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10: TTS 대본

Writer · 버전 1 · 초안

산출물 (v1)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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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3자 · 예상 13.4분 / 목표 15분 적정 분량

맴, 맴, 맴. 귀를 찢는 매미 소리가 들립니다. 후욱, 하고 뜨거운 바람이 붑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칠월의 폭염이었습니다. 아스팔트가 엿가락처럼 녹아내려 신발이 쩍쩍 달라붙던 날이었죠.

그런데. 바스락. 살얼음 밟는 소리가 났습니다. 경찰 통제선이 쳐진 이 낡은 자판기 앞. 여기만은 달랐습니다.

영하 이십 도. 하얗게 얼어 죽은 비둘기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자판기가 고장 나서 냉매 가스가 터진 거라고요. 틀렸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죠.

그 기계는 고장 난 게 아니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휘이잉, 시간을 되감아 봅니다. 툭. 삼 일 전, 오후 두 시였습니다.

제 하루 중 유일한 일과가 있는 시간이죠. 집 앞 골목에는 칠이 다 벗겨진 금성 자판기가 하나 서 있습니다. 저처럼 늙고,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고물입니다.

짤랑. 동전을 넣고, 덜컹. 미지근한 캔커피가 툭 떨어집니다. 밍밍하고, 김 빠진 맛. 꼭 제 인생 같더군요.

그런데 그날은 좀 이상했습니다. 동전 투입구에 손을 대는 순간. 찌릿. 정전기가 아니었습니다. 손끝이 아릴 정도의, 날카로운 냉기였지요.

자세히 보니 투입구 주변에 하얀 성에가 껴 있더군요. 귀를 찢는 매미 소리 사이로, 기계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웅, 하는 모터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타닥, 탁. 타닥, 탁. 박자가 묘하게 불규칙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안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요.

어허! 손 대지 마라!

동네 꼬마 녀석이었습니다. 신기한지 자판기에 손을 뻗더군요. 그 냉기는, 아이의 연한 살갗 정도는 순식간에 벗겨낼 만큼 위험했습니다. 저는 지팡이를 휘저으며 소리쳤습니다.

이 기계, 고장 나서 전기 오른다! 만지면 아주 찌릿하고 죽는 거야! 저리 가!

아이는 울상을 짓고 도망갔습니다. 전기가 오른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장비들을 꺼냈습니다. 적외선 온도계를 자판기에 댔습니다. 삐빅. 에러 메시지가 뜨더군요. 측정 불가. 겨우 잡힌 온도는 영하 오십 도였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보통 냉매 가스가 새면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판기 주변은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공기 중의 수분이 얼음이 되었다가, 녹을 새도 없이 기체로 날아간 겁니다. 과학 시간에는 이걸 승화라고 부르죠. 이건 지구의 냉장고가 만들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소음 측정기를 켰습니다. 타닥, 탁. 파형이 그려졌습니다. 낯익은 리듬이더군요. 사십 년 전, 제가 논문으로 썼던 펄서, 그러니까 심장처럼 뛰는 별의 신호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고장 난 자판기가, 이십억 광년 밖의 별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다시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았습니다. 덜컹.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팡!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골목을 울렸습니다. 캔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겁니다. 내용물은 액체가 아니었습니다. 갈색 가루가 되어 흩날렸습니다. 커피가 나오는 일 초 사이에, 이미 얼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린 겁니다.

구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야 해! 자판기에서 영하 오십 도 냉기가 나온다고!

담당 공무원은 한숨을 쉬더군요. 어르신, 날이 많이 덥죠? 경로당 가서 에어컨 좀 쐬세요. 뚜, 뚜, 뚜. 전화는 끊어졌습니다. 세상은 평온하게 더운데, 저 혼자 시베리아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 턱은 이미 추위로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빠,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니다. 날이 더워서, 땀을 좀 흘려서 기운이 없는 게야. 걱정 마라.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딸에게 미친 노인 취급을 받기는 싫었으니까요.

저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었습니다. 삼십오 도의 폭염 속에서 말이죠. 거울을 보니 제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렸습니다. 더위 먹었나 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앞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오후 네 시. 냉기의 반경이 일 미터로 넓어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자판기 밑으로 들어갔던 시궁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찍찍거리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챙, 하고 맑고 고운 소리가 났습니다. 쥐가 바닥에 닿는 순간, 얇은 유리잔처럼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얼어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급속 냉동되어, 충격을 받자마자 가루가 된 겁니다.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살아있는 건, 무엇도 저기에 닿으면 안 됩니다.

끼익, 하고 낡은 트럭 한 대가 골목을 막아섰습니다. 구청에서 보낸 사설 수리기사였습니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훅 하고 뜨거운 열기가 쏟아졌습니다. 땀에 젖은 사내가 내리며 바닥에 침을 퉤 뱉더군요.

아, 할아버지. 비키세요 좀. 더워 죽겠구만.

