폰으로 켠 뉴스 속보였다.

[속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 실종. 현장에서 다량의 혈흔 발견.]

[길드 측 "테러 행위 용납 못 해"... 대대적 수사 예고.]

화면 속에 최민석이 나오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겨 비통합니다. 범인이 누구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뻔뻔한 낯짝.

저 위선적인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

나를 실험체로 쓰고, 김철수를 버리고, 이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화가 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화에서의 분노가 뜨거운 불길이었다면, 지금의 분노는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칼날 같았다.

[조건 충족: 명확한 목표 설정]

[히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헌터 자격 박탈]

- 목표: 리더 최민석 처단 및 '완성된 치료제' 탈취
- 제한 시간: 30일 (이후 흑염이 심장을 잠식함)
- 보상: 저주 해제, 일상으로의 귀환
- 실패 시: 사망 또는 완전한 마물화(魔物化)

30일.

내게 남은 인간으로서의 유통기한.

나는 푸른 약병(실패작)을 들어 올렸다.

비록 치사율 98%의 독약이지만, 지금은 이것조차 무기가 될 수 있다.

흑염의 고통이 너무 심할 때, 혹은 일시적으로 폭주를 막아야 할 때.

목숨을 걸고 마셔야 할 진통제.

"기다려라, 최민석."

나는 뉴스 화면 속의 최민석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치이익.

액정 화면이 검게 타들어가며 최민석의 얼굴에 X자가 그어졌다.

"내 퇴직금, 이자까지 쳐서 받으러 갈 테니까."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다음 타겟은 힐러 이수진.

그녀는 최민석의 금고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주최하는 자선 파티가 내일 밤 열린다.

초대장은 필요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지옥이니까.

나는 검은 모자를 눌러썼다. 거울 속의 괴물이 씨익 웃었다.

사냥은 이제 시작이다.


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2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폐공장 처형 -> 박태수의 현장 조사 -> 모텔 은신처)
  • 등장 캐릭터: 강진혁, 박태수, 최민석(뉴스 화면), 신입 조사관
  • 공개된 설정:
    • 메인 퀘스트: 30일이라는 타임 리밋 설정. 실패 시 마물화.
    • 완성된 치료제: 최민석이 보관 중. 주인공의 최종 목표(MacGuffin).
    • 흑염의 특성: 소리, 냄새, 흔적을 지우는 완전 소각 능력.
  • 심은 복선:
    • 박태수가 챙긴 '실험 보고서' (향후 협회 내부 고발의 트리거).
    • 실패작 약병 (위기의 순간에 도박처럼 사용될 아이템).
    • 다음 타겟 이수진과 자선 파티 (4화 배경 예고).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1+6] 미해결 갈등 + 새로운 목표 (Quest)
  • 다음 화 연결 방식: 모텔을 나서며 힐러 이수진의 파티장으로 향하는 암시.

3화 결제 유도 분석

  • 즉각적 궁금증: 주인공은 어떻게 보안이 철통같은 자선 파티장에 잠입하여 이수진을 사냥할 것인가?
  • 중기적 궁금증: 30일 안에 최민석을 죽이고 '완성된 치료제'를 얻을 수 있을까? 실패작 약병은 언제 쓰이게 될까?
  • 장기적 궁금증: 박태수는 주인공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진실(실험)을 파헤치고 협력할 것인가?
  • 독자 감정 상태: 배신자에 대한 분노 + 시한부 인생인 주인공에 대한 연민 + '치료'라는 희망에 대한 응원.
  • 예상 결제 전환 동기:
    1. 명확한 보상: 단순 복수가 아니라 '치료'라는 확실한 보상이 제시됨.
    2. 긴장감: 30일 시한부 설정으로 루즈함 방지.
    3. 사이다 기대: 1화부터 보여준 가차 없는 전개로, 다음 화에서도 시원한 복수를 기대하게 함.
ep3 (8,904 tokens)

1화: 내 장례식의 불청객

향 냄새가 진동했다.

