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10: TTS 대본
Writer · 버전 4 · 초안
산출물 (v4)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형님, 저는 그냥 지나가던 잡귀예유. 이 피리는 주인이 따로 있슈. 형님은 죄가 없어유, 다 내가 훔친 거유.
그 순해 빠진 녀석이 했던 말들이, 나를 살리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인 줄 알았다면. 내 손목을 잘라서라도 그 녀석을 잡았을 겁니다. 평생을 씻을 수 없는, 그 끔찍한 후회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먼 옛날, 내 젊은 시절로 돌아갑니다. 보릿고개가 유난히 맵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 변두리, 산 밑 외딴 초가집. 윙윙. 문풍지가 찢어질 듯 울어댔습니다.
박박. 박박. 빈 쌀독 긁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습니다. 주인 김판석은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에잉, 쥐새끼 한 마리도 얼어 죽겠구나. 찍찍. 그때 쥐 한 마리가 부뚜막을 가로질렀습니다. 판석의 눈이 번뜩였습니다. 저거라도 잡아야 하나. 하지만 양반 체면에 그럴 수는 없었지요. 배에서 꼬르륵, 천둥소리가 났지만, 헛기침으로 덮을 뿐이었습니다. 크흠. 어허, 날씨 한번 고약하구나.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보글보글.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분명 우리 집 부엌인데 말이죠. 판석은 홀린 듯 방문을 열었습니다. 달그락. 솥뚜껑이 열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그 하얀 김 사이로, 산만한 덩치의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아니, 댁은 누구요. 판석이 묻자, 사내가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지나가던 잡귀인디유. 배가 너무 고파서 염치 불구하고 들어왔슈. 잡귀라니. 도깨비라는 소리 아닙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죠. 하지만 판석의 눈에는 도깨비 뿔보다, 그 손에 들린 밥그릇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후루룩. 쩝쩝. 체면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판석은 뜨거운 숭늉을 허겁지겁 들이켰습니다. 아이고, 천천히 드셔유. 체하것네. 도깨비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사람을 홀린다는 도깨비 눈빛이, 어찌 저리 순할까요. 마치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자식을 보는 눈빛 같았습니다. 그날 밤, 판석은 오랜만에 배를 두드리며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지붕 두 식구가 되었습니다. 도깨비의 이름은 칠성이라 했습니다. 칠성이가 들어온 뒤로, 판석의 집에는 따스한 볕이 들었습니다. 뚝딱, 뚝딱. 칠성이가 손만 대면 망가진 지붕이 고쳐졌습니다. 뒷산에 가면 토끼며 꿩이며,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저 집 선비가 귀신에 홀렸다며. 하지만 판석은 콧방귀를 꼈습니다. 귀신이면 어떻고 도깨비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데 말이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판석이 방문을 열기도 전이었죠. 형님, 오늘따라 오른쪽 어깨가 쑤시쥬. 제가 주물러 드릴게유. 주물럭, 주물럭. 칠성이가 판석의 오른쪽 어깨를 꾹꾹 눌렀습니다. 으으, 시원하다. 헌데 자네가 그걸 어찌 아나. 판석이 물었습니다. 사실 이 어깨 통증은, 판석이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지병이었거든요. 칠성이는 씩 웃으며 딴청을 피웠습니다. 아, 그냥 딱 보면 알쥬. 제가 눈치가 빠르잖아유.
정말 눈치였을까요.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판석을 지켜봐 온 걸까요. 칠성이는 대답 대신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흥얼흥얼. 곡조가 참 묘했습니다. 조선 팔도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가락이었지요. 판석은 귀를 후비며 타박했습니다. 어허, 그 노래 참. 곡조가 왜 그리 처량하냐. 듣기 싫다, 그만해라. 하지만 칠성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빨래를 할 때도, 장작을 팰 때도. 그 노래는 칠성의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찬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가 울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밤. 판석은 잠결에 소변이 마려워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휘이잉. 마당 평상에 칠성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지요. 낡은 옥피리였습니다. 그런데, 피리가 반쪽밖에 없었습니다. 아래쪽이 뚝 부러져 나간 고물이었지요.