그는 공구 가방을 덜그럭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저는 양팔을 벌려 자판기를 막아섰습니다. 안 되네! 건드리면 안 돼! 이건 고장이 아니야!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저를 위아래로 훑어봤습니다. 아 씨, 또 민원 들어오게 생겼네. 어르신, 저 바빠요. 비키세요.

그는 제 어깨를 거칠게 밀쳤습니다. 털썩. 힘없는 노인의 몸은 맥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죠.

기사가 자판기 뒤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전원 코드를 잡더군요. 막아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원을 끄게 두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바닥을 기어가며 소리쳤습니다.

내 돈! 내 돈 내놔!

기사가 멈칫했습니다.

이 기계가 내 오백 원을 먹었어! 그거 나오기 전엔 절대 못 끄네!

세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천문학 교수의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 분이라도 시간을 끌어야 했습니다.

기사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아 진짜, 노인네가. 그는 짜증스럽게 코드를 잡아당겼습니다. 코드 뽑으면 돈 나오고 끝나요. 됐죠?

툭. 코드가 뽑혔습니다. 타닥거리던 기계 소음이 뚝 그쳤습니다. 골목에는 다시 매미 소리만 가득 찼습니다.

기사가 땀을 닦으며 말하더군요. 거 봐요. 조용해졌네. 별거 아니구만.

끝난 것 같았습니다. 정말, 그냥 고물 자판기의 오작동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기사의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는 것을요.

기사의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쩌저적.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기사의 눈썹에 맺힌 땀방울이 순식간에 하얀 얼음 구슬로 변했습니다. 코드를 뽑으면 온도가 올라가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온도는 미친 듯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영하 오십 도. 영하 백 도.

아차 싶더군요. 우리는 틀렸습니다. 그 낡은 자판기는 냉기를 뿜어내던 게 아니었습니다. 우주에서 쏟아지는 절대영도의 냉기. 자판기는 그걸 온몸으로 막아내던 방패였습니다.

타닥, 탁. 그 불규칙한 소음은 고장이 아니었습니다. 필사적인 방어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방패를 치워버린 겁니다.

으아악!

기사는 비명을 지르며 트럭으로 도망쳤습니다. 우당탕, 부르릉. 차 문이 닫히고 엔진 소리가 멀어졌습니다.

저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무릎이 굳어서가 아닙니다. 다시 막아야 했으니까요. 저는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를 기어서 자판기로 다가갔습니다. 코드를 다시 꽂아야 합니다. 하지만, 소켓 구멍은 이미 두꺼운 얼음으로 꽉 막혀버렸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드드득. 저는 얼어붙은 자판기 뒷판을 맨손으로 뜯어냈습니다. 안에는 콤프레셔가 없었습니다. 대신 구리 코일이 둥글게, 아주 정교하게 말려 있더군요. 마치 거대한 자석 코일이나, 소형 입자가속기처럼요. 이 기계는, 사십 년 전 제가 놓쳤던 그 별의 파장을 수신하고 있었습니다.

끊어진 전선 두 가닥을 양손에 쥐었습니다. 치이익. 살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오징어가 불판에 눌어붙는 듯한 역한 냄새였습니다. 너무 차가우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살이 타들어 갑니다.

으으윽. 신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별의 주기는 칠십 년. 앞으로 일 분. 딱 일 분만 버티면, 지구는 그 냉기의 파동을 통과합니다. 저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자판기를 끌어안았습니다. 고철 덩어리와 늙은이가 하나가 되어, 우주의 겨울을 견뎠습니다.

파동이 정점을 지났습니다. 자판기 내부에서 불꽃이 튀었습니다. 퍼벅! 퍽! 플라스틱 외관이 촛농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계였습니다. 기계는 자신의 모든 부품을 태워 마지막 냉기를 상쇄했습니다. 슈우우, 하고 하얀 김이 골목을 뒤덮었습니다.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맴, 맴, 맴.

매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운, 한여름의 소리였습니다. 훅 하고 뜨거운 열기가 제 얼굴을 때렸습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더군요. 살았습니다.

저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눈앞에는 검게 그을리고 녹아버린 고철 덩어리만 남았습니다. 제 양손은 동상을 입어 붉게 부어올랐습니다. 쓰라렸습니다. 하지만 그 통증마저 반가웠습니다. 감각이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자판기는 그날 바로 고물상 트럭에 실려 갔습니다. 뉴스에서는 국지성 기상이변이었다고 짧게 떠들더군요.

텅 빈 자판기 자리에 앉아 봅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캔커피를 쥐었습니다. 따뜻한 온장고에 있던 커피입니다. 따각. 캔을 땄습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뜨끈한 액체. 이제야 몸이 좀 녹는 것 같습니다.

저는 며칠 전, 꼬마 아이가 서 있던 자리를 봅니다. 그리고 혼잣말을 건네봅니다.

전기가 아니었단다, 꼬마야.

우주였지.

여러분 주변에도 낡고 고장 난 물건이 있나요?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말썽을 부리는 것들 말입니다.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어쩌면 그것들은 고장 난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구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저 자판기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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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재실행

현재 v1 → v2으로 재생성합니다. 이전 버전은 이력에 보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