국화꽃 속에 파묻힌 영정 사진 속의 나는, 참 멍청하게도 활짝 웃고 있었다.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울먹였다. 최민석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오로라'의 길드장이자, 나를 미끼로 던지고 탈출한 파티의 리더.

그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자 검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훌쩍였다.

"강진혁 헌터는... 비록 F급이었지만, 그 용기만큼은 S급이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파티는 전멸했을 겁니다."

거짓말.

"그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개소리.

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대신, 목구멍 안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새어 나왔다.

[경고: 살의(殺意)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저주 '흑염'이 반응합니다.]

치이익.

내가 숨어 있는 화장실 칸의 문고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플라스틱이 녹는 역한 냄새가 났지만, 향 냄새에 묻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왼쪽 뺨. 흰자위 없이 검게 변해버린 눈동자.

일주일 전, 던전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괴물'의 모습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의 약통을 꺼냈다. 진통제였다. 뚜껑을 열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약효는 없었다. 이 불꽃은 약으로 꺼지는 게 아니니까.

밖에서는 여전히 최민석의 추도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편히 잠드소서, 친구여."

나는 거울 속의 괴물에게 속삭였다.

"아니. 아직은 못 자."

육개장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졌다.


기억은 선명하다.

일주일 전, S급 던전 '공허의 틈'.

보스 룸 공략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해 보였다. 보스가 폭주하기 전까지는.

"퇴로가 막혔어! 누군가 남아서 시간을 끌어야 해!"

탱커 김철수가 소리쳤다.

힐러 이수진은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리더 최민석은 냉정하게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짐꾼이었던 내게 꽂혔다.

"진혁아."

그 부드러운 목소리.

"네가 남라."

"......뭐?"

"어차피 넌 F급이잖아. 짐꾼이고. 여기서 죽어도 길드 차원에서 보상은 넉넉히 해줄게. 네 어머니 요양비, 내가 평생 책임진다."

거절할 틈도 없었다.

김철수의 방패가 나를 밀쳤다. 나는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발톱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미안해하지는 않을게. 이건 다수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니까."

최민석은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고장 난 부품을 폐기하는 공장장의 표정처럼, 건조하고 무심한 미소.

쿵.

방공호의 철문이 닫혔다. 레버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암흑.

그리고 놈들의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등 뒤에서 뜨거운 입김이 느껴졌다.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

아득하고 끔찍한 고통이 시작됐다.

팔이 뜯겨 나갔다. 다리가 으스러졌다. 내장이 쏟아졌다.

신에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깊은 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억울한가?]

어둠 속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놈들을 죽이고 싶은가?]

"......죽인다."

피 거품 섞인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내 영혼 따위 씹어 먹어도 좋으니까... 힘을 줘."

[계약 성립.]

[조건: 저주받은 권능 '흑염(黑炎)'을 부여한다.]

[대가: 당신의 모든 행운과 인간성.]

그 순간, 포식자의 뱃속에서 검은 불길이 폭발했다.

내가 먹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놈을 태운 것이었다.


장례식장 식당은 붐볐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오로라 길드의 장례식이다. 정재계 인사부터 유명 헌터들까지 얼굴을 비추러 왔다.

나는 훔친 검은색 정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기가 찼다.

"아이고, 우리 진혁이 불쌍해서 어쩌나..."

먼 친척이라며 찾아온 고모는 부조금 봉투를 챙기느라 바빴다.

"이번에 오로라 주식 좀 오르겠는데? 위기 관리 능력 보여줬잖아."

주식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는 조문객들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세 사람.

리더 최민석. 탱커 김철수. 힐러 이수진.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을 딛고 귀환한 생존자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수진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김철수는 꽤나 술이 들어간 얼굴이었다. 최민석은 덤덤하게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리를 지르거나 밥상을 엎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내 안의 인간적인 부분이 불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재만 남은 것처럼.

'이게 흑염의 대가인가.'

감정 대신 살의만이 명확했다.

그때였다.

[살의가 감지되었습니다.]

[주변의 불행 수치가 상승합니다.]

쨍그랑!

내 옆을 지나가던 알바생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걸려 넘어졌다.

뜨거운 육개장이 쏟아졌다. 하필이면 그 국물이 근처에 앉아 있던 험상궂은 남자의 바지에 튀었다.