칠성이가 피리를 입에 가져다 댔습니다. 후우우. 바람 소리만 날 뿐, 피리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판석이 혀를 찼습니다. 쯧쯧. 소리도 안 나는 걸 뭐 하러 밤마다 불고 있느냐. 갖다 버려라. 칠성이는 피리를 소중하게 옷깃에 닦으며 말했습니다. 만지작. 만지작. 안 돼유. 이건 주인이 따로 있슈. 주인이라니, 그게 누군데. 있어유. 아주 귀한 분이유. 칠성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더군요. 판석은 무심코 듣다가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사가 들렸거든요. 아가 아가, 우리 현수. 무럭무럭 자라거라. 현수라니. 판석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이보게, 현수가 누구냐. 자네 아들인가. 칠성이는 대답 없이 씩 웃기만 했습니다. 그 웃음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판석은 몰랐습니다. 현수라는 이름이, 훗날 자신의 족보에 적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평화롭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장날이었습니다. 시끌벅적한 장터 한구석. 짤그락. 짤그락. 엽전 꾸러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장터의 돈놀이꾼, 최 객주였습니다. 그는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판석을 불렀습니다. 아따, 김 선비 아니신가. 요즘 얼굴이 훤해지셨어. 최 객주는 혀를 차며 판석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쯧쯧. 근데 조심하쇼. 산짐승이 사람 밥을 먹으면 말이여.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잇습니다. 결국엔 그 사람 간을 탐내는 법이여.
최 객주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바스락. 관아에서 붙인 방이었습니다. 도깨비 현상금, 쌀 일백 섬. 일백 섬이라니. 판석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그 돈이면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평생 쥐새끼 눈치를 보지 않고,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습니다. 최 객주가 판석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눈 딱 감고 신고만 하소. 자네가 살아야 할 거 아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판석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대문을 열자, 부엌에서 칠성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형님 오셨슈. 오늘 고깃국 끓였는디. 평소라면 침이 고였을 그 말이, 그날따라 섬뜩하게 들렸습니다. 고깃국이라니. 나를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건가. 사람의 의심이란 게 참 무섭습니다. 한번 싹이 트니,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더군요. 칠성이의 순박한 웃음이, 비릿한 미소로 보였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는 가난한 선비입니다. 눈앞에는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큰돈이 있고요. 정체 모를 도깨비와의 의리, 그리고 지긋지긋한 가난. 과연 판석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며칠 뒤. 쌀독이 다시 바닥을 보였습니다. 벅벅. 손톱 밑에 낀 흙 때가 판석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난은 공포였습니다. 배고픔은 자존심을 갉아먹고, 결국 양심까지 삼켜버렸습니다. 판석은 결심했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래, 저놈은 어차피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판석은 칠성이를 불렀습니다. 칠성아. 예, 형님. 내일, 장터에 좀 가자. 장터는 뭐 하러유. 판석의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는 옷자락을 꽉 쥐며 거짓말을 뱉었습니다. 너 옷 한 벌 해 입자.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잇습니다. 명색이 내 동생인데, 꼴이 그게 뭐냐. 거짓말이었습니다. 옷을 해주러 가는 게 아니라, 포승줄에 묶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칠성이가 판석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 깊은 눈망울에 판석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비쳤습니다. 칠성이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보처럼 웃었습니다. 끄덕끄덕. 그려유. 형님이 가자면 가야쥬. 때때옷 입고 좋겄네유. 칠성이는 봇짐을 챙겼습니다. 반쪽짜리 옥피리도 소중히 챙겨 넣었지요.
그날 밤. 판석은 자는 척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사각.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칠성이가 판석의 머리맡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큰절을 올렸습니다.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에게 하듯 말이죠. 어둠 속에서 칠성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울렸습니다. 형님. 부디 만수무강하셔유.
판석은 이불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습니다. 하지만 쌀 일백 섬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결국 판석은 돌아눕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칠성이와의 마지막 밤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장터로 가는 길. 두 사람의 발소리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터벅터벅. 판석의 발걸음은 천 근 쇠뭉치를 단 듯 무거웠습니다. 땅만 보고 걸었지요. 반면 칠성이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가벼웠습니다. 휘이익. 휘파람까지 불었습니다. 그 맑은 소리가 판석의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형님, 날씨 참 좋네유. 딱 떠나기 좋은 날씨여. 떠나다니. 옷 해 입으러 가는 길이라 했는데 말입니다. 판석은 움찔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했습니다.
