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10: TTS 대본
Writer · 버전 1 · 초안
산출물 (v1)
바스락.
이 깃털을 보십시오.
평범해 보이시지요.
하지만 이 깃털 하나에 제 목숨이 빚져 있습니다.
제 아내, 제 이웃.
제가 살던 마을의 모든 이들은, 사실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반평생 전 일입니다.
그때 저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폐병으로 피를 한 바가지씩 쏟아내던 시절이었거든요.
살겠다고 들어간 깊은 산속.
하지만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휘이잉.
바람 소리가 꼭 귀신 울음소리 같더군요.
정신이 흐릿해지며 풀썩, 쓰러졌습니다.
아, 여기가 내 무덤이구나.
그리 여겼지요.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습니다.
코끝에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감돌았습니다.
달그락.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약사발을 내밀었습니다.
붉은 탕약이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제가 묻자 여인이 덤덤하게 말했지요.
산에서 흔히 캐는 붉은 풀뿌리입니다. 어서 드셔요.
그게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숨통이 트였습니다.
가슴 속에서 끓던 쇠 긁는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살 것 같더군요.
여인의 이름은 연화라 했습니다.
마루에 앉아 바느질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고와 보였습니다.
사각, 사각.
그녀의 머리에 꽂힌 하얀 옥비녀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싶었습니다.
헌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너무 조용했거든요.
시골 마을이면 응당 들려야 할 소리가 없었습니다.
개 짖는 소리, 닭 울음소리.
심지어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습니다.
집 안에는 거울도 하나 없었습니다.
하루는 세수를 하려고 물동이를 들여다봤습니다.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보려던 찰나였지요.
철썩.
연화 낭자가 황급히 물동이를 엎어버렸습니다.
물이 더럽습니다. 새 물을 떠오지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감추려는 걸까요.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바람이나 쐴까 하여 문고리를 잡는데, 쿵.
지팡이 하나가 앞을 막아섰습니다.
마을 촌장 영감이었습니다.
눈매가 매서운 노인이었지요.
선비님. 밤공기가 차드래요.
잠시 산책 좀 하려 합니다.
그러자 영감이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문밖엔 얼씬도 마시우. 뼈도 못 추릴 테니.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단순한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명백한 경고였습니다.
그 순간, 호롱불이 일렁였습니다.
제가 잘못 본 걸까요.
촌장 영감의 눈동자가, 스르륵.
마치 짐승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모든 게 의심스러웠습니다.
연화 낭자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첨벙, 첨벙.
그런데 맑은 개울물이 붉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붕대가 붉게 젖어 있었거든요.
다치셨소.
제가 묻자 그녀는 황급히 소매를 내렸습니다.
아닙니다. 단풍물이 든 것입니다.
세 번째.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지요.
그날 밤, 열이 올라 끙끙 앓는데 연화 낭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녀가 머리에서 옥비녀를 빼 제 이마를 짚어주더군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차가워야 할 옥비녀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살결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방구석에서 그녀의 참빗을 주웠습니다.
빗살 사이에는 머리카락 대신, 하얗고 보드라운 솜털이 끼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털이 아니었습니다.
새의 깃털이었습니다.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사람이 아니구나.
그날 밤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문밖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렸거든요.
우두둑, 아작.
무언가 딱딱한 것을 씹어 먹는 소리였습니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촌장 영감이었습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산에서 갓 잡은 듯한 산토끼였습니다.
가죽도 벗기지 않은 채, 뼈째 씹어 삼키고 있었습니다.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이곳은 무릉도원이 아니었습니다.
마굴이었습니다.
저들이 나를 치료한 건, 살을 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었습니다.
도망쳐야 한다.
오늘 밤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내일 아침 내 뼈가 저 영감의 입속에서 으스러질 테니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명의 은인이지만 식인종으로 의심되는 상황.
믿고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살기 위해 도망치시겠습니까.
저는 살고 싶었습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겼습니다.
방 한구석에 연화 낭자가 달여 놓은 붉은 약사발이 보였습니다.
구역질이 났습니다.
저것도 약이 아니라, 나를 홀리는 미혼약이었겠지요.
미련 없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광장이 시끄러웠습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촌장 영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밤이네. 놓치면 안 돼야.
그 소리가 제겐 사형 선고처럼 들렸습니다.
오늘 밤, 나를 잡아먹겠다는 소리구나.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산으로 내달렸습니다.
그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을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후회했습니다.
후다닥.
어둠 속을 달리는데, 공기가 달랐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썩은 고기 냄새였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마을 안이 감옥이 아니라, 마을 밖이 지옥이었다는 것을요.
어둠 속에서 붉은 점들이 켜졌습니다.
하나, 둘, 셋.
수십 개나 되더군요.
으르렁.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가 땅을 울렸습니다.
늑대였습니다.
그냥 늑대가 아니었습니다.
집채만 한 덩치에, 입가엔 침이 질질 흐르는 괴물들이었습니다.
촌장 영감의 말이 맞았습니다.
뼈도 못 추릴 것이다.
그건 협박이 아니라, 저를 살리려는 경고였습니다.
뒷걸음질 쳤습니다.
타다닥.
뒤에서도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촌장 영감과 연화 낭자가 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빛도 짐승처럼 번들거렸습니다.
앞에는 늑대 떼, 뒤에는 요물들.
저는 주저앉으며 소리쳤습니다.
오지 마. 너희한테 잡아먹히느니, 차라리 늑대 밥이 되겠다.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런데.
콰직.
살점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제 비명이 아니었습니다.
실눈을 떴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허리가 굽은 촌장 영감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꼬리를 가진 구미호가 늑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사슴으로, 오소리로.
그들이 제 앞을 막아선 것입니다.
저를 공격하러 온 게 아니었습니다.
저를 지키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늑대 우두머리가 제 목을 노리고 날아올랐습니다.
안 돼.
푸드득.
거대한 하얀 날개가 제 시야를 덮었습니다.
연화 낭자였습니다.
아니, 눈부시게 하얀 학 한 마리였습니다.
그녀가 온몸으로 늑대의 발톱을 받아냈습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깃털이 눈처럼 흩날렸습니다.
그리고 그 깃털 위로, 붉은 피가 낭자하게 뿌려졌습니다.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늑대들은 도망쳤고, 숲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연화 낭자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까요.
학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매일 밤 그녀가 달여오던 그 붉은 약사발.
흔한 풀뿌리입니다.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녀가 제 깃털을 뽑고 살을 찢어 내어준, 자신의 피였습니다.
저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습니다.
생명의 은인을 의심하고, 괴물이라 욕했으니까요.
학이 저를 보며 슬프게 울었습니다.
꾸르륵.
이제 그만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인간과 요물은 함께 살 수 없으니까요.
저는 울면서 짐을 챙겼습니다.
떠나는 제 손에, 학이 부리로 무언가를 툭 건넸습니다.
그녀가 머리에 꽂고 있던 하얀 옥비녀였습니다.
하지만 제 손바닥에 닿자마자, 파르라니.
비녀는 하얀 깃털 하나로 변해 흩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분신이었습니다.
삼십 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제 품엔 낡은 깃털 하나가 있습니다.
말 못 하는 짐승도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의심하고, 배신하고.
과연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곁에도 말없이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밤, 그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음 주에는 더 기이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구독 버튼 한 번 눌러주시면, 사랑방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지금까지 김 진사였습니다.
스텝 재실행
현재 v1 → v2으로 재생성합니다. 이전 버전은 이력에 보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