"아악! 야 이 새끼야! 눈 안 달렸어?"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거 얼마짜린 줄 알아?"

남자가 알바생의 멱살을 잡았다. 순식간에 식당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목표는 저런 조무래기가 아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흡연실로 향하는 거구의 남자.

탱커, 김철수.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

구석진 곳에 김철수의 최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김철수는 대리운전을 부를 생각도 없는지, 비틀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크으... 강진혁 이 새끼... 죽어서도 도움 안 되네. 분위기 우중충하게..."

그는 뒷좌석에 짐을 던져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김철수가 룸미러를 보며 넥타이를 풀었다.

"그래도 뭐... 덕분에 보너스는 두둑하니까."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어를 조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찰칵.

차 문이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 내가 잠갔나?"

김철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뒷좌석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개장이 좀 싱겁더라. 안 그래, 철수야?"

김철수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룸미러로 눈을 돌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김철수가 일주일 전 던전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누... 누구..."

"누구긴. 네가 보너스로 바꾼 친구지."

내가 모자를 벗었다.

일그러진 화상 자국. 검은 역안(逆眼).

인간이라기보다는 악귀에 가까운 형상.

"히, 히익!"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가 이미 녹아 눌어붙어 있었으니까.

[스킬: 흑염(F) 발동]

[대상에게 공포를 부여합니다.]

내 손끝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꽃이 시트에 옮겨붙었다.

가죽 타는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살, 살려줘! 귀신! 귀신이다!"

"귀신 아니야. 아직은."

나는 앞좌석 헤드레스트를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김철수의 굵은 목에 내 차가운 손이 닿았다.

"운전해."

"어, 어디로...?"

김철수가 덜덜 떨며 물었다. 바지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씩 웃었다. 입 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지옥으로."


1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25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5개 (장례식장 화장실 -> 회상 -> 장례식장 홀 -> 주차장 -> 차 안)
  • 등장 캐릭터: 강진혁(주인공), 최민석(리더/빌런), 김철수(탱커/타겟), 이수진(힐러)
  • 공개된 설정:
    • F급 짐꾼이었던 주인공이 배신당해 S급 던전에서 각성함.
    • 각성 능력 '흑염'은 살의에 반응하며, 대가로 행운과 인간성을 가져감.
    • 주인공은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됨.
  • 심은 복선:
    • '적합자'에 대한 언급은 아직 없음(2화 예정).
    • 주인공의 감정이 메말라 있음(인간성 상실 떡밥).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7] 새로운 등장 + [유형 4] 위기
  • 다음 화 연결 방식: 차 안에서의 대화와 납치 과정으로 직접 연결.

2화: 악마의 속삭임

"으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꺾었다.

끼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최고급 세단이 통제력을 잃고 도로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쾅!

굉음과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김철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다.'

뒷좌석에 탄 놈은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 이 속도로 들이받았으니, 놈은 앞 유리를 뚫고 튕겨 나갔을 것이다.

귀신이든 뭐든, 물리법칙은 거스를 수 없으리라.

"으으..."

김철수는 터진 에어백을 치우며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 시야를 가렸다.

운전석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한적한 국도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차의 보닛이 찌그러진 채 연기를 뿜고 있었다.

"하아, 하아..."

김철수는 비틀거리며 뒷좌석 쪽을 확인했다.

문은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창문 안쪽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어... 죽었을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S급 헌터인 자신도 '강철 피부(Iron Skin)' 스킬을 본능적으로 켜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충격이었다. F급 짐꾼 따위가, 아무리 기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들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찌그러진 뒷좌석 문이 안쪽에서부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마치 용광로에 쇠를 녹이듯, 강철 프레임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검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김철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문짝이 뜯겨 나갔다.

연기가 자욱한 차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검은 정장.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는 손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운전 실력이 형편없네, 철수야."

강진혁이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충격마저 집어삼킨 듯한 불길한 기운.

"마, 말도 안 돼..."

김철수는 뒷걸음질 쳤다.

"내 차는... 특수 합금으로 보강된..."