장터 입구, 좁은 골목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우당탕. 숨어 있던 포졸들이 덮쳤습니다. 저놈이다. 저놈을 잡아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습니다. 철컥. 순식간에 칠성이의 목에 굵은 밧줄이 걸렸습니다. 판석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산도 뽑을 힘을 가진 도깨비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포승줄을, 제 운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포졸들이 칠성을 무릎 꿇리자, 칠성이 고개를 들어 판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훔쳤소. 이보시오 포졸 나리. 판석이 번쩍 눈을 떴습니다. 칠성이가 악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 양반 댁 금붙이는 다 내가 훔쳤소. 이 형님은 아무것도 몰러유. 다 내가 속인 거유. 거짓말이었습니다.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판석이 도깨비를 팔아넘긴 파렴치한이 되지 않도록, 칠성이는 스스로 도둑 누명을 쓴 겁니다. 현상금을 판석의 몫으로, 아무 탈 없이 남겨주기 위해서였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끌려가는 칠성이와 판석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세상의 소리가 멈춘 것 같았습니다. 칠성이는 웃고 있었습니다. 입모양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건강하셔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털썩. 판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손에 쥐어진 현상금 어음이,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도깨비가 사라지고, 판석의 집에는 기와가 올라갔습니다. 뚝딱뚝딱. 고대광실 기와집이 들어섰지요. 곳간에는 쌀가마니가 그득했습니다. 하지만 판석의 마음은 텅 빈 흉가나 다름없었습니다. 휘이익. 가끔 귓가에 칠성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환청이었지요. 시끌벅적. 그때 최 객주가 술상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아따, 김 대감. 이제 팔자가 피셨소. 다 내 덕인 줄 아쇼. 껄껄. 최 객주의 웃음소리가 꽹과리처럼 귀를 찔렀습니다. 판석은 술잔을 들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기름진 고기가 모래알처럼 씹혔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후두둑. 후두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판석의 잠을 깨웠습니다. 으윽. 오른쪽 어깨가 쑤셔왔습니다. 비만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 형님, 여기가 쑤시쥬. 하며 주물러주던 그 투박한 손길이 없었습니다. 판석은 넓은 안방에 홀로 앉아 무릎을 감싸 안았습니다.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뼈를 깎는 죄책감. 그때, 벽장 구석에 처박아둔 봇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칠성이가 남기고 간 유일한 흔적이었습니다.
판석은 홀린 듯 봇짐을 꺼냈습니다. 부스럭. 먼지 쌓인 봇짐을 풀자, 낡은 옷가지 몇 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습니다. 먹물이 번진 편지였습니다. 판석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습니다. 글씨를 읽어 내려가던 판석의 눈이, 점점 커졌습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저예유. 칠성이.
이 편지를 읽으실 때면 저는 없겠네유. 사실 저는 백 년 뒤에서 왔슈. 우리 집안이 끊긴대유. 그래서 제가 왔슈. 제 목숨값으로 할아버지가 사셨으니, 저는 그걸로 됐슈. 부디 만수무강하셔유. 내 할아버지. 툭. 판석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편지를 적셨습니다. 도깨비가 아니었습니다. 잡귀도 아니었습니다. 미래에서, 오직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건너온 핏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만삭이었던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품에는 갓 태어난 핏덩이를 안고 있었지요. 여보, 이것 좀 보세요. 우리 현수가, 손에 이걸 쥐고 태어났어요. 응애, 응애.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아내가 내민 것. 그것은 반쪽짜리 옥피리였습니다. 판석은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칠성이가 목숨처럼 아끼던, 소리 안 나는 그 피리 조각이었습니다.
판석은 봇짐 속에 있던 칠성의 피리 조각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쥐고 온 조각에 맞춰보았습니다. 딸깍. 두 조각이 거짓말처럼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 순간, 피리에서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시간을 넘어,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것입니다. 판석은 아기의 팔을 걷어보았습니다. 쿵. 판석은 그대로 바닥에 무너졌습니다. 아기의 왼쪽 팔뚝에, 칠성이와 똑같은 붉은 점이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화상 흉터인 줄 알았던 그 자국. 그것은 핏줄의 증거였습니다.
아이고. 칠성아. 내 새끼야. 판석의 오열이 기와집을 뒤흔들었습니다. 자신을 살리려고 온 손자를.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이고, 내 손으로 사지로 밀어 넣었습니다. 내가 미쳤지. 눈이 멀어서 내 살을 도려냈어. 칠성아. 돌아오너라. 판석은 칠성이가 남긴 피리를 가슴에 품고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대답 없는 빗소리만 마당을 채울 뿐이었습니다.
어느덧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맴 맴. 매미 소리가 요란한 여름날. 하얗게 센 백발노인이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김판석입니다. 그의 곁에는 칠성이 남긴 옥피리가 놓여 있습니다.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릅니다. 젊은 날, 칠성이가 그토록 흥얼거리던 그 괴상한 노래. 이제는 가문의 자장가가 된 노래입니다. 아가 아가, 우리 현수. 무럭무럭 자라거라.
노래를 마친 판석이 허공을 보며 나지막이 말합니다. 칠성아, 들리느냐. 네 덕분에 우리 집안이 살았다. 네 아비도, 네 할애비도, 다 네가 살렸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 노인의 흰 수염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그럼 됐슈, 할아버지, 하고 칠성이가 웃는 것 같습니다. 판석의 주름진 눈가에 맑은 눈물이 고입니다. 그것은 회한의 눈물이기도 했고, 뒤늦게 전하는 사랑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가족이, 어쩌면 당신을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귀한 인연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쑥스럽더라도, 자녀분들에게 전화 한 통 걸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고맙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가, 훗날 사무치는 후회를 막아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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