"그래서 더 잘 타더라."

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가자. 여기서 멀지 않잖아? 우리가 자주 가던 그곳."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김철수가 다급하게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강철의 성채(B) 발동]

그의 피부가 은회색 금속 광택으로 뒤덮였다. S급 몬스터의 발톱도 막아내는 탱커의 자존심.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공포를 잊기 위한 필사적인 일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텁.

진혁의 손이 김철수의 강철 주먹을 가볍게 받아냈다.

"이거, 예전엔 참 든든했는데."

진혁의 손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뱀처럼 기어 나와 김철수의 팔을 감았다.

"끄아아아악!"

김철수가 비명을 질렀다.

강철 피부가 녹는 게 아니었다. 피부 안쪽, 근육과 신경을 불꽃이 직접 태우고 있었다. 물리적 방어력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고통.

"이제 보니 껍데기뿐이었네."

진혁이 손에 힘을 주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김철수의 손목이 꺾였다.

"살, 살려줘! 제발!"

"조용히 해. 사람들 깨겠다."

진혁은 축 늘어진 김철수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도로 아래, 버려진 폐공장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같은 시각. S급 던전 '공허의 틈' 입구.

폴리스 라인이 쳐진 붕괴 현장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는 이미 수색이 끝난 곳 아닙니까?"

신입 조사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박태수 팀장은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헌터 협회 감사관이자, S급 탐지 헌터인 박태수.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을 읽는다.

"김 조사관."

"네?"

"보통 던전이 붕괴하면 몬스터의 사체는 마석으로 변하고, 헌터의 사체는 훼손된 채로 남지."

박태수가 무너진 바위 틈새를 가리켰다.

"그런데 여길 봐라."

신입이 랜턴을 비췄다. 바위 표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 흔적입니까? 마법사 계열 헌터가 있었나 보죠."

"아니. 이건 불이 아니야."

박태수가 장갑 낀 손으로 그을음을 문질렀다.

"마력 반응이 '제로'다."

"네? 그게 무슨..."

"마법으로 태운 게 아니란 소리야. 그렇다고 일반적인 불도 아니고. 무엇보다..."

박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서 죽었다던 F급 짐꾼, 강진혁. 시신이 안 나왔지?"

"몬스터한테 먹혔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뼈도 안 남을 정도로요."

"S급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는 먹이를 씹어 먹지, 태워 먹진 않아."

박태수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반쯤 녹아내린 헌터 단말기 조각이었다.

"누군가 여기서 살아 나갔어. 그것도 아주 지독한 힘을 각성한 채로."

"생존자요? 그럼 왜 신고를 안 하고..."

"신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겠지."

박태수가 단말기 조각을 증거물 봉투에 넣었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돌아왔는데, 동료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라..."

그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배신. 은폐. 그리고 복수.

박태수는 휴대폰을 꺼냈다.

"위치 추적 팀 연결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의 현재 위치 파악한다."

"김철수 헌터요? 지금 장례식장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 놈의 마력 파장이 불안정해.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쥐새끼의 파장이야."

박태수의 눈빛이 밤보다 더 어둡게 빛났다.

"서둘러. 시체가 늘어나기 전에."


치이익.

살 타는 냄새가 폐공장을 가득 채웠다.

김철수는 녹슨 기둥에 묶인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의 강철 피부는 이제 너덜너덜해져 본래의 살색을 찾기 힘들었다.

진혁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철수야. 나 궁금한 게 있어."

"......"

"그때 최민석이 그랬잖아. '합리적 선택'이라고."

진혁이 담배 연기를 김철수의 얼굴에 뿜었다.

"짐꾼 하나 죽여서 셋이 사는 게 합리적인 건 알겠어. 근데 왜 하필 나였을까?"

김철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냥... 네가 제일 약해서..."

"거짓말."

화르륵.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다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으아아악! 말할게! 말한다고!"

김철수가 발버둥 쳤다. 공포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섰다.

눈앞의 강진혁은 예전의 그 순박한 청년이 아니었다.

인간의 가죽을 쓴 악마. 아니, 저주 그 자체였다.

"네가... '적합자(Adapter)'라서 그랬어!"

진혁의 손이 멈췄다.

"적합자?"

"나, 나도 자세히는 몰라! 민석이 형이... 아니, 최민석 그 새끼가 위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했어! 던전의 마력을 몸에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고!"

"그릇?"

"그래! 널 제물로 바쳐서... 던전의 힘을 추출하려고 했던 거야! 죽이려던 게 아니라, 널 괴물로 만들어서... 실험체로 쓰려고!"

진혁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게 변한 손톱. 혈관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살의.

우연히 각성한 게 아니었다.

놈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이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건,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실험'이었다.

"하,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신감보다 더 큰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고작 실험용 쥐새끼였구나. 내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짐꾼 노릇을 하던 그 시간들이, 놈들에게는 그저 실험 준비 기간이었구나.

[분노가 한계치를 초과합니다.]

[저주 '흑염'이 폭주하려 합니다.]

공장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의 전등이 파직거리며 터져 나갔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금이 가며 쩍쩍 갈라졌다.

"히익! 진, 진혁아! 진정해! 나, 나 살려주면 좋은 거 줄게!"

김철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필요 없어. 네 목숨보다 좋은 건 없으니까."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이며 김철수를 덮쳤다.

"아니야! 진짜야! 너 이거 원하잖아!"

김철수가 묶인 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기... 내 스마트 키... 차 트렁크에 금고가 있어!"

"돈? 주식? 그딴 걸로 내 목숨값을 퉁치시겠다?"

"아니! 돈 아니야!"

김철수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치료제! 각성 해제제라고!"

진혁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뭐?"

"네가 된 그거... 괴물 같은 거... 다시 인간으로 돌릴 수 있는 약이라고!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린 거야!"

각성 해제제.

헌터 업계에서는 도시전설로만 취급되는 물건이다.

한 번 각성한 헌터는 죽을 때까지 마력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걸 되돌릴 수 있다고?

"거짓말이면, 넌 곱게 못 죽어."

진혁이 김철수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진짜야... 나도 그거 훔친 거야. 팔면 수백억은 받으니까... 제발, 그거 줄게. 살려만 줘."

진혁은 반신반의하며 공장 밖으로 나갔다.

찌그러진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바닥 매트를 걷어내자 작은 휴대용 금고가 보였다.

김철수가 불러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

금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현금 뭉치와 함께, 푸른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작은 유리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낡은 서류 봉투.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 피실험체 강진혁]

진혁의 손이 떨렸다.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감촉.

이것만 마시면.

이 지긋지긋한 살의도, 흉측한 얼굴도, 저주받은 운명도 끝낼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퇴근길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어머니와 통화하는 평범한 강진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혁아... 봤지? 그거 진짜야..."

어느새 기어 나온 김철수가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다가왔다.

"약속... 지킬 거지? 우리 친구잖아..."

진혁은 푸른 약병을 불빛에 비춰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액체는 마치 구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서류 봉투의 마지막 장에 머물렀다.

[경고: 본 약물은 완성되지 않았음. 부작용 치사율 98%.]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철수야."

"으, 응?"

"이거, 네가 먼저 마셔볼래?"

진혁이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뭐...?"

"실험체라며. 그럼 임상 실험은 계속해야지."

진혁의 손에서 흑염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고, 흉포한 불길이었다.

"아, 안 돼! 그건 안 돼!"

김철수가 절규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태수 팀장이 이끄는 협회 차량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약병을 품에 넣고, 김철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 가라. 내 첫 번째 복수."


2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68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4개 (도로변 사고 현장 -> 폐공장 심문 -> 던전 붕괴 현장 -> 폐공장 클라이맥스)
  • 등장 캐릭터: 강진혁, 김철수, 박태수(신규), 신입 조사관(단역)
  • 공개된 설정:
    • 적합자(Adapter): 던전의 힘을 담을 수 있는 특이 체질. 주인공의 각성은 계획된 실험이었다.
    • 강철의 성채: 김철수의 방어 스킬. 흑염 앞에서는 무용지물.
    • 각성 해제제: 헌터를 일반인으로 되돌리는 약. 현재는 미완성 상태.
  • 심은 복선:
    • 박태수의 예리한 추리력 (주인공을 쫓는 사냥개 역할).
    • 치료제의 부작용 (치사율 98%).
    • "최민석이 연구소에서 빼돌렸다"는 대사 (배후 세력 암시).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2] 폭로/반전 + [유형 6] 선택의 기로
  • 다음 화 연결 방식: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처형 집행, 그리고 3화의 빠른 도주로 연결.

3화: 일상으로의 티켓

"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은 짧았다.

검은 불꽃이 김철수의 전신을 휘감았다. 살 타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흑염은 냄새와 소리, 그리고 흔적까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저주였으니까.

순식간이었다.

대한민국 10대 탱커 중 하나라던 김철수는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복수 대상 1/3 처치]

[저주 '흑염'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나는 멍하니 재가 흩어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후련할 줄 알았다. 놈이 고통스럽게 죽으면, 내 안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 남은 건 더 깊고 차가운 구멍뿐이었다.

"허무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품 안의 푸른 약병을 꺼냈다.

미완성 치료제. 치사율 98%.

이게 내 유일한 희망이라니.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폐공장 입구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이닥쳤다.

"협회 감사팀이다! 안에는 무장 해제하고 나와라!"

확성기 소리. 박태수 팀장이겠지. 냄새 한 번 기가 막히게 맡는 사냥개.

지금 내 몸 상태로 협회 정예 요원들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흑염을 쓰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내 인간성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도망쳐야 해.'

나는 김철수의 차 트렁크에 있던 현금 뭉치를 가방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뒷문으로 달렸다.


"진입!"

박태수가 지시하자마자 무장 요원들이 폐공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텅 빈 의자와 바닥에 남은 검은 그을음뿐이었다.

"팀장님! 아무도 없습니다!"

"도주했나 봅니다. 차량은 그대로 있습니다."

박태수는 천천히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잿가루 앞에 멈춰 섰다. 장갑 낀 손으로 재를 찍어 맛을 보듯 냄새를 맡았다.

"마력 반응 제로. 완전 소각."

그의 시선이 바닥에 뒹구는 서류 봉투로 향했다.

[1급 기밀: 적합자 임상 실험 보고서]

박태수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내용을 훑어내려가는 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이런 미친..."

오로라 길드. 그리고 협회 상층부의 일부가 연루된 불법 실험.

죽은 줄 알았던 강진혁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놈들이 만든 '괴물'이자, 유일한 '증거'였다.

"팀장님, 이걸 보십시오."

신입 조사관이 기둥을 가리켰다.

불에 탄 기둥에는 칼로 깊게 그은 듯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약은 내가 가져간다.]

[퇴직금 정산은 아직 안 끝났다.]

박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퇴직금이라..."

그는 서류를 품에 넣었다.

"전원 철수한다."

"네? 범인을 안 쫓습니까?"

"이건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박태수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놈은 멈추지 않을 거다. 우리가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시체 냄새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어."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모텔.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며 몸에 묻은 재를 씻어냈다. 하지만 거울 속의 흉측한 화상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후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김철수의 금고에서 가져온 서류를 다시 읽었다.

마지막 장에 적힌 메모.

[임상 실험 실패. 샘플 01 폐기. 샘플 02는 리더 최민석이 보관 중.]

[참고: 샘플 02는 부작용이 제거된 완성본일 가능성 높음.]

심장이 쿵쿵 뛰었다.

김철수가 준 건 폐기된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최민석이 가진 건 '완성본'일 수 있다.

그것만 있다면.

이 저주를 풀고, 흉터를 지우고, 다시 어머니 앞에 아들로서 설 수 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평범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최민석은 오로라 길드의 수장이다.

그의 주변에는 수백 명의 헌터가 있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인 길드 본부 펜트하우스에 산다.

지금의 내 힘으로 그를 죽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약을 숨겨두거나 파괴한다면?

단순한 암살로는 안 된다.

놈을 공포에 질리게 해서, 제 발로 약을 꺼내게 만들어야 한다.

띠링.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대포폰으로 켠 뉴스 속보였다.

[속보: 오로라 길드 김철수 헌터 실종. 현장에서 다량의 혈흔 발견.]

[길드 측 "테러 행위 용납 못 해"... 대대적 수사 예고.]

화면 속에 최민석이 나오고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겨 비통합니다. 범인이 누구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뻔뻔한 낯짝.

저 위선적인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

나를 실험체로 쓰고, 김철수를 버리고, 이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화가 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화에서의 분노가 뜨거운 불길이었다면, 지금의 분노는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칼날 같았다.

[조건 충족: 명확한 목표 설정]

[히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헌터 자격 박탈]

- 목표: 리더 최민석 처단 및 '완성된 치료제' 탈취
- 제한 시간: 30일 (이후 흑염이 심장을 잠식함)
- 보상: 저주 해제, 일상으로의 귀환
- 실패 시: 사망 또는 완전한 마물화(魔物化)

30일.

내게 남은 인간으로서의 유통기한.

나는 푸른 약병(실패작)을 들어 올렸다.

비록 치사율 98%의 독약이지만, 지금은 이것조차 무기가 될 수 있다.

흑염의 고통이 너무 심할 때, 혹은 일시적으로 폭주를 막아야 할 때.

목숨을 걸고 마셔야 할 진통제.

"기다려라, 최민석."

나는 뉴스 화면 속의 최민석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치이익.

액정 화면이 검게 타들어가며 최민석의 얼굴에 X자가 그어졌다.

"내 퇴직금, 이자까지 쳐서 받으러 갈 테니까."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다음 타겟은 힐러 이수진.

그녀는 최민석의 금고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주최하는 자선 파티가 내일 밤 열린다.

초대장은 필요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곧 지옥이니까.

나는 검은 모자를 눌러썼다. 거울 속의 괴물이 씨익 웃었다.

사냥은 이제 시작이다.


3화 메타 정보

  • 총 글자 수: 4,120자 (공백 포함)
  • 장면 수: 3개 (폐공장 처형 -> 박태수의 현장 조사 -> 모텔 은신처)
  • 등장 캐릭터: 강진혁, 박태수, 최민석(뉴스 화면), 신입 조사관
  • 공개된 설정:
    • 메인 퀘스트: 30일이라는 타임 리밋 설정. 실패 시 마물화.
    • 완성된 치료제: 최민석이 보관 중. 주인공의 최종 목표(MacGuffin).
    • 흑염의 특성: 소리, 냄새, 흔적을 지우는 완전 소각 능력.
  • 심은 복선:
    • 박태수가 챙긴 '실험 보고서' (향후 협회 내부 고발의 트리거).
    • 실패작 약병 (위기의 순간에 도박처럼 사용될 아이템).
    • 다음 타겟 이수진과 자선 파티 (4화 배경 예고).
  • 클리프행어 유형: [유형 1+6] 미해결 갈등 + 새로운 목표 (Quest)
  • 다음 화 연결 방식: 모텔을 나서며 힐러 이수진의 파티장으로 향하는 암시.

3화 결제 유도 분석

  • 즉각적 궁금증: 주인공은 어떻게 보안이 철통같은 자선 파티장에 잠입하여 이수진을 사냥할 것인가?
  • 중기적 궁금증: 30일 안에 최민석을 죽이고 '완성된 치료제'를 얻을 수 있을까? 실패작 약병은 언제 쓰이게 될까?
  • 장기적 궁금증: 박태수는 주인공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진실(실험)을 파헤치고 협력할 것인가?
  • 독자 감정 상태: 배신자에 대한 분노 + 시한부 인생인 주인공에 대한 연민 + '치료'라는 희망에 대한 응원.
  • 예상 결제 전환 동기:
    1. 명확한 보상: 단순 복수가 아니라 '치료'라는 확실한 보상이 제시됨.
    2. 긴장감: 30일 시한부 설정으로 루즈함 방지.
    3. 사이다 기대: 1화부터 보여준 가차 없는 전개로, 다음 화에서도 시원한 복수를 기대하게 함.

스텝 